때로 큐비즘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세상의 모습을 큐비즘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일찍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 유녀 코우시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내다보았던 우리들의 민낯.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큐비즘적 양성의 덫에 갇혀 버린 나의 모습이었다. 세상을 사랑한다고 해도 거짓말이고, 침묵한다고 해도 배(背)하므로 거짓말이다.
오늘도 그 추상성에 할 말을 잃는다. 보이는 대로만 보는 우리의 시각, 그러나 그게 본질은 아니다.
아니라고 하는 그것, 그것도 거짓말이다.
본질은 그 뒤에 있다. 대답하지 못하는 침묵 뒤에 있다.
그렇다면 침묵의 모가지를 쳐 없애야 한다.
그때 대답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 모습이 소설이다.
코우시, 코우시, 너는 언제 사람 될래?
사람이 되기 위한 밑바닥 인생의 몸부림 속에서 나는 보고 싶었다. 절망에서 일어나는 희망의 모습을.
생사의 엄청난 너울 속을 살아가는 우주의 큐비즘.
이런 작업이 한동안은 계속되지 싶다.
그러면서 천천히 우주의 정원을 산책하는 것. 그것이 남은 내 인생의 일과가 될 것이다. - 후기
내가 살던 집 곁에 소리꾼 부부가 살았다. 내 또래의 아들을 둔 부부였다. 가끔 동무를 찾아 놀러가기라도 하면 남편은 북을 치고 아내는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로 아내 홀로 가야금을 타거나 춤을 출 때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소리의 숭배자가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유행가가 판을 치고 남의 나라 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의 중심에서 임을 부르는 지악스런 산접동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새벽, 속이 타 없어져 버린 서릿발 돋는 대나무의 냉기 같기도 한 우리의 소리에 넋을 빼앗겨 버렸는지 모른다.
내게 있어 만약이라는 단어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상상력이 조선 예인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말해 내게는 행운이랄 수밖에 없었다. 샤라쿠가 김홍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부터 제기된 나의 이 작업은 그들이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대국적으로 볼 때 인류 공동체의 자산들이요,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 할 인물들이라는 의식의 전환을 거치면서 내 나라 예언들의 지난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후기'에서)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오스트리아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인간의 길》에서 한 말로,
법정 스님이 인용하여 거듭 강조하신 말씀)
법정 스님에 관한 한 줄의 자료를 찾아 천 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이제 와 생각해봐도 그 과정에서 그분이 쓴 시와 산문을 발굴해낸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행로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크나큰 행운이었다. 색이 바랜 신문지 속에 박여 있는 그의 글은 매우 순수했고 아름다웠다. 어느 날 그분이 내게 와 물었다.
“나는 모두 버렸는데 왜 나를 가지려 하는가.”
내가 대답했다.
“스님은 왜 살아 중생을 가지셨습니까? 왜 그들의 마음을 훔치고, 그들의 가슴속에 들어앉으셨습니까? 그래서 거두어 간 것이 아닌가? 그 거두어 감의 세계를 바로 쓰려는 것입니다.”결국 이런 모양새를 알고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무서울 것도 없다. 나는 그를 그렸고, 그의 전설은 이제 바람이 되어 흩어질 것이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오스트리아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인간의 길》에서 한 말로,
법정 스님이 인용하여 거듭 강조하신 말씀)
법정 스님에 관한 한 줄의 자료를 찾아 천 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이제 와 생각해봐도 그 과정에서 그분이 쓴 시와 산문을 발굴해낸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행로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크나큰 행운이었다. 색이 바랜 신문지 속에 박여 있는 그의 글은 매우 순수했고 아름다웠다. 어느 날 그분이 내게 와 물었다.
“나는 모두 버렸는데 왜 나를 가지려 하는가.”
내가 대답했다.
“스님은 왜 살아 중생을 가지셨습니까? 왜 그들의 마음을 훔치고, 그들의 가슴속에 들어앉으셨습니까? 그래서 거두어 간 것이 아닌가? 그 거두어 감의 세계를 바로 쓰려는 것입니다.”결국 이런 모양새를 알고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무서울 것도 없다. 나는 그를 그렸고, 그의 전설은 이제 바람이 되어 흩어질 것이다.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최고의 그림이자 중심이며 일정한 '경지'에 들지 않고는 결코 그릴 수 없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일정한 경지라고 했는데, 그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신윤복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군가 말했듯이 색만 있고 진정한 색은 없는 신윤복이 아니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풍수는 내 삶의 오래된 화두였다. 사람들은 풍수를 산세를 읽고 혈자리를 찾는 일쯤으로 생각하지만 내게 풍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풍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그 자체였다. 우리를 품고 있는 땅이었고 우리 곁을 스쳐 가는 바람이었고 우리 삶 속으로 흘러가는 물이었다. 인간은 결국 그 안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간다.
정점에 이른 인간을 다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때때로 내가 그들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나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였다. 인간은 본래부터 모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쓰이는 자나 쓰는 자나 결국 그 모순의 과정을 통하여 풍광에 이른다.
이번 역시 정조를 쓰면서 그의 좋은 면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이기의 끝을 보여준 인간이었다. 복수에 사무친 존재였고 이기와 이상이 한 몸 안에서 동시에 들끓는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제 할아비를 흉지에 밀어 넣고 제 아비는 천하의 길지에 밀어 넣었겠는가. 그렇게 보면 그는 지극히 소인배적 원심의 사나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순을 혐오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위선과 비열함, 자기기만 속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장엄함을 발견하게 된다. 위험하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한 그 무엇 말이다.
정조는 뒤주라는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시작하여 규장각이라는 찬란한 지성의 전당을 세웠고 천만년 백성의 삶터가 될 화성을 일구어낸 사람이었다. 나는 바로 그 원심을 그리고 싶었다. 그를 단순한 성군이나 복수자로 가두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의 근본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리는 과정에서 약간은 근사하게 포장되기도 하리라. 문학은 때로 인간의 상처를 풍광으로 바꾸고 모순을 장엄함으로 바꾸며 비극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문학은 단순한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위험한 매혹까지도 끝내 들여다보려는 행위. 그러므로 독인 줄 알면서도
결국 마시게 되는 것이다.
정조만큼 풍수에 깊이 천착한 왕도 드물 것이다. 역대의 왕들 또한 풍수를 중히 여겼으나 수원 화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조의 풍수는 단순한 신앙이나 취미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기 위한 하나의 정치였고 시대를 바꾸기 위한 도구였다.
그 거대한 꿈의 중심에는 한 가족의 비극이 놓여 있었다.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의 삶이란 과연 이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묻게 된다.
…중략…
이번에 정조를 쓰면서 다시 인간을 보았다. 권력과 명분, 사랑과 증오,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속에서 오래전의 나 또한 함께 보았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의 이치는 소설의 쉼표처럼 늘 반듯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불완전한 흐름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자기 삶의 길을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간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질문의 기록이다.
정조라는 그릇을 통해 풍수의 넋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고 그것을 새롭게 저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풍수는 내 삶의 오래된 화두였다. 사람들은 풍수를 산세를 읽고 혈자리를 찾는 일쯤으로 생각하지만 내게 풍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풍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그 자체였다. 우리를 품고 있는 땅이었고 우리 곁을 스쳐 가는 바람이었고 우리 삶 속으로 흘러가는 물이었다. 인간은 결국 그 안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간다.
정점에 이른 인간을 다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때때로 내가 그들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나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였다. 인간은 본래부터 모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쓰이는 자나 쓰는 자나 결국 그 모순의 과정을 통하여 풍광에 이른다.
이번 역시 정조를 쓰면서 그의 좋은 면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이기의 끝을 보여준 인간이었다. 복수에 사무친 존재였고 이기와 이상이 한 몸 안에서 동시에 들끓는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제 할아비를 흉지에 밀어 넣고 제 아비는 천하의 길지에 밀어 넣었겠는가. 그렇게 보면 그는 지극히 소인배적 원심의 사나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순을 혐오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위선과 비열함, 자기기만 속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장엄함을 발견하게 된다. 위험하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한 그 무엇 말이다.
정조는 뒤주라는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시작하여 규장각이라는 찬란한 지성의 전당을 세웠고 천만년 백성의 삶터가 될 화성을 일구어낸 사람이었다. 나는 바로 그 원심을 그리고 싶었다. 그를 단순한 성군이나 복수자로 가두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의 근본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리는 과정에서 약간은 근사하게 포장되기도 하리라. 문학은 때로 인간의 상처를 풍광으로 바꾸고 모순을 장엄함으로 바꾸며 비극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문학은 단순한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위험한 매혹까지도 끝내 들여다보려는 행위. 그러므로 독인 줄 알면서도
결국 마시게 되는 것이다.
정조만큼 풍수에 깊이 천착한 왕도 드물 것이다. 역대의 왕들 또한 풍수를 중히 여겼으나 수원 화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조의 풍수는 단순한 신앙이나 취미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기 위한 하나의 정치였고 시대를 바꾸기 위한 도구였다.
그 거대한 꿈의 중심에는 한 가족의 비극이 놓여 있었다.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의 삶이란 과연 이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묻게 된다.
…중략…
이번에 정조를 쓰면서 다시 인간을 보았다. 권력과 명분, 사랑과 증오,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속에서 오래전의 나 또한 함께 보았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의 이치는 소설의 쉼표처럼 늘 반듯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불완전한 흐름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자기 삶의 길을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간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질문의 기록이다.
정조라는 그릇을 통해 풍수의 넋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고 그것을 새롭게 저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