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문학,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문학을 전공했고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번역했던 나로서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활동했던 문인들에게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중 카를 크라우스는 빈의 문화를 다룬 책마다 등장하는 작가였고, 문제적 작가로 비중 있게 소개되는 인물이었으나 막상 그가 집필한 책들이 번역되지 않아 과연 어떤 작가이길래 이러한 주목을 받는지 늘 궁금했다.
(중략)
오직 ‘풍문으로’ 전해지던 카를 크라우스의 글을 직접 번역하면서 이 작가가 당대의 엄청난 작가들에게 존경과 주목을 받은 몇 가지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 중 무엇보다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크라우스의 풍자정신이다. 우리말로 풍자라고 하면 국어시간에 배웠던 해학이나 익살처럼 조롱을 동반한 웃음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제대로 된 풍자라면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이 있는 동시에 고결함에 대한 강한 의지가 동반돼야 함을 크라우스의 글은 잘 깨우쳐준다. 시인 김수영이 쓴 시구 중에 “풍자가 아니면 해탈”(「누이야 장하고나!」)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풍자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기법인지를 예감한다. 풍자가 본질을 벗어나는 순간, 해탈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풍자는 섣불리 다룰 수 없는 장치이며 자기만의 중심을 유지하지 않고는 성공하기 힘든 기법이다.
(중략)
너무나 독보적이어서 지독하게까지 느껴지는 크라우스의 글을 우리 독자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마음은 보람차면서도 두려울 수밖에 없다.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현란한 문체와 독특한 언어유희 때문에 번역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 크라우스의 글이 과연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단 하나의 언어도 헛됨 없이 촘촘하게 빚어낸 크라우스의 언어를 최대한 우리말로 풀어보고자 했으나 넘어서기 힘든 한계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크라우스가 세상에 맞서 전하고자 했던 촌철살인의 풍자정신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2026년 7월
학생 시절 조지 오웰에 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관심도 크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동물농장』이나 『1984』 같은 소설, 그리고 반공주의 성향을 가진 영국 작가라는 것 정도가 전부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중 속속 출간된 오웰의 르포와 에세이를 접하면서 필자의 시각은 180도 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페인내전에 기자로 참여했던 헤밍웨이 정도를 용기있는 작가로 꼽던 필자는 스페인내전뿐 아니라 탄광촌, 런던과 파리의 밑바닥 생활까지를 두루 체험한 조지 오웰의 글을 보고는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최하층 생활, 때로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장에서 오웰은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전체주의 모두를 고발하고 있었다.
1년 전쯤 대학 도서관에서 오웰의 에세이 선집을 찾아냈다. 총 4권으로 이뤄진 선집에는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에세이는 물론, 편지, 대담, 서평 등이 실려 있었다. 편집자이자 번역가로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우선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에세이와 서평을 중심으로 글을 선별했고, 지금 시대에 읽어도 손색이 없을 글들을 택하여 번역했다.
1부에 실린 에세이들은 새로운 언어, 구어체 대중 연설, 유럽연방, 민주적 사회주의 등에 대한 대담한 구상을 담고 있다. 좌우 이념을 떠나 예술적 기법과 시대적 내용 모두를 담아낸 문학에 대한 요청도 경청할 만하다. 2부에는 서평을 실었다. 서평가로서의 오웰은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오웰 특유의 아이러니한 비판 정신은 서평에서도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이 책을 번역하는 와중에도 유럽과 중동에선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민주주의 국가로 불리는 나라에서조차 극우 세력의 득세가 이어졌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계엄령이 포고되어 전 국민을 정신적 공황에 빠트렸다. 오웰이라면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아마도 몇명의 미친 지도자가 세상을 불행에 빠트렸다는 식으로 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웰이라면 현대 사회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바라보자고 제안했을 것 같다. 세상에 분노하긴 쉽지만 “오만 가지 스피커가 똑같은 소리를 낼 때 단 하나의 인간적인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웰은 끊임없이 그런 목소리를 낸 사람이었고 이 산문집에서 누구라도 그 목소리를 듣는다면 옮긴이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지난 2013년 『특성 없는 남자』 1, 2권을 펴내고 8년이 지나서야 『특성 없는 남자』 3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후속 권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1·2권을 내놓고 3권부터는 공역을 추진하다가 함께 번역하기로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역자도 포기하고 싶었다. 워낙 내용이 난해한 데다 미완성 대작이라는 분량상의 압박이 다시금 마음을 약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쯤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데 후속 권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죄송하면서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있으며 또 기다려준다는 사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부족한 능력이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조금씩이나마 번역을 이어온 결과 이렇게 3권의 분량이 완성되었다. 이 책이 2권에서 끝나지 않고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 덕분이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지난 2013년 『특성 없는 남자』 1, 2권을 펴내고 8년이 지나서야 『특성 없는 남자』 3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후속 권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1·2권을 내놓고 3권부터는 공역을 추진하다가 함께 번역하기로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역자도 포기하고 싶었다. 워낙 내용이 난해한 데다 미완성 대작이라는 분량상의 압박이 다시금 마음을 약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쯤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데 후속 권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죄송하면서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있으며 또 기다려준다는 사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부족한 능력이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조금씩이나마 번역을 이어온 결과 이렇게 3권의 분량이 완성되었다. 이 책이 2권에서 끝나지 않고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 덕분이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는 것은 분명 결핍과 실패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무질이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태도는 정상적인 퇴고가 아니라 강박증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는 판단 역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판단에 흔쾌히 동의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사실은 문학의 본질이 완성에 있지 않고 그런 완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유에 있다는 작가의 태도를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무질에게 문학의 본질은 하나의 사유와 묘사에 온 정신을 투여하는 순간성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런 순간성 덕분에 이 작품은 영원한 지속성을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로잡힌 강박 때문에 우리는 이런 미완성 대작을 손에 쥐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져보는 것이다. (…)
무질에게 소설이란 모호한 정신을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밀고 나간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때 완성이란 개념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질에게는 사실보다는 가능성이, 진보적 이상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1권을 번역 출간한 지 근 10년이 지나 4권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주시고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고, 또 뒤늦게나마 완간의 약속을 지킨 것을 역자로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는 것은 분명 결핍과 실패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무질이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태도는 정상적인 퇴고가 아니라 강박증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는 판단 역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판단에 흔쾌히 동의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사실은 문학의 본질이 완성에 있지 않고 그런 완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유에 있다는 작가의 태도를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무질에게 문학의 본질은 하나의 사유와 묘사에 온 정신을 투여하는 순간성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런 순간성 덕분에 이 작품은 영원한 지속성을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로잡힌 강박 때문에 우리는 이런 미완성 대작을 손에 쥐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져보는 것이다. (…)
무질에게 소설이란 모호한 정신을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밀고 나간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때 완성이란 개념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질에게는 사실보다는 가능성이, 진보적 이상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1권을 번역 출간한 지 근 10년이 지나 4권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주시고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고, 또 뒤늦게나마 완간의 약속을 지킨 것을 역자로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지난 2013년 『특성 없는 남자』 1, 2권을 펴내고 8년이 지나서야 『특성 없는 남자』 3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후속 권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1·2권을 내놓고 3권부터는 공역을 추진하다가 함께 번역하기로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역자도 포기하고 싶었다. 워낙 내용이 난해한 데다 미완성 대작이라는 분량상의 압박이 다시금 마음을 약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쯤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데 후속 권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죄송하면서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있으며 또 기다려준다는 사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부족한 능력이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조금씩이나마 번역을 이어온 결과 이렇게 3권의 분량이 완성되었다. 이 책이 2권에서 끝나지 않고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 덕분이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지난 2013년 『특성 없는 남자』 1, 2권을 펴내고 8년이 지나서야 『특성 없는 남자』 3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후속 권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1·2권을 내놓고 3권부터는 공역을 추진하다가 함께 번역하기로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역자도 포기하고 싶었다. 워낙 내용이 난해한 데다 미완성 대작이라는 분량상의 압박이 다시금 마음을 약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쯤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데 후속 권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죄송하면서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있으며 또 기다려준다는 사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부족한 능력이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조금씩이나마 번역을 이어온 결과 이렇게 3권의 분량이 완성되었다. 이 책이 2권에서 끝나지 않고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 덕분이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는 것은 분명 결핍과 실패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무질이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태도는 정상적인 퇴고가 아니라 강박증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는 판단 역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판단에 흔쾌히 동의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사실은 문학의 본질이 완성에 있지 않고 그런 완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유에 있다는 작가의 태도를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무질에게 문학의 본질은 하나의 사유와 묘사에 온 정신을 투여하는 순간성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런 순간성 덕분에 이 작품은 영원한 지속성을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로잡힌 강박 때문에 우리는 이런 미완성 대작을 손에 쥐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져보는 것이다. (…)
무질에게 소설이란 모호한 정신을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밀고 나간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때 완성이란 개념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질에게는 사실보다는 가능성이, 진보적 이상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1권을 번역 출간한 지 근 10년이 지나 4권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주시고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고, 또 뒤늦게나마 완간의 약속을 지킨 것을 역자로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는 것은 분명 결핍과 실패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무질이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태도는 정상적인 퇴고가 아니라 강박증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는 판단 역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판단에 흔쾌히 동의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사실은 문학의 본질이 완성에 있지 않고 그런 완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유에 있다는 작가의 태도를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무질에게 문학의 본질은 하나의 사유와 묘사에 온 정신을 투여하는 순간성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런 순간성 덕분에 이 작품은 영원한 지속성을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로잡힌 강박 때문에 우리는 이런 미완성 대작을 손에 쥐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져보는 것이다. (…)
무질에게 소설이란 모호한 정신을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밀고 나간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때 완성이란 개념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질에게는 사실보다는 가능성이, 진보적 이상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1권을 번역 출간한 지 근 10년이 지나 4권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주시고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고, 또 뒤늦게나마 완간의 약속을 지킨 것을 역자로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지난 2013년 『특성 없는 남자』 1, 2권을 펴내고 8년이 지나서야 『특성 없는 남자』 3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후속 권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1·2권을 내놓고 3권부터는 공역을 추진하다가 함께 번역하기로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역자도 포기하고 싶었다. 워낙 내용이 난해한 데다 미완성 대작이라는 분량상의 압박이 다시금 마음을 약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쯤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데 후속 권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죄송하면서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있으며 또 기다려준다는 사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부족한 능력이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조금씩이나마 번역을 이어온 결과 이렇게 3권의 분량이 완성되었다. 이 책이 2권에서 끝나지 않고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 덕분이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지난 2013년 『특성 없는 남자』 1, 2권을 펴내고 8년이 지나서야 『특성 없는 남자』 3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후속 권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1·2권을 내놓고 3권부터는 공역을 추진하다가 함께 번역하기로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역자도 포기하고 싶었다. 워낙 내용이 난해한 데다 미완성 대작이라는 분량상의 압박이 다시금 마음을 약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쯤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데 후속 권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죄송하면서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있으며 또 기다려준다는 사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부족한 능력이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조금씩이나마 번역을 이어온 결과 이렇게 3권의 분량이 완성되었다. 이 책이 2권에서 끝나지 않고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 덕분이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