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근대서지』를 낸다.
2010년 3월에 시작해 2024년 12월까지 15년 동안 반년간(半年刊)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뚜벅걸음으로 왔다. 남들은 30호를 같잖게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근대서지』라고 하면 먼저 책의 두께(볼륨)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1천쪽이 넘는 이른바 ‘벽돌책’은 소명출판 박 사장의 기꺼운 배려 아래 많은 자료들의 발굴로 만들어졌다. ‘수집가와 연구자의 가교(架橋)’를 내세우며 학회를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료의 확보가 능사(能事)는 아니었다. 필자를 비롯해 박성모(이하 존칭ㆍ직칭 생략), 최철환, 엄동섭 등이 자료 제공에 발벗고 나섰는데 가장 든든한 자료 후원자는 당시 춘천 대일광업의 김현식 대표였다. 원주 문막의 박 사장 서재와 춘천 동면 대일광업의 수장고를 춘하추동 가리지 않고 내 집 드나들 듯이 하면서 자료를 찾고 연구자에게 제공해 『근대서지』를 만들었다. 자료는 물론이고 이용하는 데에 온갖 편의를 제공해준 두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후 이번호에 이르기까지 화봉문고를 통해서 많은 자료를 제공받았다. 故 여승구 회장님의 뒤를 이은 자제분 여인명 대표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근대서지의 보물창고인 현담문고(옛 아단문고)와 관계자 하영휘, 박천홍 두 분께도 감사 마음을 전한다. 여전히 ‘세상은 넓고 자료는 많다.’ ‘한역통’을 이은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에서 수많은 자료가 공개되어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 소장자료까지 채널화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근대서지』에는 책 관련 정보와 많은 글이 실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말 영인(影印)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들이 사업채산상 영인본을 쉽사리 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잊혀가는 자료 하나라도 원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영인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고백하건대 좋은 자료가 있어도 마땅한 해제자를 찾지 못해 영인, 소개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지난번 『愛戀慕思』(김기진 역시집)나 『無窮花』(이학인 시집) 경우처럼 논고를 통해 자료를 소개해 놓고 자료의 전문을 공개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가능하면 ‘근대서지총서’ 단행본으로 세상에 내보일 생각으로 유보시킨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앞으로는 『근대서지』를 통해 공개하도록 하겠다. 바라건대 ‘벽돌책’은 유지하되 좀더 충실한 벽돌이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