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요.
이따금씩은 그 감정을 즐기기도 했고요.
당신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때로는 당신을 시험해보고
때로는 당신을 윽박지르며
내게 시선을 떼지 않은 당신이 부담스러워
당신이 보이지 않은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지요.
짝사랑으로 속앓이 했을 당신에게
다가가기가 두려웠던 건
당신이 원하는 사랑이라는 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제야 고백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제 길에 동행해 주셔요.
기계화로 풍요롭고 세련된 사회가 된 지금
사람들은 옛날이 좋았다고 합니다.
투박하고 정돈되지 못한 삶에 대한 향수가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건
부족한 인간끼리의 만남에서 오는
온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집은 2011년 이전에 부부 시집 6권 중에 제 시를 발췌했습니다.
숙성되지 못한 시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옹기 같은 질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후 2권의 시집을 출간했지만 여기에 포함하지는 않았습니다.
AI가 침범하지 않은 초심을 느끼고 싶은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어주시는 독자님의 마음처럼
오늘을 따뜻하게 보내려 합니다.
2026년 7월
이지선 드림
책을 낼 때마다 고민해봅니다.
이건 공해가 아닌가?
내 감정 사치로 수십 년 동안 자라온 나무들만 죽이는 건 아닌가?
한 편의 시를 완성시키지 못해 며칠 밤을 전전긍긍하면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읽어 주기를 애원하는 이 작업을
밥이 되지 않은 이 고통의 시간을
차마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해산 후의 희열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인이 더 많다는 요즈음이다.
시집을 낸다는 게 또 하나의 문화적 공해인 듯싶어 망설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다.
지금도 나와의 갈등이 기분 좋게 합의된 것은 아니다.
밥도 되지 못하고, 반찬도 안 되는 시와 씨름하느라 밤을 설치는 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감정의 배설이라는 생각을 가지던 날, 먹는 것보다 배설을 잘해야 건강하다는 걸 알아가는 나이가 된 지금 배설물이 잘 발효되어 퇴비로도 쓸 수 있음을 은근히 소망해 본다.
* 본문 - ‘작가의 말’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준비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기울입니다.
다행히 그 꿈을 이룬 분들도 있고,
평생 간직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획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고,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모두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서는
준비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생명을 받아올 때 죽음도 같이 받아왔다는 것을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떠날 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멋진 사람이지 않을까요?
좋은 씨를 뿌려 좋은 나무로 가꾸어야 좋은 열매를 얻듯이
우리의 삶도 그럴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이 두려워 회피하고 도망가려고만 하지 말고
죽음 앞에 정면으로 맞서 삶을 성찰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을 아름답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인간이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죽음을 앞두고 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많은 사람과 같이 나누고자 이 글을 세상에 보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