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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문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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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성령님과 기도 한 달 살기>

성령님과 기도 한 달 살기

성경은 믿음의 본질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로 제시한다. 이보다 더 역설적인 선언이 또 있을까! ‘실상’은 이미 이루어진 현실적인 실체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소망이 아닌가! ‘보이지 않는 증거’라는 표현도 역설을 담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증거란 눈에 보이고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증하는 증거가 된다고 말한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영혼의 눈으로 보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지금 이 순간의 실상으로 누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생생히 보며 살게 만든다. 이러한 믿음이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발에 등(시 119:105)으로 삼아, 그 말씀이 비추는 길을 따라 걸어가게 만든다.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하나님의 일하심과 인도하심이 느껴지는 통로가 바로 믿음인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실제로 작동할 때 가장 먼저 변화되는 부분은 바로 우리의 기도생활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생생히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히 들린다면 우리의 기도생활이 얼마나 달라질지 생각해 보라! 실제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과 상의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교회 안에는 기도의 불씨가 꺼져가고, 성도들의 삶에는 기도의 자리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기도의 삶을 회복해 가는 일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도에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면서도, 기도가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they ought always to pray and not lose heart)”(눅 18:1). 예수님의 분석에 따르면 기도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낙심(losing heart) 이다. 연초마다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기도생활을 시작해 보지만, 어떻게 기도할지 몰라 낙심에 빠짐으로 어느새 기도를 멈춰 버린다. 집회나 부흥회 때 큰 은혜를 받고 다시 기도생활을 시작해 보지만, 기도 가운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낙심에 빠져 기도를 멈춰 버린다. 이렇게 우리는 낙심(losing heart)으로 기도를 잃어버린다(losing prayer). 그러면 어떻게 이 낙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도전하시며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눅 18:1-8)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믿음이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우리가 지속적인 기도에 실패하는 원인을 ‘낙심’으로 진단하시고, 그에 대한 치료책으로 ‘믿음’을 처방하신다. 기도의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진단을 따라 먼저 낙심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생활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낙심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소망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롬 15:13). 초라해 보이는 나의 기도생활에 성령님은 소망을 불어넣어 주신다. 하나님이 나의 부족한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그 기도를 너무나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진단에 따라 낙심의 문제를 다루며,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분의 처방에 따라 믿음으로 기도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이 역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이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고전 12:3, 고전 12:9). 성령님은 소망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영이시다. 성령님이 우리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을 경험하는 사귐의 기도를 하도록 도우신다. 즉 기도의 진수는 “성령 안에서 기도”(엡 6:18)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진단에서 보여지듯이 낙심과 불신앙이 한 쌍이라면, 기도는 언제나 믿음과 함께 간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생생히 보며 기도하게 되고,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자라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에 대한 성경의 정의(히 11:1)가 모순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모순이다. 성도는 보이는 것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다(고후 5:7,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며,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살아갔던 코람데오의 삶이다. 지속적인 기도의 삶이 바로 이 코람데오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코람데오의 삶은 성경에 등장하는 특별한 영웅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의 심령에는 성령님이 거하신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 모두를 코람데오의 삶으로 부르고 계신다. 그러므로 코람데오의 삶은 몇몇 믿음의 위인들만의 특별한 삶이 아니라, 성령님을 마음에 모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의 방식이다. 성령님은 특별히 기도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고,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빚어 가신다. 성령님 안에서 하는 기도가 우리로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코람데오의 삶은 우리 기독교 역사 안에서 아름답게 구현되어 왔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는 삶의 중심으로서의 지속적인 기도를 가진 공동체였다. 에디스 쉐퍼(Edith Schaeffer, 프란시스 쉐퍼의 아내)는 기도하는 라브리 공동체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일상의 삶 구석구석을 기도로 엮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고 우둔하며 분별없는 삶입니다. 혹은 창조주께서 그분을 찾고 부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그분의 존재를 확실히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산소처럼 필수 불가결하게, 친한 친구와 부담 없이 대화하듯 실제적으로, 그리고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포대를 열 듯 당연하게, 그렇게 기도하는 분위기에서 상식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능해집니다. 에디스 쉐퍼의 고백에서 보듯이 지금도 기도가 우리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일은 분명 가능하다. 이 책을 따라 한 달간 성령님과 함께 기도의 자리를 세워갈 때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이 기도로 엮어지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이와 부담 없이 대화하듯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 나누는 일이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성령님과 함께 이 아름다운 기도의 삶을 한 달 동안 살아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6년 5월 더 깊은 기도의 은혜를 갈망하며 문일준 - 저자서문

예배 회복 작전 타임

무척이나 더웠던 2025년 여름, 10주 동안 사랑하는 왕십리교회 청년들과 룻기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룻기를 강해하며 룻과 나오미가 누린 이 아름다운 회복이 우리 공동체의 청년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이 설교자인 내 안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 열망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보게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회복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시는데, 그 회복의 장소로 ‘베들레헴’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왜 수많은 장소들 가운데 하필 베들레헴을 회복의 무대로 사용하셨을까?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하며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회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룻기를 읽으며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 줍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읽고 지나치곤 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는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 시대이다. 사사 시대는 왕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각자가 왕이 되어 자신의 정욕을 쫓아 살던 시대였다. 사사 시대에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삭줍기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추수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마을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이 이삭줍기는 보아스가 살던 베들레헴에서 여전히 시행되고 있었다. 하나님은 바로 그 공동체를, 회복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실 무대로 삼으셨던 것이다. 이 사실이 깨달아지자, 마음속 깊은 속에서 기도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 우리 공동체의 예배 자리가 하나님께서 친히 회복을 써 내려가시는 무대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예배 자리를 룻기의 무대처럼 사용해 주옵소서!’ 그때 하나님께서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주셨다. 우리 공동체가 회복의 무대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잃어버려 더 이상 시행되지 않는 이삭줍기와 같은 하나님의 뜻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도 가운데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배와 관련해 오늘날 교회가 사사 시대처럼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 토저(A. W. Tozer, 1897-1963) 목사님은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시간으로 시험하신다. 예배에 얼마나 일찍 나오는지가 그분에 대한 갈망을 보여 준다”라고 말했다. 예배가 마음의 문제라면, 예배의 회복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척도가 바로 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팀 켈러(Timothy Keller, 1950-2023) 목사님의 말처럼 “예배는 내 마음이 하나님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며 “시간을 지키는 것은 그 소중함의 한 단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깨달음과 찔림 앞에서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이 마음을 설교 중에 나누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예배 회복 작전 타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배 회복 작전 타임”은 예배 시작 전, 소그룹이 미리 모여 그날의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왕십리교회 청년부는 예배 후에 소그룹 모임을 가져왔는데, 이에 더해 예배 시작 10분 전에도 소그룹별로 모여 예배를 위한 작전을 나누고 예배를 준비하는 모임을 가진 것이다. 사랑하는 리더십들이 셀원들을 데리고서 이 시간을 지켜 가며, 예배를 세워 가는 운동에 함께하기 시작했다. 룻기의 베들레헴 공동체처럼,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회복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시는 무대가 되기를 꿈꾸며 그 시간들을 지켜 가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배가 시작할 때 예배당의 3분의 1만 채워지던 공동체가 이제는 예배 전에 예배당 입구와 예배당 안이 작전 타임을 갖는 청년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예배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예배드릴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을 품고 예배에 임하자, 예배드리는 태도와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새롭게 예배를 찾는 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흉년이 들었던 베들레헴에 여호와께서 양식(레헴)을 주셨다는 소식이 들리자 룻과 나오미가 돌아온 것처럼(룻 1:6),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의 빵(레헴) 되시는 예수님을 누릴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적으로 굶주렸던 영혼들이 그 예배의 자리로 찾아오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책에는 예배의 회복을 놓고 치열하게 씨름한 한 청년 공동체의 흔적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예배를 지식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서’가 아니라, 치열한 영적 전쟁터인 예배의 현장에서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전들을 담은 ‘실전서’이다. 운동 경기에 비유하자면, 안전한 관람석에서 예배를 구경하는 팬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예배라는 필드에서 실제로 뛰고, 땀 흘리는 예배자를 위한 책인 것이다. 운동 경기를 구경하는 이들에게는 작전 타임이 필요가 없다. 작전 타임은 필드에서 직접 뛰고 땀 흘리는 선수들을 위한 시간이다. “예배 회복을 위한 작전 타임”도 마찬가지다. “예배 회복을 위한 작전 타임”은 단순한 ‘지각하지 않기 캠페인’이 아니며, ‘팬 미팅’이 아니다. 예배의 구경꾼에서 진정한 예배자로 태어나는 훈련이자 과정이다. 이 책에 모든 공동체가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과제들을 정리해 두었다. 또한 각자의 공동체 상황에 맞게 예배 회복을 위한 작전을 고민하고 직접 적어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두었다. 한 달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예배를 준비하고, 매주 소그룹으로 구체적인 예배 작전을 실천해 갈 때, 자신이 예배자로 서 가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소그룹에서 함께 적용해 갈 때,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라 확신한다. 예배 전에 소그룹이 미리 모여 이 책이 제시하는 작전을 나누고, 예배의 자리에서 이를 실천해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 자리를 사사 시대의 베들레헴 공동체처럼 회복의 무대로 사용하실 거라 믿는다. 베들레헴 공동체에서 시행되던 이삭줍기가 비록 작아 보이는 순종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의 회복을 불러온 도구가 된 것처럼, ‘예배 회복을 위한 작전 타임’ 역시 작은 움직임처럼 보일지라도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자리를 회복의 무대로 사용하실 거라 믿는다. 이 글이 이론서가 아닌 실전서로 쓰일 수 있도록 ‘예배 회복을 위한 작전 타임’의 자리를 치열하게 지켜 준 사랑하는 왕십리교회 YEM 청년부 리더들과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무모해 보이는 한 청년 공동체의 예배 회복을 위한 실험과 도전을 책으로 엮어 주신 강인구 대표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언제나 기도로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시는 사랑하는 부모님, 장인 장모님,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인 사랑하는 아내 정은지와 두 딸, 다해, 다연이에게 빚진 자의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5년 12월 더 깊은 예배의 회복을 갈망하며 - 저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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