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아들 내외에게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새벽에 몰래 택시를 불러 읍내 병원에 다녀오곤 했던 한 노인을 기억한다. 행여나 요양 시설에 들어가자고 할까, 아픈 몸을 이끌고 마을 회관 앞 공터까지 나가 택시에 오르면서 가족들이 깰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심신이 쇠약해지면 요양 시설에 입소하고 그곳에서 마지막을 맞는 것이 범상한 일이 된 지 오래지만, 가족의 힘만으로 돌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린 아마도 최선이라고 믿었던 결정을 노인은 한사코 거부했다. 요양 시설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노인에게는 마지막을, 그동안 맺어왔던 사회적 관계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저자 디디에 에리봉이 ‘어느 서민 여성’,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술회한다. 평생 노동계급으로 살았던 어머니가 건강 악화로 요양원에 입소한 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자 에리봉은 노년과 취약한 주체, 돌봄과 연대의 문제를 성찰하게 되었다. 이때 그가 마주한 것은 인간으로서 피해 갈 수 없는 질병과 고통받는 몸, 노화와 자율성의 상실, 열악한 공공 보건과 요양원의 현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같은 문제들이다. 어머니에 관한 개인적인 회고담에서 출발하면서, 저자는 ‘프랑스 노동계급 여성의 전형적 일생’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거쳐 다시 ‘노년’과 ‘노인’이라는 사회적 범주, 나아가 늙음과 장애를 숙명적으로 겪는 인간 주체의 취약성과 연대에 관한 이론적 성찰로 이야기를 확장해 간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자율성을 상실하고 요양원에 고립된 노인들은 스스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묻는다.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
AI의 등장은 직업의 소멸을 묻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새로운 성취를 향한 설렘을 동시에 몰고 왔다. 누군가는 내 자리가 사라질까 전전긍긍하고, 누군가는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기상조라 냉소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미 거대한 변화의 물결 한가운데에 우리가 서 있다는 점이다. 휴대폰이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었듯, 이제 인공지능을 다루는 감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직업인의 기본값이 되었다. 직종과 국가,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 속도는 다르겠지만, 도구가 인간의 노동을 정의하던 시대에서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의 시대로 이행 중인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자명한 흐름이다.
27년간 현장을 누빈 설계자는 기술이 폭격하는 혼돈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핵심은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태도와 구조'라고 단언한다. AI가 정교한 보고서를 대신 써줄 수는 있어도, 그 안에 담길 문제의 본질을 정의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사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기록을 통해 단순히 최신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자를 넘어, 자신의 일과 삶을 입체적으로 조율하는 ‘설계자’로서의 감각을 깨우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서 이 결정을 내리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변화의 파도에 휩쓸리는 대신 그 파도의 결을 읽어내어 자신만의 항로를 설계하는 단단한 중심을 얻기를 바란다.
깜깜한 밤을 뚫고 새벽이 아침을 데려온다. “안녕, 아침. 안녕, 하늘.” 바람처럼 달리는 말 ‘아침놀’을 탄 아이가 새 아침에 반갑게 인사한다. 태양빛이 와락 쏟아지며 세상은 환하게 빛나고, 아침놀과 함께 숲과 언덕을 지나 마을로 향하는 길 위에서 아이의 감탄은 멈추지 않는다. “아침은 이렇게나 눈부시게 반짝이고, 햇빛이 가득 흘러넘쳐!”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특별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 문학상, 일본 그림책 대상 등 주요 그림책 상을 휩쓸고 ‘21세기 일본 그림책의 거장’으로 불리며 사랑받아온 아라이 료지의 그림책. 세상의 모든 순간에 경탄하는 아이의 세계를 춤추듯 자유롭고 환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어쩌면 어른들이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아이의 시선으로, 이 책은 말한다. 오늘은 매일 어김없이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하루가 아니라, 축하할 일로 가득한 새로운 선물 같은 하루라는 것을. 새해의 첫 아침,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이의 말을 떠올린다. “축하해, 우리 모두. 축하해, 온 세상!”
제 44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나하늘 시집. 글자들을 지운 채 발행한 『Liebe』 , 훼손 없이는 펼칠 수 없도록 닫힌 채 제작된 『은신술』 등의 독립출판물을 작업했고, 독립문예지 '베개'에 참여하기도 한 시인은 성원권의 경계를 넘나들며 둔갑을 시도한다. 때론 마녀, 때론 유령인 존재들의 비기는 작아지기 같은 것이다.
작아지기는 변신술/둔갑술의 일종으로 통념과 달리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16쪽, <작아지기>)
작아지기와 유용함은 반대항이라는 2020년대 한국사회의 '통념'이 있다. '약속에 항상 늦고 / 끊임없이 이직을 희망하며' (<사랑에 빠지게 하거나 죽은 사람 살리는 건 안 돼> 58쪽),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까'(<사라지기 2>, 49쪽) 걱정하느라 '실망시키고 원성을 샀을' (<사라지기1> 30쪽) 화자들. 용서하지 않는 세상에서 이들은 살아있기 위해 메일을 열어보지 않고 회신을 지연한다. 잠을 너무 오래 자는 사람, 서점의 유령, 가부장제의 마녀, 저전력모드, 슬픈 사람, 친구들이 살아 있기를 바라며 이 시집을 읽는다. 바코드 태그가 누락된 채 도서관에서 분실된 책 같은, 필경사 바틀비 같은 친구들이 '간신히 견딜 수 있는 하나의 책을 짓고' (<사라지기 - 막>, 105쪽) 서가에서 한 철을 나길 바란다. 과오가 예상치 못한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한 시인 김수영을 떠올리며 함께 몸을 웅크려 본다. 여백에서 놀다 갈 새해의 시 읽는 마음을 기다리며 목소리를 작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프랑크푸르트, 한 리더가 던진 서늘한 일갈이 공기를 갈랐다. 그 문장은 정교하게 계산된 수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위기의식과 책임감이 응축된 결연한 선언이었다. 그는 이미 꿰뚫고 있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개인의 태도나 일시적인 성과 부진이 아니라,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도록 고착화된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품질과 사람을 중심에 두고 판 자체를 다시 짜지 않는 한, 그 어떤 사투도 결국 공회전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서늘한 자각을 한 것일까? 방향을 바꾸는 말은 언제나 희귀하기에, 그날의 선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재설계하라>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책은 우리에게 더 독하게 버티거나 더 많은 자원을 쏟아부으라고 종용하는 대신, 지금의 정체가 무엇을 동력 삼아 유지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묻는다. 저자가 독자에게 바라는 변화는 '분주함'이 아닌 '정확함'이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의지부터 다잡는 성실한 수행자를 넘어, 시스템의 어느 지점을 건드려야 전체의 흐름이 반전되는지를 포착하는 영리한 설계자로 이동하길 권한다. 개인과 조직의 막힘은 우연한 불운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이며, 따라서 변화의 출발점 또한 막연한 결심이 아닌 정교한 설계여야 한다. 이 책은 해답을 나열하는 대신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력 자체를 교정한다.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시야는 덜 흔들리고 더 또렷해질 것이다. 그 명료함이 찾아온 찰나,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1848년 12월 20일 새벽,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의 한 대저택의 그림자에 자리한 오두막 안에서 엘렌과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예 부부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내 엘렌은 장애가 있는 백인 남성으로, 남편 윌리엄은 그의 흑인 노예로 보이도록 변장을 마친 뒤, 두 사람은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노예제도가 없는 북쪽의 캐나다. 이들은 어둠을 틈타 산과 숲을 가로지르거나 자기 몸을 화물 상자에 넣어 우편물로 부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가 빤히 지켜보는 가운데 백인 신사와 그 노예로 행세하며 기차와 증기선, 최고급 역마차를 갈아타고 184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노예제가 폐지된 자유주 펜실베이니아에 도착했다. 세상의 편견을 역으로 이용한 이 대담한 여정은 긴장감 넘치는 로드무비 한 편을 방불케 하며, 미국 노예제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 대담한 탈출 실화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우일연은 1848년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크래프트 부부의 탈출 실화에 주목했다. 작가는 피부색, 인종, 계급이라는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를 제3자의 시선으로 냉철한 분석과 문학적 열정으로 재조명하였고, 엄격한 역사적 고증과 소설적 긴장감을 결합해 크래프트 부부의 이야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어찌 보면 가장 미국적일 수 있는 주제를 한국계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특별하게 보일 수 있으나, 크래프트 부부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로 분열된 국가와 민족에 관한 이야기이자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불의에 대항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으며, 2024년 퓰리처상 위원회는 이 작품을 선정하며 “인종, 계급, 차별을 이용한 풍부하고 놀라운 서사”라는 찬사를 보냈다.
인간의 표정과 몸짓, 호흡과 체온, 맥박까지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 내담자의 신체 반응과 대화를 분석해 미세한 정서 변화도 읽어내는 이로운 초등학교의 상담 교사 ‘모드니’. 어떤 일을 계기로 각자 지닌 상처와 아픔을 서로에게 공유하게 된 희주, 시연, 민아. 어느 날, 모드니가 학교 옥상에서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모든 것이 흔들린다. 범인을 추적하던 세 아이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의심과 오해는 결국 서로를 향한 불신과 미움으로 번져간다. 세 아이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이며, 과연 누가 모드니를 옥상에서 밀었을까?
충격적인 사건 장면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가족으로부터 저마다 다른 방식의 상처를 받은 세 아이의 시점에 따라 다층적으로 이야기를 펼쳐 간다.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과, 무너진 관계를 되짚어가는 과정이 교차되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반전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더해져 마지막 장까지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평가 속에, 이 작품은 심사 위원 만장일치로 제1회 소원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콜록콜록.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할머니의 기침 소리. 아이는 매일 달님에게 할머니가 낫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달나라에서는 떡방아를 찧던 토끼들이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아이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자는 토끼들의 부탁에 토끼 신령님이 "옳거니!" 하며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은 바로 영롱한 주황빛 귤. "귤 속에서 답을 찾아보거라. 껄껄껄." 토끼 신령님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귤이라는 것을 처음 본 토끼들은 조심스레 한 알을 맛본다.
"아니, 이럴 수가!" 입안에 새콤달콤한 알맹이가 팡팡 터지고 마음이 환해진다. 이 기쁨을 아이와 나누고 싶은 토끼들은 달나라에서 귤 씨앗을 심고 정성껏 돌본다. 화사한 꽃이 피어나고 주렁주렁 열매가 가득 열리자 토끼들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댄 토끼들은 아주 특별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동글동글 새콤달콤 귀여운 귤처럼 사랑스러운 백유연 작가의 그림에 우리 옛이야기와 지역의 색깔이 맛있는 상상력으로 어우러진 그림책. 겨울밤을 환하고 따뜻한 빛으로 밝혀주며 토끼들이 외친다. "모두의 소원이 알알이 이루어지길!"
'월간 이슬아'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도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출판사 운영자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이슬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로 2026년 새해를 연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솔직하고도 대범한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그의 서사는, 이번 책에서 내 옆에 서 있는 타인에게로 자연스럽게 향한다.
책에는 친구, 격투기 선수, 작가, 그리고 책과 영화에 대한 단상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책의 중반 이후에는 이슬아의 강연록과 덴마크의 시인 마야, 시각장애인 김성은과의 인터뷰도 실려 있어 책의 결을 한층 넓히고 시인 이훤의 감각적인 사진과 시가 더해져, 다채로운 구성의 책이라는 인상이 더욱 또렷해진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문득 이유 없이 싫어질 때도 있지만,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건 인간일지도 모른다. 이슬아의 이번 글에서는 유독 따뜻함과 어떤 다정한 성장 같은 것이 느껴진다. 2026년 새해에 처음으로 만나는 에세이로 손색이 없는 책,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다.
세상의 끝이란 뭘까? 어디냐고 묻지 않는 이유는 그 옛날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지구의 끝이 벼랑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세상의 끝은 없지만 우리가 끝이라고 인지하는 장소는 나타난다. 아주 멀리 떠난 나라에서 마주한 해안선이 그런 곳일까.
50년의 우정을 쌓아온 존 버거와 장 모르는 노년에 이르러 '세상의 끝'이란 주제로 사진과 글을 엮어냈다. 1999년 오리지널 초판 이후 20여 년 만의 복간이다. 작가들의 작가라 일컬어지는 그들이 생각한 세상의 끝은 어떤 풍경들일까. 세속적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난 세상의 끝, 스코틀랜드의 외딴섬, 아프리카의 독재자 국가, 스리랑카의 농장, 멕시코의 반란군 집회…. 지금은 영영 갈 수 없는 그곳을 흑백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인권, 노동, 일상 속 인간 존엄의 문제를 탐구했던 두 거장이 기록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하다.
한 남자가 독일 총리 메르켈 앞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다. 국가 지도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며 물리학 학위를 가진 학식 있는 자연과학자이자 전문가인 총리가 자신이 예측한 물질과 반물질의 불균형 문제, 사회의 붕괴를 야기할 우주론적 예측을 이해할 것이라고, 그래서 UN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우체국 창구 직원 제시카의 비웃음, 시민 대학에서 그에게 물리학 강의를 해준 쾰러의 설득에도 그는 고집스럽게 편지를 보낸다. 수신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연방공화국 총리, 10557, 베를린, 빌리 브란트 슈트라세 1. 발신자는 헤르쉬트, 07769. 다른 정보는 필요 없다.
2025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신작.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이라는 수전 손택의 평에 걸맞게, 작가는 독일 튀링겐의 어느 가상의 마을 카나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삶과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재앙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려낸다. 작중 인물인 헤르쉬트 플로리안은 힘이 엄청나게 세지만 온순하고 어리숙한 면이 있어 주변 사람들의 일을 돕고 밥이나 용돈을 벌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스’가 운영하는 청소 업체에 고용되어 보스가 숭배하다시피 하는 바흐의 기념물에 누군가가 남긴 그래피티를 지운다. 하지만 그가 취업한 업체는 사실 네오나치와 유관한 네트워크였으며 보스는 그 일원으로 헤르쉬트에게 그의 뒤틀린 생각들을 주입한다. 이처럼 이야기의 배경에는 나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그것이 종말과 재앙의 감각을 벼린다. 크러스너호르커이다운 문장, 분위기, 소재의 일상성과 개성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작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또 하나의 대표작.
‘미쉐린’이라는 이름으로 빛나는 식당의 풍경은 화려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그 한 순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무수한 고뇌와 선택, 인내와 반복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별을 만드는 사람들>은 한국 파인 다이닝의 정점에서 그 시간을 견뎌온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안성재 셰프는 이 책을 두고 “한국 미식 거장들의 영혼이 담긴 기록이며, 그들의 헌신에 바치는 경의”라고 말한다.
밍글스, 스와니예, 이타닉 가든, 라망시크레, 온지음, 윤서울, 강민철 레스토랑, 솔밤, 빈호, 이스트. 한국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10곳의 셰프와 매니저, 소믈리에 24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을 향해 정진해온 길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화려한 평가 뒤에 가려진 시행착오와 책임, 메뉴 하나와 서비스 한 동작에 담긴 깊은 고민은 결국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그 태도가 모여 한국 미식의 현재를 이루는 순간을 비춘다.
찰나의 주가 등락에 매몰되는 것은 소음의 파고에 몸을 맡기는 일과 같다. 진정한 부의 기회는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파편이 아니라, 그 아래를 도도하게 흐르는 거대한 해류의 방향을 읽는 자에게 허락된다. 기술의 진보와 정책의 변화, 자본의 이동이 한 지점에서 교차하며 산업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지금,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꿰는 힘이다. 거시적 흐름이라는 커다란 밑그림 위에 개별 산업의 본질적 가치를 정밀하게 겹쳐볼 수 있을 때, 투자는 비로소 운이 아닌 구조가 된다. 넓게 보되 피상에 머무르지 않고, 깊게 파되 숲을 잃지 않는 통찰! 지금 시장이 요구하는 투자자의 시선은 바로 '박이정(博而精)'이다.
단편적인 뉴스에 흔들리며 계좌의 향방을 시장의 기분에 맡기던 지난날과 작별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지도를 건넨다. 유행하는 테마를 뒤쫓는 대신, 시대의 구조적 변화를 먼저 점유하고자 하는 이들, 숫자의 등락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부의 설계도를 이해하고 싶은 투자자라면 이 여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거센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투자 기준을 세우고, 2026년과 2027년이라는 다가올 시간을 막연한 기대가 아닌 구체적인 확신으로 채우고 싶다면, 지금 이 책을 펼쳐야 한다. 방향을 잃은 계좌 앞에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 위해, 지금 가장 먼저 손에 쥐어야 할 한 권이다.
2005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 임경선은 산문과 소설을 넘나들며 그만의 독보적인 글쓰기를 해왔다. 이번 책은 전업 작가로 생활하며 처음으로 내놓는 '글쓰기'에 관한 글이며, 동시에 가장 임경선다운 글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 그의 글을 보라고들 한다. 백발백중이다. 이 글은 아마도 임경선 그 자체일 것이다. 솔직하고 거침없으며, 때로는 매섭기까지 하다. 입에 발린 말 따윈 하지 않는다.
모두가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시대, 이 책은 그렇다면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어떤 행위이며 어떤 태도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읽힌다. 아마도 작가는 이렇게 정리된 생각을 써 내려가기까지 글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쉼 없이 그리고 뼈저리게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글이 고맙다. 2015년에 출간된 <태도에 관하여>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게 읽히듯, 이 책 또한 쉽게 닳지 않는 언어와 태도로, 글을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의 곁에 오래 머무를 책이라 믿는다.
인터넷이, 사이버 공간이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 평등,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받던 때가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발언의 연단을 제공하는 궁극의 공론장이자, 물리적 신체와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는 동시에 국가의 통제와 압력으로부터 무한히 자유로운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 하지만 21세기의 1/4을 지나는 시점에서, 인터넷은 지금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것은 전 세계적 감시 네크워크의 근간을 이루며, 거짓과 음모론을 퍼뜨리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소셜 미디어 알고리듬을 낳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중동의 민주화 항쟁을 이끈 “해방의 기술”로 칭송받았던 닷컴(dot-com)은 닷폭탄(dot-bomb)으로 변했고,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와 기업은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바빴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악몽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본질적으로 ‘공정한’ 기술을 안전하고 정의롭게 사용하여 끝없는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뉴미디어와 네트워크 기술, 기계학습 등을 둘러싼 기술적·인식론적 통찰을 바탕으로 북미 비판적 디지털 미디어 연구를 주도해 온 웬디 희경 전은 그와 같은 물음을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기술이 ‘맹목적’이며 따라서 공정하다는 근본적인 믿음 자체를 부정하며, 현재의 기계학습과 알고리듬에 인간의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내재해 있는지, 즉 단순히 데이터의 수준에서뿐만이 아니라 절차와 예측, 태생과 논리의 수준에서도 얼마나 깊게 결합해 있는지를 밝힌다. 빅데이터, 추천 알고리듬, 안면 인식 기술 등을 통해 작동하는 차별의 정치에 내재한 19세기 말 이후의 인식론적, 사회과학적, 컴퓨터 공학적 기원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기술과 인간과 사회의 건강한 관계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책.
25년 차 독서 교육 전문가 라온오쌤 오현선이 고전 읽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나섰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고민하고, 마음을 나눠 온 작가이기에, 고전이 얼마나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지, 낯선 어휘와 긴 문장이 아이들을 얼마나 쉽게 지치게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 책은 고전의 문턱에서 망설이던 아이들이 기꺼이 그 세계로 한 걸음 내딛도록 돕는다.
책에 수록된 고전 작품은 총 30편으로,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필수 작품들이다. 어떤 고전부터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아이, 낯선 어휘 때문에 번번이 책을 덮곤 했던 아이에게도 이 책은 든든한 길잡이가 된다. 핵심 장면을 문학툰으로 엮어 흥미를 살리고, 중심인물 프로필과 간결한 요약으로 이야기를 한눈에 잡게 했다. 여기에 어휘 정리와 질문 코너를 두어 짧은 시간 안에 서른 작품을 자연스럽게 훑어볼 수 있다. 읽다 보면, 어느새 한 작품 한 작품을 더 깊이 만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더 넓은 고전의 세계로 이어주는 다리이자, 다음 독서를 열어주는 문과 같은 책이다.
<돈의 심리학> 그 너머, 이제 우리는 '부의 축적'이라는 단계를 지나 '부의 운용'이라는 더 깊고 근원적인 철학을 마주해야 한다. 수많은 이들이 '어떻게 더 많이 벌 것인가'라는 숫자의 성벽을 쌓는 데 매몰되지만, 정작 성벽 안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어떻게 쓰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차원적인 감각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속담의 진의는 결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벌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은 부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정승처럼 쓰는 법' 그 자체에 있다. 부의 품격은 통장에 찍힌 숫자의 잔고가 아니라, 그 돈을 대하는 단단한 태도와 돈이 흘러가는 지혜로운 방향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초월적인 힘을 어디에, 왜 써야 하는지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영웅으로 각성했던 슈퍼맨처럼, 우리 역시 돈이라는 도구의 가치를 명확히 정의할 때 비로소 책임감이 동반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결국 돈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모건 하우절이 제시하는 '부=가진 것-원하는 것'이라는 명쾌한 방정식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핵심 변수는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원하는 것'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있다. 당신은 돈의 주인인가, 아니면 돈이 당신의 주인인가? 돈을 잘 다루는 능력은 스프레드시트나 엑셀이 아닌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며, 순간적 행복이 아닌 지속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를 누리는 길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미 가진 것으로 인생에서 최대의 가치를 얻는 법, 진짜로 '가질 만한 것'을 원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돈은 우리를 복종시키는 주인이 아니라, 우리를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돈을 지위와 성공의 기준 그 이상으로 다루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훗날 내 아이에게 숫자 너머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부모로서 어떤 뒷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하며 이 책의 모든 페이지를 밑줄로 채우며 정독하고 또 정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허공에 발차기를 하게 되는 수치스러운 기억, 자꾸만 추측하게 되는 타인들의 나에 대한 평가, 끊임없이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이 모든 것엔 '자아'가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만일 자아라는 개념이 허구라면? 하나로 통합된 나라는 존재가 애초에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스스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아부어는 '자아'란 좌뇌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좋아하는 좌뇌가 우리 행동에서 패턴을 읽어내어 허상의 개념을 만들었고, 우리 사회가 좌뇌 중심의 인간상 위주로 흘러가며 우뇌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져 버렸다는 것. 그는 좌뇌와 우뇌 고유의 기능을 설명하며, 전체를 관망하고 직감을 제공하는 우뇌의 힘을 믿어볼 필요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서양의 신경심리학을 동양의 '무아' 사상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서양의 과학이 뒤늦게 밝혀낸 사실을 동양에선 이미 오랜 철학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는 '무아'가 우뇌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동서양의 철학과 과학을 흥미롭게 풀고 엮으며 우리의 오해로부터 비롯되는 괴로움을 풀 방법을 알려주는 책.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지만 읽기의 난이도에 비해 얻을 것이 많다. 카이스트 뇌과학자 김대수가 추천했다.
인류가 문명과 지구 환경을 스스로 파멸시킨 핵전쟁 이후, 생존자 릴리스 이야포는 어딘지 모를 곳에 감금된 채 또다시 눈을 떴다. 정체 모를 존재에게 납치되어 알 수 없는 공간에 감금된 채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는 이제 알 수 없었다. 문도 창문도 없는 방, 그리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목소리의 존재는 여태껏 그에게 질문을 던질 뿐, 그의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어둑한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낸 존재, 온몸을 덮은 예민한 촉수로 세상을 감지하는 외계 종족 오안칼리의 일원인 스다야는 릴리스가 그들에게 포획된 지 이미 250년이 지났으며 그 사이 그들이 지구 환경을 복구해 두었다고, 그리고 릴리스를 비롯한 남아있는 인류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단, 그들이 제안하는 ‘거래’에 응한다면.
흑인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을 마주하며 혹은 이를 뛰어 넘나들며 인류의 본질을 가장 예리하게 파고든 거장 옥타비아 버트러의 ‘제노제네시스’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인종, 성별, 계급이 얽혀 발생하는 권력의 위계를 철저히 해부하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윤리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 작가의 1987년 작인 이 소설에서는 그 논의의 단위를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관계를 넘어 아예 생물학적 존재 양식 자체로 과감히 이동시켜 인간성을 질문하고 재정의한다. 핵전쟁으로 자멸한 인류를 구원해 주며 자신들과의 유전적 융합을 요구하는 외계 종족. 그리고 그 결합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포스트휴먼의 창세기라 할 만 한 거대한 이야기.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후 7년 만에 만나는 이제니의 시집은 헌사로 시작된다.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이 시집은 듣는 이에게 화자와 같은 입장이 '되기'를 청한다. 각자의 상실과 부재의 기억을 안은 채 우리는 이제니적인 음률로, 이제니의 시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맞춰 겨울 묘지를 거닌다. 이 한낮의 겨울 묘지는 '누군가 영영 잃어버린 낱말들의 공동체 같아서 / 누군가를 대신해 울어주는 공평한 입술 같아서' (<멀리서 들려오듯 가까이에서> 30쪽) 걸음은 이어진다. 그렇게 시가 놓인 대로 화성을 쌓아 나아가면 시집의 말미에서 만나는 것은 '되기' 연작이다. 이 연작이 청하는 대로 곁에 누워본다. 잿빛 위의 작은 파랑이, 말라가는 물감의 표면이, 그밖의 모든 것이 되어본다.
이제니는 움직이는 것들, 흐르는 것들, 진동하는 것들에 관해 말해왔다. 시가 음악이라는 걸 환기하는 반복의 리듬을 따라 소리내어 읽는 동안 틀림없이 시간이 흐른다. 이 흐름에 입술을 맡기는 일. '이제는 말보다 먼저 빛이 다가온다.'는 시인의 말을 믿고 빛이 지나가는 것을 감각하는 일. 쓰고 읽고 읊고 걷고 물방울이 되는 꿈을 이제니의 시와 함께 꾸길 바란다. <되기- 마지막에서 시작되는 첫 장면>을 빌려 말하자면 '그리하여 / 너의 인물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없이 사는 사람이 없어서 품게 되는 청빈하고 알량한 긍지까지 주워가려는 사람을 볼 때 박완서를 읽는 독자는 그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1975)을 떠올린다. 박완서는 여전히 변주되고 인용되는 작가다.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맞아 박완서의 대표 단편 10편을 엮은 소설집이 출간됐다. 구병모, 김연수, 박상영, 성해나, 최은영, 한강 등 31명의 소설가에게 작품 선정을 청해 가려 실었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단편 <도둑맞은 가난> (1975), 동인문학상 수상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에 더 알려져도 좋을 <쥬디 할머니>(1981), <애 보기가 쉽다고?>(1985)도 고루 실려 2026년에 박완서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박완서의 소설엔 셈이 빠른 중산층 장년 여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곤 한다. 새로이 읽는 동안 이 인물들의 구체성에 그들의 곁에서 이 콩트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젊어보이는 '쥬디 할머니'를 '무럭무럭 질투하는 마음을 어쩌지'(<쥬디 할머니> 13쪽) 못하는 이웃 여자. 전직 국회의원 남편에게 손자 애보기를 맡겨두고 '난 옛날식보담 신식이 더 좋아요.'(<애 보기가 쉽다고?>35쪽)하고 새시대를 향해 돌진하는 마나님 같은 사람들. 인물들은 샘을 부리고 잔머리를 굴리고 큰 살림을 해내는 일상을 살면서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나면 젊어졌다 좋아졌다(...)남의 신체를 가지고 들먹이는 인사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252쪽) 같은 지나가는 말로 자신들이 아는 게 스스로의 살림살이만은 아님을 슬쩍 드러내기도 한다. 인간은 이토록 모질기도, 질기기도 한 존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적어온 작가. 박완서는 역시 박완서다. 20세기 한국사회의 풍속도 혹은 클래식, 다시 읽으면 다른 것이 보인다. 영원히 고쳐 읽고 싶은 소설이다.
깊은 숲속 오두막에 작은 식당이 문을 열었다. 완벽한 코스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꿈으로 셰프 르네가 차린 곳이지만, 손님이 없어 먼지만 날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무보다도 큰 몸집에 뾰족한 엄니가 튀어나온 그 손님은 무시무시한 오거였다. "오늘의 특선 요리는 허브로 맛을 낸 절인 연어 그리고 향긋한 샤프란과 함께 볶은 가시고기 튀김입니다." 몹시 긴장한 르네는 용기를 내어 첫 손님을 맞이한다.
"그냥 박쥐나 푸짐하게 줘요! 썩은 냄새 풀풀 나는 걸로!" 전혀 예상치 못한 오거의 대답에 르네는 충격에 휩싸이고, 조용하던 식당은 시끌벅적한 소동에 휘말린다. 이 유쾌하고도 엉뚱한 그림책은 영국을 대표하는 서점 '워터스톤스'에서 2025년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선정한 작품으로,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마이키 플리즈의 생생한 그림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영국식 마법 이야기 특유의 고즈넉하면서도 신비롭고 기묘한 분위기도 매력을 더한다. 칼데콧상 수상 작가 존 클라센이 “정말, 정말 재밌다!”라고 추천했듯, 즐거운 상상과 웃음이 가득한 그림책.
메인 주 크로스비 타운에는 밥 버지스, 올리브 키터리지, 루시 바턴,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다. 예순다섯 살의 밥 버지스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고, 뉴욕에서 오랜 세월 변호사로 활동했다. 아흔 살 올리브 키터리지는 노인 주거 단지인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살고 있고, 친구 이저벨을 찾아가 날마다 신문 1면부터 끝까지 읽어준다. 팬데믹 때 뉴욕을 떠나 크로스비 곶의 끝 대서양을 내려다보는 절벽 높은 곳에 정착한 루시 바턴은 작가이며, 전남편 윌리엄과 함께 살고 있다. 10월의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로잡았고, 올리브는 일주일 동안 고민하다가 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라는 루시 바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밥의 소개로 올리브의 집을 방문한 루시는 올리브에게 말한다. “부디―그 이야기를 해주세요.”
올리브 키터리지, 루시 바턴, 밥 버지스와 그들의 가족, 친구, 이웃 등 오랜 시간 사랑 받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스트라우트 월드의 결정판과도 같은 소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책은 그 이야기의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시는 아이를 낳은 딸이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괴로워하고, 밥은 형수인 헬렌의 죽음과 조카 래리의 사고, 그리고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린 형의 일로 슬픔에 빠져있다. 이렇게 삶에는 지난한 일들이 계속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거라 믿었던 내밀한 감정을 서로에게 고백하고 잠시나마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 깊은 우정과 애틋함의 실마리가 된다. 작가로서 스트라우트가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건넨 이야기 또한 그러하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면 귀가 자동으로 접히는' 아이 옆집에, '누구의 말이든 다 들어주는' 수상한 마녀가 이사 온다. 성난 코뿔소처럼 화난 아주머니도, 늘 투덜거리던 아저씨도 마녀의 집에 다녀온 뒤에는 순한 양이 되어 돌아온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는 옆집 마녀가 점점 궁금해지고, 마침내 어떤 계기로 마녀의 집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날 이후부터 아이의 일상에는 조금씩 변화가 깃든다.
허은미 작가와 소복이 작가가 조화롭게 빚어낸 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은,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아이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마녀의 만남을 통해 '경청'의 중요성과 방법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말 잘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되는지, 곁에 머물며 들어주는 태도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 작은 책은 분명하게 전한다.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은 줄리언 반스, 혹은 그를 연상시키는 노년의 소설가다. 관리 가능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한 혈액암과 함께 살아가는 그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스티븐과 진. 옥스퍼드 재학 시절 만나 그의 소개로 서로를 알게 되었고, 사랑하고, 헤어졌던 두 남녀. 소설가는 40여 년 뒤 우연히 다시 닿은 인연으로 또 한 번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고, 그들은 다시 한번 서로를 사랑하고, 끝내 헤어졌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남자와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으로 받아들여지는 여자. 둘의 관계가 다시 시작될 때쯤 소설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두 사람에게 맹세했다. 관계를 둘러싼 어긋난 기억, 그리고 끝내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진실. “나는 아무도 내게 한 적이 없는 질문, 그리고 나 자신도 한 적이 없는 질문의 답 것 같아.” 그리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소설가는 자신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부커상 수상 작가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직접 언급한 작품. 반세기를 문학에 투신해 온 작가가 스스로의 끝을 의식하고 써 내려간 유언 혹은 문학적 부고. 화려한 결산이나 업적을 나열하는 대신 삶과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물으며 독자 앞에 마지막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활동하는 동안 굳건하게 곁을 지켜준 독자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그 세월이 즐거웠다고 고백하는 작가. 소설은 어느 소도시의 카페 실외석에 마주 앉아 영국식 블랙 유머에 능한 지적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독자를 비탄에 빠지게 하지 않으며, 암과 죽음, 상실을 다루면서도 기이할 만큼 위로가 되는 이야기. 2022년부터 2025년까지 3년여에 걸쳐 써 내려간, 대가가 독자에게 직접 전하는 우아한 ‘떠남’의 고백이다.
쿵쿵쿵쿵. 온 집 안을 뛰어다니던 아이가 너무 신난 나머지 그만 두 발이 배배 꼬여 바닥에 머리를 꽈당 부딪힌다. 아이의 이마에 솟아오른 것은 다름 아닌 알. "어어, 알이잖아!" 그런데 과연 이 알에서는 무엇이 태어나는 걸까. 아이는 정체 모를 알을 부화시켜 보기로 하고 두툼한 '알 백과사전'을 꺼내와 책 속으로 쏙 다이빙한다.
알 백과사전의 책장에서 책장으로 점프할수록 수천 가지 알에 대한 설명이 줄줄 이어지고, 그 알들은 하나같이 아이 이마에 난 알과 비슷하게 생겼다. 점점 더 혼란스러워져 눈이 뱅글뱅글해진 아이는 일단 백과사전 밖으로 나온다. 그 순간 이마의 알에서 금이 가기 시작하며 알껍데기가 서서히 갈라진다. 도대체 그 알에서는 무엇이 태어났을까? 아름다운 색감과 톡톡 튀는 상상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만 깨물어주고 싶어질 만큼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도진기의 추리소설. 판사로 20년을 보냈고, 2010년부터 추리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한 작가가 재판의 본질에 관한 추리소설을 차려놓았다.
선재의 약혼자 지훈은 친구 양길과 떠난 필리핀 여행에서 사망했다. 양길은 지훈의 사망보험금 19억의 유일한 수익자다. 검사는 살인으로 양길을 기소했고, 양길은 지훈의 죽음이 과음으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주장한다. 평소 양길이 지훈을 이끄는 관계였다는 점, 사망한 지훈의 수입의 절반에 해당하는 보험금이 과도하다는 점, 이 여행을 양길이 일방적으로 계획했다는 점, 양길이 준비한 수면제가 지훈의 옷에서 검출된 점, 양길의 스마트폰에 수면제가 술에 녹는지 검색한 기록이 있다는 점 등의 정황 증거에도 불구, 1심 재판정은 양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일말의 의혹도 없는 확신에 도달할 만큼의 증거'(120쪽)를 요구하는 법정 앞에서 선재는 분노한다. 증거가 될 지훈의 사체는 양길에 의해 현지에서 화장처리 된 이후다.
2025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신뢰하는 국가기관 뒤에서 두번째가 법원이었다고 한다. '송사 세 번이면 묫자리도 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판은 인간을 소진시킨다. 법기술자의 논리를 죽은 자의 억울함으로 깨트리며 선재는 자신이 믿는 진실을 찾아 3심 이후의 재판을 시도한다. 범죄자의 논리를 깨트리는 잘 만들어진 법정 미스터리가 과녁을 명중할 때의 읽는 쾌감으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카피라이터 오하림이 일본 광고 카피 70개를 선별해 소개한다. 책을 펼치면 ‘도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간결한 구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감각적으로 배치된 일본 광고 카피와 그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교차하며,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감정의 진폭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따뜻하면서도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아날로그적인 결이 섬세하게 살아 있다.
광고 문구를 분석하거나 해부하려 들기보다, 한 문장을 오래 바라보는 독자의 자리에 서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그래서 이 도감은 참고서라기보다 감상집에 가깝고, 배움보다는 여운을 남긴다. 일본 광고 특유의 여백과 온도를 오하림의 언어가 과하지 않게 덧대며, 문장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공기를 조심스럽게 보존한다. 어수선해지기 쉬운 새해, 가만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힘을 내보기를 권하는 사려 깊은 책이다.
새로이 출발한 이상문학상의 49번째 대상 수상자로 <우리에게 없는 밤>으로 2024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위수정이 호명되었다. 수상작 <눈과 돌멩이>는 유리로 된 현관문이 깨지는 소리로 시작해 돌맹이를 쥔 손으로 끝나는 가능성의 이야기다.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만나 이십 년을 친하게 지낸 유미과 재한과 수진. 이제 수진은 죽었고 둘은 수진이 가고 싶어했던 도카쿠시의 삼나무 숲,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설국>)의 땅에 수진의 유골을 묻어주기로 한다. 나고야에서 예약한 차를 타고 한참을 운전해 들어가야 하는 이 외진 곳에 굳이 가야하는 이유를 이들은 모른다. 수진이 여행을 취소한 이유, 수진이 죽음을 택한 이유, 수진의 무서움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삶은 공백이다. 여정엔 눈이 내리고 이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큐브릭, 구로사와 기요시, 봉준호를 인용하며 이 눈을 자기 나름으로 해석해보려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삶이 이토록 연약하고 인과가 없다는 사실뿐. 일정한 리듬으로 눈이 내리고, 풍경이 눈의 속도처럼 흘러간다. 소설은 지나가고 독자는 남겨져 눈을 바라보게 된다.
김혜진, 성혜령, 이민진, 정이현, 함윤이의 믿음직하고도 새로운 수상후보작도 함께 실렸다. 자신이 매혹되는 세계는 불가능성의 세계라고 말하는 위수정과 차경희의 대담, 소설을 통해 누군가를 그렇게 쉽게 판단하지 않고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는 김혜진과 박혜진의 대담,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며 느린 소설이라는 매체로 어긋남과 지연의 방식으로 시대의 속도에 의문을 던진다는 정이현과 인아영의 대담을 통해 소설을 둘러싼 맥락이 풍성해진다. <실패담 크루>의 정이현의 문장처럼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253쪽) 삶이라는 페이스트리를 만끽하고 싶은 한겨울의 독자에게 소설만한 호사도 없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토지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권력의 화폐로 기능해왔다는 사실을 아는가? 산업화와 금융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토지는 담보와 신용의 핵심 자산으로 편입되었고, 그 결과 지난 300년간 발생한 수차례의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에서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현실도 이 역사적 궤적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한때 대출을 권하며 주택 구입을 부추기던 정책 기조는 이제 투기 수요 억제와 갭투자 원천봉쇄를 향해 급선회한 상태이다.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제한과 주담대 한도 축소로 인해 시장의 매수 여력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넘어, 토지와 신용이 결합하여 형성된 구조적 권력관계가 개인의 자산과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징후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복잡한 연결고리를 역사적 사례와 제도적 분석을 통해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해부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핵심적 의미는 땅값의 등락을 넘어 자본의 흐름과 권력의 구조를 읽는 시야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단기적인 가격 전망이나 개별 정책의 시비를 가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토지가 어떻게 신용 및 국가 재정과 결합해 불평등을 심화하고 위기를 재생산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독자는 왜 특정 계층에 자원이 집중되는지, 토지의 가치가 경제 전반에 어떤 제도적, 정치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개인의 투자 판단을 넘어, 사회적 위험을 줄이고 보다 공정한 제도를 모색하기 위한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어디를 사야 하는가'라는 질문 대신 '우리는 어떤 경제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성찰을 던지는 이 책을,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당신의 서재에 강력히 권한다.
주식의 파고가 아무리 높게 친들, 결국 그 파도가 가닿는 종착역은 다시 부동산이라는 권력의 요새가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자본의 이동 경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토지가 설계한 거대한 체계 안에서 공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괴물 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햇님이는 도서관 구석에서 우연히 <괴물 손님 사전>을 발견한다. 책장을 넘기던 순간, 그 사이에서 스르륵 떨어진 '몬스터 캠핑장' 초대장. 햇님이는 아빠와 강아지와 함께 캠핑장으로 향하고, 얼떨결에 하룻밤 동안 캠핑장의 주인장이 된다. 반달이 뜨는 밤이 되자 초라하던 캠핑장은 활기를 띠고, 몬스터 손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믿고 읽는 '비룡소 문학상'이 이번에는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몬스터 이야기로 돌아왔다. 화가 나면 입에서 불을 뿜고, 기분 좋을 때면 우박 같은 코딱지를 우수수 쏟아내는 몬스터와의 하룻밤 모험이라니, 단숨에 빠질 수밖에 없다. <괴물 손님 사전> 속 또 다른 몬스터 이야기가 궁금해질 만큼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히는, 유쾌한 동화다.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라고 불린 대니얼 데닛의 자서전. 그간 데닛의 저서에 도전해 보고 싶었으나 읽기 난이도에 겁먹고 미뤄온 독자라면 이 책으로 입문해 봐도 좋겠다. 데닛의 사상이 어떤 배경과 상황에서 태동했는지, 상세하고도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다.
한 철학자의 사상은 언제나 여러 철학자들의 개념과 철학 사이의 얽힘 속에서 탄생한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데닛이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에 동의하거나 저항하며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간 이야기인데, 그중에서도 리처드 르원틴, 제럴드 에델만,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의 사상가들과 논쟁하고 이들의 치졸한 만행에 대해 폭로한 부분은 철학자 사회의 음침한 면모를 슬쩍 엿보게 한다.
데닛의 위트 있는 문체는 그가 80년 동안 이루어낸 방대한 지적 탐험을 지루함 없이 안내한다. 데닛의 책을 번역해온 신광복 번역가는 이 책의 역자 서문에서 "그의 부고와 함께 들렸던 무거운 잠김음은 자연이 '자연인 대니얼 클레멘트 데닛'의 시간을 잠그는 슬픔과 애도의 소리였지 그가 일구어 놓은 지성의 정원이 폐쇄되는 소리는 아니다."라고 썼다. 여전히 활짝 열린 그의 정원에서 노닐며 각자의 원하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