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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알라딘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글쓰기의 모범 사례로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를 언급했다. 그 이유는 하스미 시게히코가 최고이기 때문이며, 한국에 나온 하스미 시게히코의 책은 <감독 오즈 야스지로> 한 권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영화 비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이름을 반드시 접하게 되지만, 그토록 익숙한 이름임에도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제 197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하스미 시게히코가 쓴 글들을 추려 담은 <영화의 맨살>이 그 갈증을 어느정도 해소해 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고찰과 진지하고도 독특한 유머 감각, 단호한 어투가 안겨주는 웅변적 효과 등 즐겁게 읽고 생각할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특히 문체가 인상적인데, 거의 윤문을 거치지 않은 듯한(확실히 읽기 불편할 때가 있다) 직역투의 문장들은 어쩐지 한 세대 전의 한국 영화 비평들을, '키노'가 살아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 짧은 시절 이후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분석'할 도구를 찾아 정신분석학 등지를 떠돌았으나, 여전히 영화광인 채로 필름의 물성 따위를 사색하고 최고의 이마무라 쇼헤이가 최악의 브레송을 능가할 수 없다는 '영화적 규칙의 잔혹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에게 영화는 해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들이 쇼트를 모두 분해한다고 해도 그 행위는 영화를 정의내리고자 함이 아니라 영화의 신비를 보다 가까이서 체험하고자 하는 순전한 열정에 기인한다. <영화의 맨살>은 정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좀 다루기 까다롭긴 하지만) 멋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