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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5일, 1990년에 태어난 고등학생인 채진리는 '쿵, 하는 짧은 떨림'을 느낀다. "야, 너희도 제대로 알아야 해. 너희가 설칠 세상이 아니야."(63쪽) 종혁은 친구인 해라에게 공격적으로 말하고, 선생님은 우리 학교가 새 학기 시작 전까지 남학교였다고 이야기한다. 이곳은 사라진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세상. 1990년, 백말띠의 해에 태어났어야 할, 여자인 친구들이 사라졌다.
성별을 감별해 사용할 수 있는 경구용 낙태약이 시판된 세계, 태어나지 못했던 7만 명의 여자 아이들에겐 7만 개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되찾기 위해 진리는 몇 번이나 달리고, 또 달리며 8282 505를 적는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무언가/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 인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 패관 소설류를 애호하는 취향을 탄압한 정조의 시대에 대해 읽으며,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역지사지로 공상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패관 문체를 썼다는 이유로 <열하일기>를 쓴 것에 대해 지탄받은 박지원의 상황 같은 것을 상상하면 격이 낮은 나도 그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었다.
"자기 존재를 지킬 힘도 없이 쓰러져간 사람들을 약하다고 공격하고, 냉정하고 당당하게 멸시"(111쪽)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당연한 일이, 역지사지로만 가능하다는 건 역시 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고,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게 용기가 되는 세상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황모과 첫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