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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인류는 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해왔다. 대체로 즐거운 일이었고, 때때로 참혹한 일도 벌어졌으나, 또 다른 할 수 있는 일을 이어 붙이며 가까스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임시방편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런 일을 벌이는 주체, 즉 인류가 무엇인지도 다시 정의해야 하는 갈림길 앞에 서게 되었다. 바야흐로 사피엔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화의 다음 단계가 막을 올리는 이때, 인류 그리고 우리 각자는 위태롭고도 담대하게 머뭇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전작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역사를 되짚으며 인류가 어디로 나아갈지를 시대의 화두로 던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후속작 <호모 데우스>에서 드디어 진화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실체를 밝힌다. 제목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을 뜻한다. 신의 영역이던 불멸과 창조에 가까워지자 인류는 이를 제어할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길이다. 모든 게 가능해지는 시대에 가지 않은 길을 남겨두고, 신이 아닌 사피엔스로서 멈추는 일은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종말을 가만히 지켜만 볼 인류도 아니기에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다행히 인류에게는 걸어온 길, 즉 역사가 있다. 그간의 믿음보다 그간의 경험에서 갈림길의 방향을 찾아보자. 비록 신이 된다 하여도 인간의 방법으로밖에 이를 수 없는 길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