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여름 아이다호 인근에 큰 산불이 났을 때 그레이니어는 아내 글래디스와 딸 케이트를, 그가 직접 일군 숲속 삶의 터전을, 사랑하던 존재를 모두 잃었다. 집을 떠나 철로 공사장에서 일하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불길이 계곡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다. 집을 잃고 마을로 피난 온 사람들 사이에서 아내와 딸을 찾아 헤맸지만, 살아 나온 사람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에 무심했다. 불길이 잦아들고 그의 오두막이 있던 숲에는 회색빛 재만 남아있었다.
다음 해, 그레이니어는 그의 오두막이 있던 빈터에 야영지를 세웠다. 송어를 낚고 버섯을 채취해 요리해 먹고, 어디서 온 지 모를 개 한 마리와 함께 염소와 닭을 기르며 지내다 겨울을 나기 위해 읍내로 떠났다. 그다음 해에는 말과 수레를 빌려 생필품을 가득 싣고 돌아와 새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 머물렀다. 그의 하루는 평범한 장면들로 채워졌다. 도끼질하는 소리, 불타는 냄새, 강물 흐르는 소리. 수레바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 멀리서 늑대들이 우는 소리. 삶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전미도서상, 미국 의회도서관 소설상 수상작가 데니스 존슨의 그리 길지 않은 소설. 2002년 발표 이후 최고의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아가칸상과 오헨리상을 연달아 수상했고, 2012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소설은 한순간의 산불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계속되는 삶을 미화하지도, 비극으로 포장하지도 않은 채 담담한 시선으로 비춘다. 극적인 반전도, 갑작스러운 행운도, 뒤늦게 찾아온 위안도 없다. 그가 숲속 오두막에 머물기로 스스로 서약한 계기가 되었던 찰나의 기적 같은 순간을 비출 때조차도 작품의 조명은 밝기를 달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인간의 고독과 회복력을 조용히 그려낼 뿐이다.
- 소설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기차가 그 계곡을 지나가며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냈지만, 죽어버린 이 세계를 깨울 수 없었다.
새해를 기다리며 2026년을 이르게 만날 수 있는 현대문학상의 71회 수상작가가 발표되었다. 시 부문은 <쥐의 시절>의 김상혁, 소설 부문은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의 임솔아가 수상했다. 연인 윤미의 사망진단서와 같이 놓인 이목구비가 날아간 폴라로이드 사진. '안 보이는 얼굴은 안 보이는 채로도 잘 보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250쪽)는 수상소감을 적은 임솔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 보이는 얼굴을, 흐릿한 이목구비여도 감지되는 후광 같은 사랑의 기척을 스케치한 작품을 내놓았다. 가까운 미래의 후대 연구자들은 그들의 사랑을 '아카이빙 프로젝트 : 사랑 편'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사랑은 지난 세기의 사람들이나 하는 기이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래의 사람들에게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50년을 변함없이 사랑하느라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욕망하지 않기로'(37쪽) 한 이들의 구시대적 피로는 연구할 만한 것이 된다.
사는 게 괴괴할수록 소설이 할 말이 많아진다. 임솔아의 자선작 <금빛 베드 러너>의 지윤, '자신이 타인을 외롭게 만든다고 늘 생각'하는 (65쪽) 그는 회전하는 세탁기, 팽이, 나사, 오르골에서 평화를 느낀다. 다름이 자폐검사지의 점수로 측정되는 세계를 표준 바깥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독자에게 질문이 남는다. 김혜진의 <관종들>의 '간섭하고 참견하면서 잃은 것들이 너무 많'(79쪽)으면서도 기어이 '작은 의혹도 무시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을 응원할지 말지 소설이 떠난 자리에 질문이 남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솔뫼의 인물들의 이동성, 서장원의 인물들의 아이러니, 이미상의 인물들의 신랄함, 임현의 인물들의 윤리성 등 자신의 작품세계를 갱신하며 한발짝 더 나간 작품들 역시 읽는 사람에게 대답을 요구할 것이다. 잘 읽고, 잘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설이 멈춘 자리에서 새해가 질문한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언젠가부터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물밖에서 걷는 것보다 편안해졌다. 물속이 더 위험한 공간이라는 걸 잊은 적은 없었지만. 물에 들어갈 때마다 몸이 이상하면 바로 말을 하자며 서로에게 약속했지만.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공간. 우리에게는 물속이 그랬다.
수많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늘 논리부터 꺼낸다. 장단점을 비교하고, 주변 조언을 모으고, 미래의 변수를 일일이 계산하며 '정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선택을 했음에도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불안하거나 답답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선택은 근거도 확신도 없었지만, 설명되지 않는 강한 끌림 하나로 뛰어들어 결국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기도 한다. 결국 우리를 앞으로 이끄는 건 완벽한 계획표가 아니라, 때로는 비논리적으로 보일지라도 가장 정확하게 자신을 향해 울리는 '내면의 목소리' 아닐까?
이 책은 그 목소리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안내서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외부의 기준과 성공 공식을 따르느라,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심어진 고유한 재능과 감각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당신의 직관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언제나 올바른 길을 가리키는 정교한 GPS이며, 삶은 억지로 계획을 맞추는 고행이 아니라 내면의 리듬에 조율될 때 비로소 열리는 탐험과 배움의 흐름이라는 것을. 직관을 따를 때 진짜 기회와 기쁨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며, 필요한 사람과 상황도 마치 자석처럼 끌려온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복잡한 세상이 아니라, 결핍과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장벽이다. 이제는 그 두려움을 조용히 내려놓고, 당신 안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왔던 나침반의 방향을 믿어도 된다. 삶의 주도권은 언제나, 그리고 온전히 당신에게 있다.
- 자기계발 MD 김진해
책속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지혜로운 내면의 목소리가 있으며, 이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독특한 재능을 최대한 발현 시키는 열쇠다."
곧 또 한 살을 먹는다. 고유명사들이 생각나지 않고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자꾸만 잊어버리고 왠지 전보다 덜 총명해진 기분, 나이 탓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데일 브레드슨은 이 지점에서 나이의 편을 든다. 당신의 뇌가 낡았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나이 탓이 아니라 '생물학적 스트레스 요인' 때문이라고. 나이와 인지 기능의 반비례는 당연하지 않다고.
50여 년간 알츠하이머병과 신경퇴행질환을 연구해온 저자는 뇌의 노화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가 발병되기 전에 대비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는 늙지 않는 뇌를 가질 수 있다. 책에서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이 '대비책'들을 알려준다. 뇌 건강의 명확한 목표, 자신의 현재 상태 파악부터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습관들까지 거창하지 않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연말 연초, 바삐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운 모든 이들을 위한 책.
- 과학 MD 김경영
추천의 글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과학과 인간성의 절묘한 균형 사이를 관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자는 최신 연구를 명확히 설명하면서도, 의학 만능주의로 빠지지 않는다. 펩타이드 치료, 유전자 조절, 뇌-기계 인터페이스와 같은 미래 의학의 가능성을 깊이 소개하면서도, 그 출발점이 여전히 “생활의 변화”와 “몸의 리듬 회복”임을 잊지 않는다. 뇌의 건강은 단순히 병의 부재가 아니라, 자기조절과 관계 맺기의 회복이다. 노화를 두려운 종말이 아니라 치료 가능한 선택지로 바꿔놓는 이 책에서, 부디 나이를 거꾸로 되돌리는 마법을 넘어, 노화의 속도를 늦추며 생의 품격을 지켜내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란다.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