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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지음

"폭풍 직전, 재난 같은 삶이 내는 파열음"

파국의 기미는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취업 전선에서 낙오한 후 겨우 진입한 대기업 고객센터에서 개인정보 유출 후 성이 난 고객들의 감정 앞에 무방비로 놓이기까지. (어디까지를 묻다 中), 우아한 중산층의 세계에 사는 '깨어 있는' 주부가 맞은 편 아파트에서 아동 학대가 분명한 풍경을 목격하기까지 (이창 中), 마침내 감정을 착취당하던 '을'들이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창궐하기까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 中) 삶은 재난처럼 급작스럽게 휘몰아치고, 대체로 사람들은 '그것은 나만은 아니기를' 소망하며 타인의 재난을 방임하고 지나쳐 간다. 그 배에 탄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빌딩에 있던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공장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청소년문학,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자유롭게 유영해 온 구병모의 두번째 소설집. 집요한 관찰자의 눈으로 구병모는 재난 같은 삶의 순간들을 날카롭게 베어 소설로 내놓는다. 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길고 정확한, 구병모만의 독특한 문장과 함께 선명한 미감을 만들어 낸다. 덩굴이 되어버린 사람을 다른 사람이 베어버리는 풍경은 초현실적이지만,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 만은 합니다." 라고 주절대며 을이 을을 착취하는 풍경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 묵시록의 세계가 실은 우리가 사는 세계임을 인식할 때, 서늘한 깨달음이 지금이 바로 폭풍 직전임을 속삭인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zipge 님의 리뷰 :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과거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사람들은 죽어가도 책임을 지는 시스템과 사람은 전무하며 타인은 망자에 대해 오지랖을 떤다. 끔찍한 세상이다. 구병모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서는 이런 재난 같은 삶 속의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고 사랑스럽습니다"

소라, 나나, 나기, 나나. 이야기는 각 인물이 조심스레 꺼내놓은 음성을 놓치지 않는다. 생활은 이어지고, 비참함과 사랑스러움이 계속된다. 아버지 금주씨는 공장에서 일하다 거대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었다. 금주씨를 사랑한 어머니 애자는 세상에는 원한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라는 말과 함께. 동생 나나는 임신을 했고, 언니 소라는 아기 같은 건 싫다고 생각한다.

<백의 그림자> 황정은 장편소설. 2014년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 황정은이 그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비참한 죽음과 상한 음식의 존재를 기어이 서술하는 세계, 그리고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가능한 세계. 가급적 소리내어 이 세계를 만나볼 것을 권한다. 입 안에서 반복적으로 퍼지는 시적인 문장의 움직임을 느끼는 순간, 어느새 황정은이라는 하나의 경향이 도래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고솜돝 님의 리뷰 :

황정은의 소설은 유독 그렇다. 사건을 주로 다루는 소설적 특징을 무시하지는 안되, 짧은 순간 인물의 감정에 너무 깊게 빠지게 만들어서 힘들게한다. 책을 읽은 때나 읽고나서. 누가 박아놓은 것마냥 그저 단순한 문장이었던 몇 줄의 글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자주 반복되서라기보다는 그 상황을 아주 주의깊게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혹당해서. 그래. 황정은의 소설을 읽고 나면 꼭 무언가에 홀린것 같은 기분이다. 뭔가 당한 느낌. 이번에도 그랬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지음

"작은 사랑이 하나 지나간 느낌이었어"

<고백의 제왕> 이후 5년 만에 만나는 이장욱 소설집. 김유정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을 포함해,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렸다. 시도, 소설도 능한 작가답게 단편의 미학을 잘 살린 날렵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가 읽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알 법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미국인도, 오키나와인도, 일본인도 아닌 얼굴로 여행을 하는 '절반' 이상의 남자 하루오 (절반 이상의 하루오 中), 급작스러운 사망 후 화제가 된 천재 예술가 정귀보의 삶을 추적하던 평전 작가가 발견해낸 우스꽝스럽고 애틋한 '진짜' 정귀보. (우리 모두의 정귀보 中) 자신이 베트남 전쟁에서 세 명의 인간을 총으로 두 번, 칼로 한 번 살해한 것은 거대한 강물의 아주 작은 파동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해오다, 결국 그 강물에 몸을 던지는 선택을 하는 아버지 니콜라. 아주 작은 기미들, 작은 사랑과 작은 슬픔이 소설을 스쳐지나가고, 익숙한 듯 보이는 그 얼굴들은 다시 마주쳐지지 않는다. 단편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포착 뿐. 삶처럼 소설은 문득 도착해 있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비락식혜 님의 리뷰 :

모두가 절반 이상이 아닌 세상에서 전체를 말하라 한다면 벙어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이장욱은 벙어리가 되지 않고 절반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절반 이상을 말하지 않으려면 냉정함이 필요하다. 절반을 말하려면 낯선 것을 거두고 구차한 것을 견뎌야 한다. 이 교훈은 나를 위한 것이다.


불로의 인형
장용민 지음

"<궁극의 아이> 장용민의 진화"

일류 큐레이터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살아가던 가온. 남사당패인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한 후 그의 부자연스러운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며 배다른 동생 설아를 통해 아버지가 남긴 삼우회 초대장과 꼭두쇠에게 전해지는 기괴한 인형을 얻게 되는데. 인형의 비밀이 벗겨지며, 이야기는 항우와 유방의 시대,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까지 가닿게 된다.

여섯 개의 인형이 모이면 불길한 일이 벌어진다. 두텁고 새하얀, 갈매기 모양으로 치켜 올라가 있는 눈썹. 얇은 입술과 복주머니처럼 둥그런 턱, 코 옆의 큼직한 사마귀. '민초들의 피를 빨아먹는 탐관오리'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외양의 인형의 이미지가 이야기를 지배한다. 한국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펼쳐지는 거대한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전개되면서도 큰 줄기를 잃지 않는다. 이미지와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는 스릴있는 장르소설. 아직 채 가지 않은 여름을 책임질 만하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드림모노로그 님의 리뷰 :

이 책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욕망을 매개로 하여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 사이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팩션 스릴러다. 불로의 꿈을 가졌던 진시황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꽃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들은 마치 불꽃앞에서 명멸해가는 하루살이 운명과도 같다. 시간의 유한성이 인간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한다.

차남들의 세계사
이기호 지음

"이기호의 80년대, 농담과 야만의 세계사"

우리의 주인공 나복만은 볼펜 한 자루, 종이 한 장, 지우개 하나, 라이터 한 개 훔치지 않은 몸이었다. 원주경찰서 정보과에 대략 삼십 분 정도 머무른 후, 그는 삼십년 넘는 세월을 수배생활을 하게 된다. '이 땅의 황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 장군의 통치 시절.'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이후 '빨갱이 만들기'의 광기는 원주의 문맹 택시기사인 나복만을 빨갱이로 만들고 말았다.

작가는 전두환의 시대를 '누아르'로 정의한다. 1980년대를 다룬 이야기답지 않게, 이야기의 톤은 무겁지가 않다. 이기호는 누아르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한 인간에게 벌어진 부조리를 능청스럽게 풀어낸다. '말빨'이 좋은 서술자가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소한 교통사고 이후 나복만에게 일어난 몇가지 우연과 부도덕, 야만을 수다스럽게 전개해나간다. 위기는 점점 커지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게 전개된다. 나복만의 인생이 닥친 야만을 두고 "소설은 그래서 한편으론 끔찍하고 잔인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재치있고 유려해 더욱 마음 아프게 들린다. 착오와 거짓말과 오류의 세계사, 농담과 야만에 관한 이기호식 세계사. - 소설 MD 김효선

독자 책영감 님의 리뷰 :

작가는 주인공 나복만이 뜻하지 않게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되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담고 있다. 이런 부조리를 단순히 소설로만 본다면 유쾌하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을 테지만, <차남들의 세계사>의 내용은 허구가 아니기에, 그 시절 누군가는 이유도 모른 채 아파하고 고통받았을 거란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분명한 것은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버리며 그것을 조장하던 아픈 현대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하지만 어디로든 가야했다"

인생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경구는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고 곱씹는 삶. 처연하게 객사해 죽음을 떠돌고, 바람둥이인 선주의 아들을 붙잡아 임신하지 않고선 현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 "그때 미친 척 부장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그가 생에 대한 희망의 끈을 좀더 길게 이어갈 수 있었을까?" 뒤늦은 후회를 곱씹는 삶. "한발짝만 잘못 내디디면 바로 나락이다."라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삶.

<고래>, <고령화 가족> 천명관이 7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소설집. 천명관은 야성적이고 유쾌하고 능청맞고 선 굵은, 자신만의 개성적이고 탁월한 문체로 삶의 아이러니를 소설로 옮긴다.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파충류의 밤>을 비롯한,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지만 어디로든 가야 하는' 막막한 이들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엮었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비의딸 님의 리뷰 :

외롭고, 아프고, 쓸쓸하고, 거기에 불안하기 까지한 실패투성이 단편집의 주인공들을 보며, 혹여라도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될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려니 여기며, 그냥 웃고만다. 그렇지만 나는 잘 알고있다. 코미디는 나와는 관계없는 일로 여기고 싶은 일이 사실은 나와 깊숙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우습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실패한 주인공들의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사실은 현실의 내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우스운 것이며, 웃고난 후엔 그 진한 애잔함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이 사내의 거룩함을 보라"

한강다리 위에 한 남자가 서있다. "나이는 쉰살이 넘어보였으나 막 산골에서 걸어내려온 소년 같은 인상"을 지녔다. 그를 알아본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왜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소설은 이 사내, 김만수의 삶을 아버지, 동생, 친구 같은 그를 둘러싼 이들의 입을 빌어 세밀하게 그려낸다. 두메산골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만수. '큰 머리에 비해 가느다란 몸통에 유난히 길어 보이는 팔다리'와 '커다란 앞니'를 한, 어딘가 모자란 듯하지만 착하고 순박했던 어린시절. 일제를 피해 산골로 떠난 가족의 삶을 따라 한국 현대사가 흐른다. 전쟁, 월남전, 공장 여공들, 연탄가스, 노동 운동 같은 것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김만수'로 형상화되는 캐릭터의 압도적인 울림이다. "오늘 <투명인간>을 읽고 보니, 예의염치를 잃을 각오로 말한다면, 그동안의 작업들은 이 장편소설 하나를 위한 준비 또는 연습이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평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이야기꾼 성석제가 특유의 입담과 해학, 날렵한 필치로 현대사 위에 놓인 한 인간의 선량한 얼굴을 만들어낸다. 친구를 위한 희생, 가족을 위한 희생, 시대를 위한 희생. 우스꽝스럽고 어수룩하지만 거룩하다.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 사내의 이야기가 끝내 마음을 움직인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아시마 님의 리뷰 :

책은 성석제 특유의 유머와 정교함을 잃지 않는다. 빠르게 교체되는 화자들을 통해서 인물의 입체성과 구체성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소설 소개글에서 우울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잠깐해서 사 놓고도 읽기를 미뤄두었는데, 전혀 우울하거나 구질거리지 않는다. 성석제가 가장 잘 쓸수 있는 분야의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난 정말 한국에선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3년 좀 넘는 직장생활 후 계나가 깨달은 것은, 스스로가 한국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추위도 잘 타고, 물려받을 것도 없고,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도전하지도 못하고, 매사 까다로운. 정글 같은 한국사회에서, 같은 '톰슨가젤'들과 연대해 사자와 맞짱을 뜨느니, 그는 유토피아 호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남자친구와의 이별, 부모의 반대, 불안정한 미래 모두를 무릅쓰고 피를 흘리며 국경을 넘은 후, 키에나 킴이라는 이름으로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책은 그녀의 고생담, 혹은 성장담이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표백세대'의 냉혹한 현실을 날카로운 문체로 그려냈던 장강명이, 한 세대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들려준다. 수다를 떨듯 전개되는 계나의 이야기는 쉴 틈이 없다. 현실적이며 냉소적이며 긍정적인 주인공 계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서울 소재 중위권 대학을 졸업해 금융권 회사에 3년 근무한 여성 직장인 모 씨가 아닌, '계나'라는 인물의 독보적 개성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말솜씨 좋은 계나의 이야기를 끄덕이며 들으며 그의 행복을 응원하다가도, 한편으론 입이 쓰다. 개념없는 시댁, 지리멸렬한 직장, 부도덕함을 강요하는 조직, 낮은 시급, 불투명한 미래, 거대한 톱니바퀴에 치이지 않고 한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남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영리한 소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아놔 님의 리뷰 :

이 소설은 '그러니까 이따위 한국을 떠나버리자'고 권장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것의 본질이 뭔지 한번쯤 들여다보라고 권유하는 것에 가깝다. "이게 사는 건가"라는 자조가 아니라 "이게 사는 건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자문까지 이어져야 이렇게든 저렇게든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로 이어진 삶의 다양한 풍경들에는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다.

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박력 넘치는 소설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노를 젓는"

젊은작가상을 꾸준히 수상하며 소설의 지형을 넓혀 온 '젊은 작가' 김성중의 두번째 소설집. 매끄러운 문장이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가 '김성중 스타일'을 짐작하게 한다. "강 상류에서 잡히는 물고기 비늘입니다. 열다섯 살 미만의 소년에게만 잡히는 진귀한 물고기들이지요. 산 채로 튀겨내면 비늘 하나하나가 곤두서서 떼어내기 좋은 상태로 변합니다. 듣자니 비늘만 쓰고 몸통은 버린다고 하더군요." (...) 이 물고기들은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환전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기억과 맞바꿀 수 있을 뿐이죠....." 기억을 모두 팔았기 때문에 더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는 여행자의 세계. (국경시장 中) 독자는 과연 이 세계에 대한 여행자의 진술을 믿을 수 있을까? '픽션Fiction'다운 픽션이다.

이 젊은 작가가 만들어낸 자신만의 세계에선 맵시있게 배치된 문장들만큼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싶은 소설가의 욕망이 눈에 띈다. 기억을 팔아서라도 아름다움을 사고 싶은 <국경시장> 속 여행자의 욕망. 자기 자신을 잃게 되더라도 더 아름다운 것을 갖길 원하는 <쿠문>의 욕망. 국경도 규칙도 없는 소설의 세계에서 거대한 바다를 향해 배멀미를 참고 노를 젓는, 박력 넘치는 소설의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욕망이 겹겹이 쌓인다. 야심있는 예술가의 시작을 함께 지켜볼 기분 좋은 기회. - 소설 MD 김효선

독자 피오나 님의 리뷰 :

재미있는 것은 이들 작품의 배경이 현실 같으면서도 환상적인, 꿈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섬뜩하다는 데 있다. 어디선가 멜로디 인형의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분위기로 가다가 갑자기 잔혹동화의 결말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것이다. <동족>에서 글자를 읽게 되고, 생각을 하게 되었던 킹코브라 여왕의 죽음이나 <관념 잼>에서 결혼과 회사생활에서 모두 실패해 지방으로 이사 온 낙경 씨가 점점 '사물화'되어가는 모습은 사실 좀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김성중 작가의 이야기는 모두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번뜩 정신이 들어보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세계 말이다.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마음은 대치동에, 현실은 잠실"

<모던 하트>로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아은의 장편소설. 마음은 대치동이지만 현실은 잠실인 속물들의 문제적 현실을 조명한다.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성매매 아르바이트를 하고, 강남 입성이라는 꿈을 위해 초등학생인 아들을 '라이드'하는 데에 삶을 바친다. 고층 빌딩 숲과 재래시장과 낮은 빌라촌이 공존하는 잠실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계급과 욕망이 부딪친다. 성매매를 하는 대학생으로, 대학생을 구매하며 직장에선 순종하는 초등학생의 아빠로,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아들의 교육에만 열을 올리는 초등학생의 엄마로, 세 딸의 삶도 자신의 삶도 보장할 수 없는 파견도우미로, 학원 가는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초등학생으로. 인물의 관계가 사슬처럼 얽힌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점으로 털어놓는다.

빌라와 아파트, 출신 대학과 교육비. 모든 수치가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계급을 고착화시킨다. "좋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렇듯이 최대한 대상에 밀접한 상태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관찰"하는 이야기는 잠실동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남에게 내보이기 어려운 지점을 가감없이 들여다 본다. '싱크홀'처럼 깊고 믹막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치욕감이, 그 현실성이 둔중하게 마음을 울린다. - 소설 MD 김효선

독자 봄덕 님의 리뷰 :

교육을 계급상승의 절호의 기회로 삼는 엄마들의 치맛바람과 그와 연결된 과외 교사,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담임교사, 입시와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는 아이들, 사교육비에 휘청거리는 아빠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모습 그대로다. 마치 재건축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욕망 다큐멘터리를 본 느낌이다. 비릿하고 속물 근성인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마주한 느낌이다. 어둡고 칙칙한 강남 교육의 민낯과 속살을 마주한 느낌이다. 한국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 사회 이대로 브레이크 없이 질주할 건가. 읽는 내내 참담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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