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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에는 동명의 표제작을 비롯해 총 네 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네 작품 모두 죽음이나 그와 유사한 사건을 둘러싼 기억의 연쇄 속에 잠겨 있다. 괴로웠던 날들이건 빛났던 순간들이건 간에 <환상의 빛>에 등장하는 과거는 이제 너무 멀리 있다. 멀리 있다는 건 그런 뜻이다. 과거를 돌이켜 지금의 삶을 비추고, 그를 통해 남은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과거는 지금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만큼 멀어져 있어서 그저 꿈처럼 떠올랐다가 잔향을 남긴 채 사라질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관성에 불과한 것처럼 남은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등장인물들은 불현듯 다가온 기억들 앞에서 방황한다. 그럴 수밖에.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고 정확한 연유도 알 수 없이 되살아난 기억들이다. 그래서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는 충만함을 지니고 있다. 작지만 단단하게 반짝이는 빛의 물결들이다.
'환상의 빛'에서 주인공 유미코의 새 남편은 그녀의 전남편이 자살한 이유로 '혼이 빠져나가는 병'을 든다. 그러면서 그 병의 증상으로 아무 볼 것 없는 동네 바닷가의 잔물결이 한순간 지극히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한다. 유미코는 혼자 있는 시간이면 죽은 남편을 떠올리며 또 거기서 촉발된 다른 기억들 속을 떠돈다. 아무 보잘것 없는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을 밀었다가 당기며 돌아간다. 유미코의 혼은 다른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꿈과 기억 사이의 바닷가를 거닌다. 때로 지극히 아름다워 보이는, 실제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추억의 잔물결들이 끝없이 출렁이는 곳이다. 미야모토 테루는 바로 이 곳, 회상이라는 현상-공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 뒤에 놓아둔다. 따라서 이 소설집을 슬프고 처연하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 풍경은 감정이 없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환상의 빛'은 그래서 뛰어난 작품이다.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는 막연한 아름다움만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작은 기쁨과 슬픔들을 돌이키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꿈의 공간은 피난처인가 유배지인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 혼의 해변은 각각의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 용도를 밝혀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