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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카페, 지하철 역사 등에서 성범죄 가해자 변호 광고를 심심찮게 마주친다. 그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은 성범죄 가해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절차를 밟는다. 반성문, 탄원서, 무고죄와 명예훼손으로 피해자 역고소... 성범죄 사건 기사들만 봐도 이 단어들은 단계별로 착실하게 나타난다. 이런 구조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째서 생겨나게 되었을까.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김보화는 피해자와 활동가, 변호사의 인터뷰를 통해 성범죄 가해자 지원 산업의 실태를 책에 담았다.
성범죄 전담 로펌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 배경부터 헌혈, 정신과 치료, 봉사활동, 여성운동단체 후원금 납부 등 납득할 수 없는 감형 사유와 피해자 역고소 전략까지, 책은 성범죄 재판의 총체적인 비합리를 진단한다. 법시장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합리적 소비자가 되는 동안 피해자는 2,3차 가해를 버텨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망가진 구조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가 져야 하는 꼴이다. 시장 논리가 잠식한 법에서 공공성과 윤리를 살려내야 한다. 책은 일본과 독일 등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 등을 예시로 들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설정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걸려 넘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짚고 있는 책이다. 미투 운동 등의 힘을 빌려 겨우 짜낸 피해자들의 용기가 법 앞에서 좌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 피해자 입장의 절절한 법정 싸움을 기록한 책,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와 함께 읽으면 성범죄 재판의 어그러진 현실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