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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서로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첫 만남의 시선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동안 서울의 많은 장소에서 이우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필담―<절교 직전의 마지막 대화>라는 가제가 붙은 이 글들―을 주고받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어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느냐 묻는다면 명확히 답할 수 없다. 이건 두 사람이 작가라는 공통분모를 동원해 가며 최선을 다한 우정의 증거물처럼 보이나, 어쩌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두 타인이 노트 한 권을 놓고 나름대로 언어를 주고받으며 할 수 있는 놀이를 수행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세상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세상에 서로를 포함시킨다. 이것이 함께 쓰는 동안 유이우와 나 사이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우리는 아이처럼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고 바라보며 사랑했다. 서로가 번갈아 꺼내 온 단어를 사이에 두고 노력했다. 절교를 유예하기 위해서였다. ━ 프롤로그

절교 직전의 마지막 대화. 신이인.유이우 지음

“삶은 우리가 아무런 요구 없이 살 줄 알고, 개인적인 소망과 갈망을 잊거나 뒤로 미루는 법을 배운 뒤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대신 우리는 선의로 충만한 해방된 가슴으로 어떤 계율이나 확고한 섬김에 헌신하고, 우리의 행동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온화하면서도 과감하게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의 아름다움을 포기할 때, 그 입증된 선의와 친근하고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체념에 대한 보상으로 완전히 새롭고, 여태껏 결코 예감하지 못했던, 천배는 더 멋진 아름다움이 저에게 날아올 테니까요. 안 그런가요?”

토볼트 이야기. 로베르트 발저 지음, 최가람 옮김

물론, 그들이 다음 학기에 강의하도록 나를 재임용한 것은 내 서류 가방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 서류 가방이 너무나 서류 가방같이 생겨서 감명받았다.

우리의 이방인들.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강경이 옮김

아침 식사 때 식탁 밑에 가득 찬 요강단지가 있는 것을 본 날,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있다 보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았다. 더럽고 냄새나고 음식이 형편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의미하게 정체되어 썩어간다는 느낌, 사람들이 지하에 갇혀 바퀴벌레처럼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기어다니며 끊임없이 비열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