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인 할아버지. 가족은 그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미국에서 자란 저자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침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할머니에게서 아버지로, 다시 자신에게로 이어진 침묵의 이유를 찾아 그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60여 년 만에 침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손녀의 청에 할머니가 응답하면서부터였다. 할아버지 이철하. 그는 일제강점기 항일 동맹휴학과 시위를 이끈 학생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해방과 분단, 다시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의 삶은 은밀한 역사가 된다. 할머니는 남편의 기록과 편지, 책을 불태우고 과거를 삼킨다. 누군가에게는 기억하는 일이 의무였다면, 그에게는 잊는 일이 살아남기 위한 일이었으므로.
사후 60여 년 만에 이철하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지워진 이름은 다시 역사 속으로 돌아온다. 할아버지의 삶을 되찾으며 마거릿 주혜 리 역시 오래 잃어버렸던 자신의 뿌리를 되찾는다. 그리고 아들의 가운데 이름에 할아버지가 항일운동 당시 사용했던 가명 ‘성야(星野)’를 물려주었다. 한때 살아남기 위해 지워야 했던 이름은 그렇게 먼 시간을 건너, 한 아이의 이름 속에서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