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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대출심사를 하는 '장'은 '그 날'도 출근중이었다. 와이퍼에 꽂힌 '트렁크에 넣어뒀습니다.'라는 쪽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트렁크에 감금, 납치되어 오줌똥을 싸는 신세가 되었다. 묶인 이유도 모르고 풀려난 이유도 모른다. 납치사건과 연루된 장은 이제 다가오는 그것들을 피할 수 없다. 파혼을 했고, 상사에게 밉보였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난 장의 세계. 이 세계엔 죽은 자들이 바다에 나가 거꾸로 박혀 있다는 전설로 전해지는 '말뚝들'이 있는데, 이 말뚝들은 이토록 불행한 장에게 다가오고 있다.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내 앞으로” 다가온 이 죽은 자들, 말뚝들과 장은 아무 관련이 없을까? 산 사람이 죽어 거꾸로 박히는 동안 장은 정말 아무 것도 몰랐을까?
<프라이스 킹!!!>으로 2023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김홍의 장편소설. 30회의 수상자를 쌓아올리며 <탱크> 김희재,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표백> 장강명,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등의 이름을 목록에 올린 이 문학상이 그간 소개해온 작품들과 나란히 놓일 만한 시의적절한 수상작을 심사위원 전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더해 내놓았다. 고전소설의 혼령들이 부사 앞에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고하듯, 말뚝들도 할 말이 있어 도시로 오고 있다. 이미 밀랍화가 된 시체들에게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이 세계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김홍의 소설은 정형화된 형식을 넘나들며 이 미스터리 활극을 짊어지고 서늘하게 웃기고 내달린다. 제 죽는 이유를 모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세상, 장은 눈을 부릅뜨고 말뚝들을 본다. 애도와 연대, 윤리라는 거창하고 아름다운 말은 이 부릅뜬 눈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