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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당한 남성과 연대하는 여성작가, 천운영" 실크 브라우스처럼 부드럽고 다감한 소설책을 즐겨찾는 독자라면 이 책과 거리를 두어도 좋다. 하지만, 2001년 한국 여성 작가의 '색다른 오늘'을 확인해야만 속이 좀 풀릴 것 같은 이라면 이 소설에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바늘>은 지금껏 맛봐온 한국소설과는 또다른 감성과 소설세계를 확보하고 있다.
소재를 꽉 휘어잡는 억센 묘사력, 독특한 직업적 공간(마장동 가축시장, 문신시술소, 횟집, 고층 빌딩 외벽)을 끌어들여 그 세계에서만 사용되는 현란한 기술과 속임수를 정석으로 보여주는 서술상의 특징은 머리 속에서 짜맞추어진 소설과 천운영 소설이 현격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비일상적인 장소는 소설을 색다르게 보이게 하는 장치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다루는 그녀만의 개성 및 작가정신이기도 하다.
여기까지가 보통의 신예작가들이 보여준 참신함이었다면, 천운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소설의 재료를 번듯하게 작가적 통찰과 직립시킨 것. 가령, '여성성'에 '동물성'의 성격을 가미하여 공격적이고 동물적인 여성 이미지를 개척한 점이라든지('바늘'), 성적 욕망과 그 사회적 억압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동성 내에서의 성적 열등감과 그 극복을 지적한 점('월경'), 동물적 여성의 대척점에 (남성이 아니라) 식물성의 여성을 그려놓은 점 ('숨') 등이다.
그 중에서도 '육식'을 탐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퍽 인상적이다. 마른 행주로 소골을 닦아 그 자리에서 날 것 그대로 삼켜버리는 할머니, 쌀눈이 살짝 비치도록 말간 밥알에 약간 검어진 육류의 핏물이 스며드는 순간을 즐기는 문신시술사, 피물이 뚝뚝 흐르는 고기팩을 쇼핑 카트에 담는 여자들, 여자들...
그네들의 무서운 육식성이 짜릿한 반격처럼 느껴진 것은 영악하고 배짱좋고, 엽기적인 여자들에도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혹은 불륜과도 사이좋게 한 이불 덮는 전문직 여성들의 교활함에 싫증난 까닭일까? 어쨌거나, 천운영의 다음번 여자 주인공들이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 최성혜(2001-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