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시와서 일본문학 테마 단편선 시리즈 1 – 봄과 단편
찬란해서 더 애틋한, 우리의 삶을 닮은 열세 가지 봄의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야시 후미코, 호리 다쓰오 등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열한 명이 펼치는 열세 가지 봄의 이야기.
찰나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덧없음이 공존하는 일본의 봄 풍경을 한 권의 단편선에 담았다.
일본의 봄은 단순히 추위가 물러가는, 만물이 생성하는 계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얼어붙은 대지에서 움트는 생명처럼 다정하게 피어나는 설렘부터,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지는 벚꽃의 무상함까지 공존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찬란하지만 짧은, 짧아서 더 애틋한 봄의 풍경들이 문학가들의 시선에 포착되어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펼쳐집니다.
이른 봄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새싹처럼 피어나는 사랑의 설렘, 따스한 봄볕 아래 아지랑이 너머로 펼쳐지는 꿈 같은 환상의 세계, 그리고 떠나가는 봄의 지는 꽃잎처럼 애절한 상실과 무상함. 이렇게 봄은 젊음과 청춘의 찬란함에서 이내 져버리는 꽃처럼 덧없는 우리의 삶을 닮았습니다. 따뜻하고, 애절하고, 가슴 찡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봄의 이야기들, 아름답지만 스치듯 사라지는 이 계절의 기억들이 작가들의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여러분의 마음속에 시들지 않는 풍경으로 남을 것입니다.

찬란해서 더 애틋한, 우리의 삶을 닮은 열세 가지 봄의 이야기
<봄은 마차를 타고>는 시와서의 테마 단편선 시리즈 첫 번째 선집으로 ‘봄’을 테마로 엮은 단편집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근대문학이 많이 번역되어 우리에게 소개되었지만, 주로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잘 알려진 문호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묻혀 있는 것을 번역가로서 늘 아쉽게 느끼며 잘 접하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생각해왔습니다. 하나의 단행본으로 내기는 어렵지만 근대 작가들의 단편들을 테마별로 엮어서 소개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작품을 하나하나 읽으며 찾았습니다. 이번에 그 첫 번째 테마 ‘봄’의 선집이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를 생각하면서 처음 떠올린 말이 ‘백년의 단편’입니다. 백년은 긴 시간입니다. 그 긴 시간을 버티고 살아남아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글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말입니다. <봄은 마차를 타고>를 시작으로 앞으로 소개할 한 권 한 권의 선집이 그런 책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봄’의 테마로 엮은 첫 번째 선집 <봄은 마차를 타고>에는 열한 명의 작가가 쓴 총 열세 편의 단편이 실립니다.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호리 다쓰오, 하야시 후미코, 오카모토 가노코, 요코미쓰 리이치, 마키노 신이치, 사토 하루오, 무로 사이세 등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시선에 포착된 봄의 풍경들이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펼쳐집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도 있지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들도 실려 있습니다.
찬란하게 피어나지만, 순식간에 흩날리며 사라지는 봄이라는 계절은 인생의 반짝임과 덧없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야말로 우리의 삶을 그대로 닮은 것 같습니다. 이번 선집 속에 실린 여러 작품들은 봄이 배경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런 봄의 정서를 닮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난하지만 맑은 영혼을 여성과 고독한 청년의 따스한 교감을 그린 <이른 봄>, 죽은 연인이 다시 태어나길 백 년 동안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 <열흘 밤의 꿈>, 꽃집 아가씨 앞에서 수줍게 말을 더듬는 청년의 모습에서 청춘의 사랑스러운 단면을 포착한 <꽃으로 말해요>, 멀리 산골의 온천장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우연히 친구의 비밀을 알게 되는 이야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장미를 사랑하는 어느 몽상가 시인의 이야기 <장미를 사랑하는 이야기>, 친구의 죽음을 못 본 채한 가여운 개를 그린 따뜻한 동화 같은 이야기 <시로>, 삯바느질을 하는 아내와 번역으로 근근이 삶을 꾸려가는 젊은 부부의 가난하지만 따뜻한 이야기 <물고기의 서문>, 병에 걸린 아내 곁을 지키는 남편의 모습에서, 삶의 고통과 지극한 사랑을 되돌아보게 하는 <봄은 마차를 타고> 등 총 열세 편의 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따뜻하면서도 애절하고, 반짝이지만 무상한 이 이야기들은 우리 마음속에 시들지 않는 계절의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백 년을, 제 무덤 곁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만나러 올 테니까요.”
나는 그저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 ― <열흘 밤의 꿈>
매화 한 송이
한 송이만큼의
따스함이여
시를 읽으면서 가키치는 오키누의 머리카락 향기를 맡았다. ― <이른 봄>
나는 무의미한 벽만 바라보며 걸어온 것을 몹시 후회했다. 사람이 살지도 않는 무수한 벽을 지키기 위해 그녀와 떨어져서까지 살 마음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이 세상에는 추억도 없구나.” 또다시 묘표 뒤의 글귀가 가슴을 찔러왔다. ― <이른 봄>
여자아이에 대하여 나는 늘 한없는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여자아이를 떠올리는 것은 커다란 신록의 덩어리 같은 싱그러움입니다. ― <자몽이 열리는 나무 아래서>
플란넬 옷을 입는 계절은 여자아이가 가장 향기로울 때입니다.
두 맨발이 차가운 듯 시원해 보입니다. 그것이 신록의 계절에 촉촉한 흙 위에 떠 있는 듯 보입니다. ― <자몽이 열리는 나무 아래서>
꽃들에 반쯤 파묻힌 채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인 그 꽃집의 아가씨는 가게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듯한 기척을 느끼자 바로 눈을 뜨더니, 천천히 일어서며 꽃과 꽃 사이로 상반신을 드러냈다. …… ― <꽃으로 말해요>
“아, 예쁘다…….”
먼지투성이의 신발 끈을 풀다가 불쑥 고개를 든 나는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절벽 중턱에 한 무더기, 무슨 꽃인지 붉고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 저녁 어스름을 뚫고 또렷이 보인 것이다. ―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달님! 달님! 저는 주인님의 얼굴을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멀리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디 날이 밝는 대로 아가씨와 도련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 <시로>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 꽃잎을 얼마 전에 나온 나의 시집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이따금 “아아, 이제야말로 저는……” 하고 그 장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을 떠올린다. ―
- <장미를 사랑하는 이야기>
그렇다. 깨닫고 보니 나는 어느샌가 그 장미를, 이제 이 세상에는 형체가 없는 그 장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순간의 친구라고 생각한 것이 이렇게 나의 영원한 연인이 되어 있었다. ― <장미를 사랑하는 이야기>
거슬러 오르고 올라도 강폭은 좁아지지 않았다. 화려한 비단 그림 속의 인형처럼 꾸며, 잉어 튀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깊고 어스름한 창 안에 고요히 있어야 아름다울 그녀의 모습이, 타오르는 햇살 아래 드러난 채 돌부리에 걸리기도 하고 가시덤불을 피하기도 하면서 초조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는 오히려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 <나룻배로 가는 집>
하얀 색, 하얀 것은 그저 무한함이다. 하얀 장미, 흰 백합, 하얀 벽, 백조. 붉은 것에는 붉은 백합, 붉은 장미, 붉은 산호, 붉은 불꽃, 붉은 버섯, 붉은 생강 —— 푸른 잎사귀, 푸른 벌레, 노란 유채꽃, 황매화꽃. ― <명암>
“당신, 지금 무슨 생각했어?”
“내 뼈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난, 그게 마음에 걸려.”
—— 그녀의 마음은 지금, 자신의 뼈를 걱정하고 있다.
—— 그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 이제 끝이구나.
― <봄은 마차를 타고>
“이건 정말 예쁘네.”
“어디서 온 거야?”
“이 꽃은 마차를 타고 바닷가를 따라 제일 먼저 봄을 뿌리고 또 뿌리며 찾아온 거야.”
― <봄은 마차를 타고>
1장
이른 봄
꽃으로 말해요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물고기의 서문
포도 덩굴
2장
열흘 밤의 꿈
시로
스페인 개가 사는 집
장미를 사랑하는 이야기
3장
나룻배로 가는 집
자몽이 열리는 나무 아래서
명암
봄은 마차를 타고
옮긴이의 말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1867년 현재의 도쿄 신주쿠구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1900년 문부성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서 영국에서 2년간 유학하며 영어수업법을 연구했으며 귀국 후에는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의 강사로 일했다. 1905년 발표 및 연재한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큰 호평을 받은 후 『도련님』 『풀베개』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907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하여『우미인초』를 연재하면서 전업 작가로서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 후』 『문』 『마음』 등의 작품을 연재하며 독자들의 사랑과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16년 12월 9일, 『명암』을 집필하던 중 거듭된 위궤양 악화로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1896년 가나가와(神奈川)현 오다와라(小田原)시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태어난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십 년 만에 귀국한 보헤미안 아버지, 소학교 교사로 일하며 엄격한 훈육을 고집한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1919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열세 명의 동인을 모아 『13인(十三人)』이라는 잡지를 창간해 첫 작품「손톱(爪)」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당시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후 부모 형제를 혐오하는 신변잡기 사소설을 쓰던 초기를 지나, 중기에 이르면 고향 오다와라의 풍토에 고대 그리스나 유럽 중세 이미지를 중첩해 꿈과 현실을 오가는 환상문학을 개척했다. 「제론(ゼーロン)」은 이런 환상성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후기에 해당하는 1931년부터는 신경쇠약 징후가 심해지며 사소설 경향으로 회귀했는데, 더욱 어두워진 작풍이 「병세(病状)」에 드러나 있다. 1936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자유와 속박 사이에서 생겨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마키노의 문학은 창백한 자의식, 신경증, 비애감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다이쇼(大正) 시대부터 쇼와(昭和) 시대에 걸쳐 시·소설·하이쿠·수필·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단행본 기준 150권 이상의 저서를 간행했으며 그 가운데 20여 권의 시집과 80여 권의 소설집을 펴낸 일본의 대표적 시인이자 소설가다.
하급 무사 출신인 아버지와 하녀였던 어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일주일 만에 인근 절의 주지승을 통해 양자로 입양된다. 주지승의 내연의 처에게 입양되어 자라면서 친부모와는 가깝게 교류하지 않았고 열 살 무렵 친부가 사망한 뒤 친모는 자취를 감추어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된 자격지심과 그로 인한 반항과 고독에서 사이세이는 일생 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사이세이의 삶과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테제는 이러한 태생적 결함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독립을 도모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이세이 문학은 전통 시가인 하이쿠에서 시작한다. 양모의 권유로 14세 무렵 고등소학교를 중퇴하고 지방재판소에 급사로 취직을 한 그는 직장 상사에게 하이쿠의 기초적인 작법을 배운다. 이후 지역 신문이나 문예지에 시가나 산문을 발표하는 등 문학에 대한 열의를 쏟아붓는다. 초기에는 본명인 데루미치(照道)와 필명인 잔카(殘花)를 썼으며 17세 무렵부터는 사이세이(犀西)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사이세이(犀西)라는 이름은 당시 가나자와 출신의 고쿠부 사이토(國府犀東)의 필명 속에 담긴 ‘사이강의 동쪽(犀東)’이라는 의미에 상응하여 붙인 것이다. 그는 강의 서쪽에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를 담아 필명을 ‘사이세이(犀西)’라고 지었으며 나중에 같은 음의 한자인 ‘사이세이(犀星)’로 바꾼다.
1907년 그의 나이 19세 때 《신성(新聲)》에 발표한 시를 계기로 고다마 가가이(兒玉花外)의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에 몰두한다. 아울러 1910년 22세 때에는 포부를 품고 상경하지만 무명 시절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경제적 궁핍과 불안정함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도시 생활에 지친 그는 미련 없이 고향 가나자와로 돌아간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삶 역시 녹록하지는 않았으며 가슴속에 품은 문학을 향한 열망은 그를 몇 번이고 다시 도쿄로 돌아오게 만든다. 도쿄와 가나자와를 오가며 이상과 현실 속에서 좌절을 반복하는 동안 그의 시에는 고향에 대한 애착과 고된 삶의 모습이 현실적인 감각과 이상 세계로의 환영으로 발현된다.
값싼 하숙방을 전전하며 곤궁한 생활을 하는 생활 속에서도 사이세이는 뜻이 맞는 문인들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거나 동인지를 간행하는 등 시인·편집자·발행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간다. 20대 중반부터는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를 비롯하여 우에다 빈(上田敏),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郞),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등과 친분을 이어 가며 문단의 중심에 선다.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지던 시기 사이세이는 소설 창작에도 힘쓴다. 그가 소설로 영역을 확장하게 된 까닭은 불우한 성장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명심과 경제적 자립에 우선하는 것이었다. 1919년 31세에 〈유년시대(幼年時代)〉를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하여 높은 반응을 얻게 되고 그해에 〈성에 눈뜰 무렵(性に眼覺める頃)〉,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或る少女の死まで)〉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다진다. 초기 자전소설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유년 시대〉, 〈성에 눈뜰 무렵〉,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는 태생적 속박과 자신의 상흔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와 더불어 사이세이는 한 해 30~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는 창작욕을 보인다. 그런 성과로 46세에 양모와 절에서 함께 자란 형제들을 소재로 소설 〈남매(あにいもうと)〉(1934)를 발표하며 1935년 제1회 문예간담회상(文藝懇話會賞)을 수상한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오다 1953년에는 영화화가 되기도 하고 1972년에는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한다.
소설이 많은 관심을 받은 것에 반해 사이세이는 점차 시를 쓰는 일에 소홀해 진다. 1932년 간행한 시집 《철집(鐵集)》에서 ‘더는 시집을 엮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고백한 이래 1934년 8월에는 〈시여 그대와 헤어지노라(詩よ君とお別れする)〉(《문예(文藝)》)라는 글에서 마침내 시작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는 변화에 대한 의지와 시와 소설 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남매〉의 성공으로 자신의 문학적 생명을 소설에 걸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변혁기를 보내며 사이세이의 문학은 더욱 깊이를 더한다.
그는 타고난 미적 감각으로 전통적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일본의 정원을 소재로 하는 글을 다수 남기고 있다. 수필집 《정원을 만드는 사람(庭を造る人》(1927), 《정원과 나무(庭と木)》(1930), 《일본의 정원(日本の庭)》(1943)이 그것이다. 그는 1931년 가루이자와에 별장을 짓고 매년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며 집과 정원을 직접 가꾸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 이 별장은 자신과 친분이 깊은 호리 다쓰오(堀辰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등 많은 문인들이 드나드는 교류의 장소가 되었으며 사이세이 자신 역시 이 별장에서 〈성처녀(聖處女)〉(1935), 《살구 아이(杏っ子)》(1956) 등과 같은 작품을 저작한다.
전시기에 이르러 사이세이는 《천황의 군대(美以久佐)》(1943)와 《일본미론(日本美論)》(1943)에서 전쟁을 찬양하는 시를 발표하여 전후 논란의 중심에 선다. 이에 도미오카 다에코(富岡多惠子)는 ‘시인은 대중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능력자로서 국가에게 이용당하는 시대도 있다. 전쟁 시대에 시인은 국책에 봉사하는 선전가·선동가로만 기대되었을 것이다’라며 사이세이를 옹호하기도 한다. 사이세이는 《무로 사이세이 전시집(室生犀星全詩集)》(1962)에서 ‘오늘 이들 시를 지우는 것은 마음속의 더러움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논란이 된 전쟁시를 삭제한다.
오랜 문학 활동을 통해 높은 문업을 이룬 사이세이는 제1회 문예간담회상(文藝懇話會賞)(1935), 제3회 기쿠치간상(菊池寬賞)(1941), 제9회 요미우리문학상(讀賣文學賞)(1958), 제13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每日出版文化賞)(1959), 제12회 노마문예상(野間文藝賞)(1959) 등을 수상한다.
1961년 10월 73세에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쇠약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1962년 3월 1일 도쿄 도라노몬(虎の門) 병원에 입원한 뒤 의식 불명에 이른 19일로부터 일주일 후 3월 26일 영면한다.
메이지 후기부터 쇼와 초까지 활약한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평론가다. 와카야마현의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문학과 예술 환경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중학교 재학 중 문학가를 꿈꾸며 《명성》, 《스바루》등의 문예지에 시를 투고했고, 요사노 뎃칸과 이쿠타 조코의 영향을 받아 신시샤에 가입해 시 형식과 주제를 탐구했다. 나가이 가후를 동경해 게이오기주쿠대학에 입학했으며, 동문 호리구치 다이가쿠와 평생 우정을 나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니자키 준이치로와도 깊은 친분을 맺고 상호 비평과 교류를 지속했다.
1921년 첫 시집 《순정시집》을 출간해 사회 문제와 서정시를 아우르며 주목받았다. 특히 다니자키의 아내 지요코를 둘러싼 ‘오다와라 사건’은 문단의 큰 화제가 되었다. 1930년 지요코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이후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신감각파가 부상하며 하루오의 문학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문학적 입지를 고수한다. 아울러 전통적이고 동양적인 감수성을 유지하며 중국, 조선, 대만을 여행하고 고전 번역에도 힘썼다.
전쟁기에는 중국 화북 일대를 종군하기도 하고 시국 강연이나 시국 시찰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전후 하루오는 민족 감정을 대표하여 이미 시작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협력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후 일본 예술원 회원,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4년 방송 녹음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으며, 교토 지온인에 안장되었다.
1892년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1898년, 후쿠시마 현(福島縣)에서 태어났다. 1917년 ≪문장세계≫에 <신마(神馬)>를 투고한 것을 시작으로, <활화산>, <불> 등을 발표했는데, 초기 작품에는 사소설적인 소재가 많았다. 이후 <파리>, <태양>, <마르크스의 심판>, <옥체> 등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신진 작가로서 빛을 발했다. 1928년 이후 <눈에 보인 이>, <신감각파와 코뮤니즘 문학> 등을 통해 유물론적 문학론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대항 의식을 표면화했다. 그러나 1930년, 심리와 감각의 얽힘이 두드러진 <새>와 <기계>를 발표함으로써 신심리주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1936년 유럽 여행 경험을 토대로 서양 사상과 일본의 고신도(古神道), 그리고 과학과 일본 사상을 다룬 장편 소설 ≪여수(旅愁)≫의 신문 연재를 시작한다. 1945년 야마가타 현(山形縣) 소개지에서 패전을 맞이했는데, 그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전시하의 답답한 심경을 그린 ≪밤의 구두≫와, ≪우아한 노래≫를 출판한다. ≪여수≫를 미완으로 남긴 채, 1947년 단편 <남포등>을 집필하던 중 위궤양과 복막염으로 숨을 거둔다.
일본 SF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설가이자 과학 해설가, 만화가. 운노 주자(海野十三)는 필명이며, 본명은 사노 쇼이치(佐野 昌一)이다. 와세다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체신성(우편, 통신을 담당했던 기관)의 전기 시험소에 근무하면서 기관지 등에 탐정 소설을 투고하던 중, 추리 소설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지에 의해 발탁되어 [신청년]이란 잡지에 [전기 욕탕의 괴사 사건]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저자는 태평양 전쟁 이전에는 군사 과학 소설을 주로 썼으며, 개전 후에는 김 박사 시리즈 등을 집필하였다. 직접 번역서를 내놓기도 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의 영향을 받아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 소설 시리즈를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쥘 베른이나 H. G. 웰스의 SF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복합장르로 탐정 소설에 SF적인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종전 후에는 과학 잡지에 과학 해설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으며 야구 만화를 발표하면서 다재다능함을 보여 주기도 했다. 특히, 그가 쓴 [화성병단]을 비롯한 소년을 대상으로 한 공상 과학 소설들을 읽고 자란 세대에게 미친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에 SF소설의 붐을 일으킨 고마츠 사쿄, 호시 신이치, 츠츠이 야스타카 등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과 동시대인이자 [울트라맨 시리즈]로 유명한 츠부라야 스튜디오에서 괴수와 외계인의 콘셉트 작가로서 ‘괴수 박사’란 별명과 함께 괴수 붐을 일으켰던 오오토모 쇼지 또한 소년시절부터 그의 작품에 열광했었다고 한다.
일본 만화계의 선구자인 데즈카 오사무는 소년 시절 운노 주자 소설의 열성팬이었는데, 후에 [모험소년]이란 잡지를 통해 편집을 담당했던 운노 주자와 교류도 하였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들도 발표했다. 또한 데즈카 오사무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표적인 선구자이자 선후배 사이였던 [은하철도999]의 마츠모토 레이지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선장 이름을 운노 주자로부터 차용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주요 작품으로는 [화성병단], [지구 요새], [심야의 시장], [세쌍둥이], [18시의 음악욕], [초인간X호], [괴성간] 등이 있으며, 비소설로는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적도남하]등이 있다.
1903~1951.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닌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인기 작가가 된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는 한편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하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는다.
190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23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만나 1927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사사받았다.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예술파 문학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신선한 심리주의적 묘사라는 문학 세계를 꿋꿋이 고수했으며, 사랑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곳에서 진정한 생을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통해 사소설(私小說) 중심이었던 당시 일본 소설의 흐름에서 ‘지어낸 이야기(픽션)’로 낭만파 문학 형식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되어 전후에는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로 요양하다 1953년 사망했다. 시의 감수성을 지닌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성가족(聖家族)』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등이 있다.
도쿄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어학을 전공하고 통번역사로 일했다. 시와서 출판에서 번역과 기획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 《시를 쓰는 소년》, 《소설가의 휴가》, 《풀꽃》, 《하루하루 하이쿠》, 《하루하루 와카》, 《나쓰메 소세키 - 인생의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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