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주제 같은 소리 하네, 예술은 설명하는 순간 죽는다!
텍스트에 갇힌 예술을 깨우는 가장 삐딱하고 거침없는 예술 이야기!
우리는 언제부터 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을까? 미술관에 가기 전에 휴대폰으로 미리 감상 포인트를 검색해 보고, 혹시라도 내 감상이 ‘틀렸’을까 봐 작가의 의도를 열심히 찾아본다. 해석 없이는 예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우리에게 예술은 어느덧 정답지가 존재하는 변형된 인문학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예술에서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단언하며, 예술의 기준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작품의 배경이나 작가의 의도를 구구절절 읊어주는 친절한 안내서가 되기를 거부한다. 대신 예술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도발적인 사례들로 풀어내며 우리가 예술을 대하는 관습적인 태도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특히 저자는 무엇보다 당대의 예술을 먼저 즐길 것을 권한다. ‘지금’의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고 소비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평생 다 소화하지 못할 수많은 예술이 쏟아지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니 해석하지 말고, 예술의 완벽함이나 쓸모를 따지지 말고, 고개를 들어 다시 없을 지금 이 시대의 예술을 즐기라고 말한다.
그리스 연극부터 AI까지, 예술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의 형태를 관찰하고,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을 새롭게 정의하는 이 책은 우리가 예술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날것의 감동을 되찾아줄 가장 힙하고 도발적인 예술 이야기다.


그리스 연극부터 AI 시대까지,
인문학적 허세는 걷어차고 독자를 예술의 숲 한가운데 냅다 던져버리는 책!
이 책이 말하는 예술의 본질은 본문 속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1991년, 시애틀의 한 인디밴드가 기름값이 없어 급하게 잡은 공연에서 신곡을 선보였다. 기타 리프는 단순했고, 보컬은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웅얼거림에 가까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더 환호했다. 그로부터 100일 후 그 앨범은 당시 최고의 스타인 마이클 잭슨을 제치고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앨범 판매량은 3,000만 장을 넘었다. 너바나의 두 번째 앨범 《네버마인드》다. “가사는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커트 코베인의 말처럼, 때로는 정교한 메시지보다 설명할 수 없는 날것의 에너지가 예술의 본질을 더 관통한다. 1974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리듬 0〉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끌어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엔 텍스트로 치환할 수 있는 주제는 없었지만, 관객의 온몸에 각인되는 강렬한 예술적 체험이 존재했다. 이처럼 예술은 때로 언어로 환원되지 않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작품의 숨은 의미를 맞히는 게임에서 내려와, 모호함 속에서 각자만의 감동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대하는 가장 존엄한 태도라고 말한다.
반면 저자는 주제가 너무 명확한 예술의 위험성도 함께 짚는다. 나치의 선전영화는 파시즘을 빛나는 미래로, 적군은 악의 화신으로 그려냈다. 결론이 정해져 있다면 아무리 화려한 기교를 섞은 교향곡도 군가가 되어버린다. “주제가 뭔데?”, “결론이 뭔데?”라는 질문이 예술의 모든 디테일을 삼켜버린다는 저자의 말이 가장 잘 증명되는 사례다.
이 책은 단순히 사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탄생과 변곡점을 보여주는 생생한 장면들로 독자를 안내한다. 1만 5,000명의 관객을 수용했던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엘레우테레우스 극장 극장부터 카메라의 등장으로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나 빛의 찰나를 그리게 된 인상주의 화가들 그리고 창작의 영역을 위협하는 오늘날의 AI에 이르기까지. 예술이 시대의 파도를 어떻게 넘으며 형태를 바꾸어 왔는지 흥미롭게 추적한다. 결국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예술의 ‘정답’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인간의 감각을 깨우는 ‘생명력’ 그 자체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작품의 의미를 맞히는 게임에서 내려와, 모호함 속에서 각자만의 감동을 발견하는 신선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_예술을 팝니다
1장 예술은 처음부터 완성형이었다
예술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리스 연극
비극 vs 희극
그리스 연극이 남긴 것
예술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다
■ 승자를 정하는 가장 예술적인 방법
2장 못해서 예술적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
서양 미술의 아주 짤막한 역사
모든 건 다다(dada)
그들이 미쳐버린 이유
못해서 예술적이다
3장 예술이라는 증상
아름다움은 모든 것
예술보다 예술다운
나는 오늘도 눈물을 흘린다
비극을 대하는 예술가의 자세
4장 신체를 도구로, 신체를 무기로
대상화된 여성
신체를 예술로 사용할 때
스스로를 무기로
■ 실수인가, 퍼포먼스인가
5장 예술, 시간을 담다
영화의 탄생
영화의 ‘찐’ 탄생
충돌은 새로움을 창출한다
시간을 달리는 예술
■ 영화사 최초의 불법복제, 범인은 누구?
6장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세상을 하나로 만든 기적의 노래
예술뽕이 차오른다
예술은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7장 주제 같은 소리 하네
주제 찾기는 이제 그만
메시지 전달이 극에 달하면
■ 좋은 현대미술 고르기 실전편
8장 클래식의 죽음, 예술의 죽음
클래식 멸망기
장르의 죽음은 필연인가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새로움이 사라진 시대
9장 AI와 예술
AI는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예술 넘어 예술, 토마손
미래에 예술가는 사라질까?
낭만이 채워줄 수 없는 것
GPT와 글쓰기 예술
■ 순수예술의 종말
에필로그
나는 이 책에서만큼은 이야기를 팔고 싶지 않다. 예술을 팔고 싶다. 이야기 역시 예술의 일부지만, 모든 예술이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예술은 텍스트로 환원되지 않고 형태나 물질 그 자체로 존재하며, 때로는 이야기라는 친절한 해석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야기에만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제는 해석 없이는 예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예술은 정답지가 존재하는 변형된 인문학일 뿐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대세를 거스른다. 물론 글로 쓰인 책이니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겠지만, 개별 작품의 숨은 의미나 해석을 구구절절 읊진 않는다. 대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예술의 형태를 관찰하고 예술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와 관점을 소개한다. 매우 기본적이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봐왔던 다른 책에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예술의 특징을 짚어볼 참이다. --- ■ 〈프롤로그〉 중에서
다다이즘은 예술을 해체함과 동시에 확장시켰다. 예술이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넘어섰다. ‘무엇이 예술이냐’고 물으며 예술을 파괴했고,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을 예술로 격상시켰다. 이제 예술이 아닌 것은 없다. 작가가 선택하기만 하면 모든 것은 예술이 된다.
예술에 끼친 영향력에 비해 다다이즘은 성급히 사라졌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비밀결사 같은 것이 아니었기에 해체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다이즘은 이후 나타난 거의 모든 현대미술의 기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다의 정신은 자연스레 다른 예술 장르로 발전하고 편입됐다. 다다는 관객이 봤을 때 ‘이게 뭐지?’ 싶은 모든 예술의 원형이자 출발점이다. --- ■ 〈모든 건 다다(dada)〉 중에서
어떤 예술은 당대의 상황 속에서 당대의 대중에게 어필한다. 이성적인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엉망진창의 환상도 그런 맥락에서 훌륭한 예술이 된다. 예술이 꼭 오래 살아남을 필요는 없다. 권력이 강요하는 질서에 기괴함으로 응수하며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의 찬란함이야말로 더 없이 예술적이다.
나는 당대의 예술을 사랑한다. 평론가들에게 꼭 보아야 할 작품을 물으면, 고전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은 위대하다. 그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당대의 예술을 먼저 즐길 것을 권한다. 왜냐면 지금의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고 소비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다 즐기기 어려운 속도로 만들어지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앞 세대도, 이후 세대도 알 수 없는 온전히 우리만 알 수 있는 예술이 있다. --- ■ 〈그들이 미쳐버린 이유〉 중에서
해석이 없는 작품을 보는 것은 불편하고 재미도 없으며 때론 무서운 일이다. 최소한 “이건 자유롭게 보는 것”이라는 지시 아닌 지시라도 줘야 한다. 사람들은 주제를 묻고, 결론을 확인하고 나면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이다. (…) 우리는 역사를 배우듯 예술을 배우고, 관습을 배우듯 예술을 배운다. 그러니 누군가 해석한 다음 따라가는 팔로어가 된다. 여기서 심각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정답을 모르는 것이 정답을 아는 것보다 예술의 본질에 다가가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현대예술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 ■ 〈주제 찾기는 이제 그만〉 중에서
예술의 변화는 우리의 경험 자체를 변화시킨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미술 작품을 보면 그 자체가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없어서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로 훨씬 더 가까이에서 디테일하게 미술 작품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느낌을 재현할 순 없다. 어떤 방식이 우월하고 열등한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관람 방식에도 장점이 있고 특유의 감각이 있겠지만, 과거의 방식과 절대 같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사랑한 건 어쩌면 예술 그 자체가 아닌 그 경험의 감각일 것이다. ---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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