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계보
책과 책 사이, 경계의 아카이브
오늘의 삶을 위해 과거와 미래의 책을 수집합니다.
'읽기의 계보'는 하나의 주제 또는 정서로 느슨하게 이어진 책들의 지도, 앎의 숲, 마음의 아카이브가 되어, 드넓은 책들의 세계를 항해하는 독자들의 친밀한 가이드가 되고자 합니다.
"아카이브는 빛이 들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 같다. 그래도 한동안 숲속에 들어가 있으면,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숲의 생김새를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게 된다." - 아를레트 파르주 <아카이브 취향>
읽기의 계보 / 2026 #01
AI는 인간의 꿈을 꾸는가?
기대와 우려, 열광과 냉소 사이에서 AI는 빠른 속도로 인간의 삶으로 스며드는 중입니다. 쏟아지는 최신 정보에 앞서, 인류가 상상해 온 인공적 존재의 기원과 현재의 폭발적 발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인공지능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수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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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차별과 부당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안에’ 있다. 왜냐하면 기술적 디폴트는 문화적, 사회적 편견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중립적인 계산 기계가 아니라 특정한 권력 구조와 물질적 조건 아래에서 작동하는 사회기술적 체계입니다. 알고리즘은 반복과 습관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 데이터의 패턴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노동, 에너지, 광물 채굴, 분류 체계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추출 시스템은 ‘지능’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채 자원 착취와 감시의 정치경제를 구성합니다. 미래의 혁신으로 이야기되지만, 동시에 과거의 권력 구조를 자동화하여 강화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치적.경제적.문화적.과학적 위력으로서의 AI와 맞서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얼론드라 넬슨, 투이 린 투, 얼리샤 헤들럼 하인스가 말하듯이 '기술을 둘러싼 투쟁은 경제적 계층 이동성, 정치적 운신의 폭, 지역사회 건설을 위한 더 큰 투쟁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불평등 가속 체계
AI 지도책
인공지능이 정치와 경제 활동에 깊이 스며들고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에 AI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이 책은 미국 네바다의 리튬 광산에서부터 아마존 창고, 시카고의 도축장, 데이터 센터, 이미지 데이터베이스, 파푸아뉴기니의 산악 마을, 스노든 자료실, 텍사스 서부의 로켓 기지 등 전 지구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해서 비민주적 통치와 불평등을 증폭하는지 폭로한다. AI가 어떻게 권력을 집중하는지,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기술 기업들이 세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처한 위험의 실체를 서술한다.
다름 안에서 살기
차별하는 데이터
뉴미디어와 네트워크 기술, 기계학습을 둘러싼 비판적 통찰로 북미 디지털 미디어 연구를 이끌어 온 웬디 전의 첫 번역서. 상관관계, 동종선호, 진정성, 인식 등 빅 데이터와 소셜 네트워크의 핵심 개념이 어디에서 비롯했고 무엇을 낳았는지 추적하며, 기술이 약속한 민주주의와 평등이 어떻게 차별과 불평등으로 전환되었는지를 짚는다. 차별의 증거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알고리듬과 기계학습의 절차와 논리, 예측의 수준에 내재된 편견을 해부한다. 분리와 반향실이 목표가 되는 구조를 설명하고, 기술과 문화 사이에서 차별적 데이터의 악순환에 맞설 실천적 지침을 제시한다.
신화적 원형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지구 위를 걸은 최초의 ‘로봇’은 청동 거인 탈로스(Talos)이다.
인간은 기술의 발전 이전부터 이미 인공 생명을 상상해 왔습니다. 청동 거인 탈로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신화와 문학 속에서 반복되어 온 인공 생명의 이야기입니다. AI는 갑작스러운 발명품이 아니라 생명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책임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보려는 반복된 시도의 결과물입니다. 물론 현대 AI 기술과 이러한 상상력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비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욕망의 계보 자체는 충분히 이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탈로스
신과 로봇
지구 위를 걸어 다닌 최초의 로봇은 탈로스라는 이름의 청동 거인이었다. 이 놀라운 기계는 MIT 로봇 공학 연구소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 속 발명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로봇을 혼자서 쓰러뜨린 마녀 메데이아는 사상 최초의 해커에 해당한다. 영토를 더욱 완벽하게 방어해야 한다는, 즉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더 잘 수행해야 한다는 탈로스의 ‘욕망’ 또는 알고리즘의 맹점을 파고든 메데이아는 그 거인을 공격하지 않고 설득한다. “네가 불멸하는 존재가 된다면 이 영토를 영원히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너에게 영생을 줄 수 있다.” 의외의 제안에 흔들린 탈로스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해킹이 막 성공한 것이다. 탈로스는 그때부터 메데이아의 말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사자(死者)의 부활
골렘
“마이링크의 ‘골렘’은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내적 갈등과 우리와 외부 세계와의 긴장된 관계를 상징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을 첫 출간한 뒤 이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사이, 우리 곁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또 하나의 골렘인 AI가 와 있다. 우리는 인간의 미래를 몰래 짓고 있는 골렘을 상상하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공포의 공간을 우리는 직접 체험하며, 이를 친숙하게 우리의 것으로 내면화해야 한다. 작가 마이링크는 주인공 페르나트를 통해 이 길로 가는 방법과 그 이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 다. 마이링크는 이 방향에서 ‘골렘’ 전설을 재해석하고 있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근대 과학과 이성
AI는 20세기에 등장했지만, 그 수학적·철학적 토대는 근대 초기에 이미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긴 환영(幻影)을 제거하는 일이다.
근대는 세계를 수학적 질서로 재구성했습니다. 자연은 보편적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는 체계가 되었고, 인간 역시 이성적 판단과 규칙적 사고를 수행하는 존재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 속에서 사고와 지능은 점차 절차와 규칙으로 분석될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수학 논리와 계산 이론, 정보 과학이 발전하면서 실제 계산 기계와 알고리즘으로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AI는 갑작스러운 기술적 발명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의 사고를 규칙과 계산의 체계로 이해하려는 오랜 인식론적 전환 위에서 등장한 기술입니다.
수학자들이 도박과 우연성에 기반을 둔 게임, 특히 장기적인 결과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최초의 진정한 확률 이론이 등장했다. 확률 이론의 선구자들은 인류가 우연한 사건을 다루는 방법이던 직관, 미신, 적당한 추측이라는 혼란스러운 잡동사니에서 합리적인 수학의 원리를 추출해야 했다. 복잡할 대로 복잡한 사회, 과학 문제에 대한 대처부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 할 수 없었다.
“N? 좋아. 자연(Nature)을 만들어봐.”
클라파우치우시가 말했다.
기계가 윙 소리를 내자 트루를의 앞마당은 순식간에 자연사학자(naturalist)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논쟁하고, 각자 두꺼운 책을 출판해대고, 자기 것이 아닌 다른 책들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먼 곳에는 불타는 장작더미가 보였다. 그 위에는 조물주 Nature에 대한 순교자들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천둥이 치고, 이상한 버섯 모양 구름 기둥이 피어올랐다. 모두가 동시에 떠들어댔고 아무도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계약서, 항소장, 소환장과 여러 문서들이 날아다녔고, 좀 떨어진 곳에서는 노인들 몇이 앉아 종이쪽지에 무엇인가를 미친 듯이 갈겨대고 있었다.
“괜찮잖아, 응? 완전히 ‘자연’스럽네. 인정하라고!”
SF, 먼저 온 미래
세계가 창조된 이래 가장 현명했던 자들이 연구하고 꿈꾸어 온 것이 이제 내 손안에 있었다.
SF는 기술을 예언하기보다는, 기술이 인간과 권력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실험합니다. 고전 SF는 감시 사회, 자동화된 노동, 인공 생명과 기계 지능 같은 문제들을 현실보다 먼저 상상 속에 배치했습니다. 조지 오웰의 감시 국가, 카렐 차페크의 로봇,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와 같은 상상은 이후 실제 기술과 사회 논쟁의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습니다. 과학소설은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근대 과학과 이를 토대로 한 사회가 현실화되기 이전에 작동한 사유의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I는 기술의 산물이기 이전에, 상상력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 개념이었습니다.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 릭은 속으로 물었다. 그건 분명해. 그들이 때때로 주인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치는 이유도 그것이니까. 더 나은 삶, 노예 신세가 아니라. 루바 루프트처럼 말이야.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을 노래하는 거지. 황량하고 바위투성이인 지표면을 힘들게 오가는 것 대신에 말이야. 근본적으로 거주가 불가능한 식민 세계에 사는 것 대신에 말이야.
생각 기계를 만드는 로봇 콤비
사이버리아드
SF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천재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 제목 ‘사이버 시대의 일리아드’라는 뜻의 이 작품은 렘이 시도한 ‘가장 완전한 과학소설’이기도 하다. 친구이자 라이벌인 두 제작자는 전능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도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로봇들로, 지금의 세계와 인간의 한계를 꼬집는다. “2+2=7”이라는 대답이 잘못되었고 말한 트루를에게 분노하여 폭주하다가 결국 망가져서 멈추지만 끝까지 “2+2=7”이라고 우기는 8층짜리 연산 기계의 모습이 마치 현생 인류의 한계와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것만 같다.
인간, 생명, 존재는 무엇인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최종세계대전 이후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여 불모지가 된 지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성으로 이주하여 일종의 로봇 노예인 안드로이드를 부리며 살아간다. 지구에 남은 소수민들은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인간적인 가치를 입증하는 행위로 여긴다. 릭 데카드는 지구로 도주해온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전기양 대신 살아 있는 동물을 한 마리 키우는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구역으로 안드로이드 여섯 대가 도주해온 것이다. 1993년 1월 3일, 사냥에 나선 데카드는 인간과 다를 바 없이 개별자로서 행위하고, 강렬한 생의 의지를 지닌 안드로이드들을 만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냉전과 사이버네틱스, 최초의 AI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또는 인공두뇌학(人工頭腦學)은 일반적으로 생명체, 기계, 조직과 또 이들의 조합을 통해 통신과 제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기술 체계에서 사이버네틱스는 오토마타와 로봇과 같은 컴퓨터로 제어된 기계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 위키피디아
생각의 전체 과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신비롭지만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인공지능 연구의 초기 발전은 군사적·국가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앨런 튜링의 계산 이론,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클로드 섀넌의 정보 이론은 기계와 인간의 사고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지적 환경을 형성했습니다. 사이버네틱스는 생물과 기계를 동일한 피드백과 제어 시스템으로 이해했고, 정보는 통제의 핵심 자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냉전기 군사 연구에서 출발한 ARPANET을 통해 인터넷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정보의 흐름을 연결하는 새로운 기술 인프라를 형성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AI는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드는 문제라기보다, 복잡한 세계를 계산하고 예측하기 위한 통제와 관리의 기술로 발전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논리는 인간의 마음―따라서 인간의 신경계―에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느 것도 포함할 수 없다. 인간이 논리적 사고라고 하는 활동을 하는 한 모든 논리는 인간 마음의 한계에 따라 제한된다.
대항문화와 실리콘밸리
생존의 인간 : 생존의 인간은 위계화된 권력의 메커니즘 안에서, 조합된 간섭들 안에서, 프로그램된 사상가들의 참을성 있는 프로그래밍만을 통해 정돈될 수 있는 억압적 기술의 혼돈 안에서 잘게 부서진 인간이다.
1960년대 대항문화는 기술을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해방의 매개로 상상했습니다. 공동체, 네트워크, 탈중앙화에 대한 이상은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문화의 초기 정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과 탈중앙화의 상상력은 곧 기업가 정신과 결합하며 실리콘밸리의 문화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해커 윤리와 자유로운 정보의 이상은 플랫폼 기업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기술 자본주의의 정당화 서사로 전환되었습니다.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대항문화는 결국 기업 중심의 기술 문화 속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물론이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무엇이든, 그에 대한 접근은 무제한적이고 전적이어야 한다. 직접 해보라는 강령(Hands-On Imperative)을 언제나 지켜라! 모든 정보는 공짜라야 한다. 권위를 불신하라! 분권을 촉진하라! 해커들은 학위, 나이, 인종, 직위 등과 같은 엉터리 기준이 아니라 해킹 능력으로 판단한다. 컴퓨터로 예술과 미를 창조할 수 있다. 컴퓨터가 우리 삶을 더 낫게 바꿔 줄 것이다.
다른 세상의 가능성
보도블럭 아래 해변
2차대전의 폐허로부터 마침내 68혁명의 불빛이 타오르기까지. 그 역동의 시기 한 구석엔 파리 뒷골목을 헤매던 '불량아'들의 아방가르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이 있었다. 기 드보르를 위시한 단 몇 명의 스타들로만 납작하게 대표되곤 하는 그 운동은 사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름들이 들락날락하며 서로와 세상을 상대로 벌인 게임이었다. 워크는 우리가 그들의 경기장을 다르게 관통해 보기를 제안한다. 일상을 통해 세상을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야망을 품었던 상황주의자들의 전략과 전술 속에서, 우리 또한 21세기를 벗어나기 위한 단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해커 정신의 탄생
해커, 광기의 랩소디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195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의 컴퓨터 천재들 이야기가 담긴 책. 소위 자신들을 해커라고 칭하는 그들은 '직접 해보라'라는 해커주의를 MIT 테크 모델 철도 클럽과 리스프 창시자 엉클 존 매카시의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탄생시키고, 나아가 북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로 전파했다. 그 결과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애플을 비롯한 수많은 벤처 기업이 생겨났으며 PC 산업이 엄청난 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면서도 아직까지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해커들을 재조명한다.
신자유주의의 흐름
“애플의 많은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만지기 시작하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고급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몰기 시작하고 집도 여러 채 장만하더군요. 각각의 집에 지배인도 두고, 나중에는 그 지배인을 관리할 또 다른 누군가를 고용하고요. (...)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신 나간 짓이에요. 나는 돈이 내 인생을 망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1970년대 경제 위기 이후, 시장은 단순한 교환의 장이 아니라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로 확장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축소한다기보다, 통치 방식을 시장의 언어로 재구성했습니다. 시민은 소비자이자 기업가적 주체로 전환되었고, 경쟁과 효율은 사회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시장 논리는 정책과 행정, 노동의 조직 방식까지 확장되었고, 플랫폼과 인공지능은 통치 합리성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장치가 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무실'이라는 인공 세트장이 이 책의 배경이다. 나는 브랜딩의 언어를 빌려, 자기계발 산업과 경영학 용어로 분장한 기업가적 클리셰들을 비틀어 무대 위 앙트레프레카리아트를 소개할 것이다. 앙트레프레카리아트 - 이제 우리 모두 기업가. 하지만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살아 숨 쉬는 자유지상주의의 긴 여정
크랙업 캐피털리즘
슬로보디언은 시장을 위한 완벽한 공간을 찾으려는 시장급진주의자들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구역’이라는 전략을 폭로한다. 구역(zone)이란 경제특구나 수출가공구처럼 경제적 필요와 자본의 요구에 따라 국가의 규제나 민주적 절차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나 있는 공간으로, 슬로보디언은 시장급진주의자들이 세계 곳곳에 구역이라는 ‘구멍’을 뚫어 자본의 탈출구를 건설하려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신간에서 이러한 시도를 크랙업 캐피털리즘, 즉 ‘균열(crack up)의 자본주의’라 명명한 그는 가장 대표적인 구역이라 할 수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시작해 런던, 실리콘밸리, 두바이, 소말리아 그리고 메타버스까지 차례차례 파헤친다.
모든 대안이 봉쇄된 체제에 맞서
내전, 대중 혐오, 법치
과연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그렇다면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새것이 오지 않는 이유가 낡은 것이 아직 저물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내전, 대중 혐오, 법치>는 파리 낭테르대학에 거점을 둔 네 명의 석학이 함께 쓴 책으로, 저자들은 여전히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 있다고 주장하며 그 지배 방식에 주목한다. 푸코의 통치성 관점에서 이 체제가 취하는 전략적 특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하는 저자들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경제·정치 사상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종류의 평등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획”으로 바라본다. 이 명제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감시, 통치, 데이터
지금 우리에게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 형태의 정체를 그들의 용어, 그들의 언어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실리콘밸리로 다시 눈을 돌려야 한다. 그곳에서는 모든 일이 너무나 빠르게 일어나므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실리콘밸리는 어느 구글 엔지니어가 생생하게 묘사했듯이, “꿈의 속도”로 진보가 일어나는 곳이다. 여기서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린 속도로 재생함으로써 그러한 논쟁을 위한 공간을 넓히고 이 창조물들의 가면을 벗겨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사회적 위계를 강화하고, 배제를 심화하고, 권리를 강탈하고, 개인의 삶에서 누구를 위한 것과 상관없이 사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그들의 경향을 드러내려고 한다.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통치의 기술이 됩니다. 감시는 단순히 보는 행위가 아니라, 예측하고 행동을 유도하며 조정하는 과정으로 진화했습니다. 알고리즘은 행동을 분류하고 점수화하며 위험과 신뢰를 계산합니다. 개인은 데이터의 집합으로 재구성되고, 통치는 법과 명령이 아니라 추천과 최적화의 형식으로 작동합니다. AI 이전에도 데이터 기반 권력은 이미 사회를 조직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통치는 플랫폼 기업을 통해 경제와 일상의 조직 방식으로 확장됩니다.
디지털 기술과 매체는 자유만이 아니라 평등과 정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 다이크에 따르면, 네트워크 기술은 생산과 분배를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불평등을 증가시킨다, “네트워크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는 국가들의 결속과 함께 불균등한 발전을 촉진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전 세계의 정보 인프라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나눠 이중 경제를 형성하게 돕는다.”(336) 경제발전의 이러한 차이는 발전 ‘속도’가 서로 다른 사회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또 어떤 국가는 다른 사람보다, 그리고 다른 국가보다 기술과 매체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우리 사이의 공간은 ‘백지’도 ‘공간’도 아닌, 아카이브가 잊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자본, 플랫폼, 노동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플랫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본의 조직 방식입니다. 네트워크 효과와 데이터 축적은 독점을 강화하고, 노동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재구성됩니다. 디지털 플랫폼의 단기 노동, 외주 콘텐츠 생산, 데이터 라벨링은 AI 시대의 토대를 형성합니다. 플랫폼은 시장을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설계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겪는 불안정과 분절된 노동은 이러한 구조의 결과이며, 플랫폼 자본주의는 노동과 데이터를 동시에 추출하는 새로운 축적 체계를 형성합니다.
알고리즘의 자동 관리라는 비즈니스는 그 자체로 카프카적이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우리의 미래를 수학적으로 정확히 예측해 사회경제 질서를 정교하게 조정해 준다고 약속하지만 정작 거기서 나오는 강령은 강압적인 데다 종잡을 수 없다.
현대 AI: 예측과 생성
독서는 일론에게 심리적 안식처가 되었다. 때때로 그는 오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9시간 내내 독서에 몰두하기도 했다. 가족 전체가 누군가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기라도 하면 일론은 그 집의 서재로 사라지곤 했다. 시내에 나간 날에는 거리를 배회하다 결국에는 서점에 들어가서 바닥에 앉아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그는 만화책도 깊이 탐닉했다. 하나의 목적에 매진하는 슈퍼히어로들의 열정이 특히 그를 매료시켰다. “다들 항상 세계를 구하려고 하잖아요. 생각해보면 속바지를 겉에 입거나 몸에 딱 붙는 철제 수트를 입은 게 이상하지만, 어쨌든 세상을 구하려고 애쓰잖아요.” 일론의 말이다.
냉전기의 사이버네틱스와 초기 AI가 통제와 계산의 기술이었다면, 오늘날의 AI는 예측과 생성의 인프라입니다. 데이터 축적, 클라우드, GPU, 거대 자본이 결합하면서 알고리즘은 텍스트와 이미지, 코드까지 생산합니다. 지능은 인간을 모방하는 능력이 아니라, 행동과 시장을 예측하고 자동화하는 시스템으로 재정의됩니다. AI는 이제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플랫폼 경제를 작동시키는 핵심 엔진이 되었습니다.
올트먼은 사실 코드를 작성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선지자이자 복음 전도사, 거래의 해결사였다. 19세기라면 아마 〈흥행사〉라고 불렸을 것이다. 수년간 일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Y 콤비네이터에 조언을 해주고 이후 직접 운영하면서 갈고닦은 그의 전문 분야는, 거의 불가능한 일을 붙잡고 다른 사람들에게 실은 가능하다고 설득한 다음, 많은 돈을 모아서 실제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기술 낙관주의
나는 2045년을 특이점의 시기로 예상한다. 인간 역량이 심오하게, 돌이킬 수 없는 변환을 맞는 때일 것이다. 2040년 중반이 되면 비생물학적 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그건 여전히 인류 문명일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을 초월하는 것이지, 인간성을 초월하는 게 아니다.
디지털 기술은 종종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립적 도구로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며, 자동화는 노동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서사가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주의는 기술을 둘러싼 권력과 자본의 구조를 가립니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를 재편하는 제도적 장치이며, 혁신이라는 언어는 기존의 권력 관계를 새로운 형태로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만약 거시 구조의 발전 속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마법적인 제어기를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속할 것인가, 감속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가?
자동화된 전쟁
21세기 전쟁터의 풍경은 이전 시대와 사뭇 달라졌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드론의 등장이다. 드론, 즉 무인항공기는 말 그대로 조종사가 타지 않고 원격으로 조정되는 비행 물체를 뜻한다. 원래는 정찰용으로 개발되어 먼 거리에서 카메라로 정보를 수집하는데 주로 쓰였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미사일이나 폭탄을 탑재한 자율무기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군사 영역에서 특히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드론, 자율 무기 시스템, 데이터 기반 전장 분석은 전쟁의 의사결정을 알고리즘에 점점 더 의존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전쟁의 과정은 실시간 영상과 데이터로 중계됩니다. 전쟁은 점점 더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센서와 데이터, 기계 학습 모델의 계산으로 수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책임의 주체는 흐려지고, 전쟁은 보이지 않는 인프라와 원격 통제의 형태로 재구성됩니다. 자동화된 전쟁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윤리의 문제입니다.
한 자율무기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보다 빠르게 반응하며 서로 적대시하는 알고리듬이 상황을 감시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 인간으로서 우리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전쟁이 진행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기존의 자율 드론이나 탱크 사이에서 통제를 벗어난 ‘AI-AI 전투’가 벌어진다면 심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전쟁 기계
인간 없는 전쟁
전장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났다. AI가 표적을 고르고 공격을 제안하며, 인간은 20초 만에 승인만 내린다. SF 속 이야기로 여겨졌던 ‘킬러 로봇’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실제 전쟁터에서 현실이 되었고, 전쟁의 결정권은 점점 기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무기 진화가 아니라, 인간의 역할 자체를 대체하는 전환점이다. 화약과 원자폭탄이 전쟁의 규모를 바꿨다면, AI는 전쟁의 주체를 바꾼다. 드론과 엣지 AI, 감시 알고리즘과 딥페이크는 전술·전략·첩보·암살까지 전 영역을 재편한다. 저자는 최신 전쟁 사례를 통해 ‘인간 없는 전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며, 자동화된 결정 속에서 책임이 흐려지는 현실을 짚는다.
1조 달러 전쟁 기계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미국은 병영 국가, 전쟁 경제 국가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역사상 최대 전쟁산업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빅5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 RTX,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럽 그러먼과 신흥 기술기업 팔란티어, 스페이스X, 안두릴 간에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군과 산업, 돈과 권력과 기술이 하나로 얽힌 이 괴물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해왔을까?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 전쟁 기계를 움직일까? 이 책은 폭주하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실체를 이해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방과 안보의 미래를 대비할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기후, 채굴, 에너지
AI는 종종 비물질적인 지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물질 인프라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는 세계 최대의 전기 소비처 중 하나다. 이 다층적인 기계에 동력을 공급하려면 석탄, 가스,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의 전력이 필요하다. 일부 기업은 대규모 연산의 에너지 소비에 대해 점차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애플과 구글은 탄소 중립(탄소배출권을 구입하여 자사의 탄소 배출을 상쇄한다는 뜻)을 공언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내 직원들은 환경 죄책감을 덜기 위해 면죄부를 살 것이 아니라 총 배출량을 감축하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은 모두 화석연료 기업들이 땅속에서 연료를 찾아내고 채굴하는 일을 지원하기 위해 자사의 AI 플랫폼, 엔지니어링 인력, 인프라에 대한 이용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인류발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산업을 더욱 육성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와 냉각 시스템, 희토류와 리튬 같은 광물 채굴은 인공지능 시대의 보이지 않는 기반입니다. 기술적 낙관주의가 약속하는 미래는 결국 에너지 소비와 지구 시스템의 한계에 부딪힙니다.
동시대 SF
“사실 저는 AI가 인건비보다 더 비싸도 AI를 쓸 겁니다. 요즘 사람 쓰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워라밸’이니 뭐니 하면서 야근도 잘 안 하려 하고,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자기 일이 아니면 쏙 빠지고. 이게 뭡니까? 도대체가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AI가 애사심이 더 큽니다. 걔는 군말 없이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일한다고요. 어떤 멍청이가 AI가 아닌 인간을 쓰겠습니까?”
동시대 SF는 더 이상 단순히 미래를 예언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흐려졌습니다. 동시대 작가들은 AI와 기후 위기, 데이터로 구성된 정체성, 감정 노동을 교차시킵니다. 상상력은 현실을 추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된 미래를 다시 해석합니다.
경험은 최상의 교사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교사이기도 하다. 잭스를 키우면서 애나가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십 년 동안 존재하면서 습득하는 상식을 얻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자기 발견적 방법론을 그보다 더 짧은 시간에 조립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설령 그런 경험 전체를 스냅샷으로 찍어서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다고 해도, 또 그 복제들을 싸게 팔거나 공짜로 배포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을 통해 태어난 디지언트들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다는 얘기가 된다. 각자가 과거에 세계를 새로운 눈을 바라보았고, 소망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했고,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듣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터득했다는 뜻이다.
오늘
저자 없는 글이 창궐할 때 저자성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요?
오늘의 인공지능은 더 이상 실험실의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인프라입니다. 검색, 추천, 번역, 이미지 생성, 금융과 물류의 의사결정까지 알고리즘이 사회의 흐름을 조정합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낯선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조직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AI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 시스템의 데이터로 전환됩니다. 개인의 선택과 취향은 플랫폼의 예측 모델에 흡수되고, 사회적 행동은 점점 더 계산 가능한 패턴으로 환원되며 예측과 통제의 대상으로 관리됩니다.
즉, 제약업계와 건설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이익에 반해 어느 정도 공적 관리 체제가 마련되어 있고, 많은 사람이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이게 ‘정상’ 아닐까? 청소년 수백만 명이 매일 몇 시간씩 사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서도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미래의 인간성
우리는 늘 인간이었다거나 단지 인간일 뿐이라고 누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의 사회적, 정치적, 과학적 역사에서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어떤 이들은 충분히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가”가 아니라 인간을 어떻게 다시 정의할 것인가입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기술과 동물, 환경과 얽힌 관계적 존재로 인간을 재구성합니다. 미래의 인간성은 강화나 불멸이 아니라 취약성과 공존을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사유는 로지 브라이도티와 캐서린 헤일스의 포스트휴먼 이론, 도나 해러웨이와 브뤼노 라투르의 관계적 존재론, 애나 칭과 유시 파리카의 생태적 사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기술 낙관과 종말론을 넘어 새로운 공존의 윤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근대인의 이상형은 전진을 멈출 수 없는 “근대화 전선”을 통해 과거에서 미래로 향해 가는 사람이다. 그러한 개척 전선, 그러한 프론티어 덕분에 근대인은 자신에게서 떨쳐내야 하는 모든 것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진보하기 위해 지향해야 하는 모든 것을 “합리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근대인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과거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고 있던 사람이었다. 요컨대 어둠에서 빛으로, 계몽으로 향해 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 특이한 좌표계를 정의하기 위한 시금석으로 ‘과학’을 사용한 것은 과학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의 혼란이 근대화의 장치 전체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실과 가치를 다시 뒤섞기 시작한다면, 시간의 화살은 비행을 중단하고 주저하며 사방으로 꼬여서 마치 스파게티 한 접시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