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서경식은 우리에게 ‘미술’과 ‘순례’라는 낯선 조합을 자연스럽게 매개한 이였다. 그의 여정은 명작을 향유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의심하면서 걸어가는 길이었다. 희망에 대한 회의와 기대 모두를 거두지 않았고, 희망과 절망 어느 한쪽도 과대평가하지 않았던 자가 걸어온 마지막 순례의 기록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그의 두 번째 일본미술 순례는 전편에 이어 근대에 활동한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1장과 2장에서 다룬 아오키 시게루와 기시다 류세이는 뛰어난 기량으로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삶에 서툴고 치기 어린 화가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서경식은 동경과 절망, 야심과 실의가 격렬히 교차했던 자신의 청춘을 돌아본다. “나는 작품 자체에 두근거리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예술가에 관심을 갖는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예술관은 ‘인간주의’적이다.”라고 말한 지론이 잘 드러난다.
근대는 이성의 힘과 계몽주의라는 빛이 일출처럼 떠올랐지만, 차차 폭력과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이것이 인간인가?”라며 탄식하게 만든 시대였다. 서경식의 사유와 실천은 이러한 고민의 싸움터에서 펼쳐졌다. 3, 4장에서 다룬 마루키 이리·도시 부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라는 파국적 결말 이후 <원폭도>와 <오키나와전투도>를 합동 제작했다. 전쟁으로 어둠이 빛을 삼켜가던 일본 근대의 형국은 거꾸로 암흑을 찢는 핵폭탄의 섬광으로 일단락되었다. 이런 근대의 아이러니 속에서 마루키 부부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재난의 표상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늠하면서 붓을 놓지 않았다.
서경식 선생의 별세 후 그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일본 출판사 가게쇼보가 발행한 소책자 뭉치를 발견했다. 덕분에 네 꼭지의 글만으로 마지막 순례기를 맺어야 하는 아쉬움을 에세이 스물두 편을 더하면서 달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이 글 모음은 저자가 세계 각국의 미술관에서 모은 엽서 속 그림을 소개한다. 표지에는 카라바조, 오토 딕스, 케테 콜비츠 등 익숙한 화가 외에도 낯설지만 기이한 빛과 정념을 뿜어내는 그림들도 실려 있었다. 유예된 그의 순례를 이어가는 마음으로 이 책의 후반부에 덧붙였다.
1. 나의 일본미술 순례 2
미리 절망해 버린 낭만주의자 ― 아오키 시게루, 〈바다의 선물〉
조증적 일본 근대를 살아가다 ― 기시다 류세이, 〈도로와 둑과 담(기리도오시 사생)〉
피해자의 시점에서 가해자의 시점으로 ― 마루키 이리 · 마루키 도시, 〈원폭도 – 유령〉
국가로부터의 독립투쟁 ― 마루키 이리 · 마루키 도시, 〈오키나와전투도〉
2. 부서진 말 ― 하라 다미키의 「알프스의 한낮」에 부쳐
3. 이 한 장의 그림엽서
아르놀트 뵈클린, 〈페스트〉
루이 장모, 〈악몽〉
헨드리크 테르브뤼헨, 〈원숭이와 바칸테〉
로비스 코린트, 〈살로메〉
에곤 실레, 〈나무 네 그루〉
요하네스 그뤼츠케, 〈야외의 축하 행사〉
장 푸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에밀 놀데, 〈바다와 붉은 구름〉
오토 딕스, 〈전쟁(전쟁 제단화)〉
히에로니무스 보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마리노 마리니, 〈어린 기수〉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 〈달을 바라보는 남녀〉
알프레드 허들리카, 〈플뢰첸체의 대규모 처형〉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토마스의 불신〉
지크프리트 노이엔하우젠, 〈주앙 보르헤스 데 소우자 기념비〉
펠릭스 누스바움, 〈유대인 신분증명서를 쥔 자화상〉
조지 벨로스, 〈이 클럽의 두 회원〉
알베르 마르케, 〈퐁네프 다리와 사마리텐 백화점〉
케테 콜비츠, 〈독일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
벤 샨, 〈사랑으로 가득 찼던 수많은 밤의 회상〉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1900년대 일러스트레이션〉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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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8일, 서경식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 두 번째 가을이 왔습니다. 며칠 전 『나의 일본미술 순례 2』 의 표지 시안이 도착했습니다. 책 제목에 ‘이 한 장의 그림엽서’를 ‘나의 일본미술 순례 2’와 같은 크기로 넣기로 했습니다. ‘이 한 장의 그림엽서’는 미술 순례 길에서 사온 엽서 속 그림에 관한 에세이로 서경식 선생님이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썼던 글 모음입니다.
그림엽서와 관련된 이야기는 선생님의 기행문에 종종 등장합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에서는 감옥에 갇힌 형에게 미켈란젤로의 노예 조각상이 담긴 그림엽서를 쓰려다 주저했던 기억이, 『나의 일본미술 순례1』에서는 자신의 고독감을 대변해 주는 사에키 유조의 <모랭 교회> 엽서를 벗들에게 보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년퇴임 마지막 강연에서도 마음에 드는 그림엽서를 친구에게 건네며 자신의 미의식을 자유롭게 표명해보기를 제안했습니다.
서경식 선생님이 ‘이 한 장의 그림엽서’를 쓰기 시작한 1993년이라면 저희가 대학에 입학해 그의 첫 미술 에세이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은 해입니다. 글이 이다지도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언젠가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라는 동경을 품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책을 읽고 단지 마음이 흔들릴 뿐 아니라 생각의 변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독자도 적지 않습니다. 작년 별세 1주기에 맞춰 발간한 『어둠에 새기는 빛』을 읽고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나갔다는 독자들의 소식도 듣습니다. “이 무자비한 세계에서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라는 선생님의 질문을 향한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방한이 되었던 2년 전 가을, 앞으로 발간할 책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북한강변 산책길을 종종 걷습니다. 선생님이 구상했던 원고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나의 일본 미술순례 2+이 한 장의 그림엽서』에 이어 3주기에는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의 복간을 준비하려 합니다. 선생님의 사라지지 않는 질문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 이어질 길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연립서가 박현정, 최재혁)
〈바다의 선물〉은 동경과 절망, 야심과 실의가 격렬하게 교차했던 내 젊은 날의 심경과 공명했을 것이다. 아오키 시게루라는 젊은 화가의 ‘자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청춘의 차질(蹉跌)’에 내 마음이 뒤흔들렸던 게다. 낭만주의라는 용어가 지닌 정확한 정의는 미뤄 두고, 좁은 사적(私的) 세계를 초월한 ‘거대한 이야기’에 몸을 던져 그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고자 하는 심정을 우선 낭만주의‘적’이라고 불러 두자. 이러한 심정이 ‘국가’의 이야기에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공감하면서 전쟁을 긍정하는 태도로 연결되었던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한편으로 그런 심정이 ‘사회 변혁’의 열망과 맺어지면 이른바 ‘혁명적 낭만주의’로 이어진다. 그 어느 쪽이건 명확히 분류할 수 없이 불분명함으로 존재하는 정열적인 마음의 형태가 내가 생각하는 ‘낭만주의’다. 당시의 나 자신을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나는 ‘미리 절망해 버린’ 낭만주의자였다.
아내 F는 이 그림에서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아서 꽤 예전에 함께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갔을 때,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학생 시절에 책에 실린 삽화로 몇 번씩 거듭해서 보았던 그림을 실물로 대면했을 때의 감격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저 ‘아름답다’라는 감상만이 아니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다 끝에서 뚝 끊겨 버린 길 저쪽 편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흥미가 동하면서 어쩐지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무서우면서도 끌려 들어갔던 셈이다. 그 후로도 아내는 별생각 없이 산길이나 도로공사 현장 옆을 지나갈 때마다 문득문득 이 그림을 떠올렸다. 과연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끝내 버릴 수 없는, 굳이 다른 말로 하자면 이상하고 야릇한 무엇인가가 이 그림에 깃들어 있다.
천재는 성급하다. 류세이는 병적일 정도의 조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의 테마를 깊게 파고들거나, 독자적인 기법을 진득이 밀고 나가는 화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나부대며 탐구를 반복한 사람, 일종의 조증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는 류세이의 성격상 결점이라기보다 그가 살아갔던 일본근대라는 시대가 요구한 것이며, 시대 그 자체의 특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화(西洋化)로서의 근대화를 서두르며 조선과 중국 침략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귀결된 일본의 근대는 실로 ‘조증’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류세이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그런 요구에 온몸으로 응하고자 했다. 류세이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또한 분명 화가 기시다 류세이의 유례없는 ‘재능’이었음이 틀림없다.
‘부서져’ 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름꽃」은 작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기에 묘사는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라 다미키는 아마 의도적으로 망가지고 부서진 문체로 그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 그림과 같은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쉬르sur(超)-리얼리즘realism’이야말로 ‘현실’인 셈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때까지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현실이 돌연 거짓말 같은 것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원자폭탄이 작열한 직후에 본 이 광경은 종래의 상식적인 수사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현실과 초현실이 뒤집어진 세계다. 그 비현실적 세계를 작가는 어떻게 표상할 수 있을까.
공동 제작이라고 했지만 그저 사이좋게 작업을 분담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 그림에는 독립적인 표현자 동지가 긴장 속에서 공동 투쟁을 벌인 관계가 얽혀 있으며, 앞서 말한 ‘표상의 아포리아’를 둘러싼 고투가 드러난다. 전위(아방가르드)를 지향했던 이리와, 그림책 작가이며 ‘알기 쉬운’ 그림을 중시했던 도시의 서로 다른 접근법도 당연히 뒤얽혀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이리는 1981년 어느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발언해 청중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도시가 죽으면 〈원폭도〉는 전부 불태워 버릴 거요.”
2003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던 인권운동가 라지 수라니(Raji Sourani, 1953~) 씨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대담을 한 적이 있다. 녹화 장소로 골랐던 곳이 바로 이 〈오키나와전투도〉가 전시된 방이었다.⭳대담의 테마는 팔레스타인에서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불합리한 탄압과 그해 발발한 이라크 전쟁이었다. 말하기 힘든 주제를 최대한 힘껏 논하기 위해 이 그림의 힘을 빌려 보자고 했던 것이다.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라지 씨는 등 뒤의 〈오키나와전투도〉를 돌아보며 화면 가운데 아래쪽에 그려진 세 명의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여기예요.”라고 말했다. “저 아이의 눈빛은 가자 지구 아이들과 똑같습니다.” 오키나와와 팔레스타인이 민중, 특히 어린이와 여성의 수난이라는 측면에서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마루키 부부의 작업이 가진 보편성을 다시금 실감한 순간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는 서양 회화의 전통적인 주제지만, 보스의 시선은 예수보다도 그를 끌고 가는 병사들이나 군중을 향해 있다. 화면 왼쪽 아래에 보이는 베로니카를 제외하면, 모두 악의와 증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죽여라! 죽여라!”라는 외침이 소용돌이친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 이것이 인간이다. ‘환상의 화가’라고 불리는 보스는 인간의 추악함을 응시한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이기도 했다. 인간을 이렇게까지 그린 화가는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20대 끝 무렵부터 30대 중반까지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아 괴로웠다. 증상이 나타나는 건 으레 해 질 무렵이었다. 어두운 늪의 수면 위로 허옇게 부푼 익사체가 떠오르듯, 낮 동안 이런저런 잡무에 파묻혀 있던 우울과 근심 덩어리가 하루 일과가 끝남과 동시에 치밀고 올라왔다. 모든 일이 비관적으로 느껴졌고 파국이 닥쳐 올 것 같은 오싹한 예감이 온몸에 퍼졌다. 비유가 아니라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웠다. 그러다 완전한 밤이 찾아오면 어쩐 일인지 시체는 다시 늪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니 내게는 깊은 밤이 오히려 편안한 시간이었다. 해 질 무렵 내 눈에 비친 어스레한 저녁놀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빛깔이었다. 이를테면 붉은 녹이나 피고름 색 같았다.
그러나 푸케가 그린 마리아는 ‘옥좌에 앉은 성모자상’의 구도를 취하면서도 둥글고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다. 게다가 역원추형으로 묘사한 상반신 몸체에 두 개의 구체를 붙여 놓은 듯하다. 살짝 눈을 내리감은 성모의 표정은 차갑고 침착하며 피부는 단단한 금속처럼 광택을 띠고 있다. ‘인간적’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인상이다. 마치 사이보그 같다.
앗,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구석에 의자 두 개. 그중 하나엔 결박당한 남자가 상반신을 앞으로 꺾은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남자의 머리는 낡은 천으로 칭칭 감겨 있다. 숨조차 쉬기 힘든 듯하다. 누더기 천 위로 땀과 눈물, 피가 배어나온다. 남자의 건너편 심문관의 자리는 비어 있다. 상사에게 보고하러 자리를 떴을까, 아니면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담배나 한 모금 뻐금대며, 괴로워하는 희생자를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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