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채나눔의 건축가 이일훈은 생전에 글맛과 입담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20년 전 건축물 모형을 모티브로 건축과 세상, 사람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쓰던 공간을 이사하면서 그동안 쌓아둔 모형을 버려야 했고, 아쉽고 아까워서 부서져 나가는 모형을 쫓기듯 사진에 담았고, 그 사진들이 씨앗이 되어 글이 되고 책이 되었습니다. 깊은 사유와 통찰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낸 이 건축 이야기는 널리 읽혔고, 건축가 이일훈과 건축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책, 《모형 속을 걷다》(2005, 솔) 속 글과 덧댄 글을 여기에 함께 담았습니다. 이웃의 삶을 건축으로 껴안은 건축가이자 빼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던 이일훈이 다시, 모형 속을 걷습니다.
이 책에는 그때 모형 사진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모형도 모형 사진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글을 읽으며 모형을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형 사진이 없는 글들과 더불어 책을 내고 난 이후에 쓴 글 몇 편을 실었습니다(‘이일훈의 또 다른 글’). 건축가의 하드 디스크에 남아 있는 글입니다. 그곳엔 없었지만, 받은 이가 소중히 간직한 프린트물도 가져왔습니다. 건축 지도와 건축 사진도 모았습니다.
도면을, 모형을, 기억을 떠올리는 나는 도면 속을, 모형 속을 걷고 싶어진다
이일훈은 그 책을 엮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모형 사진은 내 건축의 일부이며 또 그 모형에 대하여, 모형을 통하여 보이는 이야기는 내 생각의 일부분이다. 누구든 ‘너 자신을알라’고 일갈(一喝)하지만, 둔한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르겠다. 원래 모르는 놈이 말 많고 가방 큰놈이 살림 복잡한 법이다. 그 티를 잔뜩 묻히고서 부끄럽게도 건축을 대하는 속내를 묶는다.”
이일훈에게 모형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의 생각을 담을 수 있으니 모형은 생각의 집이며 꿈의 집이다. 꿈은 삶이고 삶 또한 꿈이다. 꿈이든 삶이든 깨기도 하지만 이루어지기도 하니까. 모형의 운명 또한 꿈의 운명을 닮았다.” 종이나 스티로폼은 가벼워서 모형 만들기가 비교적 쉽지만, 그렇다고 버릴 때의 아쉬움마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이때의 아쉬움은 무거운 안타까움에 쓸데없는 아까움까지 겹쳐 있다. 버려지기 직전의 모형을 보면 세상에 할 말이 많이 남은 듯 조바심이 가득하다.”고 털어놓습니다.
이일훈은 집의 구성과 공간이 그려진 평면도 ‘위’를 걷는다고 합니다. “아니, 평면 ‘속’을 걷는 셈이다. 그럼 누가 아나, 늘 사는 집의 평면을 연상하며 건축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버릇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무엇이든 평면/입면/단면이라는 도면의 형식으로 파악/표현하려는 건축가의 버릇/습관이 배어난 디자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도면에 대해 한마디 덧붙입니다. “책처럼 악보처럼 지금 나와 대화하는 상대처럼, 아니 마음처럼 도면을 ‘읽는다’. ‘보다’와 ‘읽다’의 큰 차이는 상상력의 진폭이다.”
이일훈은 땅과 건축물 사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땅의 특성과 건축물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관계 맺게 하는가, 안전성에서 위생적 처리까지 많은 사항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다. 건축은 아주 보편적인 것에서부터 아주 특별한 것으로 해법을 찾아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궁금해합니다.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하듯 길이 없으면 집에 이르지 못한다. 길과 붙은 집들이 길과의 연관성을 소홀히 하면 집은 그저 콘크리트 상자일 뿐. 집 한 채 지으며 동네는 꿈을 꾸고 그렸는데,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 주변은 어떻게 변했을라나.”
이일훈은 늘 새로운 지형(地形)을 꿈꿉니다. “건축 또한 지형의 일부다. 지난한 삶의 지형 / 건축! 건축이 삶의 전부인 양 생각하면서도 건축을 통해서 내 삶을 건지지는 못했다. 결국 꿈꾸는 건축/지형을 통해 좌절하고 또 실망하면서도 건축을 버리지 못했다는 고백이 뒤따른다.”
건축에서 이웃을 잃으면 그것이 폐허와 무엇이 다를까
채나눔의 건축가 이일훈은 유쾌합니다. 자발적인 불편함을 받아들이고(불편하게 살기), 될 수 있으면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바깥 공간을 만들고(밖에 살기), 동선을 늘려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면(늘려 살기) 환경에도 이롭고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채나눔’은 작은 집만을 위한 설계 방법론이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해서 한 건축가가 제안하는, 아주 보편적이기를 갈망하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작을수록 나누자’는 주장이 작은 집만 다루는 건축가로 소문이 난 셈인데, 그래도 유쾌하다. 즐거운 오해다.”
이일훈은 꾸준히 종교 건축 작업을 해왔습니다. “수도원 건축물의 형태가 번잡하고 요란하면 왠지 경망스럽다. 아니 수도원/종교 건축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집이 그렇지 않은가. 집을 보면 주인이 보인다는 말은 그래서 맞다. 건축가의 말에 예의를 갖추는 건축주를 보면 나는 그만 감동하고 만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설계방법론을 건물과 엮어내거나 사용자로부터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일훈은 희망과 위로를 건네는 공간, 사회적 건강함이 읽히는 프로젝트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비움의 장치가 가능했던 것은 세상을 껴안는 뜻과 정신을 먼저 품고 그렇게 살고 계신 여러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거칠고 질박한 모습이지만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은 공부방에서부터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심장 같은 방 하나는 꼭 두고 싶었다는 평화센터까지.
세상과 사람과 건축을 믿고 짝사랑한 이일훈,
모형 속을 걸어 들어가다
돌아보니 건축민박학교에서 형과 함께했던 추억은 시간 상자라는 모형 속을 걷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이 기막히게 예지적이다. 건축 설계를 업으로 사는 이들에게 애물단지가 돼버리기 일쑤인 모형이 타임머신이자 서사의 샘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고, 걷기라는 천천히 사유함의 속도계까지 부착시켜놓았으니 건축함에 관한 더 이상의 간명한 정의가 있을까. 건축 설계를 하던 매 순간 성찰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축가는 어떻게 사는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에둘러 정의하고는 우리 곁을 떠나 모형 속으로 걸어 들어간 형에게서 평생 참 건축을 향해 정진했던 수행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과 사람과 건축을 믿고 짝사랑한 사람, 건축가 이일훈 형을 기리며.
_ 전진삼, 격월간 와이드AR 발행인
모형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보물 상자다. 우리 삶을 담는 작은 공간 상자, 그 속에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 누울 수도 없지만, 거기에 우리의 생각을 담을 수 있으니 모형은 생각의 집이며 꿈의 집이다.
내가 기억하는 ‘보이지 않는 건축주’는 바람이 기억하는 집, 빗물이 기억하는 집, 땅이 기억하는 집보다도 훨씬 약하게, 아주 약하게 맥없이 모형으로 남았다.
주변을 존중하고 사람을 환대하는 건축(그 반대가 사람을 무시‧멸시‧푸대접하는, 세상에 너무 많은 건축 아닌 건물)이 비로소 건축일 것이다. 세상에 권할 만한 생각을 좇아가면 건강한 건축은 저절로 되나니. 세상엔 그런 건축, 아니 그러한 사람도 있다.
그 집을 떠올릴 때마다 도면을, 모형을, 기억을 떠올리는 나는 도면 속을, 모형 속을 걷고 싶어진다. 모형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모형은 작아서 나를 감싸진 못하지만 그래도 자꾸 걸어 들어가고 싶은 까닭은 꿈꾸었던 공간이 익숙하게 나를 받아주기 때문이다. 내가 꿈꾼 공간이 다시 나를 받는다. 내가 낳은 공간이 다시 나를 반긴다. 내가 다시 나를 낳는다.
가벼운 것에서 소중한 것으로, 단순한 재료에서 건축 의지를 품은 모형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느 건축물이건 속이 깊어야 좋은 건축물인데, 그 속이 바로 공간을 이른다. 어찌 그리 건축은 사람과 비슷한지 모르겠다. 사람끼리 대화도 속내를 드러내는 사이가 친하고 편하듯이, 건축물도 깊은 공간의 은유가 있어야 편안한 격조가 깃드는 법이다.
나는 벽을 구획하고 바닥을 만들고 하는 행위는 건축이 아니고 벽과 벽 사이, 바닥과 바닥 사이, 그 사이사이의 공간 그리고 공간과 공간 사이에 주목하는 사람을 건축가로 부른다.
어떤 집/건축을 지을 것인가는 어떤 방식의 삶을 택할 것인가와 다르지 않다. 결국 집은 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시 드리는 글
이일훈의 머리말
1) 18,000원 펀딩
- <다시 모형 속을 걷다> 도서 1부
- 후원자 명단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