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여러분, 한국에 가본 적이 있나요?”
술자리에서 양 군이 꺼낸 이 한마디가 내 운명을 크게 바꿔놓았다.
1978년 어느 날 도쿄 이자카야.
세노는 졸업논문 제출 후 세미나 동기생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그 자리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 양 군으로부터 한국에 가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시끌벅적 저마다 생각하는 한국을 말한다. 그리고 며칠 후 세노는 한국의 어느 대학으로부터 일본어 교수 초청장이 든 우편물을 받고, 지난 술자리에서 한국에 가겠다고 했던 말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아, 내가 진짜 한국에 간단 말인가?
1979년 군사정권 하의 서울.
대학의 일본어 강사로 부임한 ‘나’는 아직 이십 대 초반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기억, 병역 의무를 해야 하는 같은 세대의 한국 청년, 강렬한 반공의 공기, 예기치 못한 만남을 거듭하는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고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년간의 서울 체류는
예상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수많은 질문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은 채 서울을 떠났다. 1년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군대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역사와 언어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계엄』의 한국어판 출간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책이 한국어로 출간되었는데 특히 이 책을 한국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바랐다. 집필을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 독자들로부터 감상을 듣고 싶었다.
1970년대 가혹한 ‘유신’ 체제 하에서 대통령 암살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나와 같은 세대 한국인이라면 우연히 같은 시기 서울에 있던 일본인의 체험기를 어떻게 읽을까? 그 후 한국은 수많은 어려움 끝에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지금은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을 다수 배출한 영화 산업을 일궈냈다. 그것을 당연한 사실로 알고 살아온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나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사람은 동해 건너편 이웃 나라에서 거의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와 문화를 가만히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나는 1979년 1년 동안 서울 건국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외국인 교사로 체류했다. 이 책은 그 시기에 내가 보고 들은 수많은 경험에 의지한 부분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그렇지만 단순한 회상기가 아니며 논픽션도 아니다. 무대가 된 대학교는 여러 대학교의 인상을 섞은 곳이고 최인호, 하길종 등 몇몇 저명한 예술가와 영화인을 제외하면 등장인물은 모두 허구의 존재다.
세노 아키오라는 순진하지만 약간은 경박한 주인공은 나의 또 다른 장편소설에서도 주인공을 연기한다. 그곳에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광기에 빠져, 파리로 아프리카대륙으로 더 나아가 마다가스카르까지 유랑을 거듭한다. 작가인 나와 이 인물은 거리가 멀고 단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다.
『계엄』이 단순한 회상이나 논픽션이 아님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현실의 나와 주인공 세노 아키오의 차이점을 몇 가지 적어두고자 한다.
내가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은 것은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 살 때였고 이미 도쿄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정치 운동에 참여했고 1970년 일본과 미국의 안전보장조약이 갱신되었을 때 깊은 실망에 빠지는 좌절도 경험했다. 우여곡절 끝에 1972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캠퍼스는 ‘혁명’을 외치는 여러 분파로 분할 점령된 상태로 분파 간에는 살벌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입학한 해에 우리 과 동기생이 살해됐고, 이듬해에는 그 복수로 옆 과 학생이 살해됐다. 도쿄 거리에서는 폭탄이 터졌다. 지식인들은 퇴폐한 신좌익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살인에 철저하게 무력했다. 1970년대 내내 나는 학생운동을 향한 모든 기대를 접고 어둡고 우울한 마음을 품은 채 지냈다.
이 소설은 픽션이고 등장인물은 허구의 존재다. 하지만 모순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내가 실제로 만났던 한국인 초상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아는 한 한국 대학생들은 민족의 역사에 강한 인식이 있었고 지식인으로서 강한 긍지를 가졌다. 동 세대 일본 학생이 한국에 무지했던 것처럼 한국 학생도 일본에 대해 지극히 제한된 정보만을 소유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어려운 정치 상황 속에서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민주주의를 향해 강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 도쿄 대학의 비열하고 폭력적인 정치 투쟁에 피폐해진 나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이상주의는 신선하면서 두려웠다. 나는 그런 동 세대 사람의 초상을 그려두고 싶었다.
- 요모타 이누히코
한국 독자 여러분께
1장 출발하기까지
2장 도착 직후
3장 성곽도시 서울
4장 일본인과 교포
5장 잔재와 모방
6장 전라남도 여행
7장 이문동
8장 큰 문어 내한
9장 아저씨의 환갑
10장 요절한 영화감독
11장 계엄령 발동
에필로그
−
“세노 씨, 기억 안 나요? 우리 대학에서 일본어 교사를 모집한다고 했더니 바로 손을 들고 갈게, 갈게, 꼭 가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다시 한번 건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장은 믿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머리가 조금 무거워서 아무래도 과음을 했나 싶은 느낌은 들었지만 설마 한국의 대학 강사 채용에 희희낙락하며 지원했다니, 전혀 기억에 없었다.
“오늘 받은 서류는 공식 초청장입니다. 서류 마지막 부분에 총장 직인이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해주세요. 세노 씨는 1979년 3월 1일부로 사범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됩니다. 즉시 미나미아자부 한국대사관으로 가서 노동 비자를 신청해주세요. 그때 공식 초청장이 의미 있게 쓰일 겁니다. 알겠어요? 3월 2일부터 새 학기 수업이 시작되니까 서둘러주세요.”
−
이와나미서점에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세 권짜리 신서가 출간돼 있었다. 저자는 ‘T·K생’이라고만 적혔을 뿐 알 수 없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인지 일본 또는 다른 나라에 망명 중인 한국인인지 알 수 없고 단지 원고를 잡지 『세계』 편집부가 정리했다고만 밝혔다. 책은 1972년 10월 17일, 한국에 갑자기 계엄령이 시행되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10월 유신이 단행된 시점부터 시작했다. 이때 대통령의 영구 집권을 인정하는 신헌법이 공포됐고,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모든 정치 활동은 엄중하게 금지됐다. 각계각층 사람들이 사태를 씁쓸하게 여기며 비관하고 있음을 알리며 첫 권이 끝났다.
−
1973년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 대낮에 KCIA(한국중앙정보부)에 의해 도쿄에서 납치되어 해상에서 하마터면 살해될 뻔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저항하는 대학생들은 속속 연행되어 KCIA의 손에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도 연행되어 시체로 발견되었다. 반정부 언설을 드높인 「동아일보」는 정부로부터 광고 철회라는 괴롭힘을 당했고 7개월간 항전 끝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대학은 완벽하게 ‘병영화’되었다. 1976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와 종교인이 나서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됐지만 박 정권은 정부 전복을 꾀한다면서 가혹하게 탄압했다. 오백 명이 넘는 대학교수가 추방되었고 야당인 신민당 당수 김영삼은 습격을 받아 당 대표직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불경기 속에서 전국 곳곳에서 심각한 노동쟁의가 일어났다……. 이거 참 엄청난 나라에 가게 되었구나, 한숨을 쉬었다.
−
“한국 노래가 아니잖아?”
“아니요, 우리나라 노래입니다. 얼마 전에 인기였어요.”
“아니야.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는 미국 가수 노래야. 벌써 10년도 전에 일본에서 유행했다고. 원래는 영국 민요지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노래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노래에요.”
−
일본에서 온 잡지와 책을 받으려면 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어느 날 갑자기 국제우체국에서 출두하라는 요청이 인쇄된 엽서가 도착한다. 그러면 버스를 갈아타고 신촌 앞 철도 밑을 지나 연세대학교 맞은편에 있는 우체국에 가야 한다. 오전 중으로 시간대가 지정돼 아무래도 출퇴근 러시아워에 맞닥뜨린다. 비틀거리며 버스에서 튕겨 나와 우체국 바깥 계단을 올라가 2층 창구에서 서류를 보여주고 외국에서 온 소포 수령을 신고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수령 절차가 끝날 리 없다. 담당자가 커터 칼로 소포 포장을 거칠게 뜯으면 안에서 나온 책과 잡지에 대해 한 권 한 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산주의와 반정부 관련 문서가 없는지 검사하려는 목적이다.
−
일본에서는 지식인이 앞장서서 개척한 역사가 지금까지 시도조차 존재한 적이 없었다. 학생들은 늘 권력 앞에서 패배했고 그 좌절을 교묘히 내면화하면서 약간의 냉소주의를 선물로 들고 기업 전사가 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조종하기 쉬운 양떼에 또 한 마리의 양이 방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
“설마 KCIA로 연행되는 건 아니겠지요?”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바로 김 교수의 안색이 바뀌었다.
“……실은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에게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한 거예요.”
“제가 신문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니요, 아니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싫다고 하면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해요. 중앙정보부가 직접 선생님을 지명해 대학에 연락했어요. 그저 이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저는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
이럴 바엔 하루 동안 계엄령하에서 거리를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보자.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군대가 시내에 주둔한다는 것은 반어적인 의미로 치안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평소보다 두 시간 빨라진 통행금지를 염두에 두고 ‘구경(관광)’에 충실해보자.
59번 버스를 타고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내렸다. 두 시간 전에 비해 탱크 숫자가 늘었다. 도로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놓았고 총을 든 군인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맞은편에 미국대사관이 위치했기에 특히 경계가 삼엄했다. 나는 몇 번이고 병사들에게 검문을 당했고 여권을 보여주며 세종로를 가로질렀다. 경복궁 옆길로 접어들어 프랑스문화원 쪽으로 향했다. 프랑스 영화를 보러 몇 번이나 지나갔던 길이다. 화랑과 세련된 서양식 카페가 즐비한, 서울에서도 유난히 세련된 거리다. 이미 가게 대부분은 태극기를 조기 게양했다.
−
사건이 일어난 10월 26일은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날로부터 정확히 70년이 되는 날이다. 김재규는 이 사실을 사전에 알고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서울에서의 폭동을 예측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암살을 결단한 것일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아마도 그는 빠르게 처형당할 테고, 암살의 진짜 의도는 봉인될 테니. 거대한 수수께끼, 내가 풀기는커녕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멀리서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
−
우파의 환대도 좌파의 비난도 나에게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느 쪽도 일본 사회라는 작은 그릇 안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물의 진동에 불과하다. 눈앞에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존재했다. 나는 한국이라는 완강한 타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음미해야 좋을지 그 물음에 깊이 사로잡혔다.
1년간의 서울 체류는 예상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너무도 결정적이어서 바로 요령 있게 지식과 정보를 내면에 수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한국인이 민족이든 역사든 거대한 관념과 씨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 손은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고 머뭇거렸다. 관념은 가까이 다가가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꾸만 멀어져갔다.
지은이|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
1953년 오사카부 미노시 출생. 도쿄대학에서 종교학을,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이자 시인으로 문학, 영화, 만화 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 문화 현상을 논한다. 메이지가쿠인대학, 컬럼비아대학, 볼로냐대학, 텔아비브대학, 중앙대학교(서울), 칭화대학(타이완) 등에서 영화사와 일본 문화론을 가르쳤다. 1993년 『쓰키시마섬 이야기』로 사이토료쿠상, 1998년 『영화사로의 초대』로 산토리학예상, 2000년 『모로코 유적』으로 이토세이문학상과 고단샤에세이상, 2002년 『서울의 풍경-기억과 변모』로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 2008년 『번역과 잡신』, 『일본의 마라노 문학』으로 구와바라타케오학예상, 2014년 『루이스 부뉴엘』로 예술선장문부과학대신상, 2019년 『시의 약속』으로 아유카와노부오상을 수상했다.
1. 18,900원 펀딩
<계엄> 도서 1부
후원자 명단 인쇄(초판 1쇄 판권면)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