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한국 사회의 교제폭력 문제를 종합하는 가장 첫 번째 책!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팀이 만난
교제폭력 피해자 유가족, 생존자, 조력자,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다
포털 사이트에 ‘헤어지자고 했더니’, ‘왜 안 만나줘’라는 검색어를 치면 기시감이 드는 수많은 기사가 뜬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칼 들고 위협’, ‘왜 안 만나줘...전 여친 둔기로 폭행한 XX대’……. 이들은 동일 사건으로 보일 정도로 비슷한 제목에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지만 모두 별개의 사건들이다. 사귀던 사람에게 폭행이나 살인을 당하는 ‘교제폭력’ 사건은 최근 몇 년간 너무도 많이 반복돼 웬만큼 끔찍한 사건이 아니면 이슈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자료에 따르면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기준으로 해도 2024년 매일 한 명이 넘는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죽거나 죽을 뻔했다. 피해자의 자녀, 부모, 친구 등 주변인 피해자를 포함하면 650명, 13시간 30분에 1명 꼴이다. 지난 해 살해된 여성만 세면 181명. 제주항공 참사(179명)보다 크고, 대구 지하철 참사(186명)보다 작은 규모다. 여성에게는 이러한 참사가 매년 조용하게 반복된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죽음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불어난다. 이 책은 이렇게 일상이 되어 무뎌진 폭력, 국가는 제대로 된 통계조차 내지 않고 경찰은 방관하며 언론은 지루해하고 사람들은 ‘남 얘기’라고 믿는 사회적 참사를 다룬다.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팀은 이 책에서 교제폭력 피해자 유가족, 생존자, 조력자, 전문가를 인터뷰하며 교제폭력의 피해와 회복에 관해 썼다. 친밀한 사이에서 오는 폭력은 어떻게 우리에게 단순한 ‘사건 1’이 되었는지, 주변에서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 범죄의 특성은 뭔지, 반복되는 폭력을 수사기관은 왜 막지 못했는지,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정책은 어째서 없는지, 사법부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안겼는지 차례로 살핀다. 그리고 이 모든 폭력을 딛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생존자와 조력자의 분투를 담는다. 또 법·제도적,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어떤 해결책을 도모할 수 있을지를 깊이 있게 논하며 비슷한 사건의 반복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의 표지는 2009년부터 2024년까지, 5840일 동안 남성 파트너로부터 목숨을 잃거나 위협당한 4423명의 여성을 원으로 표시했다. 16년이란 시간을 빼곡히 채운 여성들을 우리가 기억하길 바라서다. 이렇게 수많은 피해와 죽음 위에서도 똑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아직도 국내에서는 교제폭력의 문제와 해결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은 플랫팀이 채록한 생생한 말들과 풍부한 자료를 통해, 이 문제에 분노하고 해결을 촉구하려는 독자들이 문제의 전반과 해결책을 빠르고 명확히 파악하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정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매일 한 명의 여성이 사라진다’라는 가제를 쓰고는 제법 흡족해하고 있었습니다. 더 고민할 것 없이 이걸로 가면 되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그런데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어요. 마지막 확인을 위해 통계를 다시 보니 매일 한 명이 ‘사라진다’가 아니라 ‘사라질 뻔한다’였던 거예요. 왜냐면 작년 한 해를 기준으로 ‘매일(정확히는 13시간에 30분 만에) 한 명’이라고 썼던 650명의 피해자는 살인과 살인미수를 합한 것이었고, 살인 피해자만 세면 181명으로 이틀에 한 명꼴이었거든요. 그러니 사실대로 쓰자면 ‘매일 한 명의 여성이 사라질 뻔한다’, 혹은 ‘이틀에 한 명의 여성이 사라진다’가 돼야 하는 것이죠.
이 미묘한 차이를 두고 우리 편집부는 토론했습니다. ‘그냥 ‘사라질 뻔한다’로 가면 안 되냐.’ ‘문장이 입에 잘 안 붙는다. 그리고 ‘임팩트’가 떨어진다.’ ‘뭐가 임팩트가 떨어지냐.’ ‘사람들이 살인미수 피해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렇게 쓰면 그중 이틀에 한 명은 실제로 죽는다는 사실까지 가려질 것이다.’ ‘그런데 살해당할 뻔한 것만도 너무 큰 피해가 아니냐.’ ‘그건, 그렇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가제는 폐기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과 죽을 뻔한 경험이 담긴 세 문장을 두고 재고 따지고 고민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릅니다. 교제폭력과 가정폭력, ‘남녀 갈등’과 ‘저출생 대책’ 따위의 단어를 두고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까지 포함해, 한 마디로 블랙코미디였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며 1년에 남성 파트너에 의해 목숨을 잃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습니다. 피해 규모로만 보면 대한민국 역사에 남은 여러 대형 참사와 다르지 않은 숫자였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교제폭력이란 참사는 매년 구태의연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고, 그런데도 이 사회가 그것을 ‘사회적 참사’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이 책에 담긴 피해자 유가족, 생존자, 조력자들의 언어는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부장제적 인식과 관행과 태도와 제도가 만든,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진행돼온 사회적 참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이 해묵은 문제들을 한낱 개인으로서 감당하라고 내몰리지 않았다면 그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자못 선명해집니다. 교제폭력이 사회가 만든 인재라는 점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그 책임을 모두 같이 지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입니다. 이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계속 하고 있던 것처럼요. 저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서 말입니다. 뻔한 결론은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얘기도 이뿐입니다. 절망스러운 걸 알지만, 그래도 우리 힘내보자고요.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해보자고요. 제가 이 책을 기획했을 때도 그런 마음뿐이었습니다.
희망은 느끼는 게 아니라 외우는 것이라고 선배 투쟁가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믿는 건 어쩐지 자존심 상하지만, 그게 아니면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세계가 아무리 미쳐 날뛰고 바닥없는 진창을 향해 곤두박질친다고 해도, 우리의 세상은 나아질 것이며 우리의 고통도 끝이 날 것이라고. 가장 뻔뻔하고 억척스런 얼굴로 믿어 보이겠습니다.
- 편집자 홍주은
들어가는 글: 더 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1장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때려요, 어떻게 죽일 수가 있어요
- 두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절규 | 만난 사람: 당진 자매 살인 사건 나종기 아버지
- 친밀한 관계를 악용하는 남자들 | 만난 사람: 유튜버 쯔양 사건 김태연 변호사
2장 사건 종결 내역: 연인 사이의 흔한 싸움
- 11번이나 신고했는데 목숨을 잃었다 | 만난 사람: 거제 교제 살인 사건 손은진 어머니
- <짚어 보기> 교제폭력 처벌을 법제화한 해외 사례
3장 너무 많이 죽는데 위기감이 없어요
- 또 다른 가해자, 사법기관 | 만난 사람: 바리캉 폭행 감금 사건 이제 활동가
-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가 되기 위해 | 만난 사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효정 부연구위원, 한국여성의전화 최선혜 사무처장
- <짚어 보기> 21·22대 국회 발의안 분석
4장 과거엔 피해자, 지금은 생존자, 미래엔 조력자 되고 싶어요
- ‘피해’를 딛고 살아가기 | 만난 사람: 교제폭력 사건 김지영 생존자
- 서로의 연대자가 되는 일 | 만난 사람: 한국성폭력상담소 박아름 활동가
- <짚어 보기> 젠더 기반 폭력을 범죄화한 해외 사례
나오는 글
탄원서를 쓰고 증언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 씨는 “여전히 후회한다”고 했다.
“법원에 가면 딱 판사님이 ‘정숙하세요’라고 해요. 그 말에 가만히 있었어요. 한 번도 안 떠들고, 고함도 안 쳤어요. 그렇게 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어요. 지금은 그때 소리라도 지를걸, 하고 후회합니다. 뭔가 바뀌기라도 한다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내 한몸 그냥 희생하겠어요.”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그냥 연애고 결혼이고 다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남자 잘못 만났다가 억울하게 죽어도 정부는 아무 책임도 안 집니다. 우리 애들이 죽기 전에도, 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나요. 이때까지 국가가 가해자들에게 어떤 경고 메시지도 주지 않은 결과예요. 성폭행을 저질러도 합의하면 풀어주고, 그러면 그 이후에 폭행하고, 죽이고……. 최근에도 교제폭력이라고 나오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잖아요.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다시는 안 일어나게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때려도 되고, 죽여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거 왜 저러나’ 할 거예요. 맨날 웃지도 않고 화만 내니까요. 그런데 그걸 어디부터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 해봤자 뭐 해요? 그러니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새벽에 한강에 뛰어들려고 갔다가 돌아온 것도 두 번이에요. 그래도 꾸역꾸역 버텨요. 그놈이 나올 때까지 어떻게든 내가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 대한민국에서 믿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뉴스에서 교제폭력이 어쩌고 떠들어도 일반 사람들은 그게 자기 일이 될 거라고 당연히 생각도 못 하잖아요. 돌아보면 모든 게 위험신호였는데,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게 너무 원통하고 후회돼요. 그리고 이 아픔은 겪지 않으면 정말 알 수가 없어요. 하루하루 남은 사람을 갉아먹는데도 그걸 아무도 몰라요. 더 큰 문제는, 우리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거예요. 전국에서 데이트폭력, 교제폭력으로 죽은 사람들 가족 한번 모아보세요. 이게 다른 사회적 참사들하고 무슨 차이가 있어요? 똑같아요.”
“처음에는 사망신고를 최대한 미루고 싶었어요. 그러면 효정이가 진짜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 되니까……. 그런데 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무슨 기록이라도 떼려면, 자료를 받아 보려면 그래야 하더라고요. 사망신고를 나도 처음 해보는 거잖아요.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라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데요. 그렇게 신고하고 나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다시 뗐는데, 나는 그 종이 쪼가리가 그렇게 슬픈 건지 몰랐어요. 효정이 이름 위에 ‘사망’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거예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남편이랑 둘이서 그냥 막 울었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랑 싸우고 나서 ‘얘가 그랬어요’, ‘쟤가 먼저 그랬어요’ 하면 선생님이 나와서 ‘둘 다 잘못했으니까 화해하세요’ 하는 것 있잖아요. 경찰서에서 제가 받은 느낌이 꼭 그랬어요.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기계적 중립만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았고, 내 피해가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았어요.”
“전 약간 잡초 같아요. 살면서 여러 힘든 일이 많았는데, 그래도 극복했고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과거엔 피해자victim였지만 지금은 생존자survivor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꿈은 승리자winner, 더 나아가 조력자helper가 되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내가 혼자여서 겪었던 아픔을 다른 이들이 되풀이한다면 ‘그럴 필요 없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때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주변이 아닌 중심에 둔다’는 기치 하에 여성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교제폭력 이야기를 다룬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기획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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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다 죽은 여자들> 도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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