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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국적:유럽 > 중유럽 > 독일

출생:1724년,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사망:1804년

직업:철학자

기타:1755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작
2025년 11월 <순수이성비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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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넘긴 나이였다. 쉰일곱에 첫 번째 주요 저술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46세가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소크라테스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진 고전 철학을 반성하면서 현대의 정신 세계를 자극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순수이성비판>을 출간한 후 4년 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집필했다.

1804년 죽음에 임박한 노철학자는 늙은 하인 람페에게 포도주를 한 잔 청해 마시고는 “에스 이스트 굿(Es ist gut)”이라는 말을 남긴 뒤 영원한 평화에 들었다. 그 말은 “좋다”라는 뜻이었다. 장례식은 16일 동안 계속되었다. 땅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그의 빈소를 찾았으며, 하늘에서는 2월의 별자리들이 그를 맞이했다. 칸트의 묘비명에 새겨진 문장은 이러하다. 그것은 <실천이성비판> 맺음말의 첫 구절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커져만 가는 존경과 경탄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 채워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요, 내 안의 도덕법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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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법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 2019년 8월  더보기

윤리학 제1부로서의 법학은 이성에서 도출되는 체계가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법형이상학die Metaphysik des Rechts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개념은 순수한 개념이지만 실천(경험적 사건에의 적용)을 위한 개념이다. 따라서 그 형이상학적 체계는, 분류의 완전성을 기하기 위하여, 그 분류에서 사건의 경험적 다양성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성의 체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요청이 다). 그러나 경험적인 것의 완전한 분류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이에 근접하기 위하여) 이를 시도하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개념은 본문의 일부로서 체계에 들어갈 수 없고, 단지 예(例)로서 주(註)에 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윤리형이상학 제1부에만 적합한 표현은 법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일 것이다. 적용 사건들을 고려할 때 체계에 대한 접근만을 기대할 수 있고, 체계 자체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선험적으로 기획된 체계에 속하는 법은 본문에, 특별한경험적 사건에 관한 법은 일부 상세한 주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서 형이상학인 것과 경험적 법실무인 것의 구별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 강의에 대하여 빈번히 행해지는 비난, 즉 불명확성, 심지어 부지런히 심오한 통찰을 가장하는 불명확성의 비난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 가르베Garve 씨가 모든 저자, 특히 철학적 저서의 저자에게 의무로 부과한 것을 흔쾌히 수용하되, 나로서는 학문의 성질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그에 응하는 조건으로 이 요구를 제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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