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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소설

이름:마타요시 에이키 (又吉榮喜)

국적:아시아 > 일본

출생:, 일본 오키나와 우라소에 시

직업:소설가

최근작
2019년 1월 <돼지의 보복>

마타요시 에이키(又吉榮喜)

전후 오끼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꾸따가와상 제114회 수상 작가. 1947년 오끼나와 남부 우라소에에서 태어나 류우뀨우 대학 법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우라소에 시청에서 근무하던 중 폐결핵으로 병원에 1년간 입원하게 되면서 소설 습작을 시작했다. 1975년 「바다는 푸르고」라는 작품이 제1회 신오끼나와 문학상에 가작으로 뽑히면서 정식 등단한 후 오끼나와의 현실을 그린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1976년 「카니발 소싸움 대회」로 제4회 류우뀨우신보 단편소설상을, 1978년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로 제8회 큐우슈우예술제 문학상 최우수상을, 1980년 「긴네무 집」으로 제4회 스바루 문학상을, 1996년 「돼지의 보복」으로 제114회 아꾸따가와상을 받았다. 주요 출간작으로 『긴네무 집』(1981) 『낙하산 병사의 선물』(1988) 『돼지의 보복』(1996) 『인과응보는 바다에서』(2000)『인골전시관』(2002) 등이 있다. 현재 고향인 우라소에에서 거주하고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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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저자의 말

<긴네무 집> - 2014년 10월  더보기

원풍경―작가의 말을 대신해서 소년 무렵, 나는 집에서 반경 2km 안에는 류큐왕국(瑠球王國)이 발양한 구스크(성), 전쟁 당시의 방공호, 오키나와 유수의 투우장, 광대한 산호초 바다, 동양에서 제일 큰 미군기지, A사인(미군영업허가) 바 거리에서 매일 뛰어놀았다. 내 원풍경을 형성한 것들이다. 성스러운 구스크 광장에는 종전 후, 미군이 몇 백 개의 텐트 막사를 만들어서, 각지에서 피난 온 오키나와 사람들을 수용했다. 내가 태어난 곳도 이 텐트 집락에서다. 격전지 구수크나 진지 참호 주변에는 긴네무가 밀생해 있었다. 미군이 파괴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비행기로 엄청난 양의 긴네무 씨앗을 뿌렸다(그것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확인해 본 적은 없으나)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긴네무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불에 탄 검붉은 바위에도 무너져 가는 절벽에도 굳게 자라났다. 긴네무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뿌리와는 대조적으로 그 섬세한 잎은 부드럽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오키나와인들의 파란만장하고 악전고투에 가득 찬 삶을 암시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네무에 뒤덮인 지붕에 외국인이 살고 있다고 하는 소문이 (내가 소년이었을 때) 퍼졌다. 국적, 성별, 연령 등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이, 우리들은 각자의 설을 세웠다. 내가 살던 작은 집락에는 (오키나와의 다른 지역도 거의 비슷하지만) 류큐왕국 시대에 중국,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로부터 전해져온 풍습, 문화, 언어 등이 침투해 있었다. 전전에는 거의 외국인을 볼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지만, 전후에 태어난 내 주변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외국인 한 명 한 명이 커다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레 나는 그들에게 강한 흥미나 불가사의함과 공포감 또한 느꼈다.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는 황혼 무렵에 내가 봤던 한 풍경이 소설의 핵심이 됐다. 전주에 달라붙어서 울고 있던 마음이 약해 보이는 작은 체구의 미군 병사가 거구의 미군 병사들에게 몹시 난폭하게 끌려가고 있었다. 미군기지 게이트로 사라져 가는 조지(마음대로 붙인 이름이지만)를 보면서 근처 오키나와 청년들은 ‘전쟁이 무서운 모양이야’, ‘원래 미군 병사는 겁쟁이가 아닌가. 무기가 없으면 우리들 앞에도 나오지 못 할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며 일상에서 느끼던 열등감을 떨쳐냈다. 1955년, 우리 마을 여자가 미군 병사와 결혼해서 도미했다. 하지만, 좀처럼 좁히기 힘든 ‘낙차’로 인해 그녀는 몸도 마음도 지쳐,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결국, 그녀는 반년도 되지 않아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그 무렵, 오키나와와 미국은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달랐다. 오키나와에서는 맨발, 미국에서는 자가용차라고 하는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커다란 낙차가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대국 미국에서 오키나와로 보내진 조지는 어떻게 됐을까. 그것을 이 책에 실린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원풍경에 응축된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것을 짊어지고 있는) 외국인의 감성이나 심리 및 힘을 알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류큐왕국 시대 이후 ‘외국’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 발 언저리의 원풍경을 나는 정면으로부터 맞붙어 소박하고 힘 있게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참고로 「창문에 검은 벌레가」는 일상적으로 뛰어놀던 A사인 바 거리를 무대로, 미국의 남북전쟁 등의 역사를 상상하며 (남북전쟁이 직접 이 소설이나 오키나와의 역사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아니지만), 또한 남자와 여자의 생태를 상상해 가며 썼다. 이러한 원풍경을 응시하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 왔던 탓인지, 취재와 자료를 우선시 하는 글쓰기는 해오지 않았다. 소년 무렵 강하게 마음에 새겨진 체험이나 풍경을 사색하고, 그것을 새롭게 (소년 무렵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인물에게 자극을 받았듯이) 상상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 혼돈스러운 원풍경을 정리해서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혼돈스러움을 억지로 결론짓는 행위는 정치의 세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혼돈 가운데서 무언가 즉각 형상화해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현대에는 정치나 정황을 비틀어 꺾을 수 있는 소설이 희구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 원풍경은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춰 몽환과도 같은 것이 됐다. 긴네무 숲 속의 집 또한 지금은 그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다. 상상을 자극하는 디테일한 것들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도 군인의 철모를 자료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방공호 안에서 찾아낸 철모와는 그 이미지가 환기하는 힘이 (내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원풍경 안의 사람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돼, 내 마음속에도 내 소설 가운데서도 계속 살아가고 있다. 2013년 여름, 김재용 교수와 곽형덕 씨가 오키나와에 와서 <긴네무 집>의 한국어판을 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번에 김재용 교수로부터 AALA 아시아문학위원회 학술포럼(10월 8일 제주도)에도 초청을 받았다. 곽형덕 씨로부터는 번역을 시작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다대한 수고를 끼쳤다. 두 사람에게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할 따름이다. 오키나와라고 하는 작은 섬의, 또한 ‘나’라고 하는 개인의 원풍경을 쓴 소설이 세계 유수의 언어로 번역 출판된다고 하는 영광에 감사한다.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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