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사고를 일으켜서, 작전에 처절하게 실패해서, 기밀 자료를 분실해서, 손을 함부로 놀려서… 온갖 사연으로 MI5 본부에서 좌천된 요원들의 유배지, ‘슬라우 하우스’. 한번 굴러떨어진 자들은 ‘느린 말’이라는 멸칭, 쓸모없는 존재라는 멸시를 견뎌야 한다. 느린 말은 정보국 작전에 동원되지도, 유용한 임무를 부여받지도 못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서류 작업과 아무도 보지 않을 보고서 작성 업무가 주어질 뿐.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만 계속되던 어느 날, 무슬림 청년을 납치한 극우 단체에서 참수 예고 영상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런던이 발칵 뒤집히고, 느린 말들 또한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휩쓸리고 마는데…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자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려는 자들의 몸싸움, 머리싸움이 시작된다.
CWA 다이아몬드 대거·골드 대거·스틸 대거상을 석권하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믹 헤런의 대표 시리즈 ‘슬라우 하우스’의 첫 번째 작품. 온갖 사연으로 MI5에서 좌천된 뒤 ‘느린 말’이라 멸시당하는 요원들과 그들의 수장 ‘잭슨 램’이 첩보 세계에서 저마다 능력껏 활약하는 이 이야기는 게리 올드먼 주연의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되어 여러 시즌을 거듭하며 뜨겁게 사랑받고 있다. 냉전 시대 적대국과의 가치관 전쟁이 아닌 2010년대 정보국 안팎의 정치나 예산 다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수싸움, 자리보전을 위한 합종연횡 등 냉소적인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로 그려냈다. 존 르 카레가 세운 스파이 문학의 정통성 위에 세워진, 애스턴 마틴을 타고다니며 마티니를 마시고 허구한 날 미녀가 꼬이는 기름진 미남 스파이가 아닌, 지극히 현재적이고 생동감 있는 21세기형 스파이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