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 빵칼>, <일억 번째 여름> 청예의 오컬트 미스터리. 뾰족한 이야기부터 순정한 이야기까지 스펙트럼의 이 끝과 저 끝을 오가며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가 끈적끈적한 정념이 넘실대는 이야기로 삶을 넘나든다. 이야기는 17세 '오주희'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외도로 가정이 무너진 후 오주희는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부적을 손에 쥐고 죽음을 택한다. 아버지와 계모 사이의 딸 '오연린'의 몸에 깃들어 환생한 오주희는 귀신의 방식으로 그들의 가정을 파괴하고자 한다. 연린의 조력자 '박은정'에게도 자신의 가정을 파괴할 이유가 있다. 복수심은 불길이 되어 '먹어도 배부르지 못한, 해쳐도 마음이 편치 아니한' 나찰녀 설화처럼 관계를 집어삼킨다.
정세랑, 이희주, 권김현영 추천. '회빙환'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장르물 독자에게 익숙한 설정을 끌어와 대단원의 전환까지 독자를 밀어붙인다. '17세'에서 자라지 않은 상태인 서술자가 목표 하나만을 보고 밀어붙이는 집착적인 문체로 제 앞만 보기 때문에 독자도 서술자를 따라 이야기가 저지른 것들을 잊게 된다. 그 업보가 청산을 위해 돌진하는 순간 깨달은 독자는 아연해지고 무심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296쪽 작가의 말의 큐알코드를 통해 '쿠키'에 접속해보시라. 작가의 말처럼 '끝날 때까지 무엇도 끝나지 않으니.' (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