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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탐구하는 단단한 언어들의 향연
「지혜사랑시인선」제34권 『검은 늪』. 2003년 신인상으로 시단에 등장한 권순자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사랑을 화두로 한 이번 시집은 과장되거나 신화화된 사랑이 아닌, 점점 사라져가는 사랑의 흔적을 확인해가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가 지향하는 사랑의 근원에는 어머니가 있고(‘어머니의 새벽’), 희미한 사랑의 기억들을 확실한 표지로 남기고자 하기도 한다(‘바코드 사랑’). 작품 끝에는 문학평론가 황정산의 작품해설을 수록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편!
검은 늪
어느 날부터
역한 세월의 이끼가 슬어 나락에 빠진 늪
융숭한 나날이 퇴적되어
바닥은 비닐과 음료수 캔으로 뒤덮이고
밤마다 속이 쓰려 토악질을 해댔다
바람에 저며진 파문이 무료하게
끓어오른 거품들을 밀어냈다 끌어당기곤 했다
어디선가 흘러든 시큼한 폐수로
환부는 더 층층이 썩어들고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모르게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얼굴로 성형된 늪
그 다 죽은 늪이
바람 잔잔하던 날
마지막 힘을 다해 몸부림치게 시작했다
검은 침묵을 깨고 눈을 떴다
오래도록 꾹 참아 왔던 말을 내뱉듯
시커먼 가슴팍
그 흉한 구멍 안에서 백련白蓮 한 송이 꺼내보였다
온통 검은 바닥에
슬몃 찍힌 흰 점 하나로 늪은 온통 빛나기 시작했다
검은 웅덩이가 아니라 청정한 연못이었음을
그곳에 남 몰래 쓰레기를 갖다버리던 사람들은
그제야 남 몰래 깨끗한 비밀 하나를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