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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계로 빠지게 되는 요인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문장이었다. 나의 생각을 적확하게 꼬집어내는 문장들, 세계를 선명하게 복제하는 문장들. 그러니까 시작은 책이 아니라 문장이었다. 문장이 이어진 것이 책이라 책까지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여전하지만 이제 그 사랑엔 어떤 열등감과 생활감, 피로가 묻어 기원이 무엇이었는지 가물 해진 상태가 되었는데, 이 책이 아름다운 문장에 빠져 허우적대던 옛 감정의 기억을 생생히 복원했다.
저자 조 모란은 충실한 문장 애호가다. 이 책을 통틀어 그는 문장에 대한 순전한 사랑을 조금도 아낌없이 고백한다. 그의 사랑은 오래 묵은 것임에도 질척임이 없다. 깨끗하고 충직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여름 같은 산뜻한 문장들이 호들갑 없이 사랑을 뿜어낸다. 문장에도 덕후가 있을 수 있다니. 문장 덕후는 이 책과 같은 문장을 쓴다. 이런 문장들을 쓰는 문장 덕후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형식상으론 작법서다. 딱 잘라 지시하는 통쾌함을 가진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문장들은 문장에 대한 예찬을 바탕으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어지는 와중에 좋은 글이 품어야 할 덕목과 원칙 들을 짚는다. 매끄러운 선율처럼 적당한 리듬과 적확한 단어를 가지고. 문장 덕후는 작법서를 이렇게 아름답게 쓴다. 문장 애호가라면 누구나 책장에 꽂고 싶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