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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에 새겨진
1951년 가평의 봄
스물두 살의 캐나다 청년 허브 그레이는 낯선 나라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자원한다.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그는 프린세스 퍼트리샤 캐나다 경보병연대 제2대대의 장교로 전선에 투입된다. 혹한과 굶주림, 포화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끝에 그레이와 대원들은 1951년 4월, 서울로 향하는 길목인 가평 677고지에 오른다. 철조망도 지뢰도 없이 고립된 800여 명의 병사 앞에는 압도적인 수의 중공군이 밀려들고 있었다.
《가평 1951》은 참전 용사 허브 그레이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가평 전투의 참상을 그려 낸 그래픽노블이다. 작품은 승리의 기록 뒤에 가려진 병사들의 두려움과 고통, 전우를 향한 신뢰와 희생을 흑백의 강렬한 그림으로 되살린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 병사들은 왜 싸웠고, 무엇으로 죽음의 밤을 견뎌 냈는가. 이 책은 영웅의 무용담이 아니라 전쟁 한가운데 놓인 평범한 인간들의 얼굴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희생과 오늘의 평화를 되묻는다.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전우들이 하나둘 쓰러지던 밤
승리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공포와 희생, 그리고 생존의 기록
1951년 4월 23일, 프린세스 퍼트리샤 캐나다 경보병연대 제2대대는 가평 677고지에 방어 진지를 구축한다. 한국군 제6사단의 전선이 무너지면서 생긴 거대한 공백을 막지 못하면 서울로 향하는 길이 다시 열릴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력은 800여 명에 불과했고, 고지에는 철조망도 지뢰도 없었다. 중대와 소대는 험준한 능선을 따라 멀찍이 흩어져 있었으며 보급로마저 끊길 위기에 놓였다. 마침내 어둠이 내리고, 사방을 에워싼 중공군의 파상 공세가 시작된다.
《가평 1951》은 치열한 전투의 한복판에 있었던 캐나다군 장교 허브 그레이의 기억을 따라간다. 스물두 살의 그레이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해 알래스카와 일본을 거쳐 낯선 땅에 도착한다. 전쟁을 막연한 기대와 모험심으로 바라보던 젊은이는 곧 참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혹한 속에서 담요 한 장으로 밤을 견디고, 차가운 전투식량으로 허기를 달래며,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전우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532고지와 임진강을 거쳐 가평에 이르는 여정에서 전쟁은 더 이상 지도 위의 작전이나 국가의 명분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공포 그 자체가 된다.
박건웅 작가는 전쟁을 영웅적인 승리의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 흑백의 거칠고 힘 있는 선으로 총탄과 포성이 뒤엉킨 전장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한편, 그 안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두려움에 몸을 웅크리는 병사, 고통 속에서도 농담을 건네는 전우, 부상자를 옮기기 위해 사선을 오가는 사람들, 아군 진지에 포격을 요청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이 한 장면 한 장면 묵직하게 이어진다. 전투의 규모와 부대의 움직임을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시선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개개인의 표정과 감정에 머문다.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박건웅의 손끝에서 묵직하게 부활한
우리가 몰랐던 진짜 한국전쟁 이야기
가평 전투는 캐나다군 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되살리는 것은 승리의 환희보다 그날 밤을 견뎌 낸 사람들의 기억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병사들을 버티게 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곁에 있는 전우를 향한 믿음이었다. 같은 공포와 고통을 나누고 서로의 목숨을 지켜 낸 경험은 살아남은 이들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 허브 그레이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되풀이해 기록한 것은 바로 그 기억과 희생의 의미였다.
전쟁은 역사책 속에서 병력과 전과, 승패를 나타내는 숫자로 남기 쉽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이름과 얼굴, 그리고 돌아가지 못한 삶이 있다. 《가평 1951》은 75년 전 황폐한 이국땅을 지키기 위해 싸운 젊은이들의 시간을 오늘의 독자 앞에 다시 불러낸다. 죽음과 삶이 한 발의 총탄으로 갈리던 순간,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며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가. 이 책은 잊힌 전투의 기억을 되살리는 동시에,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다.
1. 출발
2. 쿠레
3. 낯선 땅
4. 한국전쟁
5. 열차
6. 포성
7. 어둠 속 메시지
8. 영연방 파견대
9. 532고지
10. 포화 속의 세례
11. 삶과 죽음
12. 임진강 전투
13. 677고지
14. 전야
15. 혼란과 철수
16. 유령들
17. 달빛 아래 전투
18. 파상 공세
19. 마지막 전투
20. 진내 사격
21. 퍼트리샤 부대
22.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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