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풍요로운 식탁 뒤, 바다의 진짜 얼굴
수산경제학자 엄선희의 해앙수산문화 답사기
우리는 매일 바다를 먹는다. 국물 맛을 내는 멸치 한 마리, 점심식사로 먹은 고등어 한 토막, 초밥 위에 놓인 연어 한 점에도 바다가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생선이 어디에서 와서, 누가 잡고 기르고 옮겼으며, 어떤 세계를 거쳐 우리의 식탁에 도착했는지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다. 『우리가 먹는 바다』는 바로 그 익숙한 식탁에서 출발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바다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수산물 안전, 노르웨이 연어와 글로벌 유통망, 값싼 광어와 양식업, 해상풍력과 어민의 갈등, 기후 변화로 국경을 넘어가는 물고기, AI가 들어오는 양식장까지. 생선 한 점을 따라가다 보면 식탁은 어느새 역사와 경제, 국제 정치와 과학 기술, 환경과 노동이 교차하는 거대한 세계와 연결된다.
20여 년간 수산업을 연구하며 어항과 어시장, 양식장과 연구소, 세계 곳곳의 해양수산 현장과 기관까지 두루 누빈 저자 엄선희는 통계와 정책 뒤에 가려진 ‘바다의 진짜 얼굴’을 자신의 경험과 생생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가 만난 바다는 낭만적인 풍경만도, 고갈되어 가는 자원의 현장만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밥상이고, 누군가에게는 일터이자 국경이고 산업이며, 또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바다에서 이것저것 당연하다는 듯 꺼내 먹어 왔다. 그러나 바다는 무한히 채워지는 냉장고가 아니다. 무엇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거나 바다를 지켜야 한다고 훈계하는 대신, 이 책은 우리가 먹는 것의 뒤편을 한 번 더 바라보게 한다. ‘오늘 식탁에 오른 생선 한 마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작은 질문 하나로, 매일 먹는 바다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어업에는 태생적인 수동성이 있다. 인간은 바다에 씨를 뿌려 곧바로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지고 자라난 것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농업처럼 씨를 뿌린 사람이 수확하는 구조가 아니라 먼저 잡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선점의 논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개인의 합리적 이기심이 모이면 바다 전체의 파멸을 부르는 것이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다.
― 「바다는 공장이 아니다」 중에서
수산업과 해상풍력은 바다라는 같은 밭에서 서로 다른 작물을 키우는 일과 같다. 더 큰 수확을 기대하며 한 작물에만 햇빛과 자원을 몰아 준다면 그 밭은 결국 함께 길러 낼 수 있었던 풍요를 잃고 만다. 해상풍력 확대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필요한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수산업의 희생을 당연한 비용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쪽을 몰아내는 개발이 아니라 서로의 생존과 공익을 함께 살리는 공존의 질서이다.
― 「같은 밭의 두 농부」 중에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조선 강국의 화려한 영광 이면에는 낡고 후진적인 어선의 현실이 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연근해 어선 3만 8807척 중 16년을 넘긴 노후 어선은 55.4퍼센트에 달한다. 절반이 넘는 배가 노후선이라는 뜻이다. 어선의 노후화는 단순히 배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어업 비용 증가, 작업 효율 저하, 선원 안전 위협으로 직결된다.
― 「K-조선 강국의 그늘」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불편한 진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양식업자들의 책임과 의무에 관한 문제이다. 현대의 상업적 양식업은 막대한 자본과 첨단 설비가 투입되는 기업형 비즈니스이다. 연간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형 양식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제도는 여전히 이 양식업자들을 과거의 영세 어업인이라는 낡은 프레임 속에 가두어 두고 있다.
― 「값싼 광어의 대가」 중에서
어구 실명제와 생분해 어구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고의적인 어망 투기는 실명제로 대응하고, 불가피한 실수(유실)는 기술로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거 나일론이 어업 생산성의 혁명을 이끌었다면 생분해 어구는 지속 가능한 어업의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바다의 유령(유령 어업)을 쫓는 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 「바다의 퇴마술」 중에서
현재 우리나라 어업 현장은 외국인 선원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우리 어선에 오른 외국 선원들에게 바다는 기회가 아닌 감옥이 되고는 한다. 우리는 종종 이 문제를 열악한 조업 환경이나 외국인 선원의 부적응 탓으로 얼버무린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이를 보는 시각은 매우 다르다. 그들은 이를 명백한 인신매매라고 부른다.
― 「바다 위에 멈춘 코리안 드림」 중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제주 해녀조차 예외는 아니다. 평균 연령 70세가 넘는 심각한 고령화 속에서 연평균 소득 791만 원이라는 열악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수탈의 주체만 국가에서 시장으로 바뀌었을 뿐, 여성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구조적 소외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유사하다.
― 「소외된 슈퍼우먼」 중에서
박물관 진열장 안, 수천 년을 지나온 신석기시대의 작고 낡은 낚싯바늘은 지금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에 직면한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인류와 바다가 맺어 온 길고 위대한 동행을 앞으로도 이어 갈 것인지 말이다. 나는 대답한다. 자연과의 공존을 되찾는 깊은 성찰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동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인류와 바다의 동행」 중에서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생선을 좋아하고 아버지가 해군이었다는 점 말고는 바다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프랑스 유학 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바다는 낯설고 어려운 세계였다. 그러나 그 막막함은 이내 호기심과 오기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수산 현장과 정책의 한가운데에서 바다를 배우고 기록하고 고민하고 있다.
그 시간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가 바다에 너무 무심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바다가 늘 넉넉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해 왔다. 이 책은 그 당연한 기대를 잠시 멈추고, 바다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쓴 기록이다.
현재 KMI 명예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장, KMI 수산정책연구실장, 해양수산부 중앙수산조정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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