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딕의 삶과 소설에서는 현실이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듯하다.”
_어슐러 르 귄
_스타니스와프 렘
미쳐버린 세계와 뒤틀린 인과관계의 독창적 발명가
필립 K. 딕의 걸작을 새롭게 만난다!
현대적인 그래픽디자인으로 재해석한 고전 SF 걸작!
‘필립 K. 딕 컬렉션: 폴라북스×하야카와 스페셜 에디션’ 출간!
출간 당시 “국내 SF계의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었던 폴라북스의 ‘필립 K. 딕 걸작선’이 일본 SF 전문 출판사 하야카와와의 협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딕의 대표작 5권을 하야카와 출판사와의 협업을 통해 ‘필립 K. 컬렉션―폴라북스×하야카와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다. 기존 시리즈는 국내 독자들에게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의 원작자로만 익숙했던 필립 K. 딕의 장편들을 소개함으로써, 딕을 하나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지닌 현대 영미문학의 문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번 ‘필립 K. 딕 컬렉션: 폴라북스×하야카와 스페셜 에디션’은 기존 시리즈의 성취 위에, 일본에서 전시와 아트 프로젝트로까지 확장된 하야카와판 필립 K. 딕 시리즈의 시각적 감각을 더했다.
필립 K. 딕이 집요하게 물었던 것은 언제나 “우리가 믿는 현실은 진짜인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은 그 질문을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건네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이미 딕을 읽어온 독자에게는 다시 소장하고 싶은 특별한 판본으로, 아직 그의 세계에 들어서지 않은 독자에게는 가상현실, 인공지능, 조작된 기억, 정체성의 불안이라는 낯익고도 낯선, 딕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매혹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래픽 디자인으로 새롭게 만나는 필립 K. 딕
필립 K. 딕은 오랫동안 SF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과학소설 작가’라고만 부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의 작품에는 로봇이나 우주 탐험 같은 과학기술의 장밋빛 미래보다 현실의 불안정성, 인간 정체성의 위기, 매스미디어와 소비사회가 만들어내는 가짜 세계, 그리고 영적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더 깊게 자리하고 있다. 사실 딕은 장르 SF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현대인이 처한 인식론적·존재론적 불안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한 작가였다.
우리에게 필립 K. 딕은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원작 소설 작가로 더 많이 알려졌고, 그 과정에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반전의 작가’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폴라북스의 ‘필립 K. 딕 걸작선’은 바로 그 오해를 바로잡는 기획이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딕의 장편소설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체계적으로 소개했으며, 그 결과 국내 독자들에게 필립 K. 딕을 하나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지닌 현대 영미문학의 문제적 작가로 다가가게 했다. 그리고 2026년 폴라북스의 딕 시리즈는 일본의 SF 전문 출판사인 하야카와와 협업을 해 대표작 5권을 새로운 장정으로 소개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출판물을 넘어 브랜드로, 하야카와의 ‘필립 K. 딕 시리즈’
하야카와는 일본에서 SF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개해온 출판사로 꼽힌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 등의 고전 SF 작가뿐만 아니라, 테드 창과 류츠신, 존 스칼지 같은 현대 작가들까지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하야카와의 ‘필립 K. 딕 시리즈’는 작품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하나의 시각적 정체성을 구축한 표지 디자인으로, 고전 SF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명 아트디렉터인 도이 히로아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시리즈의 표지는 검정, 노랑, 흰색 등 제한된 색채와 선명한 그래픽 요소를 활용하여, 필립 K. 딕의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대표적 장정이라 평가된다. 폴라북스에서는 ‘필립 K. 딕 컬렉션: 폴라북스×하야카와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필립 K. 딕의 대표작 5편을 하야카와 출판사의 표지를 재해석해 독자들과 새롭게 만난다.
표지 디자인 _도이 히로아키 (Hiroaki Doi)
디자인 회사인 포지트론(POSITRON)을 이끄는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 의약품, 화장품, 과자, 음료 등 다양한 분야의 패키지 디자인을 비롯해 서적 장정, 음악 관련 아트워크 등 폭넓은 영역에서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는 장르나 미디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디자인 접근으로, 특히 프로덕트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견고하고 절제된 조형 감각을 바탕으로 명확한 인상을 남기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러한 특징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표지 디자인에서도 잘 드러난다. 해당 작업에서는 구상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단순하고 강한 형식을 추구했는데, 결과적으로 필립 K. 딕 작품 세계의 현대적 시각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우주 관련 기업, 상업 시설, 테크놀로지 계열 미디어의 키 비주얼 제작 등 영역을 넘나드는 프로젝트를 다수 맡고 있다. 또한 디자인 교육에도 참여하며, 다음 세대 크리에이터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정판으로 만나는 필립 K. 딕의 대표작 5편!
이번 스페셜 에디션에 수록된 작품들은 필립 K. 딕 문학의 핵심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작들이다. 1963년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높은 성의 사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패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대체 역사소설이며, 『유빅』은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붕괴되는 세계를 통해 딕 특유의 인식론적 불안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걸작이다. 또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를 묻는 과정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탐색하는 필립 K. 딕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다. 여기에 존 W. 캠벨 기념상 수상작이자 하루아침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와, 실제 신비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말년의 문제작 『발리스』가 더해졌다. 이 다섯 권은 딕이 평생 집요하게 물었던 질문들, 곧 현실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너진 세계에서 구원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주한다. 따라서 ‘필립 K. 딕 컬렉션: 폴라북스×하야카와 스페셜 에디션’은 단순히 대표작을 다시 묶은 한정판이 아니라, 필립 K. 딕이라는 작가의 사유와 상상력을 하야카와의 강렬한 그래픽디자인으로 새롭게 읽어내는 특별한 컬렉션이라 하겠다.
1. 높은 성의 사내
1963년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 대체 역사소설의 걸작!
소설가를 꿈꾼 철학자 필립 K. 딕, 지금 그가 가상의 역사를 그려 보인다!
어슐러 르귄이 “만일 그의 작품이 순수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싸구려 표지 대신 거창한 표지를 내세웠더라면 그렇게 비평가들에게 잊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과 찬사를 한데 모아 표현했듯, 필립 K. 딕은 과학소설의 보편적 소재를 이용해 진지한 메시지를 담는 작가로서 20세기 SF문학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필립 K. 딕은 이 작품으로 대체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개척함과 동시에, 1963년에는 최고의 SF 작품에 주어지는 휴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높은 성의 사내』는 ‘2차 세계대전에서 만일 연합군이 패했다면?’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양분하여 지배하는 음울한 가상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마치 거울에 비춰본 세상처럼 지금 우리의 현실과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판이한 세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높은 성의 사내’가 쓴 책을 정신적 위안으로 삼는다. 갖가지 망상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평생 순탄치 못하게 살면서도 늘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의문을 던지고 구원을 꿈꾸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세상, 그 안에 깃든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2. 유빅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서 한 사람씩 사라진다
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문학 100선에 빛나는 필립 K. 딕 문학의 금자탑
≪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문학 100선에 빛나는 걸작으로, 필립 K. 딕만이 선사할 수 있는 몽환적인 느낌과 철학적, 개념적 돌파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람이 죽고 나서도 냉동보존 상태로 산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반 생명 상태가 보편적이며, 초능력자와 초능력자의 범죄, 그리고 거기에 맞서 반 초능력자가 해충구제회사나 보안경비업체처럼 초능력자를 막는 사업이 일반화된 미래 세계가 배경이다. 반 초능력자 집단이자 범죄예방 회사의 대표인 런시터는 큰 의뢰를 받아 초능력 지수 측정 전문가와 반 초능력자 11명을 이끌고 달로 간다. 그러나 그 의뢰는 런시터의 라이벌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폭발이 일어나 런시터는 빈사상태가 되고, 나머지 부하들은 달에서 서둘러 도망친다. 살아남은 자들도 기괴한 현상에 휘말리면서 하나씩 사라져 나가고, 죽은 런시터가 경계 너머에서 ‘유빅’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유빅은 ‘어느 곳에나 있다’, ‘편재한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따온 신조어로, 작품 후반에 가서야 실제로 등장한다. 유빅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은 주인공 조 칩과 반 초능력자 11명이 겪는 ‘쇠퇴 현상’과, 죽은 런시터가 세계에 간섭하는 현상과 큰 연관이 있다. 이 부분부터는 필립 K. 딕 특유의 주제가 살아난다. 지금 우리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지금 이곳은 현실인가, 가상인가? 이 세계 뒤에 숨어 우리를 살펴보고 조종하고 때로 무심히 가지고 노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유빅』은 이 외에도 수많은 상징과 복선이 포함되어 있어,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3.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인간’과 ‘현실’에 관한 근원적인 의문을 탐색하는 필립 K. 딕 소설의 총화!
20세기 최고의 SF 영화로 추앙받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
필립 K. 딕의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SF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핵전쟁 이후 지구가 황폐해지자 식민 행성이 개척되고, 인간과 유사한 로봇(안드로이드)을 제작하는 수준으로 발전된 과학 문명을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성으로 이주하여 안드로이드를 노예로 부리며 살아가며, 지구에는 소수자들만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들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혹은 ‘꿈’을 찾아 지구로 탈주하는 일이 벌어지자, 지구에서는 경찰서에 현상금 사냥꾼을 배치하여 도주한 안드로이드들을 잡아 파괴한다.
이 작품은 현상금 사냥꾼인 릭 데카드가 한 가지 측면 즉, 인간이 지닌 감정이입 능력만 제외하고는 인간과 똑같은, 아니 인간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춘 데다 더 강렬한 생의 의지를 지닌 안드로이드들을 사냥하게 되는 하루 동안의 일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데카드와 안드로이드 사이의 상호작용은 독자들에게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느끼는 현실을 과연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가? 자유의지와 생명을 지녔으나 인간이 아니라는, 혹은 인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다른 존재의 생명을 앗아도 되는가? 릭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스스로가 안드로이드인지 진짜 인간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데, 이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의문인 동시에,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의문으로 발전한다.
4.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인기 가수에서 한순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전락하다!
존 W. 캠벨 기념상 수상작!
필립 K. 딕의 작가 인생에서 전환점을 마련한 대표작으로, 특유의 실존적 고뇌와 편집증적인 상상력, 구원의 미학이 한 자리에 모인 작품이다. 1974년 휴고상과 네뷸러상 후보에 올랐고, 존 W. 캠벨 기념상을 수상했다.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슈퍼스타였다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인기 가수이자 TV 쇼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제이슨 태버너는 만나주지 않으면 죽겠다는 전 애인의 전화를 받는다. 원한을 품고 있던 여자는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외계 기생 생물을 던지고, 제이슨은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가 있던 곳은 허름한 호텔. 게다가 신분증과 태어난 기록까지 모두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경찰과 중앙 정부가 모든 사람의 정보를 관리하며 사상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독재사회에서 제이슨 태버너는 살아남기 위해 신분증을 위조하지만, 오히려 경찰에게 의심을 받고 점점 더 헤어나올 수 없는 궁지에 빠진다. 이 작품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아무렇지 않게 억압하는 정보 통제 사회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을 그리는 동시에, 사람 사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온기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필립 K. 딕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일컬어진다.
5. 발리스
선악의 대립과 경계가 해체된 시대의 절망과 구원을 말하다
필립 K. 딕이 실제 신비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세기의 문제작!
필립 K. 딕이 실제로 한 신비 체험을 토대로 말기에 집필한 ‘발리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 녹아들어간 자전적 내용, 영지주의를 근간으로 신화학,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음모 이론이 복잡하게 뒤얽힌 이론적 바탕, 가짜 기억과 현실 붕괴 속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탐구한 필립 K. 딕 특유의 주제의식이 어우러진 세기의 문제작이다.
『발리스』는 1974년 2월에 분홍색 광선을 맞고 막대한 양의 정보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한 호스러버 팻(작가이자 화자인 필립 K. 딕의 분신)의 이야기이다. 팻은 인간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체험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해서』라는 방대한 저술을 집필하고, 친구의 자살, 자신의 이혼, 자살 시도, 정신병원 감금, 연인의 암 재발과 사망 등 차마 한 인간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연이어 겪으면서 급기야 그는 비합리적인 세계에 다시 태어나 있을 구세주를 찾아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자신의 상처를 통하여 인간의 병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치유하고자 하는 작품을 썼던 필립 K. 딕. 『발리스』는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간 필립 K. 딕과, 그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통해 절실하게 탐구한, 타락하고 거짓된 현대사회와 불안한 인간이라는 테마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감동적인 걸작으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독과 고뇌를 그려내고 있다
늙은 히틀러는 매독으로 온몸이 마비되고 노망까지 든 채 여생을 보내고 있다. 뇌까지 번진 매독은 그가 비엔나에서 길고 검은 코트에 더러운 속옷을 입고 싸구려 간이숙소를 전전하며 부랑자로 살던 시절에 얻은 것이다. 무성영화에나 나올 법한 하느님의 복수가 분명했다. 그 지독한 자는 몸속 더러움, 남자의 추악함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역병에 쓰러졌다. 끔찍한 건 지금 독일제국이 바로 그자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두뇌는 처음에는 정당을, 이어서 나라를, 다음에는 세계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지도자’ 히틀러의 헛소리는 여전히 성스럽게 여겨졌으며 아직도 성서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사상은 이제 사악한 씨앗처럼 온 문명세계를 감염시켰고, 나치의 맹목적인 금발 동성애자들은 이제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으로 내달리며 더러움을 퍼뜨리고 있다.
― 『높은 성의 사내』 중에서
조는 말했다. “이 크림을 좀 보게.” 그는 크림 용기를 들어 올렸다. 안의 액체는 걸죽하게 덩어리진 채로 용기 안쪽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기술적으로 발전했다는 도시에서 1포스크레드를 내고 산 물건이 이따위야. 난 이 가게가 돈을 돌려주든가, 아니면 내가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신선한 크림을 새로 제공할 때까지는 절대로 여기서 못 나가.”
앨 해먼드는 조의 어깨에 손을 얹고 동료의 얼굴을 유심히 훑어보았다. “왜 이러는 거야, 조?”
“처음에는 그 담배였어. 다음은 배 안에 있던 2년 전의 오래된 전화번호부였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는 일주일 전의 썩은 크림이 나왔어. 영문을 할 수가 없어, 앨.”
― 『유빅』 중에서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 릭은 속으로 물었다. 그건 분명해. 그들이 때때로 주인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치는 이유도 그것이니까. 더 나은 삶, 노예 신세가 아니라. 루바 루프트처럼 말이야.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을 노래하는 거지. 황량하고 바위투성이인 지표면을 힘들게 오가는 것 대신에 말이야. 근본적으로 거주가 불가능한 식민 세계에 사는 것 대신에 말이야.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중에서
그는 지갑을 꺼낸 다음, 그 안에서 모리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던 쪽지를 찾아보았다.
그의 지갑은 아주 얇았다.
신분증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계속 남아 있게 해주었던 신분증이. 그가 총에 맞거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지 않은 채로 군경의 바리케이드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신분증이.
내 ID 카드 없이는 두 시간도 채 살아남지 못할 텐데. 그는 생각했다. 심지어 이 낡아빠진 호텔 로비에서 저 바깥의 보도 위로 걸어 나가지도 못할 거야. 사람들은 십중팔구 나를 캠퍼스 가운데 한 곳에서 도망친 학생이나 선생으로 간주할 테지. 어쩌면 남은 평생 동안 노예가 되어서 중노동을 하고 살아야 할지도 몰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비존재자’가 되는 거지.
―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중에서
꿈이라는 것은 사실 ‘제어된 정신 질환’이라고들 말한다. 또는 달리 말하자면 정신 질환이야말로 사람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 스며 나온 꿈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편안하고도 진정한 사랑을 느꼈던 여성이 등장하는 호수 꿈에 대입해보자면 무슨 의미일까? 팻의 머릿속에 두 명의 인격이 있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도 두 명의 인격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내 경우에는 둘 사이에 칸막이가 놓여있으며, 탈억제적인 상징의 촉발이 없었기 때문에 ‘또 다른 인격’이 그 칸막이를 뚫고 나의 인격과 나의 세계로 진입하지는 못한 것뿐일까?
우리 모두는 호스러버 팻과 똑같지만, 단지 그걸 모르는 것뿐일까?
우리가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세계는 과연 몇 개까지일까?
― 『발리스』 중에서
1928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일생을 보냈다. 미숙아로 태어난 직후, 쌍둥이 누이를 잃는 등 불안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안전강박증에 시달렸고 마약에 중독되었으며,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 불안한 삶을 살았다.
1952년에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36편의 장편소설과 100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딕은 평생을 생활고에 시달렸고, 죽기 몇 년 전에야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블레이드 러너>로 처음 영화화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결국 198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작품들이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마이너리티 리포트> <임포스터> <컨트롤러> 등의 영화로 재탄생하면서, 오늘날 딕은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딕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초능력과 로봇, 우주여행, 외계인 같은 기존의 SF 소재와는 차별화된 암울한 미래상과 인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며 끊임없이 인간성의 본질을 추구했다. 1963년에 『높은 성의 사내』로 휴고상을, 1974년에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로 존 캠벨 기념상을 수상했다. 죽은 다음 해인 198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필립 K. 딕 상이 제정되었다. 이 상은 현재 휴고상 및 네뷸러상과 함께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판 기획가이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 저작권 센터KCC에서 에이전트로 일했으며, 〈책에 대한 책〉 시리즈를 기획하기도 했다. SF 번역서로는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시어도어 스터전』, 『풀의 죽음』, 『트리피드의 날』, 『성스러운 침입』, 『에스에프널 SFnal 2021』(공역)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PD와 IT 기획자로 일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요 네스뵈의 『블러드문』, 존 그리샴의 『자비의 시간』 『수호자들』 『카미노 아일랜드』 앤디 위어의 『아르테미스』 외, 『스노 크래시』, 『사일런트 페이션트』, 『본 슈프리머시』,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 등이 있다.
SF 및 환상문학 평론가이자 번역가. 필명은 강수백이다. ‘그리폰북스’ ‘경계소설’ ‘SF총서’ ‘필립 K. 딕(Philip K. Dick) 걸작선’ ‘미래의 문학’ ‘조지 R. R. 마틴(George R. R. Martin) 걸작선’을 기획하고 번역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그렉 이건의 『쿼런틴』 『내가 행복한 이유』 『대여금고』,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숨』,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로버트 홀드스톡의 『미사고의 숲』,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 이언 뱅크스의 『말벌공장』, 새뮤얼 딜레이니의 『바벨-17』,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의 『돈 후앙의 가르침』 3부작, 존 그리빈의 『시간의 물리학: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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