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책 속 '호경'은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실존 인물이다. 20년간 일본에서 살아온 그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다. 희미해진 기억 사이, 어느새 외국어가 모국어보다 편해진 그에게 한국에서의 기억은 낯설기만 하다.
우리에게 '치매'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잊는다는 두려움, 그리고 감정 조절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며 온 가족에게 짐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로 다가온다. 취약해진다는 것, 자신을 잃는다는 것—이 모든 두려움 한가운데 '호경'이 있다. 이 책은 의학 보고서도, 보호자의 수기도 아니다. 가족도, 돌봄자도,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어째서 한 사람에 대해 쓰는가. 그 쓰기가 당사자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가. 물음을 해결하지 않은 채로, 작가는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정말? 거짓말!
서슴는 사람
이중 노출
우리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당신은 언제 오나요?
유리
호경이 쓴 편지 속 시
해제 : 비밀과 답장_최가은
작가의 말 : 약한 고리가 되다
치매의 언어
감사의 말
참고문헌
나는 내 이름 세 글자를 썼다. 글자를 가리키며 호경에게 물었다.
“혹시 제 이름 외우시겠어요?”
호경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인 현.”
다음번 만남에 호경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이름을 잊더라도 나의 존재는 기억하리라 믿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없다. 나와 했던 행동이나 말, 이름은 다 임시의 것이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 호경에게 내 이름을 다시 가르쳐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전혀 두렵지 않다는 사실, 그건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기는 어려운 확신이다. - 본문 중에서
호경은 좋아하는 동물, 식물, 날씨, 계절 모두 없다고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물으니 조용필의 <꽃바람>을 꼽았다. 함께 노래를 들어봤다.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애절하고 호소적인 후렴구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노래가 아주 좋다고 하니 호경이 즐거워 했다.
2014년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면서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감각,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 타인을 힘껏 환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2018년부터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몸으로 마주한 현실을 이야기로 담기 위해 애써왔다. 이후 인물과 사건보다는 그들이 무언가에 붙잡혀 자빠진 상태에 대해서, 어떤 지점으로 끊임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기억에 관심을 가졌다. 직접 만든 책 『진동하는 것들』, 공저로 『숨은 신』, 『애도하는 귀』, 『이 이야기는 너야』 등이 있다.
나에게 쓰기는 약한 고리에 걸린 상태와 같다. 관계 속에 걸려 머무는 것이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호경과 호경을 기억하려는 나는 약한 고리로 매듭진 관계 속에서 종종 길을 잃었다. 그 길 잃음이 다시 글로 태어났다. 호경은 나, 사회, 언어, 문학과 맺는 관계들 사이에서 하나로 정의되지 않고 계속 변화했다. 그것이 글쓰기가 타자와 맺는 관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이 책에는 결론이 없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 내가 바란 건 하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내가 아직 상상할 수 없는 당신이, 당신만의 '호경'을 그리게 되는 것. 나와 당신도 이제 곧 기억에서 멀어져 무언가를 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잊혀가는 중에도, 호경이 당신과의 관계 속에 머물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인현의 『호경』은 이러한 ‘기억 문학’의 계보 위에서 읽히는 작품이다. 저자가 초기 치매 당사자인 ‘호경’을 만나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한 이 텍스트는 크게 사진과 그림, 자필 메모, 문자메시지 등 주변적 자료를 병치하며 입체감을 만드는 아상블라주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또 한 명의 대표적인 기억의 문학가 W. G. 제발트를 연상시킨다. 기억의 공백과 그 공백을 현재의 위치에서 다시 쓰는 『호경』은 자신의 글쓰기가 기억 문학의 두터운 계보와 맞닿아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의식하며 읽을 때에도, 『호경』은 분명 우리에게 생경한 감각을 선사한다. 그것은 기억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 텍스트만의 특정한 태도가 책의 형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장에서 7장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호경』이 시점과 서술 형태를 포함한 자신의 모습을 매번 다른 형태로 변주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장식 같은 것이 아니다. 『호경』이 수행하는 변주는 기억의 빈 자리를 새로운 서사 생성의 원리로 삼는 작품의 미학적 장치인 동시에, 기억을 쓴다.
최가은
문학평론가. 2020년부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함께한 책으로 『시, 인터-리뷰』(자음과모음, 2022),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다시, 고정희』(소명출판, 2022) 등이 있다.
낯선 이들이 서로를 기다리게 되는 일은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인현과 호경의 대화에는 호경의 잃어버린 과거가 담긴 사진과 편지가 출몰한다. 사진에 대한 기억은 불완전하고, 편지 속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기억과 마음의 공백을 채우지 못한다. 대신 아무리 쌓여도 흐릿한 흔적들을 겹겹이 남긴다. 거기에 비밀이 똬리를 튼다. 두 사람이 함께 맴돌 때, 답을 모르기에 영원히 응답할 수 있고, 서로를 영원히 기다릴 수도 있게 하는 비밀이 만들어졌다. 그 비밀까지 전하기 위해 인현은 진실과 허구를 엮어 소설로 만들어야 했을까. 사진, 편지, 대화, 그 무엇으로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지만 함께 만들어낸 것,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며 만들어낸 것은 기억도 마음도 아닌 영혼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을 잇고 한 사람 주위를 맴돌게 하는 그 주술적 공백에 대한, 그러므로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이해되지 않아도 기어코 느껴지는 영혼의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안희제
작가, 문화인류학 연구자. 소수자 인권 운동에 발을 걸치고 대중문화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 감정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써 왔다. 『사랑과 안정』, 『증명과 변명』, 『망설이는 사랑』 등을 썼다.
히스테리안은 2018년부터 출판, 시각 전시, 문화 기획, 비평 연구를 아우르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과 실험을 이어온 기획 단체이자 출판사입니다.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젠더화된 역사와 문화 권력의 흔적에 주목하면서, 동시대의 정치·문화적 정동을 탐구해왔습니다. 히스테리안의 하나의 보편적 사실—모든 인간은 자궁에서 태어난다는 것—에서 출발하며, 생명과 돌봄, 연대의 가치를 바탕으로 오늘의 삶과 예술을 잇는 콘텐츠를 만들어갑니다.
제목 : <호경>
주제 분류: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지은이 : 이인현
판형 : 120*210mm / 무선제본 / 310쪽 내외
정가 : 18,000원
출간일 : 2026년 9월 9일 (예상)
*표지, 차례, 본문 이미지 등은 최종 편집 과정에서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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