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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500원, 33권 펀딩 / 목표 금액 1,000,000원
펀딩 중 (마감 2026-08-24, 출간예정 2026-09-03)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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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교환일기. 단순히 정의해 보면 두 사람 이상이 하나의 매체를 공유하면서 번갈아 글을 더하며 작성하는 공동 기록 형식을 말한다. 조금 달리 말해본다면 이 책은 일기의 형식을 빌린 편지이자, 편지의 형식을 빌린 일기다. 독백보다 응답이, 사건보다 관계가 중심이 되는 기록이다.
한국과 일본의 SF 작가 열두 쌍, 24명은 SF가, 그리고 글쓰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공유한다. 언어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많았다. ‘자신의 질환, 투병 경험과 SF’와 같은 내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페미니즘과 SF’, ‘서브컬처와 SF’, ‘테크놀러지와 SF’, ‘팬덤사와 SF’ 등 다양한 주제를 가로지른다. 줄곧 영향을 주고받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배경을 비롯하여 역사 수정주의, 세상에 만연한 백래시에 대한 대응,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 창작자의 고민으로까지 논의는 확장된다. 양국에서 SF가 어떤 식으로 수용되고 재해석되었는지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SF 문학을 사랑하는 창작 당사자이자 또 독자로서 작업과정의 고민을 나누고, 문화의 차이를 발견하면서 도달할 수 있었던 연대의 가능성과 미래를 담았다.

‘교환일기’뿐만 아니라 대담과 토론, 강연+두 편의 단편소설까지!

이 책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와 일본SF작가협회가 펼친 활동 기록지이기도 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으로 두 나라 작가들은 전쟁과 핵 위협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일본에서 열린 ‘SF 카니발’과 창작 합숙 워크숍 ‘SF 작가손‘을 열고 대담과 토론, 창작 활동을 펼쳤다.
‘교환일기’ 섹션이 끝나면 성우, 번역가이기도 한 이케자와 하루나 작가와 변호사, 번역가이기도 한 정소연 작가의 대담 「당신과 나의 Encourage!」가 시작된다. SF 작가 단체에서 회장을 지낸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이 임기 중에 고민했던 일, 활동의 뒷이야기, 집필과 번역에 관한 의견, ‘N잡러’로서의 생활, SF 업계에 대한 생각을 나눈 활력 넘치는 대담이다.
한일의 작가, 편집자의 토론 「일본에서 본 한국 SF, 한국에서 본 일본 SF—페미니즘, 남성성, 병역, 국제 연대의 가능성」에서는 국가적 제도나 사회적 경향이 창작에 끼치는 영향, 두 나라, 더 넓게는 세계의 작가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민지형 작가의 강연 「페미니즘과 SF는 어떻게 만나고 확산되었나」는 한국 SF와 페미니즘의 역사를 소개하며,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는지를 소개한다.
책은 한국 작가들의 교환일기를 읽고 일종의 ‘응답하기’를 모티브로 삼은 일본 두 작가의 단편 소설로 마무리된다. 가카리 마나 작가의 「Echoes: 목소리들」은 신자유주의와 기후 위기 등으로 멸망을 목전에 둔 지구에서, ‘기관’의 통제에 맞서 싸우던 과거의 ‘목소리’를 찾아 살려내는 이야기다. 특히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퀴어의 존재조차 상정하지 않은 천황제의 가부장적 망상에 대한 야유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정도겸 작가와의 교환일기에서 착안한 나카노 레이리 작가의 「표리세계의 아나그노리시스」에는 한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른 선택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체험할 수 있는 장치, IFS가 등장한다. 무수한 선택지 중에서 단 하나의 선을 채택하려는 주인공의 인생과 이 소설을 읽어주실 독자의 인생이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교차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추천사

굉장한 기획이다. 한일 SF 작가들의 멋진 자기소개서이자, 두 나라 SF의 양상을 서로의 시선으로 새로이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프로젝트. 편지를 맞교환하는 짝지 작가의 어우러짐이 놀랍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 SF를 바닥에서부터 일궈나가야 했던 한국 작가들과, 오랜 전통을 이어받으며 혁신을 추구하는 일본 작가들이 허물없이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SF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 왜 이토록 SF를 사랑하는지 속닥인다. 내게 날아온 편지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김보영(소설가)

남의 일기는 마치 방백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방적인 발화로 끝나는 일기와 달리 교환일기는 타인의 일기를 부른다. 조심스러운 고백에 생각 밖의 맞장구가 돌아오고, 내밀한 상처가 진실한 공감을 형성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신도 무거운 몸과 싸우고 있나요? 세상의 편견과 불합리에 화나고 우울했나요? 우리가 SF 소설을 쓰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렇듯 『한일 SF 교환일기』에는 각자의 막연하고 사적인 이야기가 서로 공명하며 선명하게 증폭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저자들은 일기로 연결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담, 강연, 또 다른 창작으로 나아간다. 한국과 일본, 개인과 개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SF를 쓰는 이들은 정말로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직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비틀고,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책을 덮으면서 낯선 작가들에게도 기꺼이 다가갈 용기가 생겼다. 글과 글로 이어지는 거대한 대화에 독자로서 동참하고 싶다.
-심완선(SF 평론가)

한국과 일본은 익숙한 듯 낯설고,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웃이다. 이 두 나라에서 같은 직업을 가지고, 글자 그대로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작가들은 한 개인으로서, 창작을 업으로 하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이야기를 서로 들려줄까? 이런 것이 궁금해서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최근 한국 문학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장르문학 작가로서 한국 SF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국 SF라는 장르를 제대로 알려면 외부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자주 듣는다. 『한일 SF 교환일기』는 그 양쪽 질문에 대한 대단히 훌륭한 대답이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SF 작가들이 상상하고 이해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작업의 전문가로서 교류한 결과이다. 그리고 한일 양국 SF 문학이 앞으로 더 깊고도 높은 관계를 쌓아올릴 것이라는 증거이며 단단한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보라(소설가)

목차

일본어판 서문 : ‘당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국어판 서문 : 차이에서 시작해 동행하는 걸음으로

1부 교환일기
(1) 최의택 → 이노우에 마사히코 / 누군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SF는
(2) 이노우에 마사히코 → 최의택 / 교환일기라는 마법과 창작자의 날개
(3) 이서영 → 이케자와 하루나 / SF의 F는 Female의 F
(4) 이케자와 하루나 → 이서영 / 이 깃발의 역할이 끝나는 날에
(5) 전혜진 → 시라이 유미코 / 투쟁하고 나아가며—만화, 그리고 SF에 대한 사랑
(6) 시라이 유미코 → 전혜진 / 아이디어, 『WOMBS』, 손안에 있는 작은 것들
(7) 청예 → 다치하라 도야/ 추악해질 자유, SF
(8) 다치하라 도야 → 청예 / SF를 접한 계기
(9) 민이안 → 하세 사토시 / 당신을 위한 에세이
(10) 하세 사토시 → 민이안 / 질병과 창작
(11) 서윤빈 → 야시마 유겐 /이  글은 고양이가 썼습니다.
(12) 야시마 유겐 → 서윤빈 / SF란 무엇인가
(13) 정도겸 → 나카노 레이리/ 발견한 사람들을 위하여
(14) 나카노 레이리 → 정도겸/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에 관해
(15) 이산화 → 하야시 조지 / 시시콜콜한 싸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6) 하야시 조지 → 이산화 / 하드 SF와 테크놀러지
(17) 데이나 → 아게하 하나 / 평행우주를 여행하는 중입니다
(18) 아게하 하나 → 데이나 / 하얗게 타오르는 여름, 작은 씨앗을 뿌리며
(19) 이건해 → 우에다 사유리 / 우울감이 텍스트가 될 때까지
(20) 우에다 사유리 → 이건해 / 질병과 인간의 미래에 대하여
(21) 이시도 → 다바 가리 / SF가 우리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요?
(22) 다바 가리 → 이시도 / SF 작가가 되기까지/되고 나서
(23) 홍지운 → 미조부치 구미코 / 공상과학소설이라는 금기어
(24) 미조부치 구미코 → 홍지운 / 서브컬처로서의 SF가 할 수 있는 일
(25) 홍지운 → 미조부치 구미코  / 여자와 아이들의 혁명
(26) 미조부치 구미코 → 홍지운/ 태양과 빛

2부 대담
당신과 나의 Encourage! : 정소연 × 이케자와 하루나

3부 강연
페미니즘과 SF는 어떻게 만나고 확산되었나 : 민지형

4부 패널 디스커션
일본에서 본 한국 SF, 한국에서 본 일본 SF—페미니즘, 남성성, 병역, 국제 연대의 가능성
: 호리카와 유메, 민지형, 서윤빈, 해도연, 황모과, 후지이 다이요 외 청중

5부 소설
Echoes: 목소리들 : 가카리 마나  
표리세계의 아나그노리시스 : 나카노 레이리  

일본어판 후기 : 이노우에 마사히코
한국어판 후기 : 해도연

책속에서

한국 SF 작가들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를 ‘연대’라는 이름으로 줄여 부르곤 하는데 일본 작가들이 연대連帯를 “렌타이, 렌타이”라고 부르면 이 명칭만으로 벌써 마음이 뜨거워지고 만다.

-황모과, 한국어판 서문 「차이에서 시작해 동행하는 걸음으로」


SF 작가로서 활동하게 되어서야 저는 SF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에 대한 은유였던 것들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죠. 장애학을 공부하며 SF와 장애를 레고처럼 다뤄보는 일은 굉장히 재밌는 일입니다. 저는 그 두 가지를 통해 저의 잃어버린 과거를 다시 발굴해내 새로운 해석을 주석처럼 달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제가 잃어버린 게 아니었어요. 남몰래 숨겨버리곤 잊어버린 거였죠.

-최의택이 이노우에 마사히코에게


저는 저 자신과 창작 문화의 관계를 곧잘 흡혈귀에 비유하는데, 흡혈귀에게 목을 물린 자는 흡혈귀의 혈족이 됩니다. 저는 수많은 작가와 그들의 창작물에 물린 것이죠. (물려서 흡혈귀가 된 자는 나이도 그 시점에 멈춰버립니다. 제 감성도 당시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겠네요.) 머리맡에 책을 둔 한밤중의 침실에서 제 목을 문 것은 박쥐의 날개를 가진 존재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룡, 로봇, 외계인…… 모든 상식을 상대화시키는 마력을 지닌 SF 작가들에게도 목을 내어줬죠.

-이노우에 마사히코가 최의택에게


계집아이로 태어나서 격투 게임을 좋아하면 아무래도 여자 캐릭터를 고르고 싶어져요. 나를 대리하는 캐릭터니까 기왕이면 여자였으면 좋겠더라고요. 하지만 어쩐지 밝고 환한 미소를 띤 아테나한테는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 저는 여자의 어둠에 좀 더 매료되는 모양입니다. 일본의 여러 여자들이 쓴 SF들 속에서, 여자는 어떤 빛과 어둠을 품고 있습니까?

-이서영이 이케자와 하루나에게


그래서 아직,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세계에 IF를 던지는 SF가 필요합니다. 맞바람을 무릅쓰고 높이 들어올린 깃발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도록, 등을 밀어줄 수 있도록, 괴로울 때에 슬그머니 손을 잡아줄 수 있도록. 1200km의 거리를 두고, 우리는 같은 깃발 아래에 모였습니다.

-이케자와 하루나가 이서영에게


세상은 시시각각 나빠져가는 듯 보입니다. 사람을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나날이 최악을 경신하고 있어 분노가 치솟습니다. 그렇지만 분노만으로는 창작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시라이 유미코가 전혜진에게


SF와 판타지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할 때 판타지는 모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 SF는 모험을 마친 그 자리에서 다시 다음 시대로,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소녀들이 억압을 받고, 모험도 허락되지 않았기에 소녀들의 모험 이야기는 고향으로 돌아오며 끝나는 것이 아닌, 떠나간 그 세계에서 계속 사랑하고 살아가는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픔과 분노를 용기와 이야기로 바꾸어내는 시라이 선생님의 에세이를 읽으며, 저는 SF를 SF답게 만드는 그 한 걸음을 생각합니다. SF를 사랑하는 우리는 국경을 넘어 이야기와 현실 양쪽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계를 함께 꿈꾸며 살아가는 중이라고요.

-전혜진이 시라이 유미코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나는 SF 장르를 해방의 도구로 활용한다. (…)
나라는 인간으로서 한국 여성 SF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면이 강화됐다면 영광이다.

-청예가 다치하라 도야에게


우리는 글을 쓸 때 아무래도 점잖은 얼굴을 하고 맙니다. 어떻게 해서든 아름다운 부분을 보여주려 합니다. 청예 작가님의 말씀을 자신의 치부나 결점을 드러내는 노악(露惡) 취미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 제기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다치하라 도야가 청예에게


죽음에는 반드시 감각의 소실이 따릅니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지난하고 괴롭지만,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고통은 사라집니다.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사라집니다. 나라는 원자의 결합체가 완전히 분해되면 어떻게 되는가에 관한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의식이 없으니까요. 이 광활한 우주의 표준편차에서 극히 벗어나 있는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저 또한 잠시 희귀하게 존재하다가 지극히 평범한 원자의 형태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햄릿이 살아 있다면 말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당신이 고민하는 죽음의 잠에서 오는 꿈은 매우 평온할 것이라고,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아, 물론 그렇다고 그의 자살을 종용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게다가 고민하지 않는 햄릿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지요.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언제나 큰 문제입니다.

-민이안이 하세 사토시에게


고통과 불안이 닥쳐올 때마다, 내가 아닌 무엇이 되기를 빌었다. 지금 내가 빠져 있는 고통에서 격리된 세계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고통을 체험한 적 없는 타인이 나를 구해줄 거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곳이 아닌 세계를 스스로 건축하기로 했다. 창작의 원점은 그런 것이었다.

-하세 사토시가 민이안에게


한국은 최근에 나라의 사 분의 일에 해당하는 산과 토지가 불에 탔습니다. 산불 피해자 중에는 제 친구도 있었기에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저는 피해를 보지 않았고 그 덕에 피아노를 연습하고 또 글을 쓸 수 있었고요. 그런데 제 친구는 불이 다 꺼졌어도 다시 불이 붙진 않을까 걱정하며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미안했는데 친구가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기록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그러니 정 미안하다면 글로 갚으라고. 그렇죠. 이러한 와중에도 저는 제 할 일을 해야겠지요. 가장 좋은 건 재난 등의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 일이 만약 나를 비껴간다면 나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다시 글을 씁니다. 피해자를 타자화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래서 서로 연대할 수 있을 이야기를 씁니다.

-데이나가 아게하 하나에게


여기까지 와서야 저는 SF가 무속신앙과 비슷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세계에 어떤 규칙이 있으리라 믿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요. 무속신앙에서는 우리네 할머니 신과 ‘백말띠 여성은 성격이 드세다’는 미신이 그 규칙을 정하지만, SF를 쓸 때는 내가 규칙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어슐러 르 귄처럼 사사분면으로 나뉘는 성별을 지정할 수 있겠고요, 황모과 작가님처럼 백말띠 여아가 낙태되지 않은 세계를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 규칙 아래에서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인물들은 제가 만든 세계에서 현실과 다른 듯 같은 점을 계속 발견해왔고, 거기서 더 나아가고자 발버둥 치는 것이었습니다.

-정도겸이 나카노 레이리에게


우리가 만드는 수많은 낯선 해안선들이 작품 속 대체 세계일 뿐 아니라, 현실 세계의 가능성들을 더 풍부하게 할 대안 세계도 될 수 있을 거라 믿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각자가 만드는 낯선 해안선들이 서로 연결되어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 미래를 기대해보게 되네요.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민중(!)이 연대하는 출발점이 SF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럼 이제부터 더 기이이일게 이어질 많은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다시 뵙겠습니다.

-이시도가 다바 가리에게


하여 우리는 시대를 완전히 초월한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 설득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당대의 테크놀로지가 허락하는 만큼만 경기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터치 디스플레이가 등장하기 전의 소설들은 대부분 하이테크 기계의 조작에 레버와 버튼을 사용했고, 과거의 우주 소설들은 탐사 우주선에도 꼭 사람을 태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컴퓨터의 연장선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입력장치와 연산장치와 출력장치로 구성되지 않은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은 고안해내기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호흡을 하지 않거나 순환계가 없는 몸이 어떠한 것인지도 우리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포스트 휴먼적인 느낌은 우리가 정말로 포스트 휴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듯함이란 설득의 문제이고, 하드 SF에서 설득력이란 타협의 대상이 아니까요.

-서윤빈이 야시마 유겐에게


우울하지 않은 삶을 자의적으로 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쪽을 택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에 걸쳐 우울감을 여러 방식으로 다뤄본 덕에 얻은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처럼, 삶이 우울증을 주면 글로 써먹겠다고 작정하고 사는 덕이죠. 그게 아마 타이어를 질질 끌고 다니는 듯이 살면서도 조금이나마 덜 지치는 방법일 겁니다.

-이건해가 우에다 사유리에게


건담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한때 한국의 서브컬처 계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정치·종교· 건담을 ‘3대 금기’라고 일컫곤 했습니다. 이런 주제를 경솔히 입에 올렸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언쟁이 벌어져 커뮤니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그렇습니다, 건담이 자그마치 정치나 종교와 같은 반열이었던 것입니다.

-이산화가 하야시 조지에게


건담에 관한 논쟁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건담은 SF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는 ‘애니메이션이 SF일 수 있는가?’와 ‘건담은 과학적으로 옳은가?’라는 두 가지 하위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논쟁에서는 ‘선라이즈의 건담 설정이 옳다파派’와 ‘건담 프라모델의 설정이 옳다파’ 등도 얽히는 혼돈이랄까, 결론이 날 수 없는 논의가 계속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야시 조지가 이산화에게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중역이면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한국에서는 ⟨∀건담⟩에서 나온 ‘흑역사’ 같은 신조어도 일상적으로 흔히 쓰고는 합니다. 공상이라는 단어에 허무맹랑하다는 의미가 있으면 뭐 또 어떻습니까? 공상과학소설은 공상소설과 과학소설의 합이라고 하고, 황당한 SF를 쓰는 저 같은 사람은 공상소설을 맡고 진중한 SF를 쓰는 분들이 과학소설을 맡고 있다고 하면 되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저는 요즘 저를 소개할 때 SF 작가라고 자칭하는 동시에 공상연애소설 작가라고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홍지운이 미조부치 구미코에게


얼마 전, 어떤 정치 활동가가 “이건 SF로 비유한 이야기다.”라고 변명하며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침해하는 저출산 대책을 내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런 소재를 다룰 때 SF적 상상력이 빠뜨리지 않을 풍자적·사변적 감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SF를 들먹이는 것에 조금은 화가 납니다. SF는 경솔한 정치인의 손에 떨어져선 안 됩니다. SF는 우리의 것입니다. 애초에 ‘서브컬처’란, 그런 것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조부치 구미코가 홍지운에게


저는 소설 집필은 ‘발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곳에 무언가가 파묻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걸 파헤쳐나가는 거죠. “이 화석은 꼬리부터 파내는 게 편하겠어.”, “이건 머리부터 가야겠어.”라는 게 어렴풋이 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크기의 것이 어떤 형태로 묻혀 있는지는 알 수 없기에 파내려 가면서 “아, 이렇게 굽어 있구나.”, “알을 품고 있었네.”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찰흙으로 만드는 소조塑造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원문이라는 뼈대가 확실히 있고, 그 뼈대에 일본어라는 찰흙을 붙여 나가며 하나의 소조상으로 완성해가는 거죠. 원래의 뼈대를 제대로 읽어내 뼈를 부러뜨리거나 가짜 살을 붙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도, 표면은 매끄럽고 아름답게 다듬어나가는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케자와 하루나 <당신과 나의 Encourage! : 정소연 × 이케자와 하루나>


언어에 따라서는 성별 표현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제 소설이 번역될 때도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저는 특히 SF 소설에서는 성별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중성적인 분위기로 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 이케자와 작가님의 소설 세편을 황모과 작가님이 번역해 주셔서 읽어 보았는데, 겉모습에 대한 표현이나 외양 묘사가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등장인물의 외양 묘사를 그리 많이 하지 않는 편이고, 작가들도 성적 중립성(젠더 뉴트럴 )을 의식하고 쓰거나, 혹은 성별을 아예 정하지 않고 쓰는 사례가 많습니다. 일본 번역가가 1인칭 대명사를 어떻게 쓸까 검토하다가 저자에게 “남성일까요? 여성일까요?”라고 질문을 한 다음에야 작가가 젠더를 결정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물론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 역시 영어 소설을 번역할 때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어떤 소설에 sister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한국어로는 ‘언니/누나’인지 ‘여동생’인지, 또는 화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따라 단어가 전부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원작자에게 “언니인가요, 여동생인가요?”라고 문의했더니 “그런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네요.”라는 답변이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정소연 <당신과 나의 Encourage! : 정소연 × 이케자와 하루나>


트랜스젠더 배제의 가장 큰 문제는, 본래 다양한 마이너리티와 연대하여 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 할 사상인 페미니즘이 다른 소수자와의 연대를 놓쳐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트랜스젠더 배제는 SF라는 장르가지닌 포괄적인 상상력과도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미국에서 건너온 페미니즘 SF를 한국만의 형태로 발전시켜 이제는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점은 무척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거창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SF 작품은 ‘생물학적 여성’이라 불리는 이들뿐 아니라, 모든 소외된 존재를 향한 문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문학으로서의 지평을 더욱 풍요롭게 넓혀주는 길이자, 지금의 한국 SF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지형 <페미니즘과 SF는 어떻게 만나고 확산되었나>  


너와 사랑에 빠진 일을 비밀로 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나는 너와 손을 잡고 걸었고 어디에서든 아무 때나 키스했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던 미디어는 이를 스캔들이라고 이름 붙였고 우리의 일은 희대의 논란이 되었어. 나는 단번에 불량하고 불결하며 불완전한 존재, 부도덕하고 불편하고 불순한 존재가 되어버렸어. 내가 상징하던 것이 정체 모를 괴물로 변하는 일을 ‘기관’은 탐탁지 않아 했으니. 나를 투명한 존재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내 앞에 속속 나타났어. 그들은 처음엔 나를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러다 나를 병원에 보내려 했고 감금하려 했고 죽이려 했어. 죽기 직전의 위험에 직면하기도했지. 하지만 내게도 너에게도 우리에겐 동료들이 있었어.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쏘는, 우리의 활동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 비겁해질 필요는 없었지.

-가카리 마나, 「Echoes: 목소리들」


슬슬 IFS를 종료해야 할 시간이었다. 먼지 하나 없는 청결한 사무실로, 통찰력 있고 지혜로운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곧 열릴 뇌신경학회에도 참석해야겠지. 그랬다. 내가 선택해야 할 행동이 무언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선택하고 싶었던 행동과는 완전히 달랐다. 과거는, 기억은, 졸졸 흘러가는 시간의 모래가 아니라 갑자기 무더기로 덮치고 마는 격렬한 모래폭풍처럼 오감과 정서를 휘감고 만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한때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시야가 바뀌었다. 지금 내 마음을 온통 채우고 있는 일들은 정돈된 수식이나 숫자에 의해 구성된 평온한 날들이 아니다. 윤곽이 잡히지 않은 문자와 단어와 문장과 격투하는 혼돈의 날들이다. 순수함에 다가가는 일이라 말하긴 힘들겠지만,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추한 부분과는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는 숫자의 신전은 아니겠지만, 부조리하고 무력할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 숨겨진 문을 잠시 열어 주는 인문의 극장. 원래 이야기는 도피와 탈주를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더라도 서사 속 인물들은 현실과 닮은 장면을 기어이 발견하고 만다. 그렇기에 나는 도망치고만 싶은 지상에서 계속 살게 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참이다.

-나카노 레이리, 「표리세계의 아나그노리시스」


지은이 :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2017년에 설립된 한국에서 활동하는 SF 작가의 직역 단체. SF 작가의 창작의 자유와 권리 보장, 창작 지원, 단체 안팎의 인권 문제에 관한 연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공정한 계약과 정당한 대가를 위한 노력, 신인 작가의 발굴과 지원, 정기적인 창작 합평회·서적 기획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이 : 일본SF작가클럽

1963년 일본의 SF 및 판타지 분야에 관한 문화와 예술의 진흥을 위해 임의 단체로 설립되어 현재는 일반사단법인으로 전환되었다.
SF 및 판타지 분야의 연구와 인재 육성, 강좌·강연회·세미나 등의 개최, ‘일본SF대상’의 기획·운영, SF 및 판타지 분야에 관한 문화와 예술 작품의 기념 사업, 출판물의 간행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도서 정보



도서명: <한일 SF 교환일기 - 당신과 나의 Encourage!>

- 주제 분류: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소설론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국내도서 > 에세이 > 일기/편지

- 지은이: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일본SF작가클럽 엮음
- 판형: 108*186mm / 무선제본 / 400쪽 내외
- 정가: 25,000원
- 출간예정일: 2026년 9월 3일
- 펴낸곳: 연립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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