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후설과 하이데거를 넘어 독자적 장르를 이룬 프랑스 현상학,
그 물음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다
프랑스 철학의 전통 위에서 후설과 셸러, 하이데거를 수용하며 독자적인 사유를 개척해 온 프랑스 현상학은 21세기 현상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그 사유의 원천인 베르그손과 마르셀에서 출발하여, 사르트르와 레비나스가 열어 놓은 실존과 타자의 지평을 지나, 메를로퐁티·리쾨르·테브나즈·로마노가 파고든 주체와 세계의 얽힘을 거쳐, 말디네·앙리·리쉬르·마리옹이 탐구한 삶의 근원적 발생에 이른다. 나아가 데리다와 라쿠라바르트의 해체적 통찰까지, 프랑스 현상학의 여러 세대를 한 권으로 아우른 이 책은 프랑스 현상학 전체를 한 시야 안에 담은 국내 최초의 통합적 연구다.
더불어 이 책은 독일 현상학을 독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소개한 『현상학, 현대 철학을 열다』의 두 번째 여정이기도 하다. 프랑스로 그 무대를 옮겨 오랜 시간 축적된 3세대 국내 현상학자들의 치열한 연구를 담아냈다. 현상학의 뿌리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철학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프랑스 현상학이란 후설이나 하이데거에 대한 주석 작업에 그치는 프랑스 철학자의 현상학이 아니라 현상학의 현주소이고 현상학 그 자체이다. 독일에서 일어난 현상학이 거대한 사유의 용광로인 프랑스 철학 속에서 후설을 필두로 셸러, 슈타인, 하이데거, 핑크, 파토치카 등이 종합적으로 용해되어 전혀 새로운 장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비나스, 리쾨르, 미셸 앙리, 마리옹, 리쉬르를 연구한다는 것은, 이들 철학자만의 액면가 현상학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독일 현상학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하이브리드 효과를 통해 현상학의 미증유 지대를 개척하는 것이다.
(총론: 프랑스 현상학의 계보와 '선험' 사유의 번역 지평 — 신인섭)
베르그손주의는 프랑스 현상학자들이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생의 차원을 탐색하고자 할 때 끊임없이 떠올리게 될 비현상학적 영감의 원천 중 하나지만, 또한 현상학적 방법론에 준하는 엄격성과 체계성을 갖추지 못한 유사 예술적, 유사 역사학적 방법론 때문에 지속적인 비판과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 베르그손주의는 현상학이 빠져들기 쉬운 내적 오류처럼 나타난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 베르그손주의는 현상학의 내밀한 외부다.
(베르그손, 실패의 현상학 — 주재형)
마르셀은 소유와 지배의 논리를 재생산해 온 기존의 형이상학을 넘어서기 위해 잃어버린 ‘존재의 신비’를 회복함으로써, 존재론적 사유의 경건함을 상실한 “깨진 세계(le monde cassé)”의 결핍에 빠진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 철학자다. 한 평자는 프랑스 사상사를 진단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위대함은 인간을 세계와 타자와 신에 일치시키려는 기본적이고도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인간을 실존의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말하자면 희망을 근본적인 것으로 만드는 신뢰를 끊임없이 유지해 왔다는 점에 있다.”
(마르셀, 형이상학과 현상학 — 송석랑)
사르트르의 존재론에서 현재란 즉자로서의 자기를 대자로서의 자기가 자기-아님으로서 부정하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바로 이러한 현재 자체가 나의 순연한 대자로서의 존재 자체라는 점에서 존재망각의 위기가 극복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실존론적 자유가 전제하는 선택의 가능성이란 근본적으로 즉자로서의 과거 속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존재의 분열을 무화함으로써 존재의 근원적 전체성을 회복할 선택의 가능성을 뜻한다. 자유를 향한 우리의 실존론적 투쟁이란 존재의 근원적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투쟁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르트르, 실존론적 투쟁의 현상학 — 한상연)
내가 타자의 호소에 응답할 때, 나는 응답하는 주체로서, 응답해야만 하는 주체로서, 윤리적 주체로서 다시 태어난다. 윤리적 주체는 자신의 존재 권리에 대한 물음 이전 인간적 관계에 대한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 타자를 위해, 책임은 타자의 동의 없이 수행된다. 이것은 주체의 새로운 의미이다. 타자의 삶은 나의 삶보다 더 중요하고, 타자의 배고픔은 나의 배고픔보다 더 중요하다. 주체와 타자 사이의 이 같은 관계, 레비나스는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관계에서 출발한 윤리를 제일철학으로 확립하고자 한다.
(레비나스, 현상학 너머 현상학 — 김영걸)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은 지각된 세계인 ‘게슈탈트’에 대한 탐문을 시작으로 진리란 물리적인 실재도 형이상학적 실재도 아닌 관계적 맥락에 따른 ‘역동적인 감각적 실재’임을 밝혀 줌으로써 현대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 메를로퐁티는 인간 지성의 우위, 객관적 실재의 확실성을 주장한 근대철학의 문제들에 있어 주체이면서 사물인 몸의 감각적 이중 구조에 근거해 관념론과 실재론의 이율배반을 극복한 ‘현상학의 영도’를 실천한 것이다.
(메를로퐁티, 현상학의 현상학 — 김화자)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확정적일 수 없다. (…) 자아의 정체는 동일한 나와 진정한 나의 변증법적 통합이다. ‘부정한다.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은 결국 자기 긍정을 전제할 때만 타당하다. 리쾨르 철학은 바로 이 부정의 힘이 자기 자신이고, 다른 사람을 나처럼, 나로서 인정하는 주체의 힘임을 강조한다. 더 이상의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주체의 힘, 자기 확신에 도달하는 나. 바로 자기 능력의 ‘입증’ 순간이다. 인간 능력은 끝없는 도전에서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리쾨르, 역량 입증의 현상학 — 이양수)
테브나즈도 이성을 조건에 처한 이성으로 간주한다. 이성의 환원은 이러한 이성의 조건이 마침내 드러나게 한다. 이로써 철학적인 반성의 과정에서 이성의 환원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정당한 것임이 입증된다. 더욱이 테브나즈의 반성적 방법과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은 조건에 가려진 이성을 드러내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 다시금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한다. 이러한 근본적 문제 제기를 새로이 열고 심화한 것이 테브나즈 사유의 독창성이자 의의라 하겠다.
(테브나즈, 충격-경험의 현상학 — 이철우)
사건은 우리에게 의미에 대한 질문을 일깨워 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며, 자기 이해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근대철학의 주체 역할을 대신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사건이 어떤 선행하는 조건과 제한 너머에서 도래한다는 점에서 사건 자체의 현상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현상화는 자연스럽게 로마노의 사건철학이 현상학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로마노는 사건철학과 기존 현상학 사이의 입장 차이를 명확히 구별한다. 탄생의 예에서 보듯이, 로마노에게 사건은 결코 직관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사건의 접근은 사후적인 해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기에 사건은 해석과 이해라는 우회로를 통해서 주체에게 형상화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로마노의 사건철학은 해석학적인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하겠다.
(로마노, 사건의 현상학 — 손영창)
앙리 말디네의 담론이 영감을 부여한, 도가적 허(虛) 이념에 가까운 ‘텅-빔(le vide)’, 곧 ‘큰-열림(Ouvert)’의 사상은, 객관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재현과 주제화의 환원성을 거부하기 위하여, 서양 철학의 시각에서 보면 일종의 반(反)지성주의적인 현존재분석을 통해 상당한 영향력을 얻게 된다. 여기에는 분명 놀라운 통찰들이 곳곳에 스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디네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작가’이기를 바라고, 글쓰기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가로지르는 어떤 ‘타자적인 것’에 대한 증인이기를 원한다.
(말디네, 리듬의 현상학 — 신인섭)
앙리의 이원론은 “존재론적 이원론”이며 존재론이 현상학에 종속되는 한 그것은 더 엄밀히 말해 “현상학적 이원론”이다. 현상학적 이원론은 세계의 나타남과 함께 삶의 나타남을 인정할 뿐 아니라 세계의 나타남이 이 삶의 나타남을 토대로 한다는 점을 밝힌다. 따라서 삶의 현상학은 세계의 현상학을 대체하지 않으며 그 둘의 관계는 병렬적이지도 대등하지도 않다. 삶의 현상학이 세계의 현상학보다 더 근원적인 만큼 삶의 현상학의 진정한 이해 없이 세계 현상학의 진정한 이해 또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앙리, 파토스적 삶의 현상학 — 이은정)
리쉬르는 이 수동적 종합이 더 이상 ‘의식의 종합’이라고 불릴 수 없는 지점, 거기에서 일어나는 의미 생성이 더 이상 “초월론적 주체”가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의미 스스로의 생성인 지점을 현상학적 분석의 틀 안에서 일관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또 다른 혁명을 제시한다. 이러한 혁명은 주체성을 넘어선 장소, 혹은 선-주체적인 장소에서 출발할 때만 이해될 수 있는 진리를 경험적-심리적 자아로부터 빌려온 초월론적 주체성이라는 가상으로부터 분석하려는 경향 자체를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리쉬르, ‘자기생성하는 의미’의 현상학 — 정성경)
마리옹은 현상학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을 한층 더 심화하거나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별히 그가 제시한 포화된 현상은, 이례적이고, 압도적이기까지 하지만,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우리의 인식 능력을 초과하는 현상을 다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계기를 통해 마리옹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일상적 사건, 또 예술작품, 살의 고통이나 쾌락, 나이 듦과 같은 주체의 현상, 도덕적 명령과 같은 현상을 폭넓게 기술하고 해석한다.
(마리옹, 주어짐의 현상학 — 김동규)
에크리튀르가 진리의 생을 위한 조건이자 거처라는 것은, 진리가 기입되고 재기입되는 한에서만 제 생을 누린다는 뜻이기에, 궁극적으로는 진리조차도 망실되고 유실될 수 있음을, 어떤 면에서는 진리도 죽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의미·이념·진리가 이처럼 에크리튀르에 제 존재를 의탁하고 있다면, 역으로 기록되고 기입됨으로써 반복되지 않는 진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진리의 망실 가능성과 관련해서 데리다의 독특한 점은 그것을 위기라고 진단하면서 치유하려 들기는커녕 오히려 거기서 더 풍요로운 가능성, 즉 주어진 기왕의 진리로 환원되지 않는 역사, 진리를 생산하는 과정으로서의 역사의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데 있다. 이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는 데리다 특유의 사건 개념에 닿게 된다.
(데리다, 진리와 시간의 현상학 — 김민호)
라쿠라바르트가 볼 때, 사실 ‘자기’ 또는 ‘주체’는 “말의 효과”에 불과할 뿐이다. ‘자기’나 ‘주체’는 ‘주체의 선-등록’, 즉 ‘주체의 해체’가 흩뜨린 파편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라쿠라바르트는 주체가 ‘미메시스의 효과’라고 주장한다. ‘미메시스의 효과’로서의 주체, 자기동일성을 지니고 싶어 하는 주체는 자신의 발생보다 앞선 주체의 해체적 구성(주체의 발생에 선행하는 ‘주체의 선-등록’)이 야기하는 ‘다원화와 분열’의 위협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결국 주체의 위협의 근본 원인, “발화행위의 주체의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은 바로 언어 안에 있다. 언어 안에 이미 언제나 기입되어 있는 미메시스가 주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라쿠라바르트, 상실의 현상학 — 장의준)
신인섭
스위스 로잔대학교 철학 박사
강남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주재형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 철학 박사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송석랑
충남대학교 철학 박사
전 목원대학교 창의교양학부 교수
한상연
독일 보쿰대학교 철학 박사
가천대학교 가천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
김영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철학 박사
광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김화자
프랑스 파리10대학교 철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이양수
미국 조지아대학교 철학 박사
인하대학교 인하공학교육혁신센터 초빙교수
이철우
프랑스 파리8대학교 철학 박사
전 온석대학원대학교 상담학과 교수
손영창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철학 박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이은정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철학 박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
정성경
독일 부퍼탈대학교 박사과정
김동규
서강대학교 철학 박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김민호
프랑스 파리8대학교 철학 박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조교수
장의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철학 박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

1. 35,100원 펀딩
<현상학, 프랑스로 가다> 도서 1부
후원자 명단 인쇄 엽서 삽지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