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 돌베개X평산책방 서울국제도서전 선공개 도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드넓은 우애,두 나라의 문학을 아름다운 언어로 결속하는 번역가가 주고받은
서로 돕고자 하는 마음.
저는 그런 움직임을 지지하는 힘이
한국문학에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의 문학 번역도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사이토 마리코 「‘사랑’을 쓸 때」

전학생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아침, 교실 앞문을 열고 선생님이 예고 없이 모르는 아이를 데려오면 가슴이 뛰었다. 긴장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입술을 뗀 그 애들의 첫마디를 기다렸다. 이 도시에서 쓰지 않는 낯선 억양, 처음 듣는 말투가 좋았다. 선생님이 그 애에게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언제나 전학생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거는 아이였다.
스무 살,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입국』(민음사 1993)이라는 시집을 펼쳤을 때, 나는 ‘사이토 마리코’라는 이름의 전학생이 교실 문을 열고 내 마음에 성큼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써온 것과 다른 호흡, 다른 감각의 한국어가 거기 있었다. 그 책에 쓰여 있는 한국어는 나의 모국어가 아닌 듯 새롭게 읽혔다. 한국어가 모어인 내가,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시인의 말을 닮으려 그의 시를 외웠다. 그 시집을 읽는 시간은 이방인으로부터 모국어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사이토 마리코의 한국어 시에서 느꼈던 감각을 재회한 건 미즈노 루리코 시집 『헨젤과 그레텔의 섬』(읻다 2016)에서였다. 이 시집은 물론 한국어로 쓰인 것이 아니라 시인이 쓴 일본어 시를 번역가가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오래전 『입국』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단지 일본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이 나란히 실린 때문은 아니었다. ‘이 번역가는 나처럼 전학생의 생경한 말투에 이끌리는 사람일 것 같다.’ 알 수 없는 친밀을 느끼며 이름을 외워두곤 눈에 띌 때마다 찾아 읽는 그의 애독자가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정수윤과 사이토 마리코,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을 마음속에 그려보게 된 것은.
전학생을 무턱대고 좋아하던 마음이 나를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로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홀로 있는 사람의 외로운 표정,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작게 속삭이는 혼잣말에 끌린다. 문학을 읽는 것은 나와 다른 말투에 마음을 여는 것, 낯선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책 안에서 나와 닮고도 다른 무수한 얼굴을 만나고, 그들과 기꺼이 사귄다. 이제까지 몰랐던 이의 세계에 초대받고, 낯선 타인에게 곁을 내어줄 용기를 비로소 배운다. 나는 지금 사이토 마리코, 정수윤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단 두 전학생과 복도에 서 있다. 문을 열고 두 사람을 소개하면 어떤 눈빛들이 우리를 기다릴까? 미지의 친구들이 부디 전학생의 처음 듣는 말투를 힘껏 환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이름이 나란히 적힌 이 책을 당신께 건넨다.
― 편집자 이하나
우리는 서로의 ‘언어의 숲’에서 날마다 길을 헤매며 살아가고 있지요. 저는 일본어의 숲에서, 마리코 씨는 한국어의 숲에서. 우리는 말과 말의 숲에서 술래잡기하고 있네요.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괴로운, 언어의 술래잡기.
● 정수윤, 「태양의 아이, 달의 아이」
수윤 씨가 처음으로 일본문학을 접했을 때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작품도 있나요? 참고로 제가 처음 읽은 한국문학은 박완서였습니다.
○ 사이토 마리코, 「활자의 탁류 속으로」
마리코 씨의 마음속에 춤추고 있는 한국 작가들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정수윤, 「일본문학으로의 여행」
기억이란, 추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수윤 씨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생각이 되돌아가는 장소, 기억의 중심이 되는 곳이 수윤 씨에게는 있습니까? 저는 아무래도 1991년의 서울인 것 같은데요.
○ 사이토 마리코, 「11년째의 포부」
우리는 사랑이니까. 사랑을 엔진으로 움직이니까. 저는 시위 현장의 한국 젊은 세대에게서 이 슬로건을 자주 목격합니다. 우리는 사랑이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요.
요즘 번역하고 있는 이시무레 미치코의 시집에 「외로움 타는 원령들」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 시인이 노래한 “외로움 타는 원령”은 반세기 전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일어난 공장 폐수 오염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을 가리킵니다. “번민하는 신”이란, 미나마타에서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피해자의 슬픔을 자기 일처럼 느끼며 괴로워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외로움 타는 원령”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남태령에 모인 농민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싸우려 하는 이 젊은이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번민하는 신”입니다.
● 정수윤, 「우리는 사랑이니까」
저에게 번역을 향한 집중은 다른 일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입니다. 자신에게로 의식이 향하는 걸 막고,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독일어 번역가이기도 한 배수아 작가가 ‘번역은 가장 내밀한 독서’라고 말했는데 저는 거기에 더해 번역은 ‘독서를 통한 심호흡’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장을 건너뛰거나 흘려 읽지 않고, 그 옆에 밀착해 함께 걷다 보면 호흡이 안정됩니다. 그건 누군가가 써놓은 문장으로 제 몸을 쓰는 감각이자, 제 몸이 누군가의 언어를 들이쉬고 내쉬며 단단해지는 감각입니다. 상호작용이지요. 타인이 쓴 글 속에서 제가 해방되는 감각.
○ 사이토 마리코, 「‘사랑’을 쓸 때」
마리코 씨는 번역가의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을 하면서 이것만은 꼭 지킨다는 규칙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문학 작품을 번역할 때 무엇을 가장 유념해야 할까요?
● 정수윤, 「우리는 사랑이니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드넓은 우애, 서로 돕고자 하는 마음. 냉소의 시대를 지나 서로 돕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움직임을 지지하는 힘이 한국문학에 있다고 느낍니다. (…) 우리의 문학 번역도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사이토 마리코, 「‘사랑’을 쓸 때」
일본어로는 어색해서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한국어로는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 모어로는 쑥스러워서 하지 못하는 말을, 모어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한국말로 건넵니다. 수윤 씨에게도 그런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일본말이 있나요?
○ 사이토 마리코, 「‘사랑’을 쓸 때」
활자는 때로 빛이 되고, 때로 선물이 되며, 때로 사람의 마음을 데워주는 난로가 됩니다. 마리코 씨와의 술래잡기를 통해 이 사실을 절실히 실감했습니다. (…)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고, 답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이 행위 자체가 곧 사랑, ‘愛 아이’였습니다.
● 정수윤, 「마치며」
수윤 씨, 우리의 기나긴 술래잡기 동안, 한국과 일본은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눈보라 속에서, 서로를 잃지 않도록 해요.
○ 사이토 마리코, 「눈송이를 발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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