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남자에게 질린 여자는, 다시는 남자를 안 만날 수 있을까?
‘불꽃 페미’와 ‘남미새’ 사이에 선 이성애자 여성들의 내밀한 고백록
SNS에서 비혼과 비연애 선언을 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남자를 놓지 못하는 여자를 두고 ‘남미새’라며 공개 저격하는 일 또한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 너머의 현실에서는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가 이렇게 많은데 내 남자는 어디 있어?”라며 한탄한다. 그 많은 남자들 중 누구에게도 끌리지 않지만 남자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잠재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여성에게 주어진 선택지라고는 불꽃 페미와 남미새뿐인 듯한 세상에서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한 채 헤매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지워지기 일쑤였다.
《이제 진짜 남자 안 만날 거야》는 선명한 제목과 통쾌한 내용으로 화제를 모아 출간 직후 3쇄가 결정되었던 《한국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에 이은 라우더북스의 두 번째 앤솔러지다. 남자를 원하는 페미니스트가 맞닥뜨리는 첨예한 갈등과 욕망하는 여성의 무모한 시도를 끌어안고서,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 이면의 복잡한 속내에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여성을 향한 연대감, 시대의 모순을 읽는 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여섯 명의 작가가 빚어낸 이야기들은 우리의 선명한 거울이자 내밀한 고백록이다.



사마귀의 사랑, 산호 - 9p
욕망은 끈적끈적, 정도겸 - 59p
나 이제 여자 만날 거야, 정해나 - 105p
트렌드 러브 리포트, 윤이나 - 153p
그 남자 왜 만나, 실키 - 211p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 법, 민지형 - 259p
추천의 말 - 319p
이성애 비관주의의 시대, 죄책감을 내려놓고 욕망을 마주하는 법
2025년 7월,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는 〈남자를 원한다는 문제The Trouble With Wanting Men〉라는 글이 실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작가는 남자에 대한 체념에 빠졌으면서도 이성애적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의 모순을 다루면서 ‘이성애 비관주의heterofatalism’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남자와 만나는 일에 질려 버린 여자들의 피로감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성애 비관주의는 실존하는 현상일지언정 이성애자 여성의 종착지는 아닐 터다. 남성과의 관계로 행복해질 순 없다는 낙담에 머물면 이 세계는 여성 이성애자의 연애 잔혹사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나락이 될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여성이 원하는 관계 속에서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 이전에 이 사회와 남성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당장은, 이성애자인 자신을 미워하게 된 여성들의 숨겨진 사연이 수면 위로 나올 필요가 있다.
여성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욕망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
〈남자를 원한다는 문제〉의 작가는 ‘그렇다면 우리의 욕망은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갈 곳을 잃은 이성애자로서의 욕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냐는 물음이다. 《이제 진짜 남자 안 만날 거야》에 참여한 작가들은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욕망을 두려워하고 달래 보려 애쓰다가도 욕망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탐욕스러운’ 여성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를 선보인다. 남성을 원하는 자신에게 깊은 수치심을 느껴 말을 아꼈던 이들의 목소리가 또렷해질수록, 여성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욕망해도 괜찮은 세상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만화 〈사마귀의 사랑〉, 산호
매체와 장르를 막론하고 로맨스투성이인 세상에서 살아온 암컷 사마귀 사마리의 꿈은 운명의 짝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동족포식 본능이 강해 수컷을 열한 마리나 잡아먹고도 여전히 사랑을 동경하는 사마리는 열두 번째 연애의 한복판에서 흔들린다. 낭만적인 사랑을 칭송하는 세상, 수컷과 암컷의 욕망 사이의 괴리, 알을 낳으라는 압박, 그런 문제를 고민할수록 커져 가는 동족포식 본능이 사마리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에서 현실의 비극을 판타지와 매끄럽게 결합했던 산호 작가는 본작에서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한 사마귀를 주인공 삼아 이성애자 여성이 남성을 원하기에 겪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을 우화로 세련되게 풀어낸다.
소설 〈욕망은 끈적끈적〉, 정도겸
여성향 헤테로 19금 웹툰의 스토리 작가인 나리는 슬럼프에 빠졌다. 최근 알게 된 페미니즘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비추면 남주인공 세 명 중 누구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이야기가 길을 잃은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도 상업 작가로서도 어정쩡한 자신을 한탄하던 나리는 자신이 욕망하는 사랑,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랑,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랑을 일치시키라는 반협박성 요구를 받고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정도겸 작가는 ‘모든 순간에 페미니스트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스스로에 집중해 이 작품을 최대한 솔직하게 썼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즐기는 것과 옳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며 적나라하고 비밀스런 욕망과 페미니즘에 입각한 윤리적 판단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만화 〈나 이제 여자 만날 거야〉, 정해나
‘빻은 소리’를 한 남자 친구를 그 자리에서 대차게 차버린 혜진은 한동안 외로움에 시달린다. 페미니스트 남자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는 현실에 씁쓸해하던 어느 날, 문득 여자와 사귀어 보자는 결심이 선다. 레즈비언 데이팅 어플에 과감하게 등록한 혜진의 여성애자 데뷔 시도는 ‘여자 정말 좋다!’와 ‘왜 이렇게 어색하지…?’ 사이를 수시로 넘나든다.
《요나단의 목소리》에서 퀴어 청소년의 마음을 섬세하게 짚어 나갔던 정해나 작가는 앤솔러지의 제목과 짝을 이루는 재치 있는 제목 아래 이성애자 페미니스트의 딜레마를 파고든다. ‘한남’과의 연애에 환멸을 느끼지만 관계가 주는 온기를 갈망하는 여성의 절박한 모색이 세밀하고도 경쾌한 묘사로 가감 없이 그려진다.
소설 〈트렌드 러브 리포트〉, 윤이나
서른여섯 살 지원은 마음이 조급하다.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평균 나이에 결혼하지는 못했다. 결혼 생각이 없는데도 만나는 남자마저 없다는 사실이 어째 마음에 걸린다. 마침 인턴의 과제물 ‘MZ세대 트렌드 리포트’를 읽게 된 지원은 리포트를 참고해 동호회에서 남자를 만나 보기로 한다. 지원의 15년 지기 친구이자 기혼자인 설은 지원이 메신저로 전하는 새로운 시도의 과정을 응원하며 지켜본다. 지원이 오랜만에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새로운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윤이나 작가는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어 온 작가답게 MZ세대의 연애 트렌드를 작품에 고스란히 녹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의 민낯을 보여 준다. 한편으로 이성애자 여성의 삶을 지탱하는 존재는 연애 대상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이야기는, 관계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가벼운 욕망에 지친 여성들을 다정하게 위로한다.
만화 〈그 남자 왜 만나〉, 실키
에밀리는 여자에게 왜 남자가 필요한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연애가 곧 시련임을 알면서도 남자를 원하고 섹스를 원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성애적 욕구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에밀리의 내면은 대칭성이 두드러지는 캐릭터 디자인과 화면 구성, 회색 없이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이미지를 통해 인상적으로 시각화된다.
문제 많은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카툰 에세이들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은 바 있는 실키 작가는 주변 여성들까지 두루 살피는 에밀리의 시선으로 비슷한 고민을 품은 이들을 폭넓게 아우른다. “남자를 왜 만나?”라는 질문을 받은 모든 여성이 “그냥, 그렇게 태어났으니까.”라고 선뜻 답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에밀리의 눈물이 그칠지도 모른다.
소설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 법〉, 민지형
최근 가장 핫한 여배우 하리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이렇다.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 망친다.” 하리는 남자 만나는 게 범죄라도 되냐며 웃어넘기지만 매니저 채영의 생각은 다르다. 좋은 건 한때고 소문과 일은 오래가니 순간적인 충동은 절제해야 마땅하다. 오랜 시간 평행선을 달리던 둘의 연애관은 숱한 여성과 얽혔다는 풍문으로 이름난 한 남자의 등장 이후 위태롭고도 매혹적인 방식으로 접점을 찾는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로 ‘페미니즘 연애소설’이라는 좁은 영역을 개척해 온 민지형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여성의 욕망이 남성의 욕망에 비해 얼마나 폄하되는지, 우리 사회가 욕망하는 여성을 얼마나 억눌러 왔는지를 시원하게 폭로한다. 강렬한 충격을 선사하는 결말은, 남성에 대한 욕망 때문에 긴 세월 자책했지만 그 욕망을 무모하게 드러내는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럽다는 작가의 말과 맞물려 긴 여운을 남긴다.
사마리는 낭만적인 사랑의 역사에 투신하고 싶었다.
‘둘이라면 해결할 수 있어. 예컨대 인생의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말이야. 외로움이나 삶의 의미 같은 거.
둘이라면 달라질 거야.’
그래야만 존재로서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지 말고,
네 안의 남미새를 인정해야 해, 사마리.”
“남미새…? 나 남미새냐…? 그래, 그런가….”
- 19~20p, 〈사마귀의 사랑〉
최근 들어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한번 깨닫고 나니 이전의 내가 아주 부끄러워졌다. 예전에 내뱉은 말, 취했던 행동, 만들었던 만화에 쏙쏙 박혀있는 대사들까지. 과거를 편집할 수 있다면 그런 부분만 골라서 삭제하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 페미니즘을 접했더라면 부끄럽게 여길 과거가 적었을 텐데. 내 경우 인생의 한중간에, 그것도 창작자로서 살아가다가 불현듯 깨달았으니 삭제해야 할 흑역사가 아주 많았다.
- 64p, 〈욕망은 끈적끈적〉
페미니스트 남자 친구라는 건 내 인생엔 존재할 수 없는 걸까?
외국엔 좀 있어 보이던데….
…….
왜 꼭 남자 친구여야 하는데?
나… 여자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하하 외로워서 미쳤나.”
왜 안 되는데.
- 116~117p, 〈나 이제 여자 만날 거야〉
MZ 세대의 연애가 어려워진 현실의 바탕에는 경제적인 부담과 감정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 정의를 미루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남자들이 그런 경향을 보였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에게 피로감을 느낀다. ‘남자가 연애 전 단계에 머무르려 하거나 가벼운 관계로 성적 또는 정서적 만족감만 취하려 든다면, 그는 이 사회의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셈이다.’ 지원은 리포트에 그렇게 메모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 187p, 〈트렌드 러브 리포트〉
“나도 알아. 너무 쪽팔려.
머리로는 아는데 안 해야 하는 거 아는데 너무 많이 배웠는데
충분히 혼자 있을 수도 있는데도
혼자가 싫어.
그게 너무 쪽팔려.
말 안 해줘도 이런 내가 나는 이미 너무 충분히 싫어.”
- 245p, 〈그 남자 왜 만나〉
평생 사랑만 받아온 남자라는 게 곁에 서있기만 해도 느껴졌다. 콤플렉스도, 꼬인 데도 없이 솔직하고 투명했다.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채영의 경멸을 호감으로 바꾸어버렸다. 특별히 타고난 것 없이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여자로서는 질투심이 솟을 지경이었지만, 그는 미워하기엔 너무 멋진 남자였다. 자신 역시 그에게 끌린다는 걸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채영은 조금 분했다. 그가 어떤 남자인지, 그에게 반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다 아는데도. 왜 멋진 남자 앞에선 결국 약해지고 마는 걸까? 왜 하필, 남자 같은 걸 좋아해서.
- 282~283p,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 법〉
영화 스토리보드 그리는 일을 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만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유리병 속의 나나니》를 그렸다. 감나무 언덕이 보이는 방에서 오늘도 만화를 그리고 있다.
소설가. 제2회 포스텍SF어워드에서 〈인면화〉로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오뉴월에도 빛이 내리고》를 썼다. 학부에서 뇌 인지과학을 공부했다. 연구자가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뇌에 질려서 쉬고 있다. 언젠가 다시 좋아할 수 있길! 주로 블로그에 출몰한다. (blog.naver.com/dodobirdwriting)
연극 보는 만화가. 《요나단의 목소리》, 《나의 오타쿠 삶》을 썼다.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 예능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해 대중문화 칼럼을 꾸준히 썼고 영화 인터뷰, 콘텐츠 전문 작가로 일했다.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 장편소설 《신이 떠나도》, 에세이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라면: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를 썼으며 소설 앤솔러지 《무드 오브 퓨처》에 단편 〈아날로그 로맨스〉를 실었다.
만화가. 애니메이션도 만든다. 《나 안 괜찮아》, 《하하 하이고》, 《그럼에도 여기에서》, 《김치바게트》, 《단어; 집》을 그리고 썼다. 《음악의 사생활 99: 2010년 이랑》에 작화로 참여했으며, 현재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2026년 하반기 프랑스에서 그래픽노블 《눈송이들》, 《파트타임 매지컬 걸》을 출간할 예정이다.
소설가, 드라마 작가. 출판사 라우더북스를 운영하며 첫 앤솔러지 《한국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를 기획하고 직접 참여했다. 장편소설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과 TV 드라마 〈레버리지: 사기조작단〉을 집필했으며, 대표작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2026년 넷플릭스 영화로 공개된다.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라는 말, 감히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애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책, 만화, 애니메이션 속 사랑을 구경하며 자랐다. 요즘 어린이들은 거기에 더해 모바일 게임에 유튜브에 숏폼에 AI까지 보고 있을 테니 매체는 더 다양해졌지만, 인간이 인생에서 최초로 빠져드는 로맨스의 장르는 시대를 불문하고 늘 판타지 아닐까.
어린이일 적에도, 그리고 고백하자면 다 커버린 지금도 내가 가장 로맨틱한 장면 중 하나로 꼽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바로 그 파트, 궁궐 안 공주가 외간 남자인 알라딘과 눈이 맞아 양탄자를 타고 성벽을 넘어가는 부분이다.(어린이 여러분, 물론 모르는 사람 함부로 믿고 따라가면 안 됩니다만….) 사실 우리는 배워서 다 알고 있다. 때로는 선을 넘어야만 가슴이 끓는 경험을 한다는 것을. 심지어 단둘이 깊은 밤을 날며 부르는 노래가 ‘완전히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이라니!
나이를 먹으며 연애를 실전으로 겪고 나니, 배웠던 것과는 완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긴 했다. 밤하늘의 양탄자 위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한 건 진짜 연애가 아니었다. 콘텐츠 속 멋진 남자 주인공들을 만들어낸 건 실은 나와 마찬가지로 연애를 글로 배우면서 자랐던 여자들이었을지도.
책 속의 여섯 주인공 ― 사마리, 나리, 혜진, 지원, 에밀리(와 에밀리의 가랑이), 채영. 직업도, 세계관도, 심지어 종족까지 다른 이들의 모습에 내가 겹쳐 보인다. 다들 생각이 너무 많은 탓에 아무리 로맨틱한 양탄자 데이트라도 좀처럼 몰입하지 못하는 성격의 여자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남자를 만나며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난다. 내 안의 모순을 헤집어 보고,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며, 홧김에 벌인 일로 후회하다가, 혼자는 외롭고 함께면 괴로워 발을 퍽퍽 구르다가도 여전히 남자를 보면 가슴이 뛰는 걸 어떡하나 한탄한다. 어느 노래 제목처럼, 혹시 그게 다 외로워서일까?
꿈처럼 달콤한 가상의 로맨스 말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랑 이야기가 여기 준비되어 있다. 정말 아는 맛이 더 무섭다!
- 정재윤 만화가. 《재윤의 삶》과 《서울구경》을 쓰고 그렸고 앤솔러지 《한국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에 참여했다.
《이제 진짜 남자 안 만날 거야》. 제목을 보자마자 웃었다. 이 책 100% 재밌겠군. 그리고 이런 말을 입 밖에 내는 인간이라면 100% 다시 남자 만나겠군.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 어깨는 한껏 으쓱하면서도 초라하게 쪼그라든 상태가 되었다. 남자 안 만난다며 남자 얘기 잔뜩 하는 책일 거란 예측은 얼추 맞았으나 이렇게 충격적으로 재미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남자를 향한 애증의 발산, 그 이후 진하게 남는 수치심, 죄책감, 분노…. 여자로 이 땅에 태어나 남자를 욕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과 상황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너무나도 익숙한 감정의 바다에 푹 가라앉았다가, 대책 없이 욕망을 발산하는 여자들의 경쾌한 존재감에 푸핫! 하고 숨통이 트인다. 작품 곳곳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유머 감각 또한 일품이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시락을 양껏 먹은 기분이다.
멋진 작품을 보면 질투가 나 못 견디겠다. 나도 가만있을 수 없다. 내일부터 레그레이즈로 복근을 바짝 단련한 뒤 《이.남.만》을 열한 권 더 사서 남김없이 먹어 치워야겠다. 열 달 뒤 기발하고 기괴하며 섹시하고도 서글픈 이 여섯 개의 이야기를 다 합친 것만큼 재미있는 만화가 쑥 나오길 기대하며.
- 들개이빨 만화가. 만화 《먹는 존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한국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 에세이 《나의 먹이》, 《진짜진짜최종》 등을 그리고 썼다.
어느새부터 힙합만 아니라 이성애도 안 멋진 게 됐다. 페미니스트 여성이 남자를 갈망한다는 것은 존재론적 모순 같다. 가부장제에 저항하고 남자 없이 잘 살면 남산 위의 철갑을 두른 저 소나무 안 부럽겠지.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은 3대 거짓말 중 하나”라고 유구히 조롱해 온 나라에서 나까지 그런 편견에 종이 한 장 더 얹고 싶진 않다. 차라리 사랑의 화신이 되는 것도 방법이려나. 역시 여자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말에 적당히 맞장구쳐 주면서.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일쑤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지만, 오늘 밤에도 가슴이 정념에 스치운다. 내가… 내가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라니?!
《이제 진짜 남자 안 만날 거야》는 흠결 없는 존재를 꿈꾸는 이상과 끈적끈적한 욕망의 틈새를 직면하고 질주한다. ‘여자를 만나는 것’도 안 되고, 전지전능한 ‘사랑의 신’도 못 되는 주제에 엄마처럼 살거나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봐 두려운 여자. 기껏 선택한 남자가 ‘진정한 사랑’이 아니어서, ‘그깟 남자 때문에’ 내 앙증맞은 커리어와 소박한 명예가 훼손되고 남미새로 보이면 어떡하지 마음 졸이는 여자. 도저히 남자를 ‘잃지’ 못하고, 내 신념과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내질러 버리는 여자. 그 활극 속에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그래, 이제 진짜 남자 만나지 말자고 함께 다짐했다가 번복한다.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너무나 쉽게 깨끗한 ‘옳음’을 추앙하고 평가하는 세상에서, 분열과 모순을 드러내는 용기는 재능이다. 치열하고 애틋한, 웃기고 짠해서 사랑스러운 여섯 편의 이야기에 덜컥 반한다. 덩달아 밑천을 드러내고 싶어진다.
- 이진송 작가. 《경향신문》에 칼럼 〈이진송의 아니 근데〉를 연재하고, 독립잡지 《계간홀로》와 팟캐스트 ‘밀림의 왕’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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