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8년, 존엄한 죽음을 원했지만
존엄하게 죽지 못한 사람들을 기록하다
우리는 누구나 존엄하게 죽기를 바란다. 그 바람을 법으로 보장하기 위해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연장시키는 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이 법의 뿌리에는 가족의 부당한 퇴원 요구에 응한 의료진이 살인 방조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보라매병원 사건’과 법원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한 가족의 손을 들어준 ‘김 할머니 사건’이 있다. 의료계를 뒤흔든 두 사건을 거치며 긴 논의 끝에 탄생한 법은, 임종과정의 환자 본인 또는 가족이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300만 명을 넘어섰고, 제도는 한국인의 죽음 풍경을 바꾸는 계기가 된 듯 보였다. 그러나 『유예된 죽음』은 이 제도가 약속한 ‘존엄한 죽음’이 과연 현실에서도 작동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의료 현장을 직접 취재한 세 저자가 전국 병원과 환자, 가족, 의료진을 만나며 한국 사회의 죽음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기록이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낸 변화뿐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혼선과 갈등, 그리고 제도의 한계를 구체적인 사례와 데이터로 드러낸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를 경험하고 있는 걸까. 그 구조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밝혀 두었어도,
결정은 환자 손을 떠난다
“지금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한두 시간 안에 돌아가실 수 있어요.”
책은 연명의료를 둘러싼 실제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말기 환자의 가족이 응급실에서 몇 분 안에 결정을 강요받는 장면,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가족 간 의견이 갈라지는 상황, 그리고 연명의료가 시작되고 뒤늦게 후회하는 과정까지. 죽음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완결되지 않고 가족에게, 의료진에게, 제도의 빈틈으로 흘러든다.
의향서를 작성해 두었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의향서는 임종과정 진입이 공식 확인된 이후에야 효력을 발휘하는데, 그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의사에게 법적, 윤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도 병원은 가족에게 의사를 묻는다. 환자의 의사는 쉽게 무력화되고 가족 전원의 합의를 요구하는 조항은 자주 벽이 된다. 가족 간 갈등은 임종의 자리를 법적 분쟁의 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이후의 공백도 심각하다. 치료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지만 환자가 마지막을 보낼 호스피스 병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인과 무연고자는 애초에 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고, 제도적 갈등을 조율해야 할 공용윤리위원회는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제 기능을 못 한 채 시한폭탄처럼 방치되고 있다. 저자들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 괴리를 보여주고, 제도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를 분석한다. 나아가 연명의료결정법이 왜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에 있는 법적, 윤리적 논쟁을 짚고 해외 제도와의 비교를 통해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존엄한 작별을 위해
이 책은 세 기자가 현장에서 마주한 환자와 가족, 의료진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는 동시에 의료법윤리학자, 변호사, 완화의료 전문의, 호스피스 현장 의사, 웰다잉 활동가 등 6인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제도의 구조적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로 바라는 이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죽음은 전 국민이 겪는 모두의 문제다. 그렇기에 삶의 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닿는 질문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고 있는지 다시 묻게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법은 환자와 그 가족에게 다가온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유예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을 연장하는 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한 것입니다. 300만 명을 넘는 이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며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 현장에는 존엄하고 평안한 죽음만 있지 않았습니다. 연명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하기로 한 환자 중 절반에 가까운 환자가 임종 직전까지 연명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임종과정’이라는 판단을 내리기 두려운 의사들은 결정을 미루고, 가족 전원 합의를 요구하는 법 조항은 여러 딜레마를 남겼습니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마지막을 보낼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고 있다는 역설이, 한국일보 탐사보도팀의 취재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이 책은 한국일보 탐사보도팀이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기록한 결과물입니다. 남겨진 가족의 증언, 결정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의료진의 고백, 제도 바깥으로 밀려난 환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이 책이 그 대화를 조금 더 일찍, 함께 꺼내 놓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p23
“이 치료, 계속하고 싶어?”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도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단어만 바꿔서 같은 질문을 던지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바뀌었나, 아니면 의식이 명료하지 않나. 알 길이 없었다. 이날 시아버지가 연명의료 중단을 마음먹고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가족 전원 합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p72
복잡한 절차도 의료진이 제도를 외면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김진희 간호사는 “복잡하다, 내가 이거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살릴 환자도 많은데 죽는 환자까지 뭘 해야 되느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제도 도입 전 병원에선 DNR(Do Not Resuscitate·심폐소생술 금지)이란 병원 자체 서식을 활용해 왔다. 언뜻 연명의료결정과 유사해 보이지만, 법적 근거는 없다. 이행절차가 단순하고 담당 의사와 환자 가족 간 합의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임종 직전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주로 작성하곤 했다.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 확인, 환자의 의사 표시 혹은 가족 전원 합의 등 절차가 복잡하다. 유 교수는 “‘우리 이 치료 하지 맙시다’라고 얘기만 하면 됐던 절차가 꽤나 복잡해진 것”이라며 “익숙하지 않은 의료진은 여전히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이행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p117
혜영 씨는 끝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었지만, 병원은 계속 보호자 의견을 물었다. 가족이 모여 결정을 뒤집었지만, 제대로 정확히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법은 분명 가족 전원이 합의할 경우 철회, 변경, 중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땐 그 사실을 몰랐다. 따지고 보면 모두의 잘못이다. 혜영 씨는 여전히 후회 중이다. 중환자실에서 보랏빛으로 변해 퉁퉁 부은 얼굴로 아빠는 얼마나 아팠을까. 남편을 떠올리며 뒤척이긴 춘희 씨도 마찬가지다. ‘원망 듣더라도 말렸어야 하는데.’ 중환자실의 남편은 고개를 가로로 휘젓는 느낌이었다. 입을 움찔할 때는 그냥 빨리 가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며 팔, 급기야 온몸이 터질 것만 같이 부어오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영정을 어루만질 때마다 하는 생각은 하나다. ‘다시 만나면 미안하다 꼭 말해 줄게. 마지막을 그렇게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
한국일보 기자. 언어학·언론정보학을 공부했다. 2009년 입사 후 사회부, 정책사회부, 문화부, 정치부, 기획취재부 등에서 일했다. 사람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쓸 때 두근거린다. 작은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기록자로 살고 싶다. 동료들과 『전관예우 비밀해제』, 『민간인 사찰과 그의 주인』, 『디어 마더』를 썼다.
한국일보 기자. 2017년 입사 후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쳐 현재 산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취재하고 기사 쓰는 삶을 반복하다가, 엑설런스랩(기획취재부)에서 긴 호흡으로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쓴 기사를 바탕으로 단행본 『방치된 믿음』 집필에 참여했다. 쉽게 쓰이지 않지만 쉽게 읽히는 기사를 쓰고 싶다.
한국일보 기자. 2022년 입사 후 사회부 사건팀과 엑설런스랩을 거쳐 현재 사회부 법조팀에서 일하고 있다. 좋은 선배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말하기보다 먼저 듣는 기자,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기자보단 한 사람의 기억 속에 평생 남는 기자가 되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방치된 믿음』 집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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