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나는 비행기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말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두 여성, 이들이 밝히는 입양신화의 민낯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두 소녀 에바와 꿀마이,
뭉뚱그려진 입양 서사가 아닌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다
‘김남숙’과 ‘김미인’은 1975년 10명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다. 마치 잘 포장된 과일 바구니처럼, 캐리어 속에 푹신한 담요를 두른 채 놓여 있던 두 아이는 낯선 백인 가족의 품으로 건네졌다. 그 후 남숙은 ‘에바’, 미인은 ‘꿀마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에바와 꿀마이, 두 가정은 매년 서로를 방문했고 두 소녀는 펜팔 친구가 된다. 그러나 에바가 열두 살이 되던 해, 편지는 갑자기 끊긴다. 그들은 30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만난다. 오랜 공백 끝에 마주한 자리에서 꿀마이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겪은 폭력과 상처를 털어놓고, 에바는 그 이야기를 듣고 덴마크에서 입양아로 성장하는 경험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성의 궤적은, 입양 이후의 삶이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언론과 미디어가 반복해온 단일한 ‘입양 서사’에 맞서, 이들은 각자의 기억과 언어로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쓴다. 그 과정에서 꿀마이는 자신의 옛 이름을 되찾고, 스스로를 ‘민 킴’이라 새롭게 명명한다.
국가는 선장이었고 입양기관은 노를 저었다
입양산업의 불편한 진실
1960년대 이후 최소 20만 명의 한국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었다. 2025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들 중 다수가 신원과 가족 정보가 허위로 작성되거나 왜곡된 채 해외로 보내졌음을 공식 확인했다. 또한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입양 보낸 부모의 60% 이상이 입양의 의미와 영향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신필식 서경대 여성학 박사는 “국가는 선장이었고, 입양 기관은 노를 저었다.”고 표현한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개인정보공개 청구가 가능해졌으나, 친생부모 개인정보 보호 규정과의 충돌, 복잡한 관료적 절차 등으로 인해 입양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바 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아가 아닌데도 고아로 기록된 채 입양되었던 그가 한국 방문에서 접한 입양 서류에는 한국 부모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입양기관은 에바가 버려진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사본 제공이 허용되지 않았고, 이후 제도는 더욱 강화되어 가족의 동의 없이는 열람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호적과 생일, 가족 정보까지 왜곡된 기록 속에서 그는 지금도 일상적인 사회 활동을 위해 그 거짓을 ‘사실’로 반복해야 한다. 에바는 한 인간의 출생과 뿌리에 대한 진실은, 그 당사자에게 결코 의도적으로 숨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의 뿌리를 위하여
에바 틴드의 문학세계에서 ‘뿌리’는 반복해서 호명되는 핵심 주제다. 전작 『뿌리』에서는 자신의 근원과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한국계 덴마크인과 그의 딸이 등장한다. 『민 킴』에서는 에바 틴드가 뿌리에 천착하는 이유가 비로소 드러난다.
작가는 입양인의 자녀들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상실을 목격했다. 모국과의 단절을 원하는 입양인 부모가 자녀에게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꺼내지 않으려 해, 홀로 고뇌하고 모든 감정을 감당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혈통의 땅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외로움에 울고,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의 일부분을 발견하고서도 그것을 함께 나눌 이가 없어 또다시 운다. 그 아이들의 상실과 혼란, 곧 지워진 뿌리에 대한 고통은 작가 자신이 겪은 고통보다도 더 가혹하게 다가왔다. 에바에게 뿌리를 찾는 일은 결국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한 세대가 외면한 문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넘겨진다. 그 문 앞에서 홀로 서성이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에바 틴드는 계속해서 쓴다.
거짓, 은폐, 함정으로 점철된 입양신화
입양은 ‘구원서사’가 아니다
에바 틴드는 이 소설을 통해 수십 년간 강요되어온 입양신화에 반기를 든다. “감사해야지, 넌 죽을 수도 있었잖아”라는 말과 함께 ‘구원받는 유색인 아이’라는 서사를 내면화하도록 강요받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이 신화는 개인의 경험을 지우고, 어떤 고통을 겪었더라도 ‘감사해야 한다’는 자기 검열을 강요한다. 에바와 민 킴은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내면화된 서사를 해체하고 다시 사유한다.
민 킴은 성인이 된 후 입양 가족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냈는데 이는 성장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다. 민 킴만이 아니다. 입양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한 입양인들은 존재하지만, 모국의 입양 기관도 수용국의 입양 기관도 이를 감지하거나 막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아이를 보내는 일에는 촘촘한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보내진 아이를 지키는 일에는 그 어떤 시스템도 없었다.

단풍잎 드라이버
영양제 신봉자
종합내과, 문을 열다
이상적인 파트너
혈압음모론
기적의 메소드
p34_꿀마이, 나는 너만큼 급진적인 사람이 아니다. 너는 네가 배정받었던 가족 구조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순응하며 살고 있다. 그 순응 속에는 기쁨과 사랑도 함께 있으니까. 너는 이제 조금 더 온전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 살아남기 위해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던 네 안의 그 부분이 이제 해방되었으니 말이다.
p73_우리 삶에서 실제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우리가 차 안에 앉아 있는 동안 아빠에게 기억의 물결이 밀려왔다는 것. 아빠에게 그 농가는 가문의 뿌리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이었다.
p123_나는 못생긴 아이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변해 가는 시절을 맞았다. 역설적으로 예전에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반하기도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모델로 일하고 있었고 내가 동양적으로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진 않았다. 내 안에서나 세상에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달라서 눈에 띄는 존재였다.
p180_나중에 막내 아이를 낳고 그 아이와 함께 또다시 금발의 공주가 나오는 그림책을 읽던 중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매직펜을 들어 그 금발 공주의 머리칼을 검은색으로 칠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 책을 읽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스며드는 듯한 짜릿한 기쁨을 느꼈다.
p224_‘누군가를 미치게 만든다는 것’. 그들이 너에게 했던 것. 과연 그것이 이 세상 안에 담길 수 있는 일일까. 네 목소리를 통해 전해진 네 이야기가 내 몸 안으로 옮겨 와 자리 잡는다. 나는 네가 변해 갔던 것을 기억한다. 무언가가 너를 바꾸었다. 우리가 함께 웃고 떠들며 내 방에서 그림을 그리던 기억으로 되돌아가 보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희미해지고 긴 문장으로 말하기를 멈추고 느리게, 더 느리게 말하기 시작했다.
p305_제 서류에는 제가 고아라고 적혀 있었어요. 저는 가족들이 존재한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덴마크 엄마가 저에게 말씀해 주신 기억이 있어요. 제가 두 살 때 제 사진을 덴마크의 입양기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요. 그건 단지 형식적인 절차라고 들었어요. 한국 입양기관이 아이들이 덴마크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우리 덴마크 부모님도, 저도, 그 사진들이 한국 가족들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p401_Oma, 나는 평생 당신의 얼굴을 지니고 살아왔다. 엄마 또한 나의 얼굴을 품고 살아왔으며 여전히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 알츠하이머가 엄마를 찾아옴으로써 나는 다시 한번 당신을 잃었다. 나는 한때 나의 입양이 다행스러운 사건이었고 사랑의 행위였으며 하나의 모험이었다고 들었다. 버려지고 거부된 아이가 소망받는 아이가 되어 새로운 어머니와 새로운 가족, 새로운 문화, 새로운 미래, 새로운 나라를 얻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이 결코 온전한 진실이 아님을 안다. 진실은 훨씬 더 거대하고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렵다.
p497_내가 글을 쓰며 바라고 있는 것은 결국 대면 이해, 수용, 그리고 용서일까? 눈을 감으면 수천 개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많은 얼굴들을 과연 어떻게 서로 구분할 수 있을까? 오늘날에도 입양이 여전히 합법적 관행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전 세계에 흩어진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이미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직 호주에서만 국가가 그러한 침해적 관행에 개입했음을 인정했고 피해자들의 빼앗긴 슬픔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2009년 『도(Do)』라는 시집으로 데뷔했다. 2010년에는 이 작품으로 ‘덴마크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클라우스 리프비예르그(Kluas Rifbjerg)’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작가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을 출간했는데, 소설 『한(Han)』은 입양된 여성이 생부의 고향인 북한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덴마크방송 소설상 후보에 오른 소설 『뿌리(Ophav)』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별과 여행을 거듭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만나본 적 없는 한국인 할아버지를 찾아 마라도로 향하는 수이가 등장한다. 수이의 이야기는 『레몬마운트(Citronbjerget)』로 이어진다. 작가는 2015년, 덴마크국립예술후원금을 받았고, 2016년에는 ‘오토 룽’ 작가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강원국제트리엔날레’에 <엄마>라는 단편영화를 전시하였다. 에바 틴드의 작품은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유럽에서는 독일 로볼트(Rowohlt)와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 같은 주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덴마크 출신 문학 번역가이자 연구자. 코펜하겐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현대 한국 여성문학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을 덴마크어로 번역했다. 현재 덴마크 국립 백과사전 lex.dk에서 한국문학 관련 항목을 집필하고 있고 한국 콘텐츠 전문 기업에서 드라마와 예능 등 영상 자막의 번역과 품질 감수를 담당하며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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