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듯 누구에게나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 가운데 하나지만 그 이름이 가리키는 모습은 단일하지 않다. 헌신적인 양육자로, 공동체의 지혜를 전하는 어른으로, 혹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과거의 여성으로 할머니는 기억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의 모습으로 상상된다. 우리는 어떤 할머니를 잘 알지만, 동시에 어떤 할머니는 잘 모른다.
『모르는 할머니』는 현실 속의 할머니를 온전히 대면하며 그 얼굴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책이다. 일곱 명의 여성 필자들이 각자의 삶에서 ‘할머니’라는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때로는 유산이고 때로는 굴레인 가족 관계를 되짚는 동안 한때는 몰랐던 할머니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욕망과 삶의 다양한 형태, 나이 차를 가로지르는 우정과 사랑, 돌봄과 유대의 의미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할머니라는 존재는 하나의 인물을 넘어 현재의 삶과 만나는 여러 갈래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러므로 할머니를 골똘히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시대, 다른 연령의 여성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곱 편의 에세이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며 여성의 시간을 새로이 읽어낼 하나의 지도를 이룬다. 이 지도를 따라 거닐며 저마다의 할머니와 마주할 독자들을 초대한다.
여는 글
이야기 할머니, 할머니 이야기 | 김윤영
유미는 시니어가 취향 | 김유미
어떤 내리사랑 | 김보람
쓸모의 문제: 우정을 지속하게 하는 조건에 관하여 | 하라
나의 엄마의 엄마 | 이재임
순례 씨는 오늘도 살아간다 | 정인혜
과수원 과부들과 나 | 김연재
돌아보면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속에 이미 기미가 있었다. 피난 시절 만난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은 이야기나, 부산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떡 장사에 나선 이야기는 그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아니라 할머니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서사였다. 할머니는 분명 이야기의 힘을 아는 사람이었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거침없이 자신을 세웠다. 그렇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한 조각은 할머니가 스스로를 짱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할머니를 할머니로만 여겼던 나의 시선이 특정 지점에서 그에 대한 이해를 굴절시켰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야기 할머니,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들이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마실 때도, 담배를 입에 물고 화투를 칠 때도, 그들이 남편과 자식새끼들을 욕할 때도 나는 항상 그들의 무릎이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서 떨어지는 때가 있다면 화투판이 끝날 때 개평으로 동전 몇 닢을 받아 문방구로 달려가는 순간이 다였다. 그렇게 하루 종일 붙어 있었으니 내가 생일을 맞아 잔치를 한다면 케이크를 썰고 김밥과 잡채를 나누어 먹어야 하는 이들은 인수덕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 「유미는 시니어가 취향」
할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그의 피를 물려받은 자손이라는 생각보다는 어쩌다가 운 나쁘게 한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가 떠오른다. 거미줄 비슷한 그런 그물.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줄에 걸려 서로를 바라본다. 우리는 단숨에 내가 너의 할머니이고 내가 당신의 손주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 「어떤 내리사랑」
학창 시절 할머니는 운동회날에도 그냥 김밥을 사 가면 된다는 부모님의 전언을 무시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내 김밥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러웠다. 그러한 태도가 노년의 여성에게 허락되는 몇 안 되는 관계 맺기 방식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았다. 문제는 내가 김밥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노후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 「쓸모의 문제: 우정을 지속하게 하는 조건에 관하여」
60대에 사별로 혼자가 된 뒤, 할머니 곁은 동네 늙은 여자들의 동맹이 채웠다. 그중 가장 밀접하게 자리를 채워준 이는 단연 금복할머니였다. 여인숙 ' 금복집'을 운영해서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 금복이'라고 불리는 이다. 할머니는 금복할머니가 방에 오는 족족 로션이며 파스며, 얼려 둔 생선이 없어진다고 불평했지만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들락거리니 다행"이라고 했다. 마치 가족처럼, 또는 자연재해처럼, 이웃 또한 할머니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듯했다.
- 「나의 엄마의 엄마」
순례 씨는 침대에 누워 청포도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는 상상을 한다. 너무 달지도 쓰지도 시지도 않은, 모든 맛이 적당한 청포도 사탕. 하지만 요양원에서는 사탕을 혼자서 먹지 못하게 한다. 잘못 삼키면 기도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빨리 녹는 초콜릿만 혼자서 먹을 수 있다. 입이 자꾸 써서 잠깐씩 단 것을 물고 싶은 것인데 그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장에 손이 닿을 수만 있다면 요양보호사를 귀찮게 하지 않고도 꺼내 먹을 수 있을 텐데. 순례 씨는 이런 생각을 하며 옆 할머니를 부러운 듯 본다.
- 「순례 씨는 오늘도 살아간다」
남자들이 심장마비와 심근경색, 뇌출혈과 음주운전, 뱀술과 벌술, 실족사와 사고사, 익사와 주먹다짐으로 죽어버리는 동안 여자들은 돌연한 죽음의 다음 페이지를 지긋지긋하게 살아냈다. 과부들은 아들을 극도로 사랑했고 남자 앞에서 씁쓸함과 기대가 섞인 미소를 지었으며 남자 있는 여자들을 갖가지 이유로 헐뜯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속였고 신세 한탄 속에서 영원히 썩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인류 전체를 구원할만한 힘으로 삶을 살았다.
- 「과수원 과부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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