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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00원, 3권 펀딩 / 목표 금액 1,000,000원
펀딩 중 (마감 2026-03-20, 출간예정 2026-04-10)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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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전대미문의 폭력도 지울 수 없었던 현(絃)의 노래
― 홀로코스트의 바이올린, 인간과 음악에 관해 묻다

바이올린은 수 세기 동안 유대인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온 악기다. 이 악기에는 유대인들의 민족혼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은 유대 민족뿐 아니라 이들의 모든 문화유산까지 말살하려 했으며,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홀로코스트 시기 유대인들의 바이올린은 수용소와 게토를 거치며 주인을 잃거나, 사라지거나, 도둑맞은 것들이 태반이었다. 또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해도 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거나 크게 손상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바이올린 역시 홀로코스트의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였던 셈이다.

이스라엘의 현악기 장인 암논 바인슈타인(1939~2024)은 1990년대부터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이 연주하거나 소유한 바이올린들을 수집해 정성껏 수리하고 보존하는 ‘희망의 바이올린(Violins of Hope)’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유대인들의 삶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악기들은, 이들의 주인만큼이나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독일과 아우슈비츠를 넘어 팔레스타인과 모리셔스섬,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지에서까지 이어진 끈질긴 박해 속에서 바이올린은 유대인들에게 목숨과 생계를 유지하게 한 생존과 구원의 수단이자, 나치와 불의에 맞서는 정의와 저항의 수단이기도 했다.

이 책은 주인을 잃고, 버려지고, 부서지면서도 인류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살아낸’, 잊힌 줄 알았으나 끝내 잊히지 않은 악기와 음악, 그 너머 인간에 관한 기록이다.



출판사 서평

차마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었던
어떤 음악 이야기


“우리는 순전히 살아남으려고 연주했어요. 우리는 지옥에서 연주했지요.”
― 하인츠 ‘코코’ 슈만 (독일의 재즈 음악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인간에게 음악이란 과연 무엇일까. 즐거움일까, 아니면 고통을 달래는 수단일까. 《네 줄 위의 희망》을 읽다 보면 이러한 질문을 거듭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이야기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보다 앞으로 이야기할 것이 여전히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바이올린은 수 세기 동안 유대인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유대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클레즈머(Klezmer) 악단부터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바이올린은 유대인 정신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나치 독일에 바이올린은 유대 민족과 더불어 말살해야 할 대상이었고, 억압이 심해질수록 바이올린은 유대인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될 악기가 되었다.
이 책은 이제껏 조명된 적 없었던 홀로코스트 시기 유대인들의 바이올린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류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 시기에, 바이올린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실재(實在)한 한 줄기 희망이었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울려 퍼진 바이올린 소리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존재해야만 했던 음악으로 남아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네 줄 위에 놓인
홀로코스트 시기 유대인들의 삶


총 6장(章)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바이올린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브로니스와프 후베르만은 현(現)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신(前身)인 팔레스타인 오케스트라를 결성함으로써 홀로코스트라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유대인 연주자들과 그들의 가족 1천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1장). 에리히 바이닝거는 팔레스타인 이주 중, 영국 군함이 이민자들을 가로채는 바람에 모리셔스섬에 5년 가까이 발이 묶인 유대인 난민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2장). 그런가 하면 나치가 점령한 노르웨이에 확산된 반유대주의로 박해받은 에른스트 글라저는 스웨덴으로 건너가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노르웨이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4장), 파이벨 비닝거는 게토화된 루마니아 땅에서 바이올린 연주로 16명에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을 먹여 살렸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에 재능이 남달랐던 모텔레 슐라인은 가족이 나치에게 처참하게 몰살당한 뒤, 소년 게릴라가 되어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복수를 감행한다(6장).
바이올린은 말이 없지만, 이들의 주인이었던 유대인 연주자들이 밟아온 삶의 궤적은 악기에도 고스란히 새겨졌다. 홀로코스트로 참혹하게 목숨을 잃거나 재앙을 피해 떠돌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이러한 상황이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난의 연속으로 이들을 몰아넣었다. 당시에 이루어진 유대인 박해는 독일과 수용소에서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노르웨이,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에서도 자행되었으며 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에서, 죽음의 행군에서, 심지어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살해당한 수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지쳐서, 병에 걸려서, 굶어서 죽어 갔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숫자로 무심히 스쳐 가는 생명들은, 이 책에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삶이 곧 죽음인 곳에서
진정한 삶이었던 음악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음악은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 유대인들의 바이올린이 겪은 수모는 장마다 기록되어 있지만,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아우슈비츠와 음악을 다룬 3장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모순된 아름다움〉일 것이다. 수용소와 음악,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의 관계를 증명하듯 이 책은 수용소에 다양한 오케스트라가 있었음을 증언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오케스트라 대다수가 나치 독일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강제로 결성한 것이라는 점이다.
수감자들에게 음악은 분명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비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숨겨와 수용소 안에서 몰래 연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 수감된 유대인들은 적어도 마음만큼은 수용소 철조망 너머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수용소 오케스트라에서 유대인들은 나치의 명령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악기를 조금이라도 연주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원치 않는 연주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연주를 멈추는 순간 이들의 운명은 여지없이 가스실행(行)이었기에, 심지어 단원들은 그때그때 급한 대로 쥐여주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수감자들이 행군할 때나 나치 군인들의 오락을 위해, 심지어 동포들이 처형되는 바로 옆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쉴 새 없이 연주를 이어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케스트라 단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음을 면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음악이 이들에게 단 며칠이라도 살날을 보장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 인간들을 위해 연주했고, 나치 군인들이 당시에 가장 즐겨 듣던 연주는 이들이 증오해 마지않은 ‘유대인’들이 연주하는, ‘미국’과 ‘유대인’들의 음악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모순투성이의 역사와 인간 행태의 한가운데에는 이렇듯, 음악이 있었다.

한 ‘루시어’의 신념이 되살려낸,
잊힐 뻔한 다른 세계의 목소리


“홀로코스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수용소 입구에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연주했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바이올린들은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목소리인 셈입니다.”
― 암논 바인슈타인


이 책에 등장하는 바이올린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무엇보다 암논 바인슈타인의 의지와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암논은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바이올린을 제작하고 수리하는 ‘루시어(luthier)’가 되기로 결심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현악기 장인이 된다. 1980년대, 아우슈비츠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한 남성이 바이올린 수리를 맡기러 어느 날 찾아온 일을 계기로, 그는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이 소유하거나 연주한 바이올린을 찾아내 삶을 되찾아 주기로 마음먹는다. ‘희망의 바이올린(Violins of Hope)’이라는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비극적인 역사와 함께한 바이올린들을 손에 넣고,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쟁 통에 바이올린들은 주인을 잃거나, 사라지거나, 도둑맞은 것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산전수전을 다 겪고 암논에게 온 바이올린조차 크게 부서지거나 망가져, 연주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암논은 이 바이올린들을 정성껏 고쳐 악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애써 수소문해 주인을 찾아주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암논에 의해 목소리를 되찾은 악기들은 전문 연주자들이 큰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알리기에 이른다.
2024년 암논 바인슈타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 프로젝트는 유대인뿐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에게 지금까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사실 암논이 남다른 애정을 가진 바이올린은 과르네리나 아마티 같은 고가의 악기가 아니라, 이름 없는 연주자들이 연주한 소박하고 평범한 바이올린이었다. 암논이 보기에 역사적 의미와 절절한 사연이 담긴 이 악기들의 가치는 단순히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웠다. ‘수용소에서 연주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러한 바이올린들이야말로 자칫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다른 세계의 목소리들이었던 것이다.

차례

프롤로그: 암논의 바이올린들-여정의 시작

1장: 바그너 바이올린-생존의 수단
2장: 에리히 바이닝거의 바이올린-인내의 동반자
3장: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모순된 아름다움
4장: 올레 불의 바이올린-정의의 사도
5장: 파이벨 비닝거의 바이올린-영원한 친구
6장: 모텔레 슐라인의 바이올린-마지막 저항

에필로그: 시몬 크론골트의 바이올린-계속되는 여정

감사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편집자의 말

또 한 권의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수없이 쏟아져나온 책들의 또 다른 변주(變奏)라니, 이 책을 꼭 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원서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인 201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사이 이 책을 있게 한 이스라엘의 현악기 장인, 암논 바인슈타인은 2024년 3월에 작고했고요. 그럼에도 왜 이 책을 코뮤니옹의 첫 책으로 독자 여러분께 선보이게 된 것일까요. ‘편집자의 말’을 쓰며 저 자신도 그 이유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유대인들의 것이었으나 홀로코스트 시기에 갖가지 사연으로 행방불명된, 혹은 운 좋게 살아남아 주인에게 돌아간 바이올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생존’이 그 자체로 삶의 목표였던 시대에 ‘바이올린’이라니, 어쩌면 불경하다고까지 느끼실 수 있을 듯합니다. ‘음악’이라는 것을 말하기에 홀로코스트는 너무나 어둡고 끔찍한 사건이었으니까요.

홀로코스트에서 음악은 사실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었던’ 예술이었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부조리한 것이었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슬픔을 달래는 것이 음악이라면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은 음악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야말로 당시에 유대인들과 나치가 음악을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게 만든 지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의 쓸모’는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에게 각각 전혀 달랐지만 말이지요.

홀로코스트와 바이올린에 관한 이 이야기에서 저는 이 ‘절실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음악이, 그리고 ‘삶’과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고를 읽으며 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마음을 짐작했습니다. 그토록 끈질겼던 나치의 탄압 속에서도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유대인이 남긴 모든 산물(産物)을 금지하는 법을 나치조차 스스로 거듭 어길 수밖에 없게 만든 음악, 그리고 예술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구태의연하다는 우려를 무릅쓰고 ‘예술의 힘을 믿으며’,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코뮤니옹의 첫 책으로 《네 줄 위의 희망》을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왜 이 책을 내게 되었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어떤 질문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마땅한 물음이 있다고 말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책 제목인 ‘이것이 인간인가’처럼, 홀로코스트의 역사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에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바이올린들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 이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들으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책 속에서

어떤 음악가를 남길지, 어떤 음악가를 내보낼지는 전적으로 새로 창설된 ‘제국 음악원(Reich Chamber of Music)’이 판단했다. 제국 음악원은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가 만든 ‘제국 문화원(Reich Chamber of Culture)’ 산하 7개 부처 중 하나로, 독일 내(內) 모든 전문 음악 활동을 관리·감독했다. 독일 음악의 우월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제국 음악원은 바흐, 베토벤, 브람스, 하이든, 모차르트, 바그너처럼 ‘훌륭한 독일 음악’만 연주되도록 음악 활동을 통제했다. 반면, 재즈나 무조 음악과 말러, 멘델스존, 마이어베어 같은 유대인 작곡가의 작품은 ‘퇴폐 음악’으로 분류해 철저히 금지했다. 또한 공연할 음악뿐 아니라 연주자도 통제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급여를 받으려면 제국 음악원의 회원이 되어야만 했지만, 유대인은 가입 자격이 없었다.
현악기, 특히 바이올린을 향한 사랑이 남달랐던 유대인들이 전문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부문에 유독 많았다는 사실은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전문 음악인들을 해고하기 시작하자, 오케스트라의 빈자리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났다. 독일 작곡가 게오르크 헨첼(Georg Haentzschel)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자리가 점점 비는 걸 보며’ 유대인 음악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고 회상했다.

― 〈1장 ‘바그너 바이올린-생존의 수단’〉


이렇듯 나치의 탄압이 점점 거세지던 시기에도, 베를린 문화연맹의 오케스트라는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 유대인 연주자와 관객이 평범한 삶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은 공연장뿐이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공연은 정신적 저항이었다. “악기를 연습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귄터는 무대에 오르며 되뇌었다. “내게 주어진 사명은 연주다. 연주를 할 수 있는 한, 멈추지 말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추악한 시대에 저항하는 가장 훌륭한 무기는 아름다움이다.”
1941년 무렵, 유대인 문화연맹은 와해되기 직전이었다. 일류 연주자들은 독일을 떠났고, 남은 연주자들은 그만큼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일 수 없었다. 유대인 음악가 중에는 현악기 연주자가 많아서 마땅한 관악기 연주자를 찾기도 힘들었다. 경제적 빈곤과 나치의 박해, 해외 이주로 관객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나치의 손에 살해당한 음악가와 관객도 있었고,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前)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렝스펠트(Josef Lengsfeld)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었다. 1941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전면전으로 치닫자, 나치는 유대인을 위하는 척을 멈추고 유대인 문화연맹을 강제 해산했다.

― 〈1장 ‘바그너 바이올린-생존의 수단’〉


화장실 건물에는 한번에 20, 30명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치퍼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연주를 감상할 수 있도록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연주회를 열었다. 수감자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숨죽인 채 자리에 앉아 짤막한 공연을 감상했다. 다하우 수용소는 수감자들의 활동을 하나하나 감시했고, 음악 감상도 엄격히 금지했다. 허가 없이 공연을 열거나 관람하다가 들통나면, 고문당하거나 여차하면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음악은 수감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차원을 넘어서, 나치에게 빼앗긴 존엄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수감자들은 나약하지도, 무력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치의 박해에 항거하는 존엄하고, 강인하고, 단결된 존재였다. 일주일에 15분으로 지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비참한 강제수용소가 아닌 아름다운 음악에 둘러싸여 있었다.

― 〈2장 ‘에리히 바이닝거의 바이올린-인내의 동반자’〉


단원 가운데 남달리 연주가 뛰어난 80명은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활동하면서, 일요일 오후와 공휴일에 나치 장교와 경비대, 동료 수감자들을 위해 따로 공연을 열었다. 주로 연주하는 곡은 춤곡과 인기 오페라·오페레타(operetta,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띠며 사회 풍자를 담은 짧은 오페라-옮긴이)의 발췌곡,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처럼 고전 음악 명곡이었다.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Rudolf Höss)는 틈틈이 공연을 열어 자신이 교양이 풍부하며 예술을 아끼는 사람임을, 수용소를 방문한 손님과 가족들에게 과시했다. 덕분에 나치 친위대는 무료로 공연을 감상하고 격조 높은 문화생활을 누리며 고상한 기분을 만끽했다. 단원들은 이때를 틈타 수용소 관리자에게 음식과 담배를 얻어냈다. 동료 수감자들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잠시나마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여유를 누렸다. “독일군은 수용소 주위에 철조망을 둘러 아무도 탈출하지 못하게 했지만, 눈을 감는 순간 나는 철조망 너머에 있었습니다.” 한 수감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우리가 수용소를 벗어났음을 그들은 까맣게 몰랐겠죠.”

― 〈3장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모순된 아름다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음악을 통해 수용소 관리자들과 가까워진 것보다 그들을 직접 감시하는 나치 친위대원들과 인간적으로 유대를 쌓은 점을 더 크게 느꼈다. 단원들은 그들을 나치 친위대의 줄임말인 ‘에스(S)’에 사람을 뜻하는 글자 ‘맨(man)’을 붙여 ‘에스맨(S man)’이라고 불렀다. “에스맨이 음악, 특히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면, 이상하게도 더욱 인간다워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부드럽고, 한결 다정했으며, 같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듯 대화할 수 있었다.” 회고록에서 시몬은 이렇게 적었다. “때로는 어떤 선율을 들으며 오래 보지 못한 연인이나 소중한 이를 떠올렸다. 두 눈은 인간의 눈물을 닮은 액체로 물들었다. 그때 우리는 어쩌면 전부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야만 행위를 서슴지 않는 이런 인간들이 가슴 깊이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안다는 사실이 시몬은 의아했다. “음악을 이토록 사랑하고,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인류에게 이토록 잔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 〈3장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모순된 아름다움’〉


낮에는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던 편협한 독일 장교와 경비병들이, 밤이 되면 정부가 금지한 음악을 즐겨 듣는 감성적인 사람으로 바뀌는 모순을 연주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나치 친위대는 이 음악에 정말 미쳐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못살게 굴던 인간들을 위해 저녁이 되면 우리는 음악을 연주해야 했죠.” 헨리 마이어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을 위해 어떤 곡을 연주했냐고요? 미국 곡들이었죠. 미국인들은 나치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작곡가는 누구였을까요?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과 어빙 벌린이었습니다. 둘 다 유대인이었죠. 연주자는 누구였을까요? 역시나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런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면서 감상에 푹 젖어 눈물을 줄줄 흘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나치 친위대, 다름 아닌 우리에게 고통을 주던 인간들이었습니다. 기괴하기 짝이 없었죠.”

― 〈3장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모순된 아름다움’〉


에른스트 부부는 노르웨이의 저명한 예술가들과 함께 자선 공연을 열어, ‘노르웨이를 위한 스웨덴 구호단(Swedish Aid for Norway)’을 스웨덴에서 지원했다. 지방의 구호 위원회가 모금 공연을 열고 싶다고 스톡홀름의 노르웨이 공관으로 연락하면, 교육 사무국을 통해 연주자를 알아보고 그곳으로 연주자를 파견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망명자들은 주로 ‘숲속의 소년들(Boys in the Woods)’을 위해 공연했다. ‘숲속의 소년들’은 스웨덴 국경 인근에서 숙식하며 노르웨이의 자유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는 대담한 젊은이들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경찰이 되겠다며 훈련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나치의 손아귀에서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노르웨이 저항 세력의 군사 훈련을 받았다. 에른스트를 비롯한 노르웨이 예술가들의 공연은 향수병에 걸린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한편, 고된 훈련을 감내하며 그들이 지키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에른스트는 공연을 통해 노르웨이의 독립을 돕고 노르웨이 국민에게 보답하며 뿌듯해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 〈4장 ‘올레 불의 바이올린-정의의 사도’〉


“가족을 아낀다면 오늘 내로 바이올린을 가져와야 할 거야.” 경찰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저승길에 바이올린은 아무짝에 쓸모없을걸.”
협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들어본 적 있나?” 경찰은 말하면서 아내 치치를 슬쩍 돌아보았다. “당신 남편이 가족이 아니라 바이올린을 선택한다면, 오늘 밤 당장 독일의 절멸 수용소로 갈 짐을 싸야 할 거야. 그럼 알게 되겠지. 지금 사는 곳이 실은 천국이었다는 걸.”
“그래, 딸아이를 까먹으면 안 되지.” 경찰은 말하면서 헬렌 쪽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너는 나와 가게 될 거야.” 경찰은 헬렌을 겁박했다. “고아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가 있거든.”
“딸이냐, 바이올린이냐.” 경찰은 말하면서 파이벨을 뒤돌아보았다. “네놈에겐 꽤나 어려운 선택이겠지.”
조금도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파이벨은 가방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마지막으로 연주했다. 소중한 친구에게 건네는 이별 노래였다. 파이벨은 보물처럼 여기던 바이올린을 경찰서에 가져다주었다. 돌아 나오는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 〈5장 ‘파이벨 비닝거의 바이올린-영원한 친구’〉


오후 3시 무렵, 군용 차량과 오토바이가 병사 식당 앞에 속속 도착했다. 식당 안은 정복 차림의 나치 친위대 고위급 장교들로 북적거렸다. 모텔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반주 소리는 접시가 부딪히고, 잔을 마주치고, 웃고 떠드는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장교들이 술기운이 거나하게 올라 시가를 뻑뻑 피워 대는 바람에 실내는 연기로 자욱했다. 모텔레와 피아노 연주자는 쉴 틈조차 없었다. 술에 취한 장교들은 탱고와 왈츠를 연주하라며 다그치는가 하면, ‘우리 노래’만 연주하라며 성화를 부리기도 했다. […]
모텔레는 끊임없이 바이올린을 켜느라 손가락 마디가 쓰라렸고, 자욱한 담배 연기 탓에 눈동자가 따끔거렸다. 하지만 연주를 멈추지는 않았다. ‘오늘이 네놈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날이야.’ 모텔레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장교들을 비웃었다. ‘마음껏 먹고 마셔라, 빌어먹을 독일 놈들아. 오늘이 네놈들 제삿날이다. 열심히 연주해줄 테니 마음껏 춤추어라. 폭탄이 터지면 갈기갈기 찢겨 시체조차 못 찾을 테니.’

― 〈6장 ‘모텔레 슐라인의 바이올린-마지막 저항’〉


복원되는 바이올린이 하나라면, 영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바이올린이 수천 대였다. 홀로코스트와 관련 있는 바이올린을 찾아 암논이 온 세상을 뒤져 수집한 악기 수십 대도 마찬가지다. 악기는 살아남았지만, 악기를 연주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연주자가 홀로코스트를 거치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마당에 바이올린의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아낼 길은 전혀 없었다. […]
암논이 보기에 주인이 없는 악기들은 대체로 게토나 강제수용소에서 연주된 듯했다. 바이올린 상판을 보면 손상된 흔적이 독특했는데, 대개 야외에서 바람이나 눈비를 잔뜩 맞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연주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아우슈비츠 본수용소에서 바이올린을 켰던 테오도르 리제(Teodor Liese)에 따르면, 비가 퍼부을 때 악기를 연주하고 나면 바이올린에서 물이 한 바가지씩 쏟아지기도 했다고 한다. 도저히 복구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바이올린들은 파손된 채로 보관했다. 그것은 홀로코스트가 수많은 악기를 망가뜨리고 목숨을 앗아갔음을 그 무엇보다 생생히 증언했다.

― 〈에필로그 ‘시몬 크론골트의 바이올린-계속되는 여정’〉


함께 살펴볼 만한 자료

★ ‘희망의 바이올린’ 프로젝트 공식 홈페이지 (https://www.violins-of-hope.com)

★ ‘희망의 바이올린’ 프로젝트 관련 다큐멘터리:
- https://www.youtube.com/watch?v=9LZkU_O7vrs (미국 WQED Pittsburgh 제작)
- https://www.pbs.org/video/wviz-pbs-ideastream-specials-violins-hope-strings-holocaust (미국 PBS 제작)

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지은이 | 제임스 A. 그라임스 (James A. Grymes)

미국의 음악학자이자 작가.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에서 음악 교육학 학사 학위를, 역사 음악학 및 음악 연주학 석사 학위를,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에서 역사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홀로코스트 시기의 음악과 음악가들의 삶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으며, 《네 줄 위의 희망》 이전에 홀로코스트에 저항했으나 훗날 나치 전범으로 거짓 고발된 헝가리 음악가 에른스트 폰 도흐나니(Ernst von Dohnányi)에 관한 책을 3권 냈다. 2026년 1월에는 《네 줄 위의 희망》에도 등장한, 음악가이자 게릴라 사령관으로 나치에 맞서 싸운 모셰 길덴만(Moshe Gildenman)의 이야기 《파르티잔의 노래(Partisan Song)》를 출간했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Charlotte)에 살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음악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네 줄 위의 희망》으로 2014년 홀로코스트 부문 ‘전미 유대인 도서상(National Jewish Book Award)’을 받았다. (홈페이지_https://jamesagrymes.com)



옮긴이 | 이민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잠시 일했다.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쓴다. 글밥 아카데미 영어 출판번역 과정을 마치고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세계 문화 여행: 폴란드》, 《잘 팔리는 스토리의 비밀》 등이 있다.


도서 정보



도서명: <네 줄 위의 희망>

- 분류: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음악이야기
국내도서 > 역사 > 전쟁/분쟁사 > 1차대전~2차대전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에세이

- 판형: 135*204mm / 약 360쪽
- 정가: 23,000원
- 출간 예정일: 2026년 4월 6일 (예상)
- 펴낸 곳: 코뮤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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