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사라질 수 없는 세계, 노동, 삶을 채굴하기
‘막장 인생’ ‘막장 드라마’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여럿일 테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라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미지가 아닌 일터로, 현장으로 ‘막장’을 기억하거나 여전히 ‘막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 경험을 가까이 공유하고 있는 밀접한 이들일 것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폐광으로 한국의 광산 지역은 빠르게 위축되어갔고, 현재 한국에서 광산의 기억은 마치 삭제된 것 같은 인상이다. 지금도 가행 중인 광업소가 있지만 한국에 광업소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산업이 사라지면 그 산업에 속했던 사람도, 노동도, 세계도 사라진다. 수도권-남성-지식인-엘리트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동안 저 사라지는 세계의 사람과 노동은 꾸준히 지워지거나 단편적으로 재현되어왔다. 평택(쌍용자동차), 거제(대우조선)처럼 거대한 특정 산업을 기반으로 한 특정 지역의 부흥과 쇠락은 광산을 기반으로 했던 많은 지역의 역사와 다르지 않으며, 자본의 이동과 흐름과 더불어 반복되어온 흐름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어온 동안 수많은 노동과 사람은 망각되어왔다.
이 책은 광산노동자의 가족이자, 양양광업소의 마지막 노조위원장의 자녀인 저자가 자신의 가족(그리고 광산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삶에서 출발해 기록한 광산, 폐광, 그리고 폐광 이후의 이야기다. 자전적 기록(회고록)만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의 노동이동사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았던 광산의 목소리, 삶, 싸움, 노동을 채굴한다. 성의 없고 단편적인 재현에 그친 광산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재하는 세계를 지탱해온, 또 지탱하고 있는 노동과 삶의 기록이다.
망각되어온 누군가의 노동과 삶을 존중하는 글쓰기란 무엇인가?
‘혀가 있지만 없었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을 기록하기에 저자는 광산이라는 산업을 중심으로만 기록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더욱더 지워졌던 여성의 목소리와 얼굴과 노동, 강원도/양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수도권 지역의 목소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채굴하는 이야기들은 또렷하여 단순하지 않다. 저 얽힘 안에서 교차하며 발생하는 불화와 선명히 설명할 수 없는 중첩된 욕망도 기록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누군가를 누락하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단순한 재현을 거부하고자 하는 분투이자 아래로부터, 변두리에서, 경계선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저자의 치열한 글쓰기의 결과다. 동시에 한국 사회가 관습적으로 누구의 얼굴과 목소리만을 향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지에 대한 성찰, 변방에 감응하는 감각을 요구하는 동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저자인 이라영 선생님과 다른 일로 통화를 하다 듣게 된 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광산에서 일했고, 그 광산이 폐광할 때의 마지막 노조위원장이었어요.”
오랫동안 이 저자의 글을 좇아 읽어왔고 연락도 끊기지 않고 해왔지만 처음 듣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날의 통화는 아주 길게 이어졌습니다. 통화의 마지막은 ‘그 이야기’를 꼭 책으로 내자는 약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자가 품어온 오랜 숙제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저자는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몇 차례의 퇴고를 거칩니다. 저자가 어떤 삶과 세계를 파고들어 채굴해 세상으로 나르는 동안 제가 한 일은 아마도 기다림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자가 캐온 세계에는 사라질 수 없는 존재들과 이 세계를 떠받쳐왔으며 여전히 떠받치고 있는 구체적이면서도 실재하는 노동이 있었습니다. 어떤 세계는 사라졌다고 여겨질 수 있겠으나, 그 세계를 살아냈던 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노동을 하며 자신의 삶과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저자와 저자의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요.
땅속의 돌을 캐내고 그 돌을 옮겨서 부수고 고르는 광산노동자들의 노동처럼 저자는 묻혀 있던 목소리와 삶을 캐내어 옮기고 골라 우리 앞에 내놓습니다. 땅 바깥에서 과잉대표되어 있던 삶(서울/남성/지식인)이 아닌 땅속 깊은 곳에 오래도록 묻혀 있어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던 삶(비서울/비남성/비지식인)입니다. 그간에 땅속 깊숙이 묻혀 채굴되기를 기다려온 어떤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막장 드라마’ ‘막장 인생’이라는 말이 명치 끝에 걸리는 누군가, 강원도 말씨가 ‘북한 말씨’ 같다며 히죽거리는 농담에 웃을 수 없는 누군가, 광산노동자의 얼굴이 검댕을 묻힌 곡괭이 든 모습으로만 매체에 등장하는 것이 황당한 누군가, 도끼를 들고서라도 카지노 유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누군가, ‘맨 젊은 여자들’이 광산에서 일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 지금도 한국에 가행 중인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들의 목소리입니다.
이 책이 저자에게 오래된 숙제였다고 한다면, 그 숙제를 보조하는 편집자로서 제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무겁고 또 소중한 약속이었다고 아주 조심스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캐온 쇳돌을 읽으며 이 세계를 만들어온 것은 무엇이고 누구인지, 함께 마주해보시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 이정신 편집자
서문 “다 죽었지”
1부. 철광산을 중심으로 살펴본 어느 가정의 노동이동labor mobility사
1장. 광산촌
2장. 선광부
3장. 잡역부
4장. 채광과 궤도부
5장. 진짜 일을 구할 때까지만
6장. 연좌제, 비국민 만들기
7장. 노조로 향하기
8장. 여자들의 ‘부업’
9장. 폭력과 배신, 억울함
10장. 속초항
11장. 양양을 떠나기
12장. 하숙촌
13장. 들불처럼 번지는 노동자대투쟁
14장. 언니들
15장. 밥상의 민주화
16장. 땅속의 시간과 공간의 정치
17장. 광산이 닫히다
2부. 광산 이후의 삶
1장. 직업을 바꾸며
2장. 스스로 위로하기
3부. 주검 위에 쌓은 문명
1장. 광물을 캐도 시신을 캐지 않기
2장. 노동의 몸
3장. 광산 문학에서의 재해
4부. 목소리들, 들을 수 있을 때 듣기
1장. 이중기 1943년생 : “죽어도 여기서 죽지”
2장. 이인수, 1952년생 : 광업은 내게 하늘이 준 직업
3장. 김기영, 1947년생 : “고한의 산증인이죠.”
4장. 광부의 딸, 김신애, 1984년생, 태백-목포-서울-제주-태백- ?
5장. 그리고 광부댁들 : 빨래터 수다를 증언과 연대의 목소리로
6장. 지금-여기의 광산
5부. ‘없어질 직업’의 사람들
1장. 노동이동
2장. “어차피 없어질 직업”
3장. 닫히는 광산, 열리는 광산
4장. 함께 가지 못하는 정치
5장. 부고들: 다들 일찍 죽었어
6장. 살아가는 사람들
나오며 : 다시 장승리에서
이 책을 쓰기까지
감사의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내가 기억하는 광산 사람들에 대해 뒤늦은 안부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다 죽었지”일 뿐이다. 한때는 가까웠던 어떤 세계에서 나는 멀어졌고,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 고모처럼, 그 세계도 사라지는 중이다. 하지만 정말 사라졌을까. 정말 다 죽었을까. 혹은 사라짐을 목격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상한 고모는 역시 이상한 방식으로 내게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나는 우리 가족과 광산의 관계를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떤 노동이 나를 키웠는가를 품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중략)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사회가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이동 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변화하는 산업 지형과 소멸하는 직업 속에서 견디고 이동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실제로는 거의 마주하지 않지만 은유 속에서는 풍성하게 존재하는 광산, 광부, 막장 등에 대한 실제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작업이다. 누군가의 삶을 은유 속에 가둘 수 없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았기에 이동과 사라짐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이 사회를 지탱해온 어떤 존재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추적하기로 한다.”
예술사회학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 문화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소수자의 목소리와 변방의 자리에 관심을 둔 글을 세상에 내보낸다. 지역, 노동, 젠더, 먹거리,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작가다. 저서로 《말을 부수는 말》 《정치적인 식탁》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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