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글항아리판 『정사 삼국지』(전8권)이 출간되었다. 이번 완역본의 의의는 국내 최초로 「배송지 주注」를 완역하고, 부록으로 『정사 삼국지 사전』을 덧붙여 완벽한 학술 번역을 추구했다는 데 있다. 번역본의 저본은 『흠정사고전서회요』 본 『삼국지』다. 이 판본은 역대 『삼국지 배송지주』 여러 판각본을 청나라 건륭 45년, 관에서 교감하고 건륭제의 열람을 위해 정식으로 출간하여 자금성 이조당에 소장한 선본이다.
이번 번역 작업의 관건은 ‘배송지 주’였다. 독서의 편의를 위해 진수의 『삼국지』를 번역한 부분과 배송지 주를 번역한 부분을 구분해서 본문에 같이 배치했다. 「배송지 주」가 들어가야 할 부분에는 “○” 부호를 붙이고 각 단락 아래에 역시 “○” 부호를 붙여 주注 전체 문장을 번역하여 수록했다. 배송지가 교감이나 비평을 위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대목은 별도의 단락으로 구별하고 전체 문장을 고딕체로 처리했다.
『삼국지』 원문의 각 권에는 열전의 주인공과 연관된 인물의 생애를 부기附記한 경우가 있다. 이 번역본에서는 부기한 인물의 성명을 “[ ]”로 묶어서 구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위서」 「촉서」 「오서」를 모두 「위지」 「촉지」 「오지」로 표기했으며, 한자는 다르지만 우리말 발음이 같은 지명과 인명은 출현할 때마다 한자를 병기해 혼동을 피했다. 관직 명칭에는 대부분 별도로 각주를 달지 않고 이 번역본 마지막 권 『정사 삼국지 사전』에 삼국 관직의 종류와 품계를 대략 설명하여 종합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중국의 삼국을 통일한 왕조는 사마씨의 진나라다. 그 진나라 저작랑을 지낸 진수가 정사 『삼국지』를 쓴 것이 280~290년 무렵이다. 이후 진수의 『삼국지』는 『사기』 『한서』 『동관한기』와 함께 ‘전4사’로 불리며 지식인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러나 진수의 『삼국지』는 필법이 지나치게 간결하고 근엄하여 삼국 역사의 진실한 면모와 다양한 자료를 빠뜨렸다는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또 진수는 당시 진나라 관리였으므로 진나라에서 기피하는 관점이나 내용은 소홀하게 다루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진수가 『삼국지』를 쓰고 약 140년 정도 지나서 남조 송나라 문제가 중서시랑 배송지에게 삼국의 서로 다른 기록을 채집하여 진수의 『삼국지』에 상세한 주석을 달라고 명을 내렸다.
배송지는 어명을 받고 당시의 각종 기록을 종합하여 429년 무렵에 『삼국지』 원본에 맞먹는 분량의 방대한 주석을 완성했다. 이것이 유명한 『삼국지』 「배송지 주」다. 역대로 학자들은 배송지가 인용한 서적이 무려 230여 종에 이르고, 그중에는 지금 전해오지 않는 서적이 다수임을 입증했다. 또 최근에 연구자들은 치밀한 집계를 통해 『삼국지』 원문의 글자 수가 36만여 자, 「배송지 주」가 32만여 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냈다. 『수서』 「경적지」의 정사 항목에 이미 진수가 짓고, 배송지가 주를 단 『삼국지』 65권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로써 「배송지 주」는 일찍부터 진수의 원문과 함께 읽혔음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독서계에는 「배송지 주」를 빼고 진수의 『삼국지』 원문만 번역한 판본이 2종 나와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 번역이 만연한 현실 상황에서 진수의 원문을 번역한 것만으로도 정사 『삼국지』의 가치를 인정한 훌륭한 업적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배송지 주」가 빠진 번역은 결국 정사 『삼국지』의 면모와 가치를 절반밖에 제공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 「배송지 주」에 포함된 풍부한 사료의 내용과 가치를 아는 분들은 『삼국지』 원문만 옮긴 기존 번역에 짙은 아쉬움을 표시하며 하루빨리 「배송지 주」까지 포함한 정사 『삼국지』 완역본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고 언급하곤 했다.
이미 역대 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진수의 『삼국지』 원문은 간결하고 근엄한 필치와 춘추필법에 가까운 엄격한 사관을 선보였지만, 진수가 처한 정치·사회적 상황 탓에 당시 권력자의 눈치를 보느라 응당 기록해야 할 역사 사실을 빠뜨린 경우가 많았다. 진수는 진나라에서 벼슬했기에, 한→위→진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정통으로 간주했고, 이 계보와 연관된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위·진에 관한 긍정적인 사료를 많이 인용하고 부정적인 사료는 종종 도외시하곤 했다.
조조가 중풍에 걸린 척 쓰러져서 자신의 숙부를 속인 행동이라든지, 낮잠을 제때 깨우지 않았다고 자신의 애첩을 죽인 일 등, 그의 간교함과 포악함을 드러내는 내용은 진수의 원문에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배송지 주」를 통해서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진수는 위나라 고귀향공 조모가 당시 실권자 사마소의 전횡에 맞서 일으킨 비장한 거병의 진상을 밝히지 않고 “5월 기축일己丑日(초7일) 고귀향공이 세상을 떠나니 향년 20세였다”라고만 기록한 후 태후의 입을 빌려 고귀향공이 대역무도한 패륜을 저질렀다고 언급했다. 고귀향공의 거병 진상도 「배송지 주」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이 진상을 「배송지 주」에 기록하지 않았다면 고귀향공을 시해한 가충과 성제의 만행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사례는 진수가 위·진 정통론을 고수하느라 일정 정도 역사의 진실에 눈감은 결과라고밖에 할 수 없다.
또 우리 고대사에 관한 기록인 「위지·동이전」에도 배송지가 여러 대목에 자세한 주를 달아서 진수 『삼국지』 원문의 누락 부분을 보충했다. 그중에서도 부여의 동명 전설은 우리에게 고구려의 동명성왕 주몽 신화가 그것에서 연원했음을 밝혀주고 있으며, 동옥저의 민며느리 풍속도 「배송지 주」에 처음 기록된 역사적 사실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삼국지』 원문의 부족한 점을 「배송지 주」가 보완하고 있으므로, 「배송지 주」를 제외하면 당시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기 어려움이 분명하다.
방대한 원문을 완역하고 『정사 삼국지 사전』 부록까지 엮어낸 것은 김영문 선생이다. 몇 년 전 그는 현전 ‘소설 삼국지’ 최초의 텍스트인 『삼국지평화』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다른 디테일을 확인하고 과연 정사 『삼국지』에는 그것이 본래 어떤 양상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그 원전을 탐색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삼국지평화』와 『삼국지연의』, 『삼국지』 「배송지 주」의 내용을 비교하여 읽으면서는 중국 삼국 역사의 진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삼국지평화』는 『삼국지연의』의 10분의 1에 불과하므로 완역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작업 기간에 『삼국지』 「배송지 주」 읽기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애초에 완역에 착수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역자는 밝힌다. 진수의 『삼국지』 원문만 해도 36만여 자이고, 「배송지 주」도 32만여 자에 달하므로 70만 자에 가까운 한문 고문古文을 완역해내려면 거의 모든 일을 전폐하고 장기간 번역에만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배송지 주」 읽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삼국지연의』를 처음 읽을 때와 비슷한 독서 홀릭 상태에 빠진 셈이었다. 물론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배송지 주」는 그에게 ‘소설보다 재미있는 정사’로 인식되었고, 그 재미가 그의 마음을 통째로 사로잡았다. 그러던 2020년 어느 가을날 역자는 기어코 『삼국지』 원문과 「배송지 주」 전체를 완역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그때 ‘투명한 햇살 아래 흩날리던 낙엽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라고 그는 말한다.
5년 전 김영문 선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완역하려고 하는데 글항아리에서 출판이 가능하겠느냐는 문의였다. 선생과는 이미 여러 권의 중국 인문학 서적으로 호흡을 맞추었고 『동주 열국지』도 펴냈다. 그 이후 『손자병법』 십일가주十一家注를 같이 작업하기로 돼 있었다. 나로서는 다소 의외의 제안이었다. 『정사 삼국지』는 이미 국내에 두어 종이 번역돼 있는지라 거기에 더 보태려면 이유가 분명해야 했다.
「배송지 주」도 같이 완역할 것이라는 말이 뒤따라 들렸다. 거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배송지라니! 『삼국지』만큼 방대한 배송지의 주석을 같이 번역한다면 확실한 차별화가 되고, 국내 『삼국지』 독서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분량이다. 기존의 『정사 삼국지』는 위·촉·오에 각각 1권씩 총 3권으로 묶어내는 적당한 분량이지만, 여기에 배송지 주가 더해지면 「위지魏志」만 4권, 「촉지蜀志」 1권, 「오지吳志」 2권으로 최소 7권 구성이 된다. 거기다가 주요 인물 가계도, 관직명, 일서逸書 해제, 지도 등을 따로 묶은 『정사 삼국지 사전』까지 전 8권의 방대한 양이 된다. 여기까진 좋다.
살짝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자 원문을 다 넣겠다는 게 역자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대략 1500쪽이 늘어난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데 매머드급이 된다. 두꺼워서 양장본을 안 할 수 없고, 그렇게 내놓으면 가격이 비싸질 것은 분명했다. 20만 원이 넘어갈 텐데 이 금액을 감당할 독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고 싶다는 답변을 드렸다. 사실 「배송지 주」는 중국학 전문 출판사로서 글항아리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소망을 이뤄주겠다는데 무얼 망설이겠는가.
그로부터 1년여 후, 원고가 도착했다. 꼼꼼하게 번역하고 교감한 흔적이 역력했다. 배송지의 원문이 한글로 바뀌어 있는 걸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가 인용하는 고서들은 대다수가 사라지고 없는 책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진지배주陳志裴注’라는 말이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삼국지』는 곧 배송지 주가 포함된 판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짝꿍이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들어와 부박한 독서 문화 속에서 진지陳志는 배주裴注라는 친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인연을 되찾아 이어 붙인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연초 언론사의 출판면 특집에 『정사 삼국지』를 곧 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2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분량이 분량인지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작업을 하다가 멈추길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올해도 다 지나가는 12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독자 분들께 선보이게 됐다. 책을 빨리 내라고 전화로 독려해주신 독자들과 완벽한 원고를 넘겨주시고도 묵묵히 기다려주고 협조해주신 김영문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꼼꼼하게 교정을 봐준 태서현 편집자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복잡한 본문 체제를 읽기 좋게 구현해준 디자이너들께도 감사하고, 주요 등장인물의 얼굴을 새로운 분위기로 그려준 박순철 화백께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신이 앞서 조서를 받고 보니 삼국의 서로 다른 기록을 채록하여 진수의 『삼국지』에 주를 달라는 어명이었습니다. 진수의 책은 역사를 저울질하여 서술한 내용이 참으로 볼 만하고 사건 기록도 대부분 자세하고 정확합니다. 진실로 유람할 만한 동산이고 근세에 이룬 아름다운 역사책입니다. 그러나 그의 단점은 간략함에 있으니, 때때로 탈락하고 빠진 것이 있습니다. 신은 성지를 받들고 자세히 조사하여 모든 기록을 두루 갖추는 데 힘썼습니다. 위로는 옛 견문을 수집하고 곁으로는 유실된 사적을 주워 모았습니다. (…) 이제 필사와 교정이 비로소 끝나서 삼가 책궤에 봉하여 폐하께 올립니다.
_1권, ‘『삼국지 주』를 진상하는 표문’ 중에서
신 송지가 살펴본 바는 이렇습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말은 이미 윤색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전에 서술한 기록에 사실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게다가 후세의 작자들이 또 제 마음대로 고치는지라 사실에서 벗어남이 갈수록 더 심해지지 않겠습니까? 무릇 손성은 책을 쓰면서 자주 『좌전左傳』을 이용하여 옛 문장을 고쳤는데 이와 같은 사례가 한둘이 아닙니다. 슬픕니다! 후세의 학자가 장차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위 무제는 바야흐로 천하에 뜻을 두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부차夫差가 죽음에 임하여 내뱉은 말을 인용했으니 더욱더 같은 종류의 말이 아닙니다.
_1권, 위지魏志 1. 무제기武帝紀 중에서
○1) 『한진춘추』: “황제(고귀향공)는 자신의 권위가 나날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 이에 시중 왕침, 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王業을 불러서 일렀다.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다 알고 있소. 나는 앉아서 폐위되는 치욕을 참을 수 없어서 오늘 경들과 함께 나가 그 자를 토벌해야겠소.’ 왕경이 말했다. ‘옛날 노 소공昭公은 계씨季氏의 전횡을 참지 못했다가 패주하여 나라를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권력이 저들 가문에 있게 된 지는 세월이 오래 되었습니다. 조정 사방 인사들이 모두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반역과 순리의 이치를 돌아보지 않은 지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또 폐하의 호위병은 텅 비어 있으며, 갑옷과 무기도 부족하고 허약한데 폐하께서는 어디서 그 재원과 비용을 마련하시렵니까? 만약 이와 같이 행동한다면 병을 없애려다가 더욱 깊게 하지 않겠습니까? 참화를 거의 예측할 수 없으므로 다시 자세히 살피셔야 합니다.’ 이에 황제는 품속에서 판령版令(조서)을 꺼내 땅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설령 바로 죽는다 해도 무엇을 두려워하랴? 하물며 반드시 죽는 일도 아님에랴?’
_1권, 권4. 위지4. 삼소제기三少帝紀 중에서
신이 앞서 조서를 받고 보니 삼국의 서로 다른 기록을 채록하여 진수의 『삼국지』에 주를 달라는 어명이었습니다. 진수의 책은 역사를 저울질하여 서술한 내용이 참으로 볼 만하고 사건 기록도 대부분 자세하고 정확합니다. 진실로 유람할 만한 동산이고 근세에 이룬 아름다운 역사책입니다. 그러나 그의 단점은 간략함에 있으니, 때때로 탈락하고 빠진 것이 있습니다. 신은 성지를 받들고 자세히 조사하여 모든 기록을 두루 갖추는 데 힘썼습니다. 위로는 옛 견문을 수집하고 곁으로는 유실된 사적을 주워 모았습니다. (…) 이제 필사와 교정이 비로소 끝나서 삼가 책궤에 봉하여 폐하께 올립니다.
_1권, ‘『삼국지 주』를 진상하는 표문’ 중에서
신 송지가 살펴본 바는 이렇습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말은 이미 윤색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전에 서술한 기록에 사실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게다가 후세의 작자들이 또 제 마음대로 고치는지라 사실에서 벗어남이 갈수록 더 심해지지 않겠습니까? 무릇 손성은 책을 쓰면서 자주 『좌전左傳』을 이용하여 옛 문장을 고쳤는데 이와 같은 사례가 한둘이 아닙니다. 슬픕니다! 후세의 학자가 장차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위 무제는 바야흐로 천하에 뜻을 두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부차夫差가 죽음에 임하여 내뱉은 말을 인용했으니 더욱더 같은 종류의 말이 아닙니다.
_1권, 위지魏志 1. 무제기武帝紀 중에서
○1) 『한진춘추』: “황제(고귀향공)는 자신의 권위가 나날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 이에 시중 왕침, 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王業을 불러서 일렀다.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다 알고 있소. 나는 앉아서 폐위되는 치욕을 참을 수 없어서 오늘 경들과 함께 나가 그 자를 토벌해야겠소.’ 왕경이 말했다. ‘옛날 노 소공昭公은 계씨季氏의 전횡을 참지 못했다가 패주하여 나라를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권력이 저들 가문에 있게 된 지는 세월이 오래 되었습니다. 조정 사방 인사들이 모두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반역과 순리의 이치를 돌아보지 않은 지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또 폐하의 호위병은 텅 비어 있으며, 갑옷과 무기도 부족하고 허약한데 폐하께서는 어디서 그 재원과 비용을 마련하시렵니까? 만약 이와 같이 행동한다면 병을 없애려다가 더욱 깊게 하지 않겠습니까? 참화를 거의 예측할 수 없으므로 다시 자세히 살피셔야 합니다.’ 이에 황제는 품속에서 판령版令(조서)을 꺼내 땅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설령 바로 죽는다 해도 무엇을 두려워하랴? 하물며 반드시 죽는 일도 아님에랴?’
_1권, 권4. 위지4. 삼소제기三少帝紀 중에서
신 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원소는 당시에 아직 동탁과 사이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동탁이 그에게 계책을 물어본 것입니다. 다만 의견이 다르다고 바로 ‘이 자식’이라고 욕하면서 칼질하려는 마음을 먹었는데, 원소가 [이처럼] 아주 심하게 강경한 태도로 대답했다면 동탁이 어찌 그를 해치지 않고 용인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원소의 이와 같은 말은 나아갈 때 진실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고, 물러날 때 거짓으로라도 겸손함을 보여야 하는 이치를 어긴 것입니다. 오히려 이기기 좋아하는 스스로의 마음을 드러내어 분노하는 동탁의 예기를 건드렸습니다. 큰일을 하고 공을 세우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사리로 볼 때 어찌 이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망령됨이 심합니다.
_2권, 권6. 위지6.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중에서
○『전략 典略』: “중상시 당형唐衡이 자신의 딸을 여남 사람 부공명傅公明에게 출가시키려 했지만 부공명이 아내로 맞으려 하지 않자 방향을 바꿔 순욱에게 딸을 주려 했다. 순욱의 부친 순곤이 당형의 권세를 흠모하여 순욱을 위해 당형의 딸을 아내로 맞아주었다. 이에 순욱이 논자들에게 비난을 당했다.”
신 송지가 살펴본 바는 이렇습니다. 『한기』에 이르기를 당형은 환제 연희 7년(164)에 죽었습니다. 계산해보면 순욱은 그해에 겨우 두 살이었으므로 순욱이 결혼한 날짜는 당형이 죽고 나서 오래 지나야 합니다. 권세를 흠모했다는 말도 옳지 않습니다. 신 송지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순곤은 팔룡의 한 사람인데 이는 틀림없이 구차하게 얻은 이름이 아니므로 핍박을 받아 그런 혼사를 치렀다고 할 수는 있지만 어찌 권세를 흠모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_2권, 권10. 위지10.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중에서
신 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포위된 뒤에 항복하면 법으로 용서할 수 없지만, 수감하여 조조에게 보낸다 해도 명령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우금은 친구를 위해 만분의 일의 희망도 바라지 않고 살인을 좋아하는 마음을 함부로 내보이며 사람들의 논의도 거부했습니다. 이 때문에 결국 항복한 포로가 되었고 죽어서도 나쁜 시호를 받았으니 진실로 마땅한 일입니다.
_3권, 권17. 위지17.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중에서
○2) 왕은王隱의 『촉기蜀記』: “종회는 촉나라를 평정하고 앞뒤로 방덕의 공적을 고취하며 방덕의 시신을 맞아와 업성으로 돌려보내고 장례를 치르게 했는데 무덤 속의 몸과 머리가 살아 있는 듯했다.”
신 송지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방덕은 번성에서 죽었고, 문제가 즉위하여 또 사자를 방덕의 묘소로 파견했으므로, 그의 시신이 촉나라 땅에 있을 수 없습니다. 위의 기록은 왕은의 헛소리입니다.
_3권, 권18. 위지18. 이리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臧文呂許典二龐閻傳 중에서
신 송지가 살펴본 바는 이렇습니다. 이 열전에 이르기를 “구원병은 대군이 집합해야 하는데, 이미 당도했다는 소식을 갑자기 듣고, 기이한 변칙 병법이 있다고 여기며 상하 장졸이 놀라고 두려워했다”라고 했는데, 이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구원병이 출전한 것입니다. 만약 구원병이 당도할 줄 몰랐다면 무슨 까닭으로 깊고 험한 곳에 군사를 매복하고 사흘을 지냈겠습니까? 매복하고 적을 노렸다는 것은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대목은 모두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_4권, 권22. 위지22.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중에서
○2) 『위략』: “당초에 상림은 젊은 시절 사마경조司馬京兆11와 친했다. 태부였던 사마의가 상림을 만날 때마다 바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려 했다. 상림은 제지하며 말했다. ‘공은 존귀한 분이오. 그만두시오.’ 사도司徒 자리가 비자 태부 사마의가 상림을 보임하려고 마음먹었다.” 살펴보건대 『위략』의 이 말은 본 열전과 상반된다.
신 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상림의 사람됨은 권력 있고 고귀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실 여부를 따져보면 본 열전이 옳다고 해야 합니다.
_4권, 권23. 위지23.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중에서
○2) 『산양공재기』: “유비는 귀환하여 좌우 측근에게 말했다. ‘손 거기장군(손권)은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짧으므로 남의 아랫사람 노릇 하기는 어렵소. 나는 다시 그를 만나서는 안 되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돌아온 것이오.’”
신 송지가 살펴본 바는 이렇습니다. 『위서』에는 유비가 손권에게 한 말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촉지蜀志」에서 제갈량이 손권에게 한 말로 기록한 대목과 똑같습니다. 유비는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기 전에 아직 손권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위서』에서처럼]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촉지」가 옳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_5권, 권32. 촉지2. 선주전先主傳 중에서
신 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면령을 함부로 내리지 않은” 일은 진시로 칭송할 만하지만, “연호를 바꾸지 않은” 일은 아직 제대로 사례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살펴보건대 후한 광무제의 건무建武와 후한 헌제의 건안建安이라는 연호는 모두 오래 쓰면서도 바꾸지 않았으나 이전 역사에서 미담美談으로 여겼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2년을 지났다고” 어찌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무엇인가 다른 의도가 있는데 그 의미를 구하다가 미쳐 해결하지 못한 것일까요?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 뒤에 쓴 연희라는 연호도 햇수로는 20년을 채웠음에도 “이 제도가 점차 폐지되었다”라고 했는데 이 일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_5권, 권33. 촉지3. 후주전後主傳 중에서
신 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손권이 죄 없는 아들을 함부로 폐출한 것은 비록 난리의 조짐은 되었으나, 나라가 기울어 엎어진 것은 포악한 손호로부터 말미암은 일입니다. 만약 손권이 손화를 폐출하지 않았다면 손호가 보위를 잇는 적자嫡子가 되어 결국 멸망에 이르렀을 텐데 무엇이 달라졌겠습니까? 그러므로 망국은 어리석고 포악한 정치에서 말미암지 태자 폐출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가령 손량이 국운을 보존하고 손휴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손호는 황제 보위에 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손호가 왕제 보위에 오를 수 없었다면 오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_6권, 권47. 오지2. 오주전吳主傳 중에서
○『강표전』: (…) ‘강역의 경계는 비록 멀지만 반드시 다퉈야 할 험한 요충지는 서넛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8척尺의 몸으로 병을 앓지 않을 수는 없지만 바람과 한기를 막는 곳은 몇 곳에 불과한 것과 같습니다.’ 진 문왕은 훌륭하게 여기며 후하게 예우했다.”
신 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8척의 몸으로 병을 앓지 않을 수는 없지만 바람과 한기를 막는 곳이 어찌 겨우 몇 곳에 불과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비유를 든 것은 유능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철옹성에 일만 개의 성가퀴가 있더라도 급하게 방어해야 할 곳은 4대문일 뿐입니다”라고 비유하고, 기척이 이렇게 대답했다면 더 좋지 않았겠습니까?
_6권, 권48. 오지3. 삼사주전三嗣主傳 중에서
신 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위나라의 변방 장수가 오나라에 피해를 끼치는 것은 대체로 일상사이므로 설령 녹식이 죄를 얻게 되더라도 그의 직책을 대신하는 자도 그와 같이 피해를 끼칠 것입니다. 스스로 교활하게 약탈할 생각을 하고 장차 큰 우환을 조성할 만한 자가 아니라면 어찌 나의 점잖은 생각을 훼손하면서까지 작은 속임수를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진수가] 이런 것을 아름답게 여긴 태도는 취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_7권, 권58. 오지13. 육손전陸遜傳 중에서
○『오록』: “오범은 미리 자신이 죽을 날을 알고 손권에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모일某日에 군사軍師를 잃을 것입니다.’ 손권이 말했다. ‘나는 군사가 없는데 어찌 잃을 수 있겠소?’ 오범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출병하여 적에게 다가갈 때 신의 말을 기다린 뒤에 행군하시니 신이 바로 폐하의 군사입니다.’ 그날이 되어 오범이 과연 세상을 떠났다.”
신 송지가 살펴본 바는 이렇습니다. 오범이 죽을 때 손권은 아직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므로 여기에서 ‘폐하’라고 부른 것은 틀린 말입니다.
_7권, 권63. 오지18. 오범유돈조달전吳範劉惇趙達傳 중에서
이 부록은 『삼국지』 자체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이 번역본의 독자들에게 다양한 독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삼국지』는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임에도 「표表」와 「지志」가 없어서 당시 연표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당시 지리와 문물제도도 명확하게 인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 부록의 「『삼국지』 해제」에도 밝힌 것처럼 청대의 학자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고,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 업적들은 분야마다 그 분량이 방대하므로 이를 모두 번역하여 이 부록에 전부 실을 수 없다. 따라서 『삼국지』 자체의 부족한 점을 보충한다는 취지를 살리고, 이 번역본을 읽는 현대 독자들의 기호에 맞추고, 좀더 간편하고 내실 있게 이 번역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몇 가지 부문을 새롭게 편집하여 이 부록에 넣었다.
_8권(부록), 머리말 중에서
배송지는 세상에서 사사롭게 개인 비석을 세우며 사실에 어긋나는 내용을 써넣자 표문을 올려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비석의 명문銘文을 제작하는 것은 후세에 교훈을 밝게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 특별한 공훈이나 뛰어난 덕망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런 의전儀典에 부응할 수 없습니다. (…) 비석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모두 조정에 보고하게 하고 조정의 논의로 허락한 뒤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아마도 근거 없이 비석 세우는 일을 방지할 수 있고, 공적 사실이 있는 사람을 넉넉히 현창할 수 있어서 백대 이후의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이 아님을 알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 대의는 사람들의 우러러봄에 신망을 주고, 그 도리는 미래의 지표에 믿음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이로부터 사사롭게 비석 세우는 일이 모두 금지되었다.
_8권(부록), 4. 배송지전裴松之傳 중에서
1권(정사 삼국지 1 위지 1)
일러두기
옮긴이 머리말
『삼국지 주』를 진상하는 표문上三國志注表
권1. 위지魏志 1. 무제기武帝紀
권2. 위지魏志 2. 문제기文帝紀
권3. 위지魏志 3. 명제기明帝紀
권4. 위지魏志 4. 삼소제기三少帝紀
권5. 위지魏志 5. 후비전后妃傳
원문
2권(정사 삼국지 2 위지 2)
권6. 위지魏志 6.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권7. 위지魏志 7. 여포장막장홍전呂布張邈臧洪傳
권8. 위지魏志 8.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권9. 위지魏志 9.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권10. 위지魏志 10.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권11. 위지魏志 11.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涼國田王邴管傳
권12. 위지魏志 12.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원문
3권(정사 삼국지 3 위지 3)
권13. 위지13.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권14. 위지14. 정곽동유장유전程郭董劉蔣劉傳
권15. 위지15. 유사마양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권16. 위지16.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권17. 위지17.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권18. 위지18. 이리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臧文呂許典二龐閻傳
권19. 위지19.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권20. 위지20.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권21. 위지21. 왕위이류부전王衛二劉傅傳
원문
4권(정사 삼국지 4 위지 4)
권22. 위지22.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권23. 위지23.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권24. 위지24.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권25. 위지25.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권26. 위지26.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권27. 위지27.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권28. 위지28.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권29. 위지29. 방기전方伎傳
권30. 위지30.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원문
5권(정사 삼국지 5 촉지)
권31. 촉지蜀志1. 유이목전劉二牧傳
권32. 촉지2. 선주전先主傳
권33. 촉지3. 후주전後主傳
권34. 촉지4. 이주비자전二主妃子傳
권35. 촉지5. 제갈량전諸葛亮傳
권36. 촉지6. 관장마황조전關張馬黃趙傳
권37. 촉지7. 방통법정전龐統法正傳
권38. 촉지8. 허미손간이진전許麋孫簡伊秦傳
권39. 촉지9. 동유마진동여전董劉馬陳董呂傳
권40. 촉지10. 유팽요이유위양전劉彭廖李劉魏楊傳
권41. 촉지11. 곽왕상장양비전霍王向張楊費傳
권42. 촉지12. 두주두허맹내윤이초극전杜周杜許孟來尹李譙郤傳
권43. 촉지13. 황이여마왕장전黃李呂馬王張傳
권44. 촉지14. 장완비의강유전蔣琬費禕姜維傳
권45. 촉지15. 등장종양전鄧張宗楊傳
원문
6권(정사 삼국지 6 오지 1)
권46. 오지吳志1. 손파로토역전孫破虜討逆傳
권47. 오지2. 오주전吳主傳
권48. 오지3. 삼사주전三嗣主傳
권49. 오지4. 유요태사자사섭전劉繇太史慈士燮傳
권50. 오지5. 비빈전妃嬪傳
권51. 오지6. 종실전宗室傳
권52. 오지7. 장고제갈보전張顧諸葛步傳
권53. 오지8. 장엄정감설전張嚴程闞薛傳
권54. 오지9. 주유노숙여몽전周瑜魯肅呂蒙傳
원문
7권(정사 삼국지 7 오지 2)
권55. 오지10.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程黃韓蔣周陳董甘凌徐潘丁傳
권56. 오지11. 주치주연여범주환전朱治朱然呂範朱桓傳
권57. 오지12. 우육장낙육오주전虞陸張駱陸吾朱傳
권58. 오지13. 육손전陸遜傳
권59. 오지14. 오주오자전吳主五子傳
권60. 오지15. 하전여주종리전賀全呂周鍾離傳
권61. 오지16. 반준육개전潘濬陸凱傳
권62. 오지17. 시의호종전是儀胡綜傳
권63. 오지18. 오범유돈조달전吳範劉惇趙達傳
권64. 오지19. 제갈등이손복양전諸葛滕二孫濮陽傳
권65. 오지20. 왕누하위화전王樓賀韋華傳
원문
8권(부록; 정사 삼국지 사전)
머리말
1. 삼국 지도
2. 삼국 계보도
3. 진수전陳壽傳
4. 배송지전裴松之傳
5. 삼국 군주 묘호廟號·시호諡號·연호年號
6. 삼국 역사 간략 연표
7. 『삼국지』 「배송지 주」 인용 일서逸書 해제
8. 『삼국지』의 지명
9. 삼국의 관직
10. 『삼국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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