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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8,800원, 144권 펀딩 / 목표 금액 1,000,000원
펀딩종료 (종료 2025-10-21, 출간예정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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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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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기네스 세계 신기록. 고공농성 408일.’

문선희 사진작가는 2015년 우연히 보게 된 고공농성 기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속에서는 반백의 머리를 한 마흔여섯의 남자가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였다. 곧장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기자들이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물었다. 낯 뜨거운 질문에 돌아온 한마디는 묵직했다. “408일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준이 될까 두렵다.” 쿵, 작가의 마음이 울렸다. 그토록 모진 시간을 보낸 다음이었는데도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걱정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후 작가는 차광호 씨가 1년 넘게 지낸 굴뚝을 찾았다. 굴뚝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위에서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늦었지만 그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는 바로 그 굴뚝에서 출발해 2005~2019년 사이 고공농성 장소 서른 세 곳의 사진과 각각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보통 고공농성의 이미지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 상황으로 전해지지만 이 사진들은 그로부터 한참 후, 길게는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찍힌 것들이다. 그 시차가 고공농성과 고공농성자에 대한 작가 특유의 태도와 이어진다. 작가는 남겨진 이야기의 앞과 뒤, 겉과 속을 충분히 천천히 살핀다. 언론이 프레이밍한 납작한 대립 구도, 노사 간 법적 공방 너머 지난한 맥락 속에서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목격하려고 한다.

작가는 일련의 고공농성들을 IMF 금융위기 후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진행된 ‘노동 시장 유연화’의 구조 속에서 다시 읽고, 자신이 성인이 되어 처음 맞닥뜨렸던 사회상을 겹쳐보며 이해할 수 없었던 질문들에 가닿는다. 시대의 부조리는 모두에게 닥쳤다. 대다수는 서둘러 태세를 전환했고 거대한 흐름에 포섭되었다. 고공농성자들은 그 와중에 어떻게든, 맨몸으로라도, 완고하게도, 자리를 지키고자 남은 사람들이다. 왜? 맞선다는 것,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문을 열기 위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해와 경의를 담아 작가는 남은 장소들을 찍었다. 단순히 고공농성이 벌어졌던 곳이 아니라 더 나은 삶과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머문 곳으로 응시되기를 바랐다. 사진과 함께 각각의 사건, 그들이 겪은 일을 갈무리해 수록했다. 작가가 고공농성자의 이야기로부터 건네받은 희망과 용기를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다시 전하려는 의도였다. 그들이 결국 호소하고자 했던, 마지막으로 기댄 상대는 공동체와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고공농성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우리에겐 아직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이 책은 한 시기 고공농성의 역사지만, 단지 과거가 아니다. 노동환경의 문제는 여전하고, 예기치 않은 측면에서는 더욱 악화되었다. 지난 8월에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씨가 또다시 고공농성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고 600일 만에 땅에 내려왔다. 이 하나하나의 일들을 이어 보통 사람들의 희망과 용기의 역사로 성찰해 나가는 것은 모든 보통 사람들의 몫이다. 조용히 빛을 발하는 이곳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호소하는 현장이다.




편집자의 말

하늘과 바다 사이, “세상의 끝” 수평선에 선 굴뚝을 봅니다. 쌍둥이처럼 닮은 철탑들, 검게 침묵한 전광판을 낯설게 봅니다. 켜켜이 이어지는 망망한 풍경을 보고 또 보는 동안 주위는 숨죽이고 마음은 아득해집니다. 어느새 제 눈은 보면서 보지 않습니다, 차츰 안으로 향하고, 깨닫습니다, 세상에 보면서 보지 못했던 것이 있었음을. 지금 내가 보는 것은 그때, 저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이 견딘 기약 없는 시간의 풍경이라는 것을. 겹겹의 세월을 뚫고 문득 그 사람의 마음이 여기에 도착합니다.

몇몇 ‘중요한’ 고공농성이 있었습니다. 몇몇 고공농성자는 두고두고 위인으로 호명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고공농성은 풍문처럼 속절없이 잊혔고, 잊혀져 갑니다. 망각의 파도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기억을 품는 마지막 보루는 장소일 텐데… 우리 사회에서 장소의 운명이란 다들 아시다시피 신기루 같은 처지죠.

그런 와중에 그곳들을, 뒤늦게 찾아, 찍어 남기는 행위의 의미는 뭘까요.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오른 질문은 작가를 향한 것이기도 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째서 모든 소멸하는 것 중 어떤 것을 굳이 다시 전하려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자취에 이끌리는 사람이 있는 걸까요.

사람이 자기 생명을 걸고 공중에 오른다는 일은 무엇인지, 그런 일이 그토록 연달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 일 아닌 과거가 될 수 있는지, 그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작가는 장소들을 따라갑니다. 늘 그랬듯 문선희 작가의 사진에서는 ‘여정’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움직여 마음을 따라가는 여정,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의 정체를 밝히려는 여정, 풍문 너머 진실에 닿기 위한 여정에는 필연적으로 작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수반됩니다. 고공농성이 부쩍 늘어났던 한 시기에 자신의 삶을 겹치며 작가는 ‘그들’에 ‘나’를 얽어매어 봅니다. 따라간다는 것은 단지 되짚거나 뒤쫓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보는 것, 그러면서 알게 됩니다. 그 일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그들의 고독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결국 그걸 보자고, 문선희 작가는 뒤늦게 거기에 있었습니다. 투사도 영웅도 아닌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몰랐던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진실은 시차 속에 서만 드러납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공중에 내건 것이 자신의 생명만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거기엔 다른 세상을 향한 희망, 시민들이 응답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비로소 압니다. 용기는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곳은 세상의 끝이 아니었다는 것, 용기는 파장이 되어 다음 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 뒤늦더라도 전해져 역사를 이룬다는 것, 자신이 바로 그 증거라는 것, 그러므로 이 사진과 기록은 또 하나의 현장이라는 것.

결국 그걸 보자고, 저는 이 책을 만듭니다. 굴뚝과 수평선을 보는 작가를 봅니다. 앞의 사람이 건넨 것을 이어받아 봅니다. 물결이 되어 흐르는, 윤슬이 되어 반짝이는 과거에 나를 얽어매며 나란히 서봅니다. 그렇게 다음 세상을 넘겨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분께 물을 용기를 냅니다. 이 여정을 함께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 편집자 박우진

차례

1부 빛

2부 물결
마른나무에 스민 물
고마운 굴뚝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의 힘
부드러움의 뒷면
마지막 방어선
굴뚝을 타고 온 초인

3부 윤슬
서울 경찰청 앞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여의도공원 내 교통 통제 CCTV 탑 / 구미 코오롱 공장 내 송전탑 / 광주 삼성전자 3공장 내 송신탑 / 성남 샤니 공장 내 굴뚝 / 서울 올림픽대교 주탑 / 서울 광흥창역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구로역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망원한강공원 송전탑 / 울산 현대중공업 내 굴뚝 / 광주 옛 전남도청 앞 CCTV 탑 /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송전탑 /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안 타워크레인 / 전주 동전주나들목 인근 송전탑 / 부산 신항 내 선박 안내용 도등 철탑 / 서울 현대자동차 본사 인근 옥외 광고탑 /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내 굴뚝 /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 울산 한라엔컴 공장 내 시멘트 사일로 /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내 굴뚝 / 서울 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내 굴뚝 / 여수 석창사거리 인근 송전탑 /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 전광판 /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1 /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2 / 서울 중앙우체국 옆 전광판 / 부산 시청 앞 옥외 전광판 / 서울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 서울 여의도 서울교 앞 옥외 광고탑 / 진주 김시민대교 주탑 / 울산 염포산터널 고가도로 교각 / 서울 여의2교 옆 옥외 광고탑 / 서울 강남역 CCTV 탑

에필로그
주석
추천의 말_박평종, 장일호, 희정

책 속으로

pp.67~68
굴뚝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날이었다. 그가 기네스 신기록을 안고 내려온 날.

‘기네스 세계 신기록, 고공농성 408일.’ 적막한 전시장에서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멈칫했다. 마치 축하할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기네스 세계 신기록’이라는 수식어가 여기저기 넘실대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반백의 머리를 한 마흔여섯의 남자가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였다. 경찰은 408일을 굴뚝에서 견딘 그를 곧장 체포했다. 유치장으로 끌려가던 그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어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물었다. 소감이라니! 기자들의 무람없는 질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408일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준이 될까 두렵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한마디가 쿵, 묵직하게 마음을 울렸다.

간신히 찾아온 기회였다. 그간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말들을 뜨겁게 토해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여 줄, 어쩌면 유일한 순간이었다. 비로소 목소리를 갖게 된 그 시점에, 몸과 마음에 가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이가, 자기 자신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다니…….

세상은 그를 방치했으나 그는 세상을 걱정했다. 그토록 모진 시간을 보내고도 무너지지 않고 마음의 격을 지켜냈다. 그는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속 깊은 어른이었다. 마른나무에 물이 스미는 기분이었다. 모진 일을 겪는다고 모두가 모진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마른나무에 스민 물> 중



p.71
이듬해 가을 굴뚝이 폭발했다는 뉴스를 뒤늦게 보았다. 폐업한 공장의 굴뚝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 커다란 폭발이 있었고, 노동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고 다치는 일이 반복되는 현실에 마음이 어두워졌다.

어디지?

뜻밖에도 그 굴뚝이었다. 허둥지둥 구미로 달려갔다.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한 것도, 공기 중에 옅게 밴 인위적인 냄새도, “힘내요”라고 적힌 벽도 그대로였다. 굴뚝만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타들어 갈 듯한 찜통더위와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견디며 굴뚝 위에서 짐승처럼 웅크리고 견딘 날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으며, 그가 보낸 모든 시간 동안의 고통과 고독, 두려움과 무력감, 분노와 절망 그럼에도 놓지 않았던 희망이 스민 그 굴뚝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그가 스물다섯에 입사해 10년 넘게 일한 공장이었다. 청춘을 바친 공장에 되돌아가기를 바라며 굴뚝에서 408일을 버텼는데,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고 굴뚝은 사라져 버렸다.

-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



pp.92~93
그곳에 맺힌 것은 ‘아픔’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희망’이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올라갔지만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 것이란 절망감만으론, 그곳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정말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오를 이유가 없다. 그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덤빌 수 있었던 것의 근원에는 자신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기댄 것은 시민의 마음이었다.(...)

어릴 땐 소수의 비범한 영웅들이 세상을 바꾸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우리가 누리는 권리들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국가와 공동체가 누구의 힘으로 유지되는지, 누가 희생했고 누구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는지를.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땔감처럼 던져 만들고 지켜낸 것이다. 나도 세상의 일부이기에 그들에게 받은 은혜가 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는데 받은 고마운 선물이, ‘민주주의’처럼 도무지 갚을 길이 없는 소중한 선물이.

그들은 밝은 미래를 위해 희생된 것이 아니었다. 맞서 싸웠다. 그들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전제에 질문을 던졌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대신 직접 하늘에 올랐다. 어떤 거대한 힘이 세상을 바꾸어 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문을 열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다. 희박한 가능성에도 더 나은 삶을 꿈꿨다.

- <굴뚝을 타고 온 초인> 중



pp.101~102
서대문역에서 내렸다. 지상에 올라오니 거대한 사거리였다. 오고 가는 차들과 정차 중인 차들이 일제히 소음과 매연을 뿜어댔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거리 한쪽 모퉁이에 가느다란 CCTV 탑이 서 있었다. 꼭대기에 바구니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바구니의 바닥은 철망이었고 옆면은 두 개의 선으로 둘러싸인 채 뻥 뚫려 있었다. CCTV 탑은 높이가 비슷비슷한 신호등이나 가로등, 전봇대와 달리 홀로 우뚝 솟아 있었다. 얼추 두 배 높이였다. 30미터가 저렇게 높았던가, 너무 높아 이물감이 들 정도였다. 이런 게 교차로마다 서 있었다는 사실을 그동안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는 게 의아하게 여겨졌다.

2005년 3월 21일 아침 7시 30분경, 김미숙, 김은미, 안선형 씨가 이곳에 올랐다. 서른을 갓 넘긴 이들은 경찰청의 직제 개정안에 따라 2004년 마지막 날 해고를 통보받은 고용직 공무원이었다. 이들은 ‘직권 면직(해고) 철회와 기능직 전환’을 요구하며 90일 넘게 경찰청 앞에서 경찰청장 면담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어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고용직 공무원이란 단순한 보조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말한다. 1989년 정부는 공무원 직제를 개편하면서 고용직 공무원 제도를 폐지했고,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기능직으로 전환하고 자연 감소하는 인원은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을 감축해 왔다. 그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청은 고용직 공무원을 계속 신규 채용했다. 그들의 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고용직 공무원의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동네 파출소나 경찰서에 ‘사무 보조’로 채용되었다. 원칙상 주 업무는 전화 교환, 기록 입력, 문서 정리, 경리 등이었으나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장보기와 식사 준비, 화장실 청소, 관사 청소와 이불 빨래, 커피와 담배 심부름까지 시키는 일이면 뭐든 해야 했다고 이들은말했다.(...)

그것은 최초의 공무원 고공농성이었다. 세상의 이목이 쏠렸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기관이 조직 내약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사회적 비판 여론이 일자, 그제야 ‘조만간 면담 날짜를 잡겠다’라는 경찰청장의 약속이 날아들었다. 고공농성 12시간 만이었다.

- <서울 경찰청 앞 교통 통제 CCTV 탑> 중



pp.132~133
구미 IC를 빠져나오자 곧바로 거대한 산업단지가 펼쳐졌다. 8차선 도로가 반듯하고 시원하게 뻗어 있었는데, 규모에 비해 도로는 한산했다. 스타케미칼 공장의 담벼락은 붉은색 벽돌로 되어 있었다. 벽돌을 알록달록하게 칠해 ‘힘내요’라는 글씨를 그린 담벼락 안쪽에 45미터 높이의 푸른 굴뚝이 서 있었다.

2014년 5월 27일 새벽 2시 40분경 차광호 씨가 플래카드와 침낭 하나, 물 두 병과 생필품이 든 배낭을 메고이 굴뚝에 올랐다. 아내에게는 철야농성에 들어가 당분간 못 돌아온다고 말하고 나온 터였다. 스타케미칼(전 한국합섬)의 생산직이었던 차광호 씨 등 11명의 노동자는 2013년 1월부터 공장의 분할 매각 중단과 재가동을 요구해 왔다.

이들이 순순히 떠날 수 없었던 것은 회사가 매매 차익을 남기기 위해 공장을 인수했다가 폐업한 것 아니냐는 ‘먹튀’ 의혹 때문이었다.(...)

2015년 7월 6일, 고공농성 406일 만에 노사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스타케미칼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로 고용 승계하는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해 말까지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이들을 고용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데 합의했다. 그동안 주고받은 고소·고발도 취하하기로 했다.

이날 해고자 11명은 성명을 냈다.

“공장이 멈춰서고 매각하는 과정 어디에도 노동자는 없었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내 굴뚝> 중


추천의 말

문선희 작가의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은 사진집이자 작업 노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진솔한 수상록이면서 촘촘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사진은 단아하고 정갈하여 고공농성이 “현실적 문제지만 초현실적”이라는 작가의 언급처럼 ‘초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이 역설은 단순한 형태의 구조물이 농성 당사자인 노동자를 닮았다는 작가의 말과도 겹친다. 고공농성은 “목숨을 걸어야 울리는 비통한 북”인만큼 사진 속 현장은 처절하고 절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자/독자가 감정을 다스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거기 담긴 의미를 더듬어 보려고 애쓰게 만들고 싶”어 사진에서 수사를 제거했다. 작가는 싸움이 끝난 자리를 뒤늦게 더듬는 행위에 대한 회의, 농성자들에 대한 정중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아니기에 피할 수 없는 거리감과 무력감을 감수한다. 그리고 최대한의 존중을 담아 그 장소에 시선을 붙잡아 두는 방법을 고민한다. 장시간 노출은 그들의 고행과 침묵의 시간에 대한 메타포다.

고공농성을 이처럼 ‘묵직하게’ 다룬 책은 흔치 않다. 간간이 고공농성을 다룬 뉴스와 기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우리의 눈과 귀는 그 소식을 금방 흘려버린다. 이 책은 고공농성을 다룬 많은 기록과 보고서의 목록에 추가된 여분이 아니다. 작가는 “한 시대의 위대한 기념비” 를 통해 집단의 기억을 보존함과 동시에 절박했던 고행의 현장이 우리 모두의 장소임을 넌지시 일깨우고 있다.

― 박평종(미학자, 사진비평가)



사건은 벌어진다. 대부분의 카메라는 그 순간을 ‘현장’으로 채집한다. 그러나 사건은 또한 지나간다. 그 자리에 남은 이야기도 현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선희 작가의 사진들은 “그렇다”라는 뜨거운 대답 같다. 그는 자신이 새로 알게 된 것들을 그동안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지 되물으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던 날들”을 통과한다. 동시에 그의 카메라도 시간을 거꾸로 감는다.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발굴하는 정성스러 움이 고고학이라면 문선희 작가의 사진을 고고학으로서의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한껏 꺾어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우뚝 솟은 굴뚝이, 전광판이, 송전탑이 어느 날 그에게 질문처럼 던져졌다.

스스로 허공에 갇혀 ‘구조적 폭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기록과 흔적을 좇으며 작가가 알게 된 것은 이런 것들이다. “세상이 정말 지옥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를 이유가 없다. 그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덤빌 수 있었던 것의 근원에는 자신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은 그 믿음에 부치는 뒤늦은 답장이다.

― 장일호(기자)



문선희 작가가 송전탑, 굴뚝, 전광판, 교각을 찍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에, 아직 무엇이 있던가요?” 차마 묻지 못했는데, 답이 되어 돌아왔다.

세상의 정답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답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오르는 곳이 고공, 하늘 위다. 그곳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깔고, 현수막을 내리고, 자신을 놓는다. 가벼운 일은 아니다. 끝이 없는 일도 아니다. 그들이 떠나고 철제 구조물만 남는다. 그런데 그곳에 사람이 있다. 모두가 떠난 자리를, 오랜 간격을 두고, 카메라로 좇는 사람. 문선희는 어떤 답을 찾아 헤맨 걸까. 책이 되어 돌아온 답을 들고 나도 며칠을 서성였다.

책을 펼치면,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곳이 있다.

그도 안다. 기억하려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구조물을 가져와 고요한 바다에 세운다. 그렇게 우뚝, 우리 앞에 놓인다. 피할 길이 없어 그제야 응시한다. 나를 빤히 보는 고라니의 눈을 들여다보듯 굴뚝과 전광판을 마주한다. 소멸하고 멸종되는 것들. 지우고 잊히는 것들. 세상의 쓰임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어지는 것들.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모든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다.”

이야기는, 때론 싸움이 지나갔다고 믿어지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 자리를 오래 공들여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응답하는 이와 만났다. 사람은 사람을 믿는다. 나는 이 책을 믿는다.

― 희정(작가)


저자 소개

사진·글|문선희

현대사회와 역사의 모순을 직시하는 사진작가. 2015년에 발굴 금지 기간이 해제된 구제역·조류 독감 매몰지 100여곳을 기록한 연작 〈묻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의 언니처럼 초등학생이었던 광주시민 80여명의 기억에 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를 선보였으며, 2019년에는 지난 15년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담아낸 작업 〈거기서 뭐하세요〉를 발표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은 사진과 그 과정을 함께 엮은 책이다. 2022년 처음 전시된 고라니의 초상 사진 연작 〈널 사랑하지 않아〉는 《이름보다 오래된》으로 출간되었다. 2021년 제22회 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 2023년 제13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도서 정보



도서명: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 분류: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노동운동
- 지은이: 문선희
- 판형: 250*220mm / 172쪽 / 양장
- 정가: 28,000원
- 출간 예정일: 2025년 11월 17일
- 펴낸곳: 가망서사

※ 상세 사양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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