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기네스 세계 신기록. 고공농성 408일.’
문선희 사진작가는 2015년 우연히 보게 된 고공농성 기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속에서는 반백의 머리를 한 마흔여섯의 남자가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였다. 곧장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기자들이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물었다. 낯 뜨거운 질문에 돌아온 한마디는 묵직했다. “408일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준이 될까 두렵다.” 쿵, 작가의 마음이 울렸다. 그토록 모진 시간을 보낸 다음이었는데도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걱정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후 작가는 차광호 씨가 1년 넘게 지낸 굴뚝을 찾았다. 굴뚝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위에서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늦었지만 그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는 바로 그 굴뚝에서 출발해 2005~2019년 사이 고공농성 장소 서른 세 곳의 사진과 각각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보통 고공농성의 이미지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 상황으로 전해지지만 이 사진들은 그로부터 한참 후, 길게는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찍힌 것들이다. 그 시차가 고공농성과 고공농성자에 대한 작가 특유의 태도와 이어진다. 작가는 남겨진 이야기의 앞과 뒤, 겉과 속을 충분히 천천히 살핀다. 언론이 프레이밍한 납작한 대립 구도, 노사 간 법적 공방 너머 지난한 맥락 속에서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목격하려고 한다.
작가는 일련의 고공농성들을 IMF 금융위기 후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진행된 ‘노동 시장 유연화’의 구조 속에서 다시 읽고, 자신이 성인이 되어 처음 맞닥뜨렸던 사회상을 겹쳐보며 이해할 수 없었던 질문들에 가닿는다. 시대의 부조리는 모두에게 닥쳤다. 대다수는 서둘러 태세를 전환했고 거대한 흐름에 포섭되었다. 고공농성자들은 그 와중에 어떻게든, 맨몸으로라도, 완고하게도, 자리를 지키고자 남은 사람들이다. 왜? 맞선다는 것,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문을 열기 위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해와 경의를 담아 작가는 남은 장소들을 찍었다. 단순히 고공농성이 벌어졌던 곳이 아니라 더 나은 삶과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머문 곳으로 응시되기를 바랐다. 사진과 함께 각각의 사건, 그들이 겪은 일을 갈무리해 수록했다. 작가가 고공농성자의 이야기로부터 건네받은 희망과 용기를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다시 전하려는 의도였다. 그들이 결국 호소하고자 했던, 마지막으로 기댄 상대는 공동체와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고공농성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우리에겐 아직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이 책은 한 시기 고공농성의 역사지만, 단지 과거가 아니다. 노동환경의 문제는 여전하고, 예기치 않은 측면에서는 더욱 악화되었다. 지난 8월에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씨가 또다시 고공농성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고 600일 만에 땅에 내려왔다. 이 하나하나의 일들을 이어 보통 사람들의 희망과 용기의 역사로 성찰해 나가는 것은 모든 보통 사람들의 몫이다. 조용히 빛을 발하는 이곳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호소하는 현장이다.



하늘과 바다 사이, “세상의 끝” 수평선에 선 굴뚝을 봅니다. 쌍둥이처럼 닮은 철탑들, 검게 침묵한 전광판을 낯설게 봅니다. 켜켜이 이어지는 망망한 풍경을 보고 또 보는 동안 주위는 숨죽이고 마음은 아득해집니다. 어느새 제 눈은 보면서 보지 않습니다, 차츰 안으로 향하고, 깨닫습니다, 세상에 보면서 보지 못했던 것이 있었음을. 지금 내가 보는 것은 그때, 저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이 견딘 기약 없는 시간의 풍경이라는 것을. 겹겹의 세월을 뚫고 문득 그 사람의 마음이 여기에 도착합니다.
몇몇 ‘중요한’ 고공농성이 있었습니다. 몇몇 고공농성자는 두고두고 위인으로 호명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고공농성은 풍문처럼 속절없이 잊혔고, 잊혀져 갑니다. 망각의 파도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기억을 품는 마지막 보루는 장소일 텐데… 우리 사회에서 장소의 운명이란 다들 아시다시피 신기루 같은 처지죠.
그런 와중에 그곳들을, 뒤늦게 찾아, 찍어 남기는 행위의 의미는 뭘까요.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오른 질문은 작가를 향한 것이기도 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째서 모든 소멸하는 것 중 어떤 것을 굳이 다시 전하려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자취에 이끌리는 사람이 있는 걸까요.
사람이 자기 생명을 걸고 공중에 오른다는 일은 무엇인지, 그런 일이 그토록 연달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 일 아닌 과거가 될 수 있는지, 그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작가는 장소들을 따라갑니다. 늘 그랬듯 문선희 작가의 사진에서는 ‘여정’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움직여 마음을 따라가는 여정,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의 정체를 밝히려는 여정, 풍문 너머 진실에 닿기 위한 여정에는 필연적으로 작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수반됩니다. 고공농성이 부쩍 늘어났던 한 시기에 자신의 삶을 겹치며 작가는 ‘그들’에 ‘나’를 얽어매어 봅니다. 따라간다는 것은 단지 되짚거나 뒤쫓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보는 것, 그러면서 알게 됩니다. 그 일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그들의 고독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결국 그걸 보자고, 문선희 작가는 뒤늦게 거기에 있었습니다. 투사도 영웅도 아닌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몰랐던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진실은 시차 속에 서만 드러납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공중에 내건 것이 자신의 생명만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거기엔 다른 세상을 향한 희망, 시민들이 응답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비로소 압니다. 용기는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곳은 세상의 끝이 아니었다는 것, 용기는 파장이 되어 다음 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 뒤늦더라도 전해져 역사를 이룬다는 것, 자신이 바로 그 증거라는 것, 그러므로 이 사진과 기록은 또 하나의 현장이라는 것.
결국 그걸 보자고, 저는 이 책을 만듭니다. 굴뚝과 수평선을 보는 작가를 봅니다. 앞의 사람이 건넨 것을 이어받아 봅니다. 물결이 되어 흐르는, 윤슬이 되어 반짝이는 과거에 나를 얽어매며 나란히 서봅니다. 그렇게 다음 세상을 넘겨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분께 물을 용기를 냅니다. 이 여정을 함께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 편집자 박우진
1부 빛
2부 물결
마른나무에 스민 물
고마운 굴뚝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의 힘
부드러움의 뒷면
마지막 방어선
굴뚝을 타고 온 초인
3부 윤슬
서울 경찰청 앞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여의도공원 내 교통 통제 CCTV 탑 / 구미 코오롱 공장 내 송전탑 / 광주 삼성전자 3공장 내 송신탑 / 성남 샤니 공장 내 굴뚝 / 서울 올림픽대교 주탑 / 서울 광흥창역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구로역 교통 통제 CCTV 탑 / 서울 망원한강공원 송전탑 / 울산 현대중공업 내 굴뚝 / 광주 옛 전남도청 앞 CCTV 탑 /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송전탑 /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안 타워크레인 / 전주 동전주나들목 인근 송전탑 / 부산 신항 내 선박 안내용 도등 철탑 / 서울 현대자동차 본사 인근 옥외 광고탑 /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내 굴뚝 /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 울산 한라엔컴 공장 내 시멘트 사일로 /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내 굴뚝 / 서울 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내 굴뚝 / 여수 석창사거리 인근 송전탑 /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 전광판 /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1 /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2 / 서울 중앙우체국 옆 전광판 / 부산 시청 앞 옥외 전광판 / 서울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 서울 여의도 서울교 앞 옥외 광고탑 / 진주 김시민대교 주탑 / 울산 염포산터널 고가도로 교각 / 서울 여의2교 옆 옥외 광고탑 / 서울 강남역 CCTV 탑
에필로그
주석
추천의 말_박평종, 장일호, 희정
pp.67~68
굴뚝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날이었다. 그가 기네스 신기록을 안고 내려온 날.
‘기네스 세계 신기록, 고공농성 408일.’ 적막한 전시장에서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멈칫했다. 마치 축하할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기네스 세계 신기록’이라는 수식어가 여기저기 넘실대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반백의 머리를 한 마흔여섯의 남자가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였다. 경찰은 408일을 굴뚝에서 견딘 그를 곧장 체포했다. 유치장으로 끌려가던 그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어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물었다. 소감이라니! 기자들의 무람없는 질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408일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준이 될까 두렵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한마디가 쿵, 묵직하게 마음을 울렸다.
간신히 찾아온 기회였다. 그간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말들을 뜨겁게 토해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여 줄, 어쩌면 유일한 순간이었다. 비로소 목소리를 갖게 된 그 시점에, 몸과 마음에 가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이가, 자기 자신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다니…….
세상은 그를 방치했으나 그는 세상을 걱정했다. 그토록 모진 시간을 보내고도 무너지지 않고 마음의 격을 지켜냈다. 그는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속 깊은 어른이었다. 마른나무에 물이 스미는 기분이었다. 모진 일을 겪는다고 모두가 모진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마른나무에 스민 물> 중
-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
- <굴뚝을 타고 온 초인> 중
- <서울 경찰청 앞 교통 통제 CCTV 탑> 중
-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내 굴뚝> 중
문선희 작가의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은 사진집이자 작업 노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진솔한 수상록이면서 촘촘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사진은 단아하고 정갈하여 고공농성이 “현실적 문제지만 초현실적”이라는 작가의 언급처럼 ‘초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이 역설은 단순한 형태의 구조물이 농성 당사자인 노동자를 닮았다는 작가의 말과도 겹친다. 고공농성은 “목숨을 걸어야 울리는 비통한 북”인만큼 사진 속 현장은 처절하고 절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자/독자가 감정을 다스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거기 담긴 의미를 더듬어 보려고 애쓰게 만들고 싶”어 사진에서 수사를 제거했다. 작가는 싸움이 끝난 자리를 뒤늦게 더듬는 행위에 대한 회의, 농성자들에 대한 정중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아니기에 피할 수 없는 거리감과 무력감을 감수한다. 그리고 최대한의 존중을 담아 그 장소에 시선을 붙잡아 두는 방법을 고민한다. 장시간 노출은 그들의 고행과 침묵의 시간에 대한 메타포다.
고공농성을 이처럼 ‘묵직하게’ 다룬 책은 흔치 않다. 간간이 고공농성을 다룬 뉴스와 기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우리의 눈과 귀는 그 소식을 금방 흘려버린다. 이 책은 고공농성을 다룬 많은 기록과 보고서의 목록에 추가된 여분이 아니다. 작가는 “한 시대의 위대한 기념비” 를 통해 집단의 기억을 보존함과 동시에 절박했던 고행의 현장이 우리 모두의 장소임을 넌지시 일깨우고 있다.
― 박평종(미학자, 사진비평가)
― 장일호(기자)
― 희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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