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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4,740원, 167권 펀딩 / 목표 금액 1,000,000원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로 출간되었습니다. 
  • 2024-03-16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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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일상적 재난의 시대, 우리 사회의 '안녕'을 묻다"

미래 세대에게 들려주는
무고하고 비통하고 유구한 이야기
우리 세계의 재난과 사회적 기억에 관하여


일상적 재난의 시대, 안전한 삶과 세계를 위해 ‘사회적 기억’의 의미를 깊이 그리고 기꺼이 탐색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여기에 있었으나 돌아오지 못한 무수한 이들, 재난이 앗아간 무고한 이름들에 노란 리본을 다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안녕’을 다시 묻는다.
20세기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국가 폭력, 제노사이드, 산업 재해, 자연재해와 그에 얽힌 복합적인 인재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있는가? ‘참사’로 불리며 충격을 주었던 수많은 재난으로부터 우리는 마땅히 먼 곳에 있을 권리가 있고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세계는 전혀 안전하지 않으며, 재난을 외면한 자리엔 더욱 참담한 ‘재난의 반복’이 들어서고 있다.
그간 『세상 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을 펴내며 가장 평범하고 구체적인 삶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보편적 맥락을 탁월하게 길어 올려온 사회학자 노명우는, 이 악무한의 재난을 멈추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들여 간절한 자세로 재난을 마주한다. 그는 책 전체에 걸쳐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수십 건의 사회적 참사를 사회학적 시선으로 면밀하게 살피며, ‘잠정 – 전조 – 사태 발생’이라는 각각의 국면마다 도드라지는 재난의 구조를 끈기 있게 읽어 낸다. 아울러 ‘기억과 반격의 투쟁’이라는 재난 이후의 메커니즘이 이 세계를 어떻게 어둠 속으로 끌고 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마치 촛불을 들고 긴긴 터널 속을 걷듯, 어둠이 깊어지는 자리마다 멈추어 우리가 외면한 세계가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가만히 주위를 밝히는 작업을 반복한다. 온기를 잃지 않는 객관적인 사유의 힘은 “그들은 슬프겠지만 사실 우린 좀 피곤하지 않나요?”, “어차피 다들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원래 반복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차마 내뱉지 못한 질문들조차 아프게, 성실하게 끌어안는다. 앞선 세대는 기억의 연대로 타인의 고통을 향해 함께 걸어갈 것을 약속하게 되고, 다음 세대인 미래 세대는 그날의 ‘왜?’가 자신의 ‘왜?’가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책이다.


출판사 서평

“사회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재난과 기억”
여기에 있었으나 돌아오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
재난이 앗아간 이름들 앞에 노란 리본을 다는 마음으로


재난을 목격하면 우리는 곧 스스로에게 먼저 해명해야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재난이 발생했는가?”, “왜, 비슷한 재난이, 다시 발생했는가?”라는, 고통스러워서 잊기 쉬운 질문을.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참사’라고 불리며 우리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수많은 재난은 ‘대규모 인원이 한날한시에 혹은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사망’한 사건들이다. 문장 자체로 매우 끔찍한 이 재난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외면한 자리에는 여전히 재난이 남긴 고통과 피해가, 재난의 원인과 재난이 반복되는 구조가 남아 있다.
특히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벌어진 국가 폭력, 제노사이드, 산업 재해, 자연재해 그리고 그에 얽힌 복합적인 인재(人災)와 같은 참사는 동시대의 십 대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십 대의 오늘과는 멀리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우리에게는 참사로부터 먼 곳에 있을 권리가 있다. 안전한 삶, 건강한 일상, 무탈한 생활……. 하지만 누구도 우리의 세계가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땅했어야 할 일이 가장 마땅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배신하는 장면을 몇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참사로부터 진실로 얼마나 지나왔을까? 정말 지나온 것이 맞을까?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이하 『왜 우리는』)에서는 우리 사회에 일어났던 재난을 잠정 국면, 전조 국면, 사태 발생 국면으로 나누어 각각의 국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한다. 사회학자의 시선은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의 재난을 두루 살펴 재난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비슷하게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슷하게 비이성적이고 불평등했던 세계의 모습을 또렷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각의 재난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추량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모색할 수 있다.
저자는 시종 차분한 어조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는데, 그 과정은 마치 촛불을 들고 긴긴 터널 속을 걷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이 깊어지는 자리마다 멈춰 서서 그 근원이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가만히 주위를 밝히는 작업을 반복하는 충실하고 강직한 야간 경비원. 반복되는 참사 앞에서 오늘의 십 대와 기억의 힘이 소진되어 가는 사회에 보탤 수 있는 이야기란, 위로를 넘어선 ‘책임’에 관한 것 아닐까? 시민과 함께 공부하는 사회학자 노명우가 시간과 마음을 들여 밝혀낸 재난을 간절한 자세로 마주한다.
지난 세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무고하고 비통하고 유구한 이야기는 우리가 이웃에 대해 더 열린 마음을 갖도록, 동료 시민들의 삶에 더 관심을 두도록,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도록 안내한다. 예기치 못한 팬데믹, 상상치 못한 전쟁, 지속되는 분쟁, 심화하는 기후 위기, 비슷하게 반복되는 중대재해까지, 재난의 연속과 계속을 ‘일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십 대를 비롯한 모두에게 우리 사회의 오래된 안부를 전한다.

“잊지 않는다는 것”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기억의 연대로 사회적 책임을 건져 올린다


‘어떤 사람들*’을 추방하는 목적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어디에라도 살아 있다면 절대 선동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수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부모들이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고아들만 수용하고 보호하도록 하라. 다른 고아들은 추방 행렬과 함께 보내라.

_파울로 코시, 이현경 옮김, 『메즈 예게른』, 미메시스, 2011, 95쪽.

*1915년 당시 튀르키예에 거주했던 아르메니아인을 말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고아들만 수용하라고 하는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당시 학살을 자행한 오스만 제국의 사실상 지도자였던 메흐메트 탈라트 파샤다.


10.29 5.18 4.3 1995 2014 2016 2018 1914~1918 1939~1945 1915~1916 1937 1978 1975~1979 1989 1994 1995.7.……
이태원, 광주, 제주, 삼풍 백화점, 세월호, 구의역, 태안 화력 발전소. 1차 세계 대전, 2자 세계 대전, 메즈 예게른, 난징, 러브 운하, 캄보디아, 힐스버러, 르완다, 보스니아……

우리는 어떤 날짜나 연도, 명사만 보고도 어느 날을 떠올리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가만히 숨을 고른다. 숨을 쉴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억 앞에서는 숨이 막힌다. 국가 폭력, 제노사이드, 산업 재해, 복합적 인재…… 20세기 이후 우리 역사는 재해와 인재, 전쟁과 분쟁, 사건과 사고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재난은 각기 다른 상처를 남겼고, 많은 경우에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재난을 떠올리는 일은 고통스럽다. 떠올리다 보면 그 죽음이 너무도 이상해서, 그러니까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는 것이 너무도 부자연스러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모든 죽음을 거의 잊고 지낸다. 그렇지만 계절이 봄에 이를 때, 어린이 보호구역에 있는 옐로 카펫을 볼 때, 지하철 차내 전광판에서 화재 발생 시 행동 요령 영상이 나올 때, 누군가의 기일이 돌아올 때, 문득 떠오른다. 그 모든 죽음이.
‘부모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만 보호하는 명령은, 가해자가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미래 세대의 기억은 참회 없이 세계를 유지하려는 모든 가해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켜켜이 쌓이는 시간 아래에 진실을 묻고, 무심히 흐르는 시간 위에 증거를 흘려보내려는 가해자의 흉계를 차단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세계에 어떤 참혹함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진실을 은닉하고 참회 없이 세계를 유지하려는 가해자가 횡행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속에 일말의 두려움을 심는다.
진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우리의 기억일 때, 다음 세대의 기억은 그 어떤 기억보다도 힘이 강하다. 열다섯에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부모와 세 누이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소년 엘리 위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전 세계가 다시금 새롭게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들었던 것처럼.

어떤 이름들 앞에,
“안녕.” 하지 못한 날들에,
오늘 우리의 약속을 건넨다


세월호 참사 10주년에 우리 사회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10년,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민이 되어 있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10대와, 즉 10년 전이 출생과 그리 멀지 않은 나이의 청소년들과 ‘10년 전’을 이야기한다는 것, ‘100년 전’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곱씹는다. 10년 전에도 세계가 있었고, 100년 전에도 세계가 있었는데, 그 세계가 그토록 참담했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은 이태원 참사와 영국 힐스버러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미국 러브 운하 참사, 삼풍 백화점 붕괴와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처럼 서로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비슷한 모습의 참사. 아르메니아, 난징, 유럽 전역, 캄보디아, 르완다, 보스니아에서 벌어졌던 제노사이드, 제주 4.3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군부의 학살, 노근리 양민 학살 등 국가 폭력. 재난의 불평등함을 생각하게 만든 자연재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산업 재해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 창경호, 남영호, 서해훼리호로 이어지는 세월호 참사 등 우리 세계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재난의 원인과 그러한 재난이 반복되는 구조를 파헤친다.
책에서는 집단에 대한 적대적인 말에서 시작해 집단 살해로까지 나아가는 과정, 규제 완화와 사회적 무관심, 무책임, 재난 대응 및 구조 미숙, 피해자 개인의 불평등한 사회 조건 등 다양한 기반 위에 벌어지는 재난을 분석하는 한편, 비슷하게 반복되는 재난 앞에서 우리의 ‘기억’은 해결의 시작점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우리를 망각으로 끌고 가는 시간과 가해자들의 조용한 반격에 맞서는 힘도 오직 ‘기억’에 있음을.
오직 기억하는 인간만이 다른 인간을 사라지지 않게 만든다. 기억은 우리가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자, 더 안전한 세계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우리 세계의 어두움을 아는 것, 그리고 어둠이 아직 거기 있음을 기억하는 것.

When you walk through a storm (폭풍 속을 홀로 걸을 때에는)
Hold your head up high (고개를 높이 들어라)
And don’t be afraid of the dark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라)

At the end of a storm (그 폭풍의 끝엔)
There’s a golden sky (황금빛 구름과)
And the sweet silver song of a lark (종달새의 달콤한 은빛 노래가 있을 테니까)

Walk on through the wind (바람을 헤치고 걸어라)
Walk on through the rain (빗속을 헤치고 걸어라)
Though your dreams be tossed and blown (비록 꿈이 상처받고 흔들릴지라도)

Walk on, walk on (걷고 또 걸어라)
With hope in your heart (마음속 희망과 함께)
And you’ll never walk alone (그대는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You’ll never walk alone (그대는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_Hammerstein Oscar Ⅱ, 〈You’ll never walk alone〉, 1945.

사라지지 않게, 흐려지지 않게. 진실이 모두 밝혀지고 우리의 비통함이 사그라질 때까지, 무고한 영혼이 안심하고 떠날 때까지. 유구하고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더 아득한 이야기들에 기억을 위한 약속을 건넨다.

책 속에서

재난은 다릅니다. 재난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상흔을 남깁니다. 잊고 있는 줄 알았다가도 수학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한국인은 세월호를 떠올립니다. 그해 4월 세월호와 함께 세상의 상식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내뱉었던 “이게 나라냐.”라는 푸념을 여전히 되풀이합니다. 습관적으로 별 뜻 없이 말해 오던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등장한다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절을, 세월호 이후의 우리는 마음이 아려 쉽게 내뱉을 수 없습니다.

_1장 중에서, 「참사 이후 우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재난은 때로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이고, 어떤 재난은 인간의 무지와 태만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재난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일어나고, 어떤 재난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고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모든 재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희생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_2장 중에서, 「되풀이되는 재난을 멈추려면 재난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예평론가로 나치의 희생자 중 한 명인 발터 베냐민은 인간의 역사는 진보에 진보가 더해지는 개선이 아니라 비극에 비극이 더해지는 파국의 역사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베냐민이 상상한 ‘역사의 천사’는 기술 문명의 찬란한 성과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재난의 행렬을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지요.

_3장 중에서, 「‘역사의 천사’가 내려다보는 우리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수면 위로 올라온 파국의 그 순간만을 생각하면 재난은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비극처럼 보입니다. 삼풍백화점이 완전히 붕괴하는 데 겨우 20초밖에 안 걸렸던 점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그런데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작은 섬도 바닷속 깊은 곳까지 살펴보면 보이지 않았던 거대하고 연속된 지형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가 사태 발생 국면만 살펴보고 재난을 해석할 때 많은 것을 놓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떤 재난은 한두 달 혹은 수년간의 잠정 국면과 전조 국면이 아니라 몇십 년, 몇백 년에 걸친 아주 기나긴 잠정 국면과 전조 국면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_3장 중에서, 「불평등은 자연재해를 재난으로 만듭니다」


미디어의 집중 조명이 지나간 자리에서 재난에 대한 사회적 주목이 수면 아래로 다시 내려가기를 바라는 세력이 있습니다. 재난의 분명한 가해자이거나 재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인데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할 경우, 참상이 외부에 알려져 시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기에 재난 현장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망각의 순간이 빨리 도래하도록 말입니다.

_4장 중에서,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법원의 처벌은 그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에 따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내려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재난은 법정에서 따질 수 없는 사회적 맥락 속 ‘정의롭지 않음injustice이 만들어 낸 파국입니다. 재난을 품은 정의롭지 않음은 법정에서는 심판되지 못합니다. 부정의가 심판되지 않는 이상 재난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지요.

_5장 중에서, 「죄와 벌 그리고 처벌과 범죄: 사회적 기억술은 형사 처벌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원자력 발전에는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단 하나의 진리가 없다는 사실, NRC 같은 원자력 전문가 위원회를 무조건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 많은 위험 요소가 전문가 집단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는 깨달음이 더해지면서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미국 내에 반핵 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전문가 집단이 모두를 재난의 피해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독점하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 정보를 감춘다는 사실은 공공성의 부재를 확인해 줍니다. 공공성의 부재가 불평등만큼이나 사고를 재난으로 만드는 사회적 취약성이라는 사실이 스리마일 사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_6장 중에서, 「화석 연료 의존을 줄이려고 과학의 힘으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했으나」


형사 처벌만이 재난 피해자에게 원상회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유일한 수단일까요? 범죄와 형벌은 법정에서 법원이 다루는 영역이지만, 죄와 벌은 사회가 재난 이후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책임을 묻는 사유의 틀입니다. 범죄는 재난 사태 국면만을 문제 삼지만, 죄는 깊은 기억의 힘을 원동력으로 삼아 재난의 잠정 국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근본적으로 따져 물어 찾아낸 잘못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처벌은 끝났어도 죄에 대한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_7장 중에서, 「진솔한 사회 요청이 있어야 궁극적 용서Vergebung도 가능합니다」


편집자의 말

2014년 봄에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내가 무사히 그 계절을 건너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내가 우연히 어떤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날 다음 해에는 커튼을 모두 쳐서 교실을 어둡게 만든 후에 작년 봄까지는 분명 있었던 사람들의 추모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그날은 같은 반 애의 생일이었는데, 그 애는 자기 생일에 이게 뭐냐며 울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게 다 뭐지?’ 나도 영상이 시작될 때부터 울고 싶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 이유가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미안했고. 나는 구해지지도 못할 것이다, 화가 났다. 그 두 문장을 노려봤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런데 왜인지 나에게는 비행기를 탄 기억이 없다. 나중에 친구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서야, 비행기를 타고 갔고, 다시 돌아올 때는 비가 와서 우비도 썼다는 걸 알았다. 사진을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배를 타고 갔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기억은 나의 기억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일부를 이룬다. 가끔 인간이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고, 더 가끔은 살아있다는 게 신비하다.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었다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사람이 태어나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건 100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기적이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나와, 나와 같은 인간을 믿는다. 우리의 기억을. 과거, 현재, 미래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신피질이 발달하며 생겼다고 한다. 그럼 나는 신피질을 믿는다.
나의 기억이 아닌 것이 나를 이룬다고 할 때, 지난 세기부터 오늘까지 재난의 기억을 살피는 일은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일과 같다. 나는 이들과 함께 좀 더 좋은 기억을 안고 만족할 만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한다. 재난은 무관심과 망각을 동력으로 반복되므로. 부디 우리의 기억이 우리를 충분히 지켜주기를.

저자 소개

노명우
사회학자이자 독립 서점 북텐더입니다.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학문이 사회학이라고 믿고 있기에 교수라는 호칭보다 사회학자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2014년 4월 16일 뉴스 속보를 접하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수학여행 가는 배가 전복되었는데 다행스럽게 전원 구조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오보였음을 알게 된 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철저한 진상 규명은 ‘아직도’ 입니다. 진심 어린 사과도 ‘아직도’입니다. 그날 이후에도 일어나서는 안 될 또 다른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느새 그날의 다짐을 잊고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잊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태를 바라보는 사회학의 눈으로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재난을 용기 내어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잊는 이유와 재난이 되풀이되는 까닭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 책이 더 이상 읽힐 필요가 없는 미래를 다 함께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여러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목차

1. 금요일에 돌아오지 못한 2014년의 열일곱 살이 있습니다
2. 달력에 표시되지 않은 재난도 있습니다
3. 희생자의 눈으로 재난을 바라봅니다
4. 재난 이후 우리는 반격과 기억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게 될까요?
5. 기억은 우리 모두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6. 우리 모두는 재난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7. 혼자 걷게 하지 않도록 함께 부르는 노래

도서 정보



도서명: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 기억하는 사람과 책임감 있는 사회에 관하여>

분류: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인문/사회/경제
판형: 135*210mm (208쪽)
정가: 15,800원
출간 예정일: 2024년 4월 16일
펴낸 곳: 우리학교

* 표지 및 상세 제작 사양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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