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2666』의 1부부터 5부까지는 서로 관계없는 듯한 각각의 지류들을 구성하지만 결국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과거와 현재는 모호하게 뒤섞여 있고 그것 자체로 하나의 연속성을 띤다.
1부 「비평가들에 관하여」: 각지에서 모인 문학 연구가들과 비평가들이 탁상공론을 갖는다. 공론의 주제는 수수께끼의 작가 <베노 폰 아르킴볼디>. 얼굴도, 주소도, 심지어 생사조차도 전혀 알려진 바 없는 그를 찾기 위해 몇 가지의 단서를 얻어 무작정 길을 떠나는데…….
2부 「아말피타노에 관하여」: 아르킴볼디의 책을 번역한 칠레의 교수 아말피타노는 자신의 딸 로사와 함께 멕시코 북부의 국경 지역에 정착한다. 불온한 지역의 분위기가 엄습하고, 아말피타노는 자꾸만 이상한 꿈에 시달린다.
3부 「페이트에 관하여」: 미국의 신문 기자인 오스카 페이트는 권투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산타테레사로 간다. 그러나 그는 권투 경기보다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지는 여성 범죄 사건에 관심이 쏠린다. 전 세계 언론에 아직 보도된 바 없는, 그러나 너무도 참혹한 범죄 사건들을 조사하다가 그에 연루된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4부 「범죄에 관하여」: 연일 무수한 여성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이곳은 산타테레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과 탐정들이 몰려든다. 교회 곳곳에서는 미지의 인물이 똥오줌을 갈기고, 사건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경호원으로 일하던 랄로 쿠라라는 청년을 영입한다.
5부 「아르킴볼디에 관하여」: 잠수하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키 큰 금발 소년 한스 라이터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다. 떠나온 가족, 특히 어린 여동생 로테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어느 날 유대인 작가 보리스 안스키의 일기를 계기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의 필명은 <베노 폰 아르킴볼디>다.
이 두꺼운 책을 왜 읽어야 하나. 왜? 처음에는 진짜 질문은 아니었고, 책을 끝냈을 땐 정말로 물었다. 왜? 이 거대한, 어쩌면 평생 만날 어떤 작품보다도 거대할 책은, 그러니까 왜? 당연히 처음에는 답을 바란 게 아니고, 마칠 때쯤에는 나름의 어떤 답을, 아마도 (늘 그랬듯) 희망적인 어떤 답을 떠올리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답이라고 하자면 많긴 했지만, 그 많은 이유 중에서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늘어놓게 될 답들은 어쩌면 이 책의 <겉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주워섬길 답들을 대충 짐작해 두었는데, 그 말들이 공허하게 겉돌고 있다고 느낀 것은, 틀린 말들이어서가 아니라 이렇게나 진지한 책 앞에서 관성적인 말들을 늘어놓기가 창피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 독서의 의미를 아주,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이 책의 중심에는 21세기에 벌어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유례없는 규모의 연쇄 살인 사건이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악행은 20세기의 세계 대전과 나치의 대학살과도 이어진다. 인간의 유구한 악행들. 이 책에는 숨을 고르게 만드는 장면이 적지 않지만 4부에서 백 명이 넘는 여성들의 시신을 묘사할 때는 몇 번인가 멈췄다. 일단 너무 고통스러웠고,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런 살인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아요. 하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보이는 것을 외면하기. 엄연히 있지만 없는 듯 살아가기. 이 고통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이 고통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어떤 희망도 주지 않는다. 또는 희망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모든 게 중요성을 상실했을 때에>나 실현된다고 한다. 인간의 삶이라는 이 절망에는 출구가 없다. <우리는 항상 어둠 속에서 이동한다.>
책에서 한 형사는 잔혹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를 생각하다가 밤중에 홀로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지만 고개를 들면 그저 메마른 피부뿐 눈물 자국이 없다. 눈물이 없는 울음. 어쩌면 이것이 가장 많이 우는 울음인지도 모른다. 예리한 감정과 무감각한 반응이 동시에 덮치는 것, 그렇게 외면이자 외면이 아닌 상태에 놓이는 것. 그 상태에 대해, 몇 번인가 그러지 않았던가, 흐느끼는데 눈물 없이 무정한 얼굴을 하지 않았던가,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큼 나빴을까 하고.
이 작품은 악몽처럼, 어떤 망각처럼, 완전한 어둠처럼, 계속된다. 지금도 나는 이 책을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이야기들, 크게는 다섯 개이며, 들여다보면 수십, 수백 개이고, 결국엔 하나인 이 이야기들은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이야기들조차 끝이라고 말해 주지 않는다. 개인이 누릴 수 없는 어떤 영속성처럼 이야기들은 말이 멈추고도 계속되는 것만 같다. <영속적인 축제란 무엇일까? 살고자 하는 마음, 그러니까 싸우고자 하는 마음일까? 불가항력과 맞서 싸우는 것일까? 누군가와 맞서 싸우는 것일까? 무엇을 얻으려고 싸우는 것일까? 더 오래 살려고,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본질적인 것의 모습을 보려고 싸우는 것일까? 이 지랄 같고 좆 같은 행성에 본질적인 게 있단 걸까?> 본질적인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볼라뇨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진 않았겠지만, 『2666』이 맞서 싸우려고,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안스키의 원고를 읽는 아르킴볼디는, 살인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고 한 사람들은 보려고 한다. 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고통의 크기도, 절망의 깊이도, 그리고 그곳에 어떤 본질이 있는지 없는지도.
세계의 고통을 탐구하는 데 책이 이만큼 두꺼울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어쨌거나 볼라뇨는 거기서 끝까지 맞서 싸운다. <위대하고 불완전하며 압도적인 작품들, 즉 미지의 세계 속에서 길을 열어 주는 작품들을 읽기 두려워해. 그들은 위대한 스승들이 연습 경기 하는 걸 보고 싶어 해. 하지만 위대한 스승들이 무언가와 맞서 싸울 때, 그러니까 피를 흘리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악취를 풍기면서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것과 싸울 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2666』이 그런 작품일까? 아마도. 문학사에 어떻게 남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앞으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위대하고 불완전하며 압도적인> 작품이 되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집요한 응시, 깊은 나락의 심연을 좇는 이 응시는 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더없이 진지한 질문이다. 그 질문은 결코 짧을 수가 없다.
편집자 권은경
서로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물은 인간의 악에 의한 과거의 희생자이자 어떠한 광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금의 우리이기도 하고, 또 닿을 수 없는 먼 미래에까지 끊임없이 반복될 지옥도의 일부다. 악과 광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2666』은 그런 작품이고, 특별판의 표지 또한 그 어두운 부분을 직시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만들어졌다. 압도적인 장정이 돋보이는 이번 특별판이 볼라뇨를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이 멋지고 방대한 작품을 다시 읽게 할 결심이 되길 바란다.
함지은, 열린책들 디자인 팀장
이 작품으로 볼라뇨는 프루스트, 조이스, 핀천 같은 20세기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불멸의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
하나의 문학 형식으로서 소설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기념비적인 작품. ―조너선 리섬,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볼라뇨의 최고 걸작. 오늘날까지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는 후아레스의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대담하고 폭력적인 소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2666』을 읽으면 볼라뇨가 왜 대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뉴요커』
라틴 아메리카, 미국, 그리고 유럽 문학계의 전통을 잇는 작가 볼라뇨의 출현은 현대 문학의 역사 가운데 지극히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볼라뇨의 초현실적인 소설을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광적인 영광 가운데 체험되어야 한다. ―스티븐 킹
볼라뇨는 미래를 위해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작가다. 우리는 그의 이상야릇한 천재성을 이제 겨우 알아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돌이켜 보면, 그리고 그의 때 이른 죽음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에 드리운 운명의 그림자가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일종의 유쾌함이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죽음의 계곡 속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가 떠오르지 않는가. ―존 밴빌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넘치는 이 작품은 볼라뇨가 지닌 강박과 환상, 다성적 목소리의 변주와 심지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 자신의 모습까지도 한꺼번에 보여 준다. ―『렉스프렉스』
대부분의 작가들과 달리 볼라뇨는 플롯을 선명히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겹겹의 아이디어들을 늘어놓음으로써 이야기의 도가니탕을 만들어 버린다. 제임스 조이스의 계승자로서 그는 가장 일어나지 않을 법한 상황들을 창조해 내며, 이러한 기교로 써 내려간 작품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 자기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한다. ―『리르』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완벽한 칠레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다. 바로크적인 동시에 간결하고, 현학자인 척하지 않고도 박식하며, 비극적 형이상학자이자 진지한 농담꾼이며, 시에 미쳤지만 흠잡을 데 없이 효율적인 소설적 재능을 타고난 작가. (……) 우디 앨런과 로트레아몽, 타란티노와 보르헤스를 섞어 놓은 듯한 비범한 작가. ―파브리스 가브리엘
볼라뇨의 작품들은 <삶의 급류>이다. ―후안 비요로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소설가, 라틴 아메리카 최후의 작가. 지금은 이 땅에 없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바치는 찬사들이다.
볼라뇨는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멕시코로 이주해 청년기를 보냈다. 항상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던 그는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0대 초반에는 <인프라레알리스모>라는 반항적 시 문학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20대 중반 유럽으로 이주, 30대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투신한다.
볼라뇨는 첫 장편 『아이스링크』(1993)를 필두로 거의 매년 소설을 펴냈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볼라뇨 전염병>을 퍼뜨렸다. 특히 1998년 발표한 방대한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면서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는 위대한 문학가로 우뚝 섰다. 그리고 2003년 스페인의 블라네스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매달린 『2666』은 볼라뇨 필생의 역작이자 전례 없는 <메가 소설>로서 스페인과 칠레,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범죄, 죽음, 창녀의 삶과 같은 어둠의 세계와 볼라뇨 삶의 본령이었던 문학 또는 문학가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암담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관한 통렬한 성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의 글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되고 혼재하며, 깊은 철학적 사고가 위트 넘치는 풍자와 결합하여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송병선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카로 이 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콜롬비아의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베리아나 대학교와 콜롬비아 국립 대학교에서 전임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영화 속의 문학 읽기』, 『라틴 아메리카 문학과 한국 전쟁』, 『〈붐 소설〉을 넘어서』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알레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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