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인간성의 탐구와 시대정신의 비판적 고찰이라는 문학의 역할을 견지하되 과학적 상상력 혹은 일상에 침투하는 환상적 세계관까지도 적극 포용하는 새로운 소설 시리즈를 출간하고자 합니다. 인간을 ‘가능한 다른 세계’에 던져놓고 새로운 조건 위에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SF를 중심으로, 소위 말하는 순문학과 하위 문학 장르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어뜨리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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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탐구와 시대정신의 비판적 고찰이라는 문학의 역할을 견지하되 과학적 상상력 혹은 일상에 침투하는 환상적 세계관까지도 적극 포용하는 새로운 소설 시리즈를 출간하고자 합니다. 인간을 ‘가능한 다른 세계’에 던져놓고 새로운 조건 위에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SF를 중심으로, 소위 말하는 순문학과 하위 문학 장르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어뜨리기를 희망합니다.
2019년 3월 1차분 2종 동시 출간
《천국보다 성스러운》 김보영 지음, 변영근 그림
《산책하는 침략자》 마에카와 도모히로 지음, 이홍이 옮김, 최재훈 그림
★ 듀나, dcdc, 김보영, 송경아, 김성일, 이수현, 마샤 웰스, 응네디 오코라포르 외 출간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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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복판에 신이 강림했다. 사건은 놀라웠지만 신의 형상은 진부했다. 신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손가락 장난을 치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로, 남자/백인/이성애자/비장애인의 형상으로 내려왔다. 퇴근 후 좁은 부엌에서 허겁지겁 밥을 차리는 영희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방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신의 얼굴을 보며, 신의 형상이 저러하니 나를 경애해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신은 남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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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복판에 신이 강림했다. 사건은 놀라웠지만 신의 형상은 진부했다. 신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손가락 장난을 치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로, 남자/백인/이성애자/비장애인의 형상으로 내려왔다. 퇴근 후 좁은 부엌에서 허겁지겁 밥을 차리는 영희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방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신의 얼굴을 보며, 신의 형상이 저러하니 나를 경애해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신은 남자로구나….”
김보영 작가는 《천국보다 성스러운》에서 서로 얽히는 액자식 구성으로 다섯 편의 엽편 소설을 엮어냈다. 서울 아파트의 비좁은 부엌 한 켠에서 시작된 영희의 상상은 광화문의 하늘과 그 아래 혼잡한 광장, 인류가 절멸한 먼 미래를 오가며 역사를 지배해온 ‘신성한 보편’에 ‘불경한’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이야기인 인류 역사에 대한 짧은 우화는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그 차이를 성역화한 기나긴 과정이 신의 이름으로, 신의 의지를 빌려 자행되었음을 간추려 보여준다. 남자는, 백인은, 이성애자는, 비장애인은 필요할 때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신을 소환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 이야기에서 인간은 미래의 신이 된다. 인류가 절멸한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을 멸종한 신으로 떠받들고 부활시키려 한다. 그러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신전에 모인 로봇들은 회의를 거듭하지만 신의 비합리성을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한 가지 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세 번째 이야기부터 영희의 상상과 현실은 뒤섞이기 시작한다. 유난히도 노을이 붉은 저녁 광화문 하늘에서 신이 내려온다. 홀로그램일까? 어쩌면 첨단 기술로 빚어낸 새로운 홍보물일까? 신의 형상은 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생김새만으로도 아주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의 신들이 하나둘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영희는 무언가를 깨닫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신을 소환하지 않는, 천국보다 성스러운 지상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가 온 세상에 뿌려진 신의 한 파편임을 지각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 이 작품은 서교예술실험센터의 ‘2018 스페이스 어딧세이: 지금 여기가 아닌 것들에 대하여’라는 기획으로 ‘전시공간’에서 김보영 작가와 변영근 일러스트레이터가 협업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입니다.
* 위의 표지 이미지는 실제 출간 시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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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팬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한국 대표 SF 작가이다. 2004년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에서 《촉각의 경험》으로 중편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첫 발표한 《7인의 집행관》은 2014년 제1회 SF어워드 장편부문에서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 작품 및 작품집으로 《멀리 가는 이야기》, 《진화신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저 이승의 선지자》 등이 있다.
적막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작가.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의 경계에서 수채물감으로 작업하고 있다. 순간을 느리게 보며 사건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과 놓치기 쉬운 것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최근 그래픽 노블 《낮게 흐르는: Flowing Slowly》을 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프터 다크》, 일본 뮤지션 스커트 싱글앨범 커버 그림과 대한항공 CF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무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는 신세 한탄을 한다. 요새 세상이 어떻게 되어먹었기에 아내까지 잃은 불쌍한 늙은이 하나 돌볼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는 채널을 돌리며 구차함을 잊고자 한다. 그는 선한 사람이고 사는 게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다가도 고작 삼시 세끼 먹기가 왜 이리 서러운가 싶어 울화통이 터지곤 한다.
그는 알지 못한다. 그가 아주 간단히 그 구차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서 괄시 대신 사랑을, 멸시 대신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족의 화목과 삶의 풍요가 그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잃어버린 모든 품위와 권위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들어가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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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는 신세 한탄을 한다. 요새 세상이 어떻게 되어먹었기에 아내까지 잃은 불쌍한 늙은이 하나 돌볼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는 채널을 돌리며 구차함을 잊고자 한다. 그는 선한 사람이고 사는 게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다가도 고작 삼시 세끼 먹기가 왜 이리 서러운가 싶어 울화통이 터지곤 한다.
그는 알지 못한다. 그가 아주 간단히 그 구차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서 괄시 대신 사랑을, 멸시 대신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족의 화목과 삶의 풍요가 그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잃어버린 모든 품위와 권위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들어가기만 하면.
쌀을 씻어 밥통에 넣고, 냄비에 국을 앉히기만 한다면. 더러워진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만 하면, 빗자루를 들고 집을 쓸고 걸레질을 한다면.
하지만 그는 영영 이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의 비천함은 오직 그가 하루를 온전히 홀로 생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는 것을. 그의 구차함은 오로지 남이 지은 밥을 대가 없이 제 입에 쑤셔 넣는 데에서 온다는 것을.
_‘1’ 중에서
“너 말고 여자 로봇이 시중을 들어주면 좋겠어. 너처럼 두툼하고 깡통처럼 생긴 로봇 말고 말야. 좀 꾸리꾸리하잖아.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여자가 옆에서 말벗도 되어 주고, 밥도 좀 해 주고, 그… 육체적인 것도 해주면 좋겠지만 기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여자 로봇을 불러 줘. 너희 중에서 가장 예쁘고 섹시한 친구로. 그거 말곤 난 별로 바라는 거 없어.”
남자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말한 뒤 자신의 너그러움과 소박함에 대한 가벼운 찬사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Al을 보았다. Al은 정지해 있었다.
숨을 쉬지도 눈도 깜박이지 않는 철로 된 생물(이라고 봐야겠지)이 동작을 멈추고 입을 다무니 적막의 무게가 달랐다. 남자는 뼛속까지 도로 얼어붙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잘못했으니 그만 도로 냉동실로 돌아가겠다고 고백하고 싶어질 즈음에 Al이 입을 열었다.
“‘여자’가 무엇입니까?”
남자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인간인데 나랑 좀 다른 인간이야. 가슴이 있고….”
“그러면 로봇 중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알아.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여자처럼 생긴 로봇 말이야. 마르고, 가슴이 있고, 엉덩이가 좀 나왔고, 얼굴이 좀 예쁜….”
“제 외모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남자는 이처럼 간단한 문제에 왜 이처럼 많은 설명이 필요한지 혼란스러워하며 Al을 앉혀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설명을 들은 Al은 더 깊은 신학적인 혼란에 빠졌을 뿐이다.
“죄송합니다만, 신이시여.”
Al은 신중하게 물었다.
“지금 말씀하시는 ‘여자’라는 것은, 말하자면, 모델명인지요?”
_‘두 번째 이야기’ 중에서
“역시, 신은 남자로구나.”
영희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마주보았다.
어쩌면 사람이 이토록 초라한가. 초월자로서의 능력도, 지혜도 교양도, 후광도 초능력도 거대함도 위엄도 없는 사람이, 신과 고작 단 하나의 닮은 점밖에 찾지 못한 하찮은 피조물이, 고작 그것 하나를 두고 신이 자신과 동류라는 확신에 젖어 말한다.
제 옆에 있는 가족더러, 너는 그렇기에 나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겠느냐고, 너는 나보다 열등하지 않느냐고, 받아들이고 나를 경애해달라고 애처롭게 눈을 빛내며.
“역시, 신은 남자로구나.”
하지만 TV를 보던 어떤 사람들은 다른 말을 했다.
“역시, 신은 백인이었어.”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친구, 동료, 애인, 아내를 벅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신성함과 우월성을 확신하며, 동시에 상대의 열등함을 확인하는 얼굴로.
말은 계속 이어졌다.
“코카서스 인종이야.”
“남방계인데.”
“역시, 노인이로군.”
“장애인이 아니야.”
“이성애자일 줄은 알고 있었지만.”
“얼굴에 여드름도 없지.”
“대머리도 아니고.”
“역시, 키가 커.”
“근육질이야.”
“관상학적으로 태양인이네.”
“귓볼이 넓어.”
“복점 있는 것 봤어?”
“유태인 전통복장을 입고 있잖아! 역시 신은 유태인이었어!”
_‘세 번째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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