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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고미숙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0년, 대한민국 강원도 정선 함백

직업:고전평론가

기타:고려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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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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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연구자들의 코뮨 연구공간 '수유+ 너머'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아, 어딘가에서 들어보신 것 같다구요? 네, 지난 1년간 '수유 + 너머'는 상당히 많은 지면에서 소개되었고, 또 회자되었습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노마디즘>과 같은 책들이 이 공간에서 탄생되었고, 수많은 세미나가 매일 진행 중이라고 하며, 고미숙, 이진경, 고병권 등의 유명 저자들이 이 곳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월에는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다소 거창한 부제로 이 공동체의 지난 세월을 담은 책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가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는 이 공동체의 부산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솔직하게 고백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된 알라딘 편집자들이 연구공간의 전 대표이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의 저자 고미숙을 만났습니다. 열정을 부르는 마술에 홀린 듯한 두 시간이었습니다. 막상 연구실을 들여다보니, 앎과 삶의 통일이니, 욕망의 재배치니 하는 것보다는 '밥 해먹는 부엌'이 더 크게 보인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부엌과 앎과 삶을 통일시킨, 오늘 내 삶으로 혁명을 표현하고자 하는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가실까요?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사회과학 담당 최성혜, 이예린)
 
 
고미숙, '수유+너머' 그리고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알라딘 : 먼저, 자기소개 해주세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세미나 전에 각자 하는 것처럼 재미나게요. ^^

고미숙 : 제가 좀 웃기긴 한데요, 얘기를 재밌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작정하고 웃기는 것보다는 느닷없이 웃기는데 더 강하거든요.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다면, 10년쯤 전에 고려대학교에서 한국고전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뒤로 인생역전을 몇 번 해서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어서 평생직장을 얻게 되었지요. 요즘은 주로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구요, 그 중에서도 세미나, 공부, 강의보다는 등산, 요가, 문호리 텃밭 가꾸기와 같은 활동을 많이 하고 있죠(웃음).

소음 속에서 사색하고 글쓰는 것이 특기예요. 전에 석마빌딩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을 꼬셔서 같이 공부하려고 그 사람들에게 좋은 자리를 주다보니 저는 바로 문 앞에 앉게 되더라구요. 사람들 들락거리고 모여서 떠들고 바깥 소음 들리고... 거기에서 <열하일기>를 썼어요.

그리고 동시다발로 여러 가지 일하기도 특기예요. 다른 장점은 없지만 이건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하하. 공동체에서는 이런 능력이 필요하지요.

알라딘 : 얼마 전에는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300 페이지 남짓한 책을 내실 때에는 단순한 소개 이외의 이유가 있었을 듯도 합니다.


고미숙 : 역시 지금까지 우리가 생활한 것과 비슷해요. 출판사에서 우리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부추겼는데 몸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마침 원남동으로 이사한 후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활동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즈음이었어요. 지금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고, 그걸 잊으면 모든 시행착오가 잊혀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까지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매듭을 짓고 다른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였어요.

그 때 한 포럼에서 제가 '지식인 공동체'를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어요. 이왕 거기에 대해 쓰는 김에 책까지 만들자고 했는데, '수유+너머' 식구들도 제가 이 책 쓰고 있는 것을 몰랐어요. 나중에 제목을 공모하면서 얘기를 꺼냈더니 '너머디즘'이라고 제목을 짓자는 사람들도 있었죠.

알라딘 : '수유+너머'는 이제 '자율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율'이 자동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것 같은데(<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엔 자랑은 많지만 갈등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으셨어요) 개인들이 많이 부딪히는 점은 뭔가요? 다양한 개개인이 일상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참을 수 없는, 그러나 말로 하기 힘든 문제는 어떻게 해소하시는지 한 수 배우고 싶어요.

고미숙 :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활동이 소수에 집중되는 문제가 있었죠. 뒤에 오는 사람은 배려를 받으며 들어오니까 수동적이 되고 성격에 따라서는 적당히 배려 속에 머무르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그러면 계속 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갈등을 겪게 되지요.

그런데 성실한 사람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워요. 자타가 성실하고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장점 때문에 변화가 안되잖아요. 그래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간에 벽이 생기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럴 때에는 서로 다른 활동을 하도록 해서 문제를 풀었어요. 새로운 활동이 생겨나고 그 안에 들어가면 새로운 관계에 따라 감정이 소멸되지요.

리더십이란 대립적인 사람들까지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강하게 끌어가주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힘이 없으면 공동체가 되지 않아요.

알라딘 : 우리 사회에서 '배운다'는 것은 스승이나 학교가 가진 노선을 따라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수유+너머'에서도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따르고 있는 노선이 있습니까? 또한 사상적인 문제에서의 충돌에 대해서도 언급하신 일이 없는데, 경계 가로지르기를 추구하는 '수유+너머'에서라면 각자가 이제까지 공부해온 바나, 가지고 있었던 의견이 상충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 같습니다.

고미숙 : 특별히 표방하고 있는 것은 없어요. 특성은 있죠. 노마디즘, 동아시아라는 경향성이요. 그러나 반대되는 공부를 한다고 해서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저 개인적으로는 프로이트를 싫어하는데 연구공간 내에 프로이트 세미나는 무척 많더라구요. 반대도 마찬가지구요. 공부 영역에서의 제한성은 없고, 이념과 반대되는 스승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 가지, 삶이나 지식을 생산하고 순환시키는 방법이나 태도에 있어 자본주의적 가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구성하고자 하는 지향은 있죠. 자기 수준에서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해요. 여기에서 배워서 대학원에 가서 폼나게 써먹는다든가 장사를 한다든가 하는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사람은 연구실에 있으면 안되죠. 자기만을 위한 활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우리 스타일이 그런 사람이 와서 적응하기가 힘드니까... (웃음) 그거 자체가 하나의 힘이에요.

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하셨는데, 과거를 뒤돌아보자면 이진경 씨는 PD였고, 정선태 씨는 NL이었고, 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모여 있죠. 어색하다기보다 80년대였다면 같이 모이는 것을 아예 상상할 수 없었겠지요. 새로운 지식을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배치의 변화로 가능한 일이었고, 또 저 자신의 노선이 불분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문제는 이제 술자리의 유머로만 남았어요. 지금은 새로운 배치를 시작해야할 때니까요.


'수유+너머'에 딴지 걸기


알라딘 : 수유연구실에서 애용하는 말들은, 너무 멋있습니다. "증식, 노마드, 확장, 연결된 신체(안드로메다), 증여, 순환, 꼬뮌, 밴드, 자율,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들(탈주)" 등인데, 가끔은 화려한 수사에 비해서 사회적 실천은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 어떤 실천을 목적의식적으로 하고 있나요? 알라딘도 '책과 사람과 정보의 공동체'인데... ^^

고미숙 : 8, 90년대에는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실천으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저에게는 체질에 맞지 않았고, 이제는 거기에 대해 자세히 알거나 태도를 정하고 싶지 않아요. 연구실 안에는 자신의 정파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일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오늘 내 삶이 혁명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모두 미래로 지연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나는 미래를 위해 살고 있는 걸까요? 모두 지연되어야 하는 걸까요? 개인은 모두 일상에 관심이 있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문턱을 넘어 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보여주는 걸로 정치적 실천을 하고 싶고, 앞으로도 그런 식의 실험을 할 거예요.

알라딘 : 제도에서 벗어나, 학문을 가로질러 배움을 주고받는 '수유+너머'의 활동은 신선한 시도였고, 여러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조명도 받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럭저럭 유명해지셨습니다. '수유+너머'가 하나의 문화권력이 되었다고 생각하신 일이 있는지?

고미숙 : 문제는 어떻게 권력을 배치하고 활용할 것인가죠. 저는 돈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명예는 잘 모르겠어요. 언론에 대해서는 덤덤해요. 왜냐면 새로운 인연들을 언론을 통해서 얻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세상에 환원시킬 내공이 있으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요.

밥을 하는 것만 하더라도 저는 그 행동에 지식과 혁명이 다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상과 지식의 결합이 아주 근본적인 데까지 가야 돼요. (탁자를 가리키며) 여길 이렇게 닦는 거 이렇게 말하는 거에도 다 표현되어야지, 어떤 걸로만 표현되면 안되거든요. 근본적인 것에 대한 태도, 자기를 계속 바꾸려는 의지, 즉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가가 아니라 자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는가, 이게 중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남들이 기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기본의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는 거, 그게 신념인 거고, 저는 이런 것을 내공이라고 생각해요. 또 이렇게 하면 문화권력의 논쟁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계속 자기를 비워가는 훈련을 하면 연구실이 더 엄청나게 비대해진다고 해도 문화권력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의 꿈은 서울 곳곳에, 특히 지방 곳곳에 이런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많이 벌어서 세상에 많이 쓰고, 그 쓴 것이 또 나의 어떤 능력으로 다가오고. 사실 뭐, 그런 거('문화권력' 논란)에 걱정 안 해요. 지금 주방이 사고치면 막 흥분하지만.

알라딘 : 수유 연구실을 꼬는 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가령, 청년실업이 400만 시대에, FTA 비준되냐 마냐 하는 시대에, '들뢰즈/가타리'가 밥 먹여주냐? 이런 의견들요.

고미숙 : 근데 우리는 그 들뢰즈/가타리로 먹고 사는 게 아니고, 공부해서 먹고 사는 거예요. 들뢰즈/가타리가 너무 눈에 띄니까 굉장히 과민반응하시더라구요. <열하일기>가 나왔을 때도 그 책에 대해서는 욕을 못하고, <열하일기>에 왜 들뢰즈/가타리가 나오냐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서는 분이 있더라구요. 저는 모든 종류의 지식에 대해 지식에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구촌 끝에 가서라도 스승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앎의 경계에서는 국적이나 성별이나 이런 장벽이 없어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워낙 선진국이 되다 보니까, 서양에서 유행하는 철학이 동시에 직수입될 수 있잖아요. 헐리우드 영화가 동시개봉하듯이. 그런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야 하죠.

그런데 그것도 우리가 새로운 경계를 넘어가면 버리는 것이고. 지식은 기본적으로 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도 연구실에서 들뢰즈/가타리보다는 동양고전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동양고전이 현실과 만나려면 어떤 '번역의 창'이 있어야해요. 바로 읽으라고 하면 그 경계에 못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그런 고전문학하는 사람이 들뢰즈/가타리나 푸코에게서 열심히 배우고, 푸코를 배우는 사람이 제가 <열하일기>를 쓰고 나니까 열하일기가 중요하구나 알게 된 거죠. 이런 식으로 교통이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청년실업이 많고 어떤 문제가 있고 등등 하는데, 저는 인문학적 지식이 물적 기반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70년대 같으면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절대적 빈곤을 의미할 수 있는데, 지금은 연구실 안에서 책을 낸다거나 프로젝트 단위로 지원받는다거나, 번역을 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창구가 있어요.

문제는 학교 안에서 특히 대학원에서 선생님이 그런 일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거죠. 저도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문학동네, 창비에 글을 썼거든요. 그 때 원고료를 받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다구요. 아르바이트로만 돈을 벌다가 원고료를 5,60만원 가지니까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운 거예요. 지금 우리 연구실에서는 석사를 마치지 않은 사람도 번역을 해서 돈을 벌고,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아요. 중산층에 비하면 작은 것이지만, 여기서 일상을 구성하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돈이 된다. 그거는 진짜 큰 가능성이죠.

에드워드 사이드는 제도권 지식에서 글쓰기나 사유는 정해져 있다고 했어요. 패턴화된 글쓰기가 고정되어 있다는 거죠.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삶과 분리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항상 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은 가려져 있어요. 가식 뒤에 숨어 자신의 삶은 뒤로 숨기죠. 삶과 뒤섞이면 지식은 새롭게 바뀌고, 문체와 내용, 모두 달라지게 돼요.

<열하일기>만 해도 학교 내에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거예요. 새로운 틀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썼겠지만, 중요한 것은 난해한가가 아니라 지식을 삶으로 받아들이느냐죠.

알라딘 : 학력자본 없이도 가능할까요?

고미숙 : 그런 건 전혀 필요없어요. 철두철미하게 능력과 욕구 위주에요. 연구실에는 학부생도 있고, 학부 졸업한 사람, 직장 다니다 오시는 분도 있지만, 학력차이는 진짜 없어요. 아니 학력차이는 많은데 그게 중요한 적이 진짜 한번도 없어요.

출판사에서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아요. 왜냐면 이미 우리나라 출판계는 저자의 학력하고 관계없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저자가 서울대 교수라고 읽어주는 시대는 지났지요. <일본 근대의 풍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책을 펴고 번역자들을 짚어가며) 이 사람은 중문과 박사과정 중이고 일본어는 여기 와서 배운 거예요, 이 사람은 사회학과 박사과정이고, 이 사람들은 학부만 졸업했고... 근데 이게 고졸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열정, 또 열정! 우리의 놀이는 우리의 삶이고 지식이고 혁명이다


알라딘 : 선생님 책에 느낌표(!)가 많은 걸 보고, 참 열정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느낌표가 나오면, 가슴이 벌렁거렸고, 어떤 때는 '아니, 이건 별 것도 아닌데 느낌표하셔서 깜짝 놀랐잖아', 하기도 했는데요. 혹시 지적 받으신 적 없으세요? 사실 저는 이 느낌표가 주술 같아서, 저도 모르게 텍스트로 다룬 인물이나 사건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혹시 진짜 주술인가요? =.=)

고미숙 : 우리 말은 표현의 측면에서 너무 썰렁하고 건조해요. 처음에는 표정을 표현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어요. 인터넷에서의 이모티콘도 그런 욕구 때문에 생겼겠지요. <열하일기> 때는 편집자도 인식을 못 했어요. 출간 이후 진지한 독자들의 반응을 듣고 알았지요. 명사구로 끝나는 문장에서도 ?! 외에는 쓸 수가 없잖아요. 문장의 느낌을 강조하고, 내가 느끼는 감동을 전하고 싶어서 !를 사용했어요.

재미있는 건, <열하일기> 때는 여론지도층에서는 매우 주목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극소수였거든요. 반대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는 메일, 문자, 탐방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어요. 판매량에 비해 열렬한 반응이 오고 있어 앞으로 재미있는 관계를 기대하고 있어요.

알라딘: 너무 멋진 말이 있어서 퍼슨웹 인터뷰에서 따왔습니다. "시간을 이기지 못하면 혁명은 없다. 혁명은 일상을 극복할 때 온다. 일상 안에서 축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일상을 축제화하지 못한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바리케이드 안에서 하는 혁명이 며칠 가겠나... 그런데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이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보잘것없다. 별것 아닌데 이론적으로 뻥을 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르는 거다. 어떻게 계속 변화하면서 능력이 커질지 - 그렇게 힘이 커지는 게 곧 혁명일 거다. 시간을 극복하는 것, 시간과 싸워 이기는 게 혁명 아닌가. 사랑도 그런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은 언제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수유연구실을 차리는 과정에서의 최초 고민이었을 같기도 하고...

고미숙 : 80년대에 학술운동이라든가 강사노동조합 등 대학원에서 활동이 많았어요. 근데 맑스의 책을 읽을 때는 가슴이 뛰지만 내 앞에 주어진 일상을 보면 굉장히 거리가 있었어요. 또 길에서 돌을 던질 때는 피가 끓었지만 일상에 돌아와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답답했어요. 이론적으로는 빵빵한 전사들이 사소한 것들을 챙길 줄 몰랐거든요. 뒷풀이를 길게 하다보니 시간을 지킬 수가 없고, 시간을 지키지 않으니 모임이 되질 않더라구요. 거리에 나가려면 사람들을 부추기거나 설득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맨투맨으로 다가가 설득하지 않구요.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모르니 깃발은 있는데 사람은 없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이 너무 이상했어요. 일상 안에서 신뢰를 주지 못하니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나온 사람은 튀는 공간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고... 나는 그 길이 보이는데 하질 않는 거예요. 방법이 보이는데 실천하지는 않는 것. 또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하려면 맛있는 거 먹고 그러면 좋은데, 사오면 먹지만 직접 사오지는 않는 것. 이런 문화가 너무 신기했어요. 쉬운 일에 굉장히 무관심한데, 사실 사람이 모이는 것은 쉬운 일 때문이거든요.

재야학술단체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조직 안에 한계가 왜 생기는가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부적 일상에 대해서는 완고한 습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문제를 이론과 명분에서 찾는데 있더라구요. 솔직하게 자신이 발제를 펑크냈다거나 시간에 늦었다든가 하는 데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깨닫게 되었어요. 제일 사소한 곳에서 배려해야 한다고.

알라딘 : 알라딘 독자들에게 "그냥, 와서 같이 놀자!"처럼 멋진 마무리 인사말 부탁드릴께요.

고미숙 : 전에 MBC에서 와서 여기 모습을 찍었는데, 토요일이라 엄청 스케줄이 많았어요. 탁구치고 제기차고, 산책하고... 저녁 때까지 이런 거 다 찍고 나더니, '대체 공부는 언제 하세요?'라고 묻는 거예요. 다음에 또 와야겠다고, 공부하는 모습을 찍어야겠다고 하면서요. 근데 공부하는 모습 찍기가 참 어려운 연구공간이거든요. (웃음)

'같이 와서 놀자'라고 그렇게 말했을 때는 아주 소박한 의미였을 텐데 몇 년 동안의 시간이 그 말에 대한 주석을 이렇게 달아줬어요. 우리의 유머가 우리의 무기이고. 우리의 놀이가 우리의 삶이자 지식이고 또 혁명이라고요.

진짜 제기차고 등산하고 요가하는 것 자체가 일상의 혁명이에요. 자기 몸이 바뀌거든요. 몸이 안 바뀌면 그거는 가짜 혁명이에요, 가짜. 자기가 그 몸으로 자유를 느낄 수 있어야 되거든요. 자기 몸이 예전의 속성을 그냥 갖고 있고 질병과 뭐 도덕적인 검열을 갖고 있다면 사회가 '너희들 해방됐어'라고 해도 내가 그걸 못 느끼잖아요.

그런데 내 몸이 확 열리면, 그것이 우주를 바꾼다는 말을 지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정말 한 사람이 그렇게 해방되면, 그 스승이 근방 몇 km되는 사람들을, 중생들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말을 실감해요. 그래서 몸이 바뀌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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