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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사랑스럽다. 비로소 몸 전체를 지운 여자의 표정과 손길이 눈에 잡힌다. 좀 시건방지게 말하자면 이것이 고통의 역설일 것이다. 고통과 상처를 내 안에서 삭이면서(삭이는 척 하면서) 텃밭에서 호미를 쥐고 있는 장면은 이 시집이 도달한 내밀한 토포스다. 시인이 완성해나가는 자기 이미지라고도 해야겠다. 담담하고 덤덤하고 무덤덤한 문장이 감정의 간격을 조율하고 있다. 시의 마지막 줄에 피어 있는 ‘하얀 꽃’은 강선영 시의 도착 지점이다. 기쁨과 슬픔으로 가꾼 시인의 꽃이다. 나는 지금 하얀 꽃 앞에 서 있다.
_박세현(시인)




